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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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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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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동틀 무렵, 68거점의 남은 병사 모두가 가장 가까운 보급소로 무사히 철수했다.

나는 좌천될 위험을 무릅쓰고 내 직속상관의 코앞에서 보증한다고 기세등등하게 말하고 나서야 구조체 부대가 나를 따라 68거점의 전장을 말끔히 제거했다.

군대가 긴급히 회수해야 할 물자를 그곳에 대량으로 남겨둔 데다 철수하지 못한 병사들이 생존해 있을 수 있다는 게 내 설명이었다.

나도 그 말이 그다지 믿기지 않았다. 군단 규모의 침식체가 버려진 전장의 폐허를 밤새 헤매고 다녔는데 어떤 생물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적이 있다면, 그 기적을 목격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순간에 발생한 것일지라도.

내 손짓에 병사가 손을 흔들었다.

계속 전진해!

듬성듬성 발자국 소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탐지기를 든 병사 한 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잠깐…… 이 진지는 포기한 것 아니었나? 생명 신호가 왜 이렇게 많이 잡히지?

나는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있는 탐지기를 빼앗았다. 내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기기 소리가 커졌다.

나는 반쯤 무너져 내린 벽 앞으로 가서 그 망가진 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방 안에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일부 부상은 눈뜨고 볼 수 없거나 심각했고 일부는 여과탑의 단계적 작동 중단으로 인해 가벼운 침식 증상이 나타났다. 한순간에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었지만 모두 응급처치를 받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휘부에 보고드립니다. 이곳에서……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병사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햇빛이 그들의 얼굴에 내려앉고 눈에는 살았다는 희망이 떠올랐다.

저…… 정말 누가 왔어……

그 쇠약한 얼굴도 그 중에 있었다. 가장 앞에 주저앉아 지혈제 반 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부 부상자의 처리를 맡은 것으로 보였다. 생명이 위독해 보이는 의료병은 그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체처럼 조용히 있었다.

살아 있어……

그는 또 사람을 열받게 하는 그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서! 구조를 시작해!

아 네, 알겠습니다!…… 중상을 입은 의료병 한 명과…… 구조된 부상자 35명……

가능한 한 빨리 의료 부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전부…… 이 의료병이 한 거라고?

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해.

구조체 병사들이 움직이자 나는 부상 상태가 비교적 심각하지 않고, 이동이 가능한 부상자들을 먼저 빼내도록 지도했다.

우선 이 의료병은 건드리지 마. 온몸 곳곳에 분쇄성 골절상을 입었어. 움직이면 산산조각 날 거야.

의료병

……

내 목소리를 들은 듯 그녀의 속눈썹이 움직였다. 나는 급히 그녀 곁에 주저앉았다.

의료병

……옐레나…… 장관님…… 이십니까……?

……바보 같은 병사 같으니, 넌 군기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의료병

……장관님이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말을 마친 뒤 더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생명 징후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일어섰다. 옆에 있던 쇠약한 병사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은 틈을 타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일어났다. 나는 곧장 걸어가서 그의 멱살을 잡고 문밖으로 끌고 나갔다.

왜 탈영한 거지?

……

왜 탈영한 거지?

그가 시선을 떼며 입가는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그 순간 답을 얻었다.

내가 손을 떼자 그가 두 걸음 비틀거렸다.

왜 그녀가 너를 구하게 놔뒀지? 부끄럽지도 않아?

……죄송합니다……

전쟁은 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나는 내 약속을 이행해 그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싶었다. 그는 머리를 파묻고 두 어깨를 떨며 나약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한 듯 그는 띄엄띄엄 말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탈영병입니다…… 그녀가 저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탈영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군칙에 따르면 탈영이 적발될 시 병사는 추방되고 군적이 폐지되며 세계 정부의 관할 구역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내가 더 화나기 전에 얼른 꺼져.

……어째서……

그녀는 목숨을 걸고 널 두 번이나 구했어. 나는 의료진으로서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뿐이다.

나는 냉담하게 그가 우는소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어색하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지팡이를 주웠다.

그리고 일어난 뒤 얼굴을 닦고 처음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녀가…… 저를 구해줬으니……

그녀가 한 말에 살아남아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약할지라도……

그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야, 쇠약한 놈.

