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외전 스토리 / 한 편의 연극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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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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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콜록콜록콜록콜록.

이 연락실은 얼마나 오래 사용하지 않았길래 이렇게 먼지가 많은 거야. 소품팀도 참, 이 상점 촬영신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거 아니야? 콜록콜록.

됐다. 어쨌든 그 로봇들은 피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 휴……

이곳에 숨어있으면 안전할 것 같아서 일단 무거운 물건으로 문을 막았어. 하지만 하필 EMP 경찰봉이 고장 나서...

이 상황…… 너무 이상해. 해커가 공격한 것일까, 아니면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도록 강요하는 신종 전자 바이러스가 퍼진 것일까?

하아, 이런 건 배우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일단 공원 전체 내부 링크부터 차단하자. 그럼 바이러스랑 해킹도 못 들어올 거야.

지금 서둘러서 외부와 연결해야 하는데…… 전화, 전화…… 음, 연결이 안 돼.

해커든 바이러스든 그렇게 많은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데 당연히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할 수 있겠지.

예비 방안, 예비 방안. 어디 보자. 이곳에 연락 단말기가 많이 있을 텐데……

서랍 속의 긴급 구조 전화는…… 불통. 지하실의 소방 통신은…… 파손. 찬장 안쪽의 비상 연락망은…… 폐기.

벽 위의 광대 가면 아래 관객 연락 단말기……

연결. 헤헤, 이건 정말 하늘이 나를 도왔다…… 하, 이 대사는 좀 더 멋진 자리에서 해야 되는데.

현재 온라인 관객이…… 다행이야. 아직 관객이 있어.

시간이 모자라. 신호가 너무 불안정한 것부터 걸러내자. 최근 연락부터…… 있다. 6875번 관객.

허, 이 열정적인 누님이라니. 뭐, 상황이 급해서 그런 거니 어쩔 수 없지.

정말 어쩔 수 없나? 롤랑은 단말기에 손을 올리고 잠시 멈췄다.

이렇게 연락하면 연극이 파괴되고 세상의 진실을 외부에 알리 게 돼.

분명히 상사한테 혼날 거야.

…… 하하하하하, 혼내라 그래. 위약금이 목숨보다 더 비싸겠어?

롤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위험에 처했는데도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가면을 한번 쓰면 오랫동안 벗을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단지 엄마, 아빠가 화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롤랑은 몇 가지 명령을 입력하여 전달했다. 홀로그램 화면에 한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 뭐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세상에! 롤랑이다! 롤랑이 직접 나한테 연락을 하다니!!

안녕하세요, 누님.

여전히 요란한 목소리지만 이제 그는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의지해야 한다.

음…… 누님. 사실, 제가 지금……

쉿, 롤랑, 아무 말 할 필요 없어. 경찰에 신고하는 거지? 다 알아.

어? 누님, 어떻게……

당연히 알지. 텔레비전에서 갑자기 그렇게 어두워지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연속적으로 바뀌었지만, 난 네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위기 속에서 도망치고, 숨고, 장소를 찾고 마지막으로 이 연락실에 도착 한 과정들을 모두 지켜봤어!

아하하, 뜨거운 관심 고마워요…… 어쨌든 빨리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응응, 알았어.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침내 다른 사람의 현재 상황을 생각할 여력이 생겼다.

…… 카메라가 나를 찍었다고? 설마 내가 길을 따라 달려왔을 때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나의 화면을 재생한 건가?

아, PD님이 조작한 거겠지…… 감사합니다, PD님. 우리 모두 살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 살아야 해. 지금 중요한 건 경찰에 신고하는 거야. 신고만 하면 동료들이 구조될 수 있고 공원에 있는 로봇들을 진정시킬 수 있어. 만다스티도 수리받을 수 있고……

——응, 그럼 이제 난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

너희들이 진행하는 이 관객 참여 이벤트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고 어려워. 내가 너네 연극을 자주 보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정말 경찰에 신고했을 지도 몰라.

…… 하?

난 진작에 짐작했지. 모험극은 질질 끌기도 어렵고, 세계가 멸망하는 스토리로 끝내야 후속편을 내기도 쉽잖아. 사실적인 광고를 하고 있지만, 너무 드라마틱 하고 허술한 곳도 많아. 시나리오가 별로야, 별로.

