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별이 자신의 질량을 거대한 에너지로 전환해 보이지 않는 감마선을 내뿜는 것을 육안으로 보았고, 우주 반대편에서 억만 년을 여행하며 온갖 고생을 겪은 섬광을 봤어.’
자신을 향해 엄습하는 거대한 포화가 리브로 하여금 짧은 연결에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희미한 시야에서 그녀는 핏빛 비둘기가 가시덤불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새빨간 새는 큰 소리로 지저귀고 두 날개를 퍼덕였는데 마치 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새가 퍼덕이면서 붉은 퍼니싱이 날개에서 모조리 벗겨져 새하얀 날개를 드러냈는데…… 그건 한 마리의 백로였다.
왜……
리브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의식은 수많은 기억 데이터 속에 흘러가 눈앞의 정보를 어렴풋이 잡을 수밖에 없었다.
새야…… 어디서 온 거니? 왜 자꾸 모습이 바뀌는 거야?
백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새는 우아하게 서성거리다가 그녀의 눈앞에서 다시 긴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였다. 새하얀 깃털이 분분히 떨어지면서 그녀를 다시 데이터 흐름에 휘말리게 했다.
세계 정부가 보내온 통신을 확인한 뒤 맥이 빠진 나는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옐레나 장관님……?
뒤에서 의료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전방의 번쩍이는 전투 구역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앉아.
나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에게 앉으라고 표시했다.
부상자는 모두 처리했나?
네, 모두 처리했습니다. 다른 의료병 두 명도 부상 상태가 호전되어 운이 좋으면 계속 참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의료 물자가 부족해서…… 상부의 보급은 혹시 언제쯤 도착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없다.
……네?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이 거점을 포기하고 날이 밝기 전에 급히 철수하라고 했다.
의료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전쟁의 불길이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비쳤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전한 방어선으로 철수하지 못한 병사들이 많습니다! 철수하겠다는 건 그들을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의료병, 넌 충분히 잘 했다.
첫 교전에서 그 병사를 구해낸 그녀는 연일 계속되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여줬다. 그녀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화력 엄호만 있으면, 손에 닿는 부상자들을 전부 구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점차 그녀를 신뢰하고 죽음 위기에 놓인 병사들은 그녀의 이름을 외칠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군대에서 자신만의 위신을 쌓았다.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을 구하려는 의욕 그리고 그녀의 상징인 웃음——내 훈계는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치료를 하면서 사람을 위로하는 요령을 익혔다. 하지만 그것도 좋은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 것을 걸고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이런 믿음도 매우 소중했다.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십니까…… 다른 병사들이 먼저 철수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는 겁니까? 저들은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의 동료입니다……
상부의 결정은 항상 가장 적절한 시기에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노력하며 제 책임을 다했는데…… 제가……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울먹였다.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갛게 달아오른 눈시울을 닦으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우리 사이에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전쟁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난 정말 그들을 구해준 걸까……
지금 이 모든 것을 의심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러. 이런 의문은 앞으로도 생길 거고, 너를 더 고통스럽게 할 거다.
나도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다. 전쟁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퍼니싱에게서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중 인간이 이길 수 있는 길이 1억만분의 1의 희망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작은 희망을 위해 싸우는 거야.
마치…… 음…… 지구에서 인간을 진화시킬 수 있는 것도 은하계에서는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인간으로 지구에 태어났는데, 인간이 퍼니싱을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못하면 되겠나?
의료병은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장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1억만분의 1의 희망을 위해 저도 계속 싸우겠습니다.
아합이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별에 살고 있는 영장류의 고급 품종일 뿐이라며 이 별은 아주 평범한 항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고 지구는 단지 수억 개의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뭐? 누구?
바로…… 우리가 전선에 온 첫날, 도움을 청하던 그 병사입니다……
아, 그 쇠약한 얼굴을 띠고 있던? 원래 치료할 때 대화를 나누나?
물자 부족으로 일부 수술은 전신 마취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 얘기하면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프리나는 디저트를 좋아해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자주 얘기했는데 그렇게 하면 굉장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야미는 사랑하는 동생이 있는데 가족 얘기를 하면 어떤 고통도 참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합은 과학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긴장하면 그런 얘기들을 쉴 새 없이 늘어놓습니다……
의료병이 그녀의 환자들 상황을 자세히 얘기했다. 그녀는 미래에 분명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이다.