나는 그를 불렀다.

그녀가 너에게 뭐라고 했다고?

쇠약한 병사

……그녀가 저를 치료해 줄 때 말했습니다……

병사는 어젯밤 전쟁에서 그녀가 한 말을 명확하게 다시 말하려 노력했다.

쇠약한 병사

……바로 이런 파멸이……

의료병

전에 당신이 제게 물었던 적 있었죠…… 인간은 이런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냐고요.

나중에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요.

저도 당신처럼 막막해요. 돌아갈 곳을 잃은 저도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당신처럼 이 종말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오늘 밤 어떤 순간에 하늘의 별을 보면서 갑자기 깨달았어요……

……바로 이런 파멸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모두 보통 사람들과 달라요. 당신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언젠가 자신만의 방식이 빛을 발할 거예요.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부디 잘 살아남아주세요. 제가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아직 수많은 병사들이 돌아갈 수 있잖아요…… 그곳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어요.

쇠약한 병사

……이게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깨달았다. 나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었지?

그녀가 처음 전선에 나섰을 때, 내게 희망을 전해주지 않았나?

그녀가 중상을 입은 모든 병사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노력할 때, 전장에 신념을 전달하려 하지 않았나?

내가 그 부서진 문을 열었을 때, 생명이 위급한 병사의 얼굴에 햇빛이 떨어졌다. ‘환생’의 광경이었다.

그녀의 영혼이 어떤 용기에 담겨져 있든, 그녀의 빛은 무겁고 어두운 세월 속에서 두드러져 요원의 불꽃이 되었다.

나는 병사가 천천히 그곳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태양 아래, 폐허 꼭대기 어디선가 날아온 백로 한 마리가 잠시 머문 뒤 햇빛을 맞이하며 길게 울었다.

그 의료병이 내게 전한 희망은 여전히 내가 이끄는 부대에 떠돌고 있었다. 그녀가 치료한 병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아 나를 따랐다.

다음 전쟁에서 세계 정부는 구조체 개조 기술을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본격적으로 규모화된 세계 정부 소속 구조체 부대를 창설했고 나는 집행 부대로 전근됐다.

그 이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도 결국 구조체가 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내가 이끄는 신병들에게 그녀에 대해 확실히 말할 것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여전히 말세의 어느 한 곳에서 인간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퍼니싱이 진화를 가속화하면서 인간이 직면한 도전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내 소대가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파견되어 섬멸전을 벌였을 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소대는 이합 생물의 맹렬한 공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그들이 순직한 후 나는 리더를 잃은 다른 소대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왕복하며 그것에 무감각해졌다.

결국 나는 행동 능력을 잃고 인간형 변종으로 이루어진 물결 속에 파묻혀 의식의 바다가 흐릿해졌을 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의료병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시간이 오래 지난 탓인지, 많은 전쟁을 거쳐서인지 나는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희미하게 본 그녀가 그녀인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내 기억 속의 모습과 같지 않았다.

옐레나

……□□……?

나는 심한 통증을 참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중에 신병들에게 그녀가 고인이 된 병사 얘기를 꺼내지 않고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기뻤다……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고 나는 곧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머리 위에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처럼 온몸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 슬프고 애처로운 웃음이 성당의 성모상처럼 과하게 기호화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성결한 엄마가 갓난아기를 경건하고 온유하게 지켜보듯 신이 응시하는 것 같았다.

저건 그녀일까? 아니면 내가 죽을 때가 돼서 천사를 만난 건가?

그녀가 손에 든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자 잔잔한 물결이 부드럽게 나의 의식의 바다를 어루만졌다. 고통은 점차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내 병사들의 절망적이고 목이 쉬도록 외친 울부짖음도 그 물결을 타고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절망과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죽은거라면, 내가 죽기 전에 이런 평화를 느끼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옐레나

만약 당신이 천사라면…… 제 병사들 좀 살려주세요…… 그리고…… 그 의료병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나는 중얼거렸다. 그 용감하고 불쌍한…… 병사들의 참혹한 광경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환상 속에서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친구와 가족들은 나를 둘러싸고 함께 술을 마셨고, 눈밭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숲에서 뛰쳐나온 야생 곰을 쫓아냈다.

나는 편안히 눈을 감고 평화로운 꿈속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