주연배우를 직접 참여시킨 거 보면 제작진도 계속 속일 생각이 없는 거겠지. 롤랑, 주연 배우로서 너의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어. 후속편도 힘내.

저기요, 여보세요? 누님, 대체……

찰칵. 신호가 끊기고 롤랑 눈앞의 홀로그램 스크린은 텅 비어 있었다.

……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하아, 이 누님한테 기대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빨리 다음 연락처를 찾아야지……

그냥 매일 이상한 일을 상상하는 관객일 뿐이었다. 롤랑은 머리를 흔들며 조금 전에 말들을 모두 잊어버리려고 했다.

통신 선택 화면으로 돌아가 가장 가까운 범위에서 연결을 시작했다.

2986번 관객, 불통, 4689번 관객, 통화 중……

젠장, 이 시간에는 확실히 방송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내부와 본사가 연락하는 구역을 좀 더 살펴보자. 중앙 제어실에서 외부로 연결되기를 바라야지.

&^%번 관객……? 왜 여기에 깨진 코드가 있지?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연결해 보자.

…… 연결됐나!?

롤랑은 기쁨 마음으로 전기 회로를 연결한 후 홀로그램 스크린을 켜고 마음을 다잡았다. 방금 구조 요청에 실패한 원인은 아무래도 너무 가볍게 행동해서인 것 같았다. 다음에는 눈물을 조금 짜서 빨리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게 상책일 거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홀로그램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롤랑이 미리 생각해둔 대사를 하지 못하게 한참 동안이나 말문이 막히게 했다.

롤모!? 네가 왜 여기에 있어?

……

로캉로 인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작동되었습니다. 인격 모드를 진행할 구역을 설정하여 인격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세요.

인격 시뮬레이션? 뭔 소리야? 하아, 아니, 통신을 받았으면 빨리 경찰에 신고해 줘.

장시간 선택하지 않아 기본 모드를 실행합니다. 시뮬레이션 대상: 롤모. 목표 번호 78111114: 롤랑의 의존도를 계속 강화합니다.

형, 오랜만이야.

롤랑의 기분 변화치 체크 중……

형, 왜 이렇게 긴장한 것처럼 보여? 공연이 힘들어?

걱정 마. 가족들은 모두 형을 지지해. 그들은……

그…… 들…… 들들들……

……오류가 발생하여 데이터 수집에 실패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오류가 의심됩니다. 명령을 다시 입력해 주세요.

……

롤모야……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장난치는 거지? 네가 AI로 너를 시뮬레이션 해서 나한테 장난치는 거지?

그만해. 하하하, 형 지금 위급한 상황이야.

데이터베이스 재접속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다시 입력해 주세요.

……

다시 연결, 끊었다 다시 걸어. 반복해서 시도해.

명령을 다시 입력해 주세요.

명령을 다시 입력해 주세요.

명령을 다시 입력해 주세요……

롤랑

하하…… 하하하하…… 이게 뭐야……

콰직. 롤랑은 주먹으로 조작 패널을 세게 내리쳤다. 낯익은 얼굴은 깨진 코드가 되어 공기 중에 부서졌다.

내가 AI 시뮬레이션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통화하고 심지어 그를 내 동생으로 여겼다고……?

이것도 연극의 설정인가? 하하, 재밌네. 재밌어……

…… 젠장, 젠장. 하지만 지금은 이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해……

그래, 별거 아니야. 사는 게 제일 중요해. 살아야만 사람이 원하는 것을 계속 추구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 포기해…… 나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데……

빨리 생각해 봐. 무슨 방법이 있을지…… 맞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공식 계정에 로그인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많이 보내면 누군가가 보겠지. 공식 평판이 안 좋아져도 어쩔 수 없어, 【삐——】.

인터넷 우회, 전화 연결…연결됐어. 옛날 방법이 의외로 효과가 있네. 얼른 접속해서……

사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다시 한번 입력…… 여전히 없어.

설마 이 사이트도 AI가 시뮬레이션한 건 아니겠지?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이전에 롤모의 AI가 알려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주소인데. 이것까지 찾을 수 있을 거라곤 믿지 않아——

이런… 이 사이트까지…

단지는 도대체 무슨 속셈이길래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가짜 사이트까지 만들고……

…… 일단 도움부터 요청하자. 로캉로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계정 검색.

