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피곤해 죽겠다.
풀썩. 롤랑은 소파에 쓰러져 기분 좋은 한숨을 내뱉었다.
최근에 쓴 시나리오들은 다 뭐지. 새로 온 작가님은 만타스티의 성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기존 만타스티의 행동과는 너무 다르니 내가 모든 뒷수습을 해야 돼. 하아, 만약 만타스티가 정말로 위험에 처하면 어떡할 거야.
뭐, 불평해도 소용없지만.
내 동생에게 연결해 줘.
벽에 걸린 시계를 향해 속삭이자 통신 단말기가 음성을 인식하더니 카운트다운이 켜졌다.
당신의 수면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이번 통화는 총 11분 28초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연결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통신 신호음은 단말기에 표시된 시간에 맞춰 한 번씩 멈추었다. 박자는 어색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 음이 있는 것 같았고, 이에 롤랑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들었던 기괴한 음악회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음악회의 마지막은 공허함이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세요.
다시 연결해.
……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세요.
…… 하, 오늘도 안되는 건가?
머리를 움켜쥔 롤랑은 세 번째 통신을 시도했다. 동시에 그는 타이머가 달린 인터페이스를 옆으로 치운 후, 다른 단말기 화면을 불러왔다.
기다리는 김에 오늘의 소셜 미디어 데이터 보고서를 보여줘.
접수 완료. 데이터 분석 중……
《만다스티·리얼 파크》,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스토리! 지금 주연은 치안관으로서 도시 전체의 평화를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홀로그램 스크린을 확대하자 과장된 제목과 소개가 롤랑을 향해 쏟아지는 듯했다. 그 제목 아래 나오는 데이터는 공연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일일 방문량과 쏟아지는 찬사까지, 모두가 이 공연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거짓말.
롤랑은 손짓을 하여 화면의 입력 장치에 코드를 입력했다.
방화벽을 우회하고 단말기를 넘어 빅데이터의 선택적 성향을 해제하면…… 좋아. 드디어 진정한 데이터를 볼 수 있게 됐어. 평소에 틈틈이 프로그램 공부를 해둬서 다행이야.
일단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진짜 댓글부터 보자.
롤랑이 두 손을 멈추자 화면에 나타난 것은 필터 되지 않은 진정한 평론들이었다.
《만다스티·리얼 파크》는 옛날 영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한 사람을 스튜디오에 가두고 이 주인공의 아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를 촬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이런 사실적인 연극이야말로 이 시대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권 침해라고 비판한다. 주연과 예술성을 둘러싼 관객들의 변론은 종영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들 만다스티에게 관심이 많네. 하……
그러니까 인간은 동족을 속이는 걸 참 잘 해.
수많은 댓글은 모두 만다스의 운명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었다. 좋든 싫든 관객들은 만다스티의 모험을 진실하고 색다른 삶으로 받아들였다.
그 색다른 인생 이면엔 초 단위까지의 정확한 시나리오가 있었고 위장된 세트와 카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기라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정말로…… 지루하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세요.
롤랑의 한숨에 호응한 듯 단말기의 쭈글쭈글한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통신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 화면이 데이터 화면을 밀어내고 롤랑 앞에 묵묵히 번쩍였다.
……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통신해 보자.
다시 걸기를 가볍게 누른 후, 단말기를 마주 보며 롤랑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눈을 감은 후 깊은 숨을 내쉬었고, 속눈썹이 떨리는 상태로 눈을 떴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안 본 지 얼마나 됐지?
지난번에 네가 내 연락을 받지 않았어. 저번에도 그렇고 저 저번에도 마찬가지야. 스토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 이 구역의 시간과 일정을 외부하고 너무 다르게 설정했더니 언제 통신해야 할지 모르겠어.
별일 아니고 그냥 물어보려고 부모님은 요즘 어때? 식사는 잘 챙기시고? 어디 놀러 가신 적은 있어?
그리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어떻게 됐어?
