도망치다 한두 개의 침식체를 만난 듯 놀란 그는 돌더미 위에서 굴러 떨어져 폐허 속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짧은 이명과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순간 자신이 이미 죽은 줄 알았다. 그는 명예롭게 전장에서 죽는 것보다 탈영 도중 부주의로 떨어져 죽는 것이 더 나은 결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어느 두 손이 그의 어깨를 잡고 몸을 끄는 것 같았다.
아합이 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전장의 새하얀 영혼 같은 하얀 소녀가 보였다.
여기서…… 죽는 건가……
그는 작은 소리로 흐느끼며 다시는 그 별하늘을 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퍼졌다.
긴장하지 마시고 진정하세요.
……리브…… 너야?
저예요. 진정하세요. 아합. 제가 상처를 누르고 있어요. 다음은 붕대를 감을 거예요.
나…… 탈영했으니…… 이제 주…… 죽겠지?
……당신은 여기서 죽지 않을 거예요. 병사……
몽롱한 사이, 아합은 의료병의 응답과 멀지 않은 곳에서 침식체 특유의 쟁쟁하고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살고 싶어? 살면 또 뭐 어쩌려고. 탈영병으로 군대에 돌아가면 어떤 제재를 받을까?
이렇게 나약한 내가……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아합은 몸이 무거워지고 생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절망은 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는 더듬거리며 몸에 있는 총을 뽑았다.
총안에 아직 총알 한 발 더 있어……
그는 그 총을 가지고 나와 도망치는 도중에 급하게 침식체를 쐈지만 하나도 명중하지 못했다. 그저 필사적으로 달려야만 했다.
……내게…… 남긴 거야……
어서 가.
아합은 몸을 떨며 손을 들고 싶었지만 두려움과 손의 부상이 겹쳐 총을 들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몸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곳이 차가운 액체로 씻겨져 있었다. 리브는 떠나지 않고 계속 그에게 응급처치를 했다.
마지막 총알은 자신이 아닌 적을 위해 남겨두세요.
하…… 총알 한 발로는 적을 해결할 수 없겠지……
이제 됐어요. 머리 쪽 부상은 심각하지는 않지만 다리는 격렬하게 움직여선 안 돼요.
붕대를 다 감은 후 의료병은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기에 부상자는 당신 한 명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전 누군가 탈영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아합은 그제야 자신의 주위에 부상당한 병사들이 누워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의료병……
여기로 접근하고 있는 침식체는……
의료병은 총을 다시 아합 손에 쥐여주었다.
모델은 가정용 기계 원예사 M-62로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행동 모듈은 가슴 패널 뒤에 장착됐어요. 그곳을 명중시키면 행동 로직이 없어져서 다른 침식체를 끌어들이지 않을 거예요.
너…… 나를 쏘려는 거야?
그래도 가고 싶다면…… 이렇게 해야만 계속 갈 수 있어요.
아합에게는 망설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몸을 떨던 그는 급하게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총을 들어 총을 든 손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조준, 발사.
침식체는 가슴에서 불꽃을 튀기며 몇 걸음 비틀거리더니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병이라도 난 듯 가느다란 팔다리를 비틀어 흔들었다. 한 세기와 같은 긴 기다림 끝에 침식체는 흔들거리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식은땀이 아합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마음속에 돌멩이 하나가 무겁게 떨어졌는데, 이건 그가 처음으로 혼자서 위기를 해결한 것이었다.
그는 옆에 있는 의료병에게 몸을 돌렸고 백발의 소녀는 위로의 미소를 지었다.
그 하얀 미소는 점차 투명해져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스크린 위로 사라지고 추억은 차가운 현실 속으로 끌려갔다.
……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순백색의 기체가 천천히 가동되며 촘촘한 데이터가 끊임없이 한쪽에서 나타났다.
아합이 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 데이터들이 빠르게 한 파일 아이콘으로 이동했다. 아합은 잠깐의 조작으로 쿠로노 내부의 통신 채널을 열었다.
그때 방아쇠를 당겼을 때처럼 가볍게 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