프로그램

계정이 검색되었습니다. 계정 사이트 주소 연결…… 기본 광고가 감지되었습니다.

《홀로그램 배우 훈련소》30초 광고입니다. 재생 시작.

…… 무슨 광고지?

???

——Hola amigo!

이 황금 같은 시대에 로봇이 나와 펼치는 긴장감 없는 연기, 지겹지 않으신가요? 감정 없는 쓰레기 연기에 질리지 않으셨나요? 자,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여러분들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화려하기만 한 스턴트 액션이나 가상의 프로그램 혹은 거짓된 편집 없이, 오직 라이브로 인간 주인공이 이 위기의 도시에서 겪는 가장 리얼하고 긴장된 반응을 보여드립니다!

롤랑

이 목소리……

네프티…… 형?

롤랑이 광고 속 나지막한 목소리를 겨우 알아챘을 때 홀로그램 스크린에도 때맞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나 그가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 요! 저희 리얼리티 라이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네프티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로봇일 뿐입니다. 제가 리얼한 저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희는 모두 프로그램에 의해 조작되고 프로그램대로만 연기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가짜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뭐가 진짜인지 아십니까?

——정답은 당연히, 우리가 사랑하는, 롤랑!

우리의 리얼리티 쇼, "홀로그램 배우 훈련소"에서 1주년 기념 축제가 진행 중입니다! 오짓 주인공 롤랑만이 있는 거대한 스튜디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아역 배우부터 성인 배우까지 롤랑의 성장기를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년에 걸쳐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롤랑, 그리고 곧 톱스타의 길을 걷게 될 롤랑! 그리고 저 네프티는 그의 가장 충실한 동료로서 그의 이상을 지켜줄 겁니다. 앞으로 롤랑의 연극 인생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짜릿한 스토리와 진실된 경험 속에서 생활을 즐겨보세요! 여기, 바로 저희들의 리얼리티 쇼! 이 진실한 스토리야말로 이 시대에 있어야 할 진정한 예술입니다!

Damas y caballeros(신사 숙녀 여러분), 쇼타임——!

롤랑

아…… 아…… 아……

화면 속 네프티

자, 그럼 마지막으로 즐거운 휴일과 신나는 삶을 즐기세요. 엔터테인먼트 선두두자인 로캉로 그룹…...

광고에서 네프티의 의기양양한 말투와 익숙한 대사가 차가운 물처럼 롤랑의 머리 위로 흘러 들어왔다.

수평면은 발바닥에서 조금씩 올라오더니 그의 무릎, 허리, 가슴, 목덜미를 넘겼다.

그의 몸은 차가웠다.

롤랑

흑…… 흑…… 욱……

차가운 현기증이 그의 뇌 속을 스쳐 지나가 위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고 심한 구토의 기운이 목구멍에서 그대로 솟아올랐다.

이런 느낌은 그에게는 매우 익숙했다. 그는 만다스티를 강제로 재가동할 때마다 속을 다 토해낼 것 같은 메스꺼움을 견뎌야 했다.

스크린 속 광고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고 일련의 댓글이 문득 롤랑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찰나에 포착된 화면에서 롤랑은 낯익은 아이디 몇 개를 봤다.

칭찬, 부러움, 기대, 걱정. 흐르는 댓글은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은 채 롤랑을 향해 쏟아졌다. 비슷한 내용, 비슷한 말투 그러나 지향점은 이미 그 허황된 롤랑이 아니었다.

아, 그렇다. 큰 스튜디오를 짓고, 살아있는 인간을 속이고, 수십 년을 버틸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쪽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어디에나 있는 카메라가 자기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니고, 관객이 보는 게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면 훨씬 간단했다.