뭐? 집에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고?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앞에 있는 강아지 말이야.
…… 하하하, 화났어? 예전처럼 형이랑 밤새도록 말다툼 한번 할까?
——당연히 안되지. 형은 요즘 아주 바빠.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보안 등급이 매우 높아. 이게 아니었다면 집에도 못 가고 그러진 않았겠지. 너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시간제한이 있어.
그래도…… 너에게 뭐라도 어느 정도 남겨줄 수 있으니 됐어.
내가 아끼는 것, 아직 너한테 보여준 적이 없지? 지금 몰래 내 단말기를 켜볼래? 내 단말기 열람 기록을 보면 많은 비밀스러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너한테는 신세계처럼 느껴질 거야……
에이, 왜 보기 싫은 거야? 예전에 로봇 아이돌이 작업 현장을 좋아한다고 폭로했고, 용광로와 펌프 공장을 자주 방문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어.
그래. 꼭 인간 범위를 벗어난 것을 보라고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단지 너랑 무언가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야.
얼마 전 인지는 잊었지만, 전에도 네가 음성 메시지로 나한테 소셜미디어 이름을 알려줬잖아. 내가 여러 번 확인했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어. 내 추측으로는 그 미디어는 이미 파산해서 운영을 중단한 것 같아.
이 세계와 밖은 너무 떨어져 있어. 여긴 매우 멋지고 아름다워. 적어도 밖에서 보기엔 말이야. 근데 모두…… 거짓이야.
입안이 말라 롤랑은 잠시 멈추었고 몽롱한 눈빛은 천천히 감기더니 다시 번쩍 떠졌다.
…… 하아, 시간이 많이 없어. 이 말은 너에게만 말해줄게. 부모님께는 말하지 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밖에서 말하고 보이는 것처럼 그리 좋지만은 않아.
지금 밖에서는 아마 열심히 홍보하고 있겠지. 내가 연기한 이 연극은 한 사람의 일생을 찍는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이야기고 이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예술이라고 말이야. 그러나 사실 그렇지만은 않아.
너는 아마 모를 거야. 이 연극의 시나리오는 전부 조작된 거고 모두 거짓이야. 만약 내가 실수해서 사실이 드러나면 이 연극은 무산될 거야. 그럼 나는 해고당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만약 그날이 일찍 온다면 나도 너희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친구들을 모아서 못다 한 게임도 같이 할 수 있어. 최근에 신작도 나온 것 같던데. 그리고 놀다가 지치면 옛날처럼 말싸움도 하고, 엄마가 만든 디저트도 먹을 수 있잖아. 다 먹고 나면 아빠한테 잡혀서 그 '고품격'의 이상한 음악회를 들을 수도 있어.
이 연극 덕분에 앞으로 여러 해 동안은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일이 없을 거란 걱정은 안 해도 돼. 만약 나중에 정말 연극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면 고향에 내려가 너희들과 함께 살 거야. 부모님께서 고생하셔서 나를 이 배우 육성 기지에 보낸 게 헛되지 않게 할 거야.
정말이야. 난 이 가짜 세상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나는 돌아가고 싶어. 너희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내놓더라도 난 너와 엄마, 아빠, 친구랑 고향에서 살고 싶어.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소원이 있다는 걸 말해야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바램은 바로 너희들과 함께 하는 거야.
롤랑은 침묵했고 길고 단조로운 신호음만이 잔여 휴식시간을 나타내는 옆 시계와 함께 울렸다.
…… 이제 됐어. 연결을 차단해.
그는 허공에 떠 있는 통신 화면을 향해 손을 들었다.
——신호음이 그치고 눈앞에 아무 변화가 없던 통신 화면에서 갑자기 한 소년의 영상이 떠올랐다.
롤모……!
형! 형! 드디어 열결 됐네!
정말,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오랜만이네. 매번 전화하면 가족 모두 없을 때 전화하고. 집은 또 계약에 묶여 있어서 마음대로 전화를 걸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응, 그래. 맞아. 좀 오래됐지……
아, 롤모, 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없어서…… 일단 엄마, 아빠는 요즘 잘 지내셔?