그는 항상 풀이 죽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어쩌면 종말을 맞이하고 소멸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저도 사실 막막했기 때문에…… 하지만 옐레나 장관님의 말을 듣고 저는 제 직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든, 이곳에 있는 한 작은 힘이라도 보태 다른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저는 만족합니다.
의료병, 넌 항상 내 예상 밖이야.
……네?
종말의 상황에서 희망을 전하는 것, 그게 내가 너에게서 본 가장 큰 빛이야.
나의 솔직함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 오히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 그렇게 연약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예전에…… 누군가 저를 필사적으로 구해준 덕분에 저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막막하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분에게 부끄러울 것입니다……
장관님의 지도로 저는 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신념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분의 생명, 제 생명이 이 땅에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그녀가 눈을 감자 전장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번쩍였다. 그녀는 마치 먼 곳을 향해 기도하듯 말했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더 많은 그리고 더 고된 일을 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읽은 그 단어는 소리가 작아서 잘 듣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엄마’를 들은 것 같았다.
네 소원을 빨리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네? 그게 무엇입니까?
나는 팔을 들어 흔들며 반쯤 농담조로 말했다.
너도 강철로 바꾸는 거야.
그,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히 안 되지. 난 고향에 있을 때도 맨손으로 야생 곰과 싸울 수 있는 여자였어.
……죄송합니다……
사실 나도 몰라. 세계 정부에 있는 구조체도 적지 않은데 아직은 투입해서 사용하기 어려운 걸 거야. 나는 테스트 프로젝트인 셈이야.
내가 오른팔을 비틀자 로봇팔이 무시무시한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통째로 뒤집혔다. 의료병은 내 행동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접골을 도와주고 싶은 것 같았다. 난 그녀가 정말 그렇게 하기 전에 서둘러 느슨해진 팔을 비틀어 돌렸다.
그녀는 내 팔을 건드리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가 그 위에 널려 있는 스크래치를 보고 다시 움츠렸다.
……통증을 느낄 수 있으십니까?
통각 시스템을 끌 수는 있는데, 꺼진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뭐랄까…… 음…… 사람이 아니라 진짜 그냥 가동되고 있는 기계 같다고 할까?
개조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나는 기억을 떠올렸지만 별로 좋지 않은 추억들만 있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마취한 것보다 더 아프다고 해야 할까? 개조 수술은 마취를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의식의 바다 파동이 불안정해져.
사람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전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서……
어쨌든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의 가장 좋은 운반체는 역시 인간의 몸이야. 이건 대자연의 선택이라 할 수 있지. 영혼을 빼서 다른 용기에 넣으면 항상 영혼의 형태가 바뀌게 돼.
인간 시절보다 더 큰 불편함을 견뎌야 영혼 본연의 모습을 겨우 유지할 수 있어.
……그렇습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관님……
다만 전쟁은 개인의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져. 이 시대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감사합니다.
어찌 되었든…… 장관님의 헌신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시간을 많이 낭비했군. 돌아가지.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철수해야 해. 시간이 얼마 없어.
내가 일어서자 그녀도 이어서 일어섰다. 다음 철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무거워져야 할지,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둔지로 돌아와 철수 결정을 금방 알린 뒤 인원수를 세었는데 병사 한 명이 빠졌다는 말을 들었다.
아합입니다…… 대략 두세 시간 전에 목발을 짚고 나가는 걸 봤습니다. 생리 문제를 해결하러 간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다 찾아봤나?
나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중요한 순간에 사고를 치는 것과 나약한 탈영병이었다.
장관님, 보고드립니다! 다 찾아봤습니다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가면 우리 방어선을……
그를 제외하고 전원 모두 지금 바로 철수한다! 길에서 그 병사를 만날 경우 내가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는 이상 탈영병으로 간주해 그 즉시 사살한다!
나는 엄숙하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대답하기 전에 당황한 고함 소리가 또 들려왔다.
자, 장관님, 의료병 리브가 보이지 않습니다!
……
지금 시간이 부족합니다. 8km 떨어진 곳에서 대량의 침식체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탐지했습니다……
똑같이 처리한다! 전원 모두 빠르게 철수 준비한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할 수 있지!
마음이 복잡했다. 화나고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에는 군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멈출 수 없었다.
15분 후, 나는 남은 군대를 이끌고 주둔지 밖에 서서 마지막으로 밤중에 흩날리는 전쟁의 불길을 보았다. 하지만 분노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전원 출발한다.
내 명령에 따라 지상 방어군은 68거점에서 철수했다. 인간의 68호 여과탑이 완전히 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