고도로 포화된 업무로 시간을 쪼개고, 복잡하고 심오한 사고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허상의 '외부' 세계를 만들어주면 그 사람은 자신이 판 안의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째서…… 왜……

몇 초 후, 광고는 관객들의 환호 속에 끝났다. 롤랑이 자신의 몸이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손가락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상관없어. 속아도 괜찮아.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만 고민하면 돼……

그래. 다 가짜면 뭐 어때. 이건 다 극단에서 꾸민 짓이야. 나가서 고소할 거야. 【삐——】 다 고소해 버릴 거야. 밖에 진짜 엄마 아빠도 있고 롤모도 있어. 살아나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어……

지금 이 상황에서는 공식 계정 로그인이 불가능해. 하지만 광고에 따르면 단지에 인간은 나 혼자 밖에 없다고 했으니 분명 컴퓨터에 나와 관련된 계약서가 있을 거야. 가족들의 연락처와 주소는 모두 계약서에 저장되어 있을 거야……

계약서, 계약서, 인간이 나 혼자면 찾기 쉬울 거야…… 단지 안의 암호화된 방화벽을 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기다려. 롤모……

이건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유지한 인생인데…… 그 목표를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고 결심을 하고 아프기까지 했는데…… 그럴 리가, 어떻게 가짜일 수가……

나에게 말해줘. 누구든 좋아. 제발 말해줘. 방금은 그냥 연극이었다고 나가면 끝낼 수 있는 연극……

프로그램

방화벽 해제. 암호화 구역 대규모 파손…… 낯선 접근. 통과.

됐다.

프로그램

암호화된 파일. 검색 결과, 1개.

프로그램

암호화 해제. "여시겠습니까?"

프로그램

"비밀번호 확인 $^%&^Ttg798F&^, 여는 중^N78b"

《홀로그램 공원 육성 기지에 관한 취직 계약서 ("롤랑의 홀로그램 배우 훈련소" 프로젝트)》

갑: 로캉로 엔터테인먼트(정식 명칭: 로캉로^%*^DFC^&hc&%YCT67FDC

을…… 을……

하…… 하…… 그래, 내가 생각을 못 했을 리가 없지.

뒤쪽의 대문이 열리면서 문 앞에 쌓인 무거운 짐들이 빈 상자처럼 날아갔다.

뒤돌아보니 문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지만 롤랑의 눈에 잘 보였다. 그 구멍에는 로봇들이 모여 있었고 하나같이 힘을 다해 그 작은 구멍으로 파고들면서 롤랑을 향해 울부짖었다.

비록 얼굴이 불완전하고 눈동자가 새빨갛게 되었지만 롤랑은 그 소용돌이치는 기계 바닷속에서 단번에 자기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알아보았다.

네프티…… 오미…… 피디님……

하하, 하하, 그래. 항상 나와 함께 하며 배려해 주더니... 나를 속인 당신들은 모두 로봇이었군. 설마 롤모의 AI도 다 당신들이 만든 건 아니겠지?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 구역질 나는 것, 유지해온 것, 동경하는 것들도 전부 당신들이 만든 가짜인 거야? 그런 거야? 하하, 하하하……

단말기를 끈 롤랑은 도망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두 팔을 가볍게 들고 예의 바르게 걸음을 옮겨 문 앞으로 마중 나갔다. 마치 고귀한 기사가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당신들 손에 있는 물건, 위험한 것 같은데 연극 소품이 아니라 진짜인 거지?

뭐, 좋아. 어디 한번 해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어. 이름도, 경력도, 과거도 전부 가짜였어. 이렇게 지루한 인생은 일찍 막을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 그래, 정말 이상적이네.

문의 구멍이 파괴되고 맨 앞쪽에서 돌진하던 로봇들이 기어 들어와 롤랑의 눈앞에 다가왔다. 프로그램 오류 때문인지는 몰라도 롤랑은 그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반복하는 걸 들었다.

오미

롤랑, 아니야. 아니야. 방금 그 억양은 틀렸어! 기억해! 복부부터 힘을 모아야 해!

오미가 연기를 지도하면서 한 말로 그 당시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대본을 말아서 그의 복부를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쇠몽둥이는 아마 곧 자신의 복부를 향해 찔러올 것으로 예상됐다.

롤랑, HZZ 번째 장면, 빨리빨리빨리……

피디가 롤랑을 재촉할 때마다 했던 다급한 말투였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마치 두 자루의 칼이 고막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양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칼날은 아마 그때처럼 자신의 귀에 꽂힐 것으로 예상됐다.

롤랑, 지금 난, 네가, 적어도 잘 잤으면 좋겠어……

하하, 네프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본론만 얘기하는데 왜 너만 이렇게 따뜻한 척이야?