엄마 아빠, 요즘 잘 지내지. 너무 잘 지내셔서 탈이야. 매일 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1초도 TV 앞을 떠나려 하지 않아. 며칠 전 형이 만다스티와 범인을 처치하는 거 보시고 기뻐서 소파가 부서질 정도로 뛰었고 매우 시끄러웠어.
저번에 주변 사람들에게 매일 형 굿즈를 보낸다고 했잖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척이나 직장 동료만 줬는데, 최근에는 멀리 사는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보내줬어. 온 세상에 형이 이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걸 알리고 싶은가 봐. 지금 온 집을 가득 채운 굿즈는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하, 솔직히 말해서 엄마 아빠가 형을 이렇게 사랑하는 게 정말 부러워 죽겠어. 하지만 나도 형의 드라마를 좋아해. 왜냐면 내 형이니까.
나도 굿즈를 많이 샀는데 뭐랄까…… 형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정말 대단해. 형을 그렇게 멋지게 변신시킬 수 있다니.
…… 그래? 엄마 아빠가 그렇게 나를 좋아한다고……
그, 그럼 집에서 키우는……
롤랑은 입을 벌리고 반쯤 말한 말이 목에 걸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나, 나는 형처럼 수입이 많지 않아. 요즘 돈 없어서 죽겠어.
최근 엄마 아빠가 주시는 용돈이 좀 적어. 나도 굿즈를 많이 샀고, 이번 달에 최신 《링크 제트의 전설》을 산 것 때문에 돈을 다 써서 지금은《불가 맹수도》 복각판도 못 사.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노느라 나한테 빌려주지도 않아……
…… 그래서 말이야. 그러니까 뭐냐, 형, 조금만…… 조금만 도와줄 수 있어? 형을 도와서 친구들에게 홍보 많이 할게.
걔네는 우리 형이 그 리얼리티 쇼의 배우라는 말을 듣고 내가 정말 돈이 많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졌어.
그러니까…… 형이 좀 도와주면 안 돼? 형이 말한 그 뭐랄까 '품위 유지'?
…… 풉풉.
?
하하, 롤모 넌 여전히 예전처럼 귀엽네. 알았어. 알았어. 형이 용돈 많이 줄게.
그리고 네가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안심이 돼.
…… 그래. 이제 시간이 많이 없어.
삐삐, 다음 공연의 정신 상태를 위해 빨리 주무시길 바랍니다.
롤랑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단말기가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벌써 할 말 다 했어? 엄마 아빠가 다음에는 건창차라도 보내줄까 하시던데.
됐어. 카페인이라면 내가 매일 섭취하는 양만으로도 영양사 머리를 아프게 할 지경이야……
——아하하, 아니야. 농담이야. 일단 여기까지 하자. 용돈은 기대해도 좋아.
롤랑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통신을 끊었다. 가족들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이후 계속 재생돼있던 데이터 화면이 나타났다.
동생에게 들킬까 봐 롤랑은 얼굴을 감싸고 잠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그는 손을 내려놓았고 얼굴에는 온통 기뻐하는 웃음이었다.
하하…… 가족들이 화면에 나오는 나를 그렇게 많이 봐주고 있구나.
롤모 녀석이 말하길 엄마 아빠도 나를 자랑스러워하시고 녀석도 그로 인해 친구들에 환대를 받았다고.
——좋아, 좋아. 다들 그렇게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롤랑은 입을 가린 채 소파에 드러누워 몸을 웅크렸다. 마치 배고픈 아이가 갑자기 얻은 사탕을 빼앗길까 봐 숨을 곳을 찾아 입을 막고 단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즐거워했다.
좋았어. 그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전에 조금 더 훈련을 하자.
웃은 것 때문에 시큼해진 볼을 문지르며 롤랑은 돌아서 홀로그램 스크린에 다가가 다 읽지 못한 메시지를 마저 읽었다.
