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amigo!
누군가 당신에게 '소원을 말해봐'라고 말한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까?
힘? 돈? 권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침묵할 거야. 소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수만 개의 소원을 나열해 그중에서 가장 간절한 걸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지.
누군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질문에 인간들은 우습게도 많은 소원들 중 우선 순위를 정하겠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소원 요정에게 들려주기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나 나는 결코 이것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소원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어?
소원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이 살아있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까?
나? 나는 당연히 소원이 있지.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거야.
물론 지금 상황은 별개지만……
도로는 북적였고 길가에선 상인의 호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햇빛이 강렬할 때라 행인들이 그늘을 찾기 위해 큰길에 몰려들었다.
멀리 도로에는 수레가 지나가고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높은 하늘이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골목의 좁은 틈새에 끼여 점점 산소가 부족해지는 롤랑의 뇌 속에서, 익숙한 이 장면들이 덩어리로 뭉쳐지고 있었다.
어이, 무슨 소원이라도 있어? 어디 들어나 보자고.
말해봐. 죽기 전에 무슨 소원이 있는지.
윽…… 윽……!
손으로는 머리를 누르고, 총은 롤랑의 관자놀이에 겨눈 상태였다. 롤랑의 양 어깨는 땅에 붙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넌 말이야. 너무 깊게 조사했어. 내부 정보까지 알게 되었으니… 네 그 치안관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더군. 아, 물론 네 녀석도 용감하다고 인정해 주지.
예전에 경찰 내부에 범죄 퇴치를 꿈으로 두고 사는 놈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네가 그 놈의 부하겠군. 기사라니, 허… 그 코드명 참 잘 어울리네.
국왕의 이상을 위해 출정하여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싸우는 영웅의 모습과 매우 닮았어. 정말 자신을 기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응?
이제 소꿉놀이 끝났어. 그거 이리 내……
윽! 우욱——
이봐, 이봐, 동포, 내 기사에게 피해를 주지 마.
롤랑이 몸부림치는 동안 골목길에서 세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남자였다. 건달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허, 치안관님께서는 성가시게 하지 말고 그냥 옆에서 쉬어. 난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명사수 만다스티, 너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네가 진작에 총을 쐈더라면 나는 골목에서 이미 맞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네가 이놈 대신 총을 맞아줄 줄이야. 참, 운도 좋은 녀석이지.
기사가 위험에 처했다면, 당연히 국왕이 나서서 도와야지…… 콜록, 그나저나 당신은 왜 내 기사를 쫓고 있는 거지?
허, 재미있군. 어디 이놈한테 직접 한번 물어보던가. 왜 우리 거점에 들어왔는지.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이건 내가 내린 명령이야. 당신들이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고… 콜록콜록, 바로 이 도시의 평화를 위한 거지.
내가 장담하지. 너희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답을 들려준다고.
뒤에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롤랑은 상상할 수 있었다. 만다스티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그 자리에 서서 가볍게 허리를 굽히고, 한 예의 바르고 젊은 왕처럼 고전적인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 분명 네가 말한 거다. 만다스티.
난 이 도시의 치안관이고, 거짓말은 하지 않아.
좋아. 마음에 드는군.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너희 둘의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건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롤랑은 자신의 관자놀이에 있던 총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건달이 골목길에서 사라지는 뒷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던 만다스티는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 방금 자신이 했던 자신감 넘치는 협상은 전부 연기였던 것 같았다.
콜록콜록, 해결했어. 아까는 정말 위험했어. 다 내가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았으니 가능한 거지.
만다스티… 너, 너 다친 곳은 없는 거야?
롤랑은 목덜미를 문지르고 기침을 몇 번 한 뒤, 몸을 일으켜 만다스티의 상태를 살폈다.
일단 괜찮아. 우선 내 걱정은 하지마. 롤랑, 너 방금, 콜록……
아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든 롤랑은 갑자기 만다스티 쪽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인 채 주먹을 쥔 손을 가슴에 댄 채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이것은 나의 임무, 그리고 우리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야!
그가 다른 손을 벌리자 아주 작은 저장 장치가 보였다. 그는 건달에게 깔려 총으로 위협을 받으면서도 줄곧 이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가 갱단의 중요한 파일을 찾아냈어. 만다스티가 말했듯이 갱단도 도시 평화를 지키는 세력 중 하나잖아. 하지만 그들 때문에 여러 번 위험에 처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기사로서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하하! 롤랑, 잘했어. 넌 확실히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 우리의 이상을 위해, 그리고 도시의 평화를 위해 힘을 보탠 거지.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너의 목숨은 나에게 이상만큼이나 중요해.