마치 정말로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참나……

네프티의 손에는 작은 칼이 쥐어져 있었다. 롤랑은 그의 몸이 너무 굵직해서 항상 옷 안이 모두 탄탄한 근육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찢어진 옷들 사이로 보이는 내부의 기계 구조는 매우 초라하고 넓은 공간만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의 힘은 작은 칼 한 자루만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사기극인가.

롤랑은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동료들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다가 측면에서 달려드는 그림자 때문에 한쪽으로 밀렸다.

윽……

롤랑은 벽에 부딪혔고 어깨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살아있었다.

…… 만다스티?

뒤돌아보니 자신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그 로봇 경찰관이었다. 날카로운 무기에 찔린 몸통 가장자리에는 롤랑에게 익숙한 기계 부품이 드러나 있었다.

하하, 만다스티, 너답지 않은 솜씨인데? 시원시원하게 좀 해봐……

…… 기사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국왕으로서 당연히 도와야지.

기록…… 추억, 생명, 반드시, 보류, 보존.

……?

보호. '롤랑'의 모든 것.

만다스티의 우선적인 임무다.

롤랑

……

빨리 도망쳐……

나의 기사……

……!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섰다. 롤랑은 갑자기 몸을 돌려 옆에 있는 진열대를 세게 밀었다. 물건들이 철제 구조물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그 작은 구멍을 막았다.

그는 뒤에 있는 로봇들의 움직임을 보지도 않고, 뒤돌아 다른 출구로 뛰어나갔다.

빨리 도망…… 치라고?

어디로 도망치라는 걸까? 그는 어디가 안전한지,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방향도, 목표도 없이 계속 달렸다. 머리가 없는 파리처럼 필사적으로 달렸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당장 발걸음을 돌리고 싶었고, 속도를 낼 때마다 무언가가 몸을 원래의 속도로 돌려놓는 것 같았다.

심지어 롤랑은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냥 자신을 괴롭히면서 체력을 소진하려는 목적인 것만 같았다.

두 다리는 점점 뻣뻣한 느낌으로 가득 찼고 고통 속에서 이성과 사고는 오히려 뚜렷해졌다.

아까 힐끗 본 화면. 조각 같은 문구들이 머릿속에서 점차 맞춰졌다.

'갑은 을에게 매달 돈을 지불할 것이다……'

을은 계약 기간 동안 상품(롤랑을 지칭함)과 어떠한 형태의 연락도 하지 않을 것을 인정하고 약속합니다.'

'계약 기간 동안 상품과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사건은 을의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상품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 시 을은 AI 시뮬레이션 인격 훈련에 상응하는 소재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항 아래 적힌 서명은 비록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빠…… 엄마…… 롤모……

AI 시뮬레이션 인격, 홀로그램 영상, 음성 변조까지. 통신할 때는 가족을 흉내를 내고 필요할 때는 녹음을 재생했어. 가족에게 둘러싸인 환각을 만들어 내는 건 너무 쉬웠겠지. 진짜 가족은 먼 곳에서 TV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한가하겠지.

내가 좋은 가격에 팔렸는지, 과연 그들이 잘 살 수 있을 만큼인지 궁금하네.

그들이 내 공연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하…… 당연히 웃겠지.

기사? 배우? 추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결국, 추구하는 것은 모두 가짜였고 그저 사람들에게 놀림과 조롱을 당하는 광대에 불과했네.

정말 한 편의 훌륭한 연극이야.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

롤랑은 큰 소리로 웃으며 계속 달렸다.

얼마나 뛰었는지 그의 발걸음이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양팔은 자신의 몸을 내던질 듯 큰 폭으로 움직였다.

호흡은 이미 더 이상의 움직임을 지탱할 수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부풀어 오른 풍선을 삼킨 듯했고 다리를 한 번 내디딜 때마다 젖산이 쌓인 근육을 당기는 듯 아팠다.

롤랑

하아…… 하아…… 아.

마침내 황급한 발걸음에 걸려 넘어지면서 온몸이 땅에 철퍽하고 쓰러졌다. 피로가 과도하게 누적된 몸은 더 이상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뒤에서 기계의 마찰음이 점차 크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