일련의 댓글들과 데이터들은 모두 만다스티의 앞날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에게 연기를 하는 형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얼마나 열광하는지, 어쩌면 이 모험이 관객들이 보기엔 제작진이 힘을 합쳐 그들에게 진정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시나리오와 현장 반응에 의해 조작되는 거짓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배우와 가장 가까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이 거짓을 만든 가장 큰 공신은 바로 당신이잖아요. 롤랑?
…… 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데이터 분석, '롤랑'.
롤랑은 귓가의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외침과 함께 스크린 아래에는 데이터와 키워드가 촘촘히 배치됐다. 이번에는 그와 관련이 있었다.
칭찬, 부러움, 기대, 걱정. 흐르는 댓글들은 무수한 감정을 품고 롤랑에게 밀려왔다.
그는 이 단어들을 훑어보고 묵묵히 마음속에 기억했다.
음, 음, 요즘 내가 관객에게 이런 인상을 줬네. 좋아, 아주 좋아.
맞아. 새로 땋은 머리 스타일은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화장하는 누나한테 부탁했어……
롤랑은 앞뒤로 묶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웃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스크린 속 '롤랑'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또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그 롤랑의 이미지를 더욱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했다.
거짓은 거짓으로 돌아가게, 진실은 진실대로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구별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번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오기 힘들어진다.
물론 이 또한 나중에 가족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스크린에 나오는 롤랑 역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가족이 요구하기만 하면 그는 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그가 원하는 목표를 지킬 것이다……
하아…… 오늘도 많이 피곤하네. 여기까지만 보고 이제 나도 좀 쉬어야겠어.
롤랑은 손을 들어 단말기를 닫고 소파에 주저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 문지기 로봇이 알려준 수면시간은 아직 몇 시간 남았고, 매일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는 그에게 이 몇 시간은 매우 소중했다.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울려 퍼졌다——
쿵!
그리고 둔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이어서 엔진의 시동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마지막으로 방문이 부서지고 낮은 목소리가 롤랑의 귓가에 울려펴졌다.
롤랑! 빨리! 빨리! 일어나!
긴급 사태 9호! 회의 진행이 필요해!
주연 배우가 연극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험하고 있어!
치안관이 구치소에 갇히다니…… 처음 듣는 일이야.
폭주 차량이 건물 5개를 부수고 금지 구역을 침범했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고발이 있는데…… 치안관의 이름 뒤에 이렇게 많은 죄명이 달려 있는 건 처음 봐…… 특히 너, 만다시티.
롤랑은 보고서를 들고 철조망 뒤에 있는 만다스티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발 밑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쇠붙이, 총알 파편, 긁힌 자국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롤랑은 바닥에 의료용 스프레이가 구멍이 뚫린 채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까지 보았다. 수감 중인 이 치안관이 얼마나 소란을 피웠는지를 정확히 보여 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상으로 가득 찬 네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 믿기지가 않아.
…… 아니, 됐어. 일단 설명하지 마. 일단 너를 먼저 여기서 빼내야겠어.
일단 결과를 기다려. 내가 지금……
…… 실패하지 않을 거야.
뭐라고?
내 말은 넌 실패하지 않을 거야. 롤랑. 넌 분명 신청 과정에서 상사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내가 풀려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넌 계속 승진하여 승승장구할 거야.
동시에 경찰서에서 젊고 예쁜 아가씨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될 거야. 그리고 어디선가 큰돈을 주워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야. 모든 게 잘될 거야.
만다스티…… 너 도대체……?
…… 하하하, 농담, 농담한 것뿐이야.
하지만 네가 신청만 하면 틀림없이 승인이 날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모두가 나를 치안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 이해가 안 돼, 만다시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단지 너와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을 벌인 거야?
잠깐의 환각 때문에 여기 있는 모든 게 다 가짜라고 생각해? 아니, 나는 믿을 수 없어.