넌 순찰을 간다고 말한 후, 코트를 걸치고 물건을 잔뜩 챙겼지. 너의 그 긴박한 발걸음만 봐도 나는 단번에 네가 혼자서 갱단을 상대로 정보를 찾으러 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 내가 어떻게 나의 기사에 대해서 모를 수 있겠어?
그래서 걱정되니 계속 너를 따라다닌 거야. 하하, 기사가 출정을 나가면 왕이 뒤를 받쳐주는 게 당연한 거지. 콜록……
만다스티는 자신 있게 말을 하고는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닦았다.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어. 하지만 물론 만다스티의 가르침도 따를 거야.
…… 그래도 방금 만다스티가 나 대신 총을 맞은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어.
네가 나를 돌보는 것처럼, 나도 네가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하하하, 마찬가지야. 나도 네가 걱정돼서 좀 조급했어.
너도 알겠지만 조금 충격을 받았을 뿐이야. 방탄복이 멀쩡하잖아.
그리고 나도 확인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
아, 아니야.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우리 다른 얘기 좀 하자.
사실 전에 여기 왔을 때 길목에 아주 큰 기계가 있는 걸 봤었어. 크기가 건물만 하고 색깔도 벽과 같았었는데 이 도시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못 봤었다니.
그리고 그 기계의 방향을 따라갔는데 뜻밖에도 한 사람을 봤어. 아마 넌 예상할 수 없을 거야. 누군지 맞춰볼래?
…… 미안한데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어.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만다스티 너는 지금 이 정보를 가지고 총국으로 돌아가. 난 경찰서로 돌아가야 해.
하지만 네 상처가……
괜찮아, 항상 의료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니니까. 이건 로칸로 브랜드의 상처 치료 스프레이인데, 고정밀 나노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만 뿌리면 통증도 가려움도 없어지고 즉시 지혈도 할 수 있어. 게다가 고급 페인팅 기능도 있고, 경찰서에도 보관되어 있어.
봐, 이렇게 뿌리면 괜찮아져. 약국에서도 팔고 있어.
…… 그래,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나중에 봐, 롤랑.
만다스티는 일어나 롤랑에게서 저장 장치를 건네받고 그에게 경례를 했다. 이어서 롤랑도 자신의 옷을 단정히 하고 허리춤에 경찰봉을 장착한 뒤, 한 손을 뒤로 한 채 만다스티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우리의 공통된 이상을 위해서.
우리의 공통된 이상을 위해서.
말을 마친 만다스티는 저장 장치를 들고 황급히 떠났다. 롤랑은 그 반대 방향으로 골목길을 나와 길을 걸었다.
눈부신 햇빛이 그의 얼굴에 쏟아졌다. 자극을 받아 퍼진 눈동자에 아무도 없는 거리가 희미하게 비쳤다.
…… 정말 느리다니까, 참나……
롤랑은 햇빛을 피해 몇 걸음 뛰어 그늘 속으로 피했다. 길에서 그는 아무와도 부딪치지 않았고 거리는 여전히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지금은 텅 빈 듯했다.
그러나 롤랑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그저 그늘에서 벽을 찾아 기대어 손에 들고 있던 스프레이를 던지고 받고를 반복했다. 무언가 특정 신호를 기다리는 듯했다……
Cut!
그는 헤드셋에서 큰 고함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와 함께 롤랑은 몸을 돌려 벽을 몇 번 더듬어 틈을 찾아 벌렸고, 넓은 방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방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옷차림도 제각각이었다. 작은 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하나하나의 홀로그램 스크린 속에는 도시의 풍경과 탐지 데이터가 나오고 있었다.
방금 주연 배우가 N0R 구역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엑스트라도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진행할 것은 일상 set입니다.
지난번 주연 배우가 언급한 리프팅 기계가 고장난 것은 예상치 못한 사고였습니다. 주연 배우가 스튜디오의 진실을 알게 될 위험이 있어서 소품팀에 연락해 즉시 수정했습니다.
M1L 구역의 환경 시뮬레이션 장치가 고장 나서 습도 제어가 불안정합니다. 상황팀에게 말했고 오늘 밤 4막 전까지는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방금 골목 현장은 보존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대로라면 주연 배우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 현재 상태를가 유지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 홀로그램 위장 장치를 재가동하면 되잖아요. 내가 가서 할게요……
이봐! 이봐! 롤랑!
롤랑이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자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벽 구석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둔탁한 북처럼 낮았다. 분명히 전에 롤랑을 누르고 협박하던 건달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처럼 롤랑을 보자마자 다정하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고생했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내가 너무 세게 한 줄 알았잖아.
하하하, 네프티 형님. 과찬이십니다. 피해자 역할에 조금 신경 썼을 뿐입니다.