설마 네 앞에 있는 나, 전에 너와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긴 나도 모두 가짜고, 너를 속이고 있다는 말이야? 만다스티?
아니, 그럴 리가. 롤랑, 넌 내 기사야. 그럴 리가……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로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아무리 실패하고 좌절해도 결국에는 성공했어…… 모든 게 연극 같아.
그 느낌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다해 나를 지키고 있고 내가 정해진 궤도를 걷기를 요구하는 것 같아. 심지어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것도 다른 사람이 이미 정해 놓은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봤어…… 분명 콜을 봤어. 전에 내가 건달한테 널 찾으러 갔을 때 그 큰 기계 밑에서……
나 너무 무서워. 내가 있는 세상이 정말 진짜인지 확인해야 해. 그래서 나는 임무가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콜…… 우리의 오랜 파트너지. 그의 죽음에 관한 나의 상처는 너 못지 않아.
하지만…… 이러면 좋지 않아.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만다스티!
롤랑은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팔로 철창을 넘어 만다스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롤랑?! 윽, 아파파파……
아파? 그래. 너는 아픔을 느낄 수 있고 내 손의 온도를 느낄 수 있어. 그렇다는 건 네가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해. 너의 느낌, 너의 체험은 모두 진짜고 절대 누군가가 계획한 것이 아니야.
윽……
푹 쉰다고 나랑 약속해. 만다스티. 난 이렇게 의심이 많은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이러는 걸 보면 오미도 슬퍼할 거야.
만약 네가 계속 이런다면…… 나는 네가 앞으로 더 많은 죽은 사람들의 환영을 볼까 봐 두려워…… 그 안에 나도 있을 수 있어.
롤랑…… 너 지금, 우는 거야?
…… 알겠어. 고마워, 롤랑. 내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동료들과 너지. 과거의 환영이 아니야.
…… 그래, 잊지마.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의지하고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나에게 의지할 차례야. 나를 믿어. 내가 너의 직위를 지키도록 노력할게. Adios(안녕).
Adios(안녕).
롤랑은 주먹을 쥔 손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기사의 인사를 마친 후 황급히 떠났다. 구치소를 탈출하는 뒷모습에서 아직도 흐느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롤랑은 문에서 나오자마자 눈가를 훔친 후,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통신 단말기를 켰다.
카메라팀 A9 호출, 방금 그 부분은 문제 없는 거지?
여기는 A9, 확인해 보니 문제없고 대충 임시로 작성한 시나리오와 일치해. 롤랑의 임기응변은 정말이지 훌륭했어.
칭찬해 주니 고맙네. 해결했으니 됐어. 후속 처리는 언제든 불러줘.
하아, 이미 죽은 캐릭터를 그의 눈앞에 나타나게 하다니. 회의도 하고 시나리오도 다시 쓰느라 바빠 죽겠어. 만약 내가 신인이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공연을 포기했을 거야.
이렇게 촬영을 오래 했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소품팀에게 책임을 물어야겠어. 하아, 또 새로운 직원과 합을 맞춰야겠네.
문제없어. 우리는 프로고, 롤랑도 프로니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다음은 오미 차례지? 실력파 여주인공으로 부드러운 감정 연기가 그녀의 장점인데…… 적어도 오늘 밤엔 내가 안 나서도 되겠네. 방금 전 상황이 다시 한번 발생하면 다음에 소셜미디어에서 이상한 말이 나올까 봐 걱정돼.
그래, 다 준비해뒀어. 수고했어. 하지만 만약에……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황급히 단말기를 닫았고, 어깨를 주무르자 어지러운 느낌이 척수에서부터 몰려왔다.
이 돌발 상황은 그의 휴식시간을 중단시켰고 임시 시나리오와 리허설을 포함하면 그는 거의 20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모든 정보가 뇌에 들어갈 때 마치 스펀지를 사이에 둔 듯 부드러운 지연을 동반했다.
근데 아직은 쉬면 안 돼. 복습을 좀 더 해야겠어.
출입문 봉쇄.
작동 완료.
낡은 벽 안에서 촘촘한 카메라와 전기회로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현관에 털썩 주저앉은 것 같았다.
그것은 출석 겸 알람을 담당하는 노인이자 최신형 경비원 모델 로봇이었다. 휴게실 앞에 있는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지금 롤랑이 있는 이 방은 노숙자로 분장한 그가 지키고 있어서 설령 스태프라고 해도 이 방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롤랑이 손을 흔들자 눈앞에 화면이 펼쳐졌다. 화면에는 예전에 촬영했던 레퍼토리가 빠른 속도로 재생됐다.
오늘 밤 소동으로 인해 그는 상사로부터 통지를 받았다. 모든 배우들은 만다스티가 다시 돌발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준비하여 다시는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는 아무 의자를 찾아 앉은 후 묵묵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스크린 속 주인공은 만다스티로 카메라 안에서 모든 인생을 살아왔다. 최근 몇 년간 그는 생사를 넘나들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갱단과 싸웠으며 그들은 동료의 죽음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허, 이렇게 보니 만타스티는 정말 귀엽네.
만약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롤랑은 고개를 저었고 화면에 다시 집중했다.
만다스티가 가는 길에는 항상 충성스러운 조수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바로 롤랑이었다.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않는 그의 의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반격하는 지혜, 매번 위험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돕는 그에게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롤랑', 그는 그가 맞으면서도 그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을 빌린 껍데기일 뿐이었다. 관객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땋은 머리를 한 껍데기.
애당초 이 연극에 참여할 때부터 부모님이 예명을 지어주겠다고 고민했지만, 그는 본명으로 출연하겠다고 고집했다.
이제 그 본명도 점차 예명의 일부가 되었다. 만약 순조롭게 연기를 계속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도 이 두 신분에 대해 분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자신은 분명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음…… 피곤해……
밋밋한 스크린은 그의 머릿속에서 자장가를 부르는 듯했다. 끈적끈적한 졸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눈앞의 광경은 마치 몇 개의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해……
롤랑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옆에 있는 음료수 기계에서 알루미늄 캔 하나가 떨어졌다. 그 속에는 농축된 카페인이 들어 있어서 한 모금만 마셔도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손을 내밀어 높은 곳에 있는 알루미늄 캔을 잡으려 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음료는 이상하게도 너무 멀어 보였다.
드디어 잡았네……
차가운 알루미늄 캔을 손에 쥐고 열었다. 손을 들어 목으로 쏟아부을 준비를 했다.
후……
팔은 금세 떨어졌고, 잔잔한 숨소리와 약간의 코 고는 소리가 차츰차츰 울렸다.
카페인 음료는 천천히 흘러나와 바닥에 번졌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스크린 화면이 그 위에 반사됐다.
롤랑이 깨어났을 땐 추위 때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음, 내가 잠이 들었다니……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드니 스크린 속 만다스티와 롤랑은 여전히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시간차로 보아 그는 얼마 못 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무엇이 자신을 깨웠는지 깨달았다. 헤드셋 속의 고함이 마치 망치처럼 그의 고막을 때렸다.
긴급 상황…… 주연……
그 나지막한 고함소리가 뇌를 힘껏 때렸을 때, 마치 부드러운 무언가에 의해 완충된 것 같았다. 이어서 롤랑은 제대로 듣지는 못 했지만 몇 가지 키워드를 포착했다.
뭐…… 윽, 만타스티에게 또 문제가 생겼다고? 하아, 참나, 내가 가서 처리할 테니 위치를 알려줘……
아니! 아니! 지금……
손을 들어 아직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끄자, 홀로그램 스크린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검은 배경이 드러났다.
저기? 여보세요? 위치가 어디야? 지금 출발할…
롤랑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의 시선은 단말기의 스크린을 넘어 배경에 드러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롤랑……
만타스티?! 네가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