네? 감독님의 지시가 있다고? 뭔지 말해봐.
네, 네, 모두 이해했습니다.
롤랑은 헤드셋을 잡은 상태로 작업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한참 후, 그는 마치 군중들의 지휘자처럼 갑자기 고개를 들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자, 자, 자,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아는데, 일단 진행 중이던 일은 놔두세요. 감독님이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일은 새로운 홍보 광고를 촬영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의상을 갈아입을 필요 없이 추가 메이크업도 하지 않고 바로 진행합니다.
촬영팀, 준비 됐어?
응, 카메라 세팅 완료.
스태프가 손을 흔들자, 천장에서 총기 모양의 카메라 몇 대가 내려왔고 동그란 렌즈가 롤랑을 겨누었다. 롤랑은 확인의 표시로 그 카메라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후……
(심호흡, 심호흡. 대사는 이미 외웠잖아.)
(웃으면서 외운 것을 말할 뿐이야. 만다스티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 같이...)
셋, 둘, 하나, 액션!
——Hola amigo!
이 황금 같은 시대에 로봇이 나와 펼치는 긴장감 없는 연기, 지겹지 않으신가요? 감정 없는 쓰레기 연기에 질리지 않으셨나요? 자,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여러분들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화려하기만 한 스턴트 액션이나 가상의 프로그램 혹은 거짓된 편집 없이, 오직 라이브로 인간 주인공이 이 위기의 도시에서 겪는 가장 리얼하고 긴장된 반응을 보여드립니다!
양손을 어깨까지 높이 든 후 가슴 쪽으로 가져오자 마치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 같았다. 말주변이 좋고 말 또한 매우 빨라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천 번 반복해왔던 오프닝 퍼포먼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우리의 리얼리티 쇼, "만다스티·리얼 파크"에서 지금 1주년 기념 축제가 진행 중입니다! 거짓된 특수효과를 절대 쓰지 않는 스튜디오를 만다스티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아기부터 성인까지 만다스티의 성장기를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마침내 어른이 되었고, 현재는 치안관으로서 정의를 수행하고 있는 만다스티는 그의 이상과 이 도시의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롤랑은 그의 기사로서 두 사람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겁니다! 앞으로 만다스티의 치안관 생활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짜릿한 스토리와 진실된 경험 속에서 생활을 즐겨보세요! 여기, 바로 저희들의 리얼리티 쇼! 이 진실한 스토리야말로 이 시대에 있어야 할 진정한 예술입니다!
Damas y caballeros(신사 숙녀 여러분), 쇼타임——!
자, 그럼 마지막으로 즐거운 휴일과 신나는 삶을 즐기세요. 엔터테인먼트 선두두자인 로캉로 그룹이 협찬하는 《만다스티·리얼 파크》가 일주일 동안만 할인된 가격으로 재방송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 로캉로 그룹이 독점 개발한 '에스프레소' 한 상자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졸릴 때마다 당신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좋은 도우미가 되어줄 것입니다!
Cut! 좋아. 한 번에 끝냈어. 수고했어, 롤랑.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안 될 리가 있겠어? 하하하.
휴…… 그럼 다음은...현재 랭킹은 어때? 흠, 좋아. 리믹스 한 곡이 인기가 많네. 피디님한테 다음 결투 때는 이 곡으로 깔아달라고 해줘.
차트 데이터는 모두 정상이야? 오, 나 꽤 인기 있는데? 이 연기 방식을 유지해야겠어. 스태프 형, 누나들도 모두 고생했어.
이러다간 주연 배우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겠어. 대단해, 롤랑.
에이, 그건 너무 갔다. 모두 시나리오와 여러분들 덕분이지.
다음 일정 말이야. 오미가 전에 말한 장비가 아직 준비 안 된 건가?
뭐, 당연히 준비하고 있어. 여주인공의 요구인데 어떻게 게을리할 수 있겠어. 하, 기체 구매는 어렵지 않은데 위장에 시간이 걸리네. 메인 장치가 너무 눈에 띄어서 주연 배우가 의심할 수도 있어.
이해해. 이런 사소한 일로 만다스티가 어린 시절부터 스튜디오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흠, 그리고 내 기억에는…… 아 맞다. 시청자와 통신하는 시간이지?
그래, 마침 관객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전에 통신 자격 때문에 전시회에서 크게 난동을 부렸던 그 사람이야.
어휴, 참 열정이 넘치는 누님이군.
그 누님은 늘 엉뚱한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하고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름이 끼쳐. 지난번에 30분 동안 나를 괴롭혔는데 아마 그녀를 상대하려면 에스프레소 열 캔은 마셔야 할 거야.
최근에 광고주가 우리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광고를 일주일 내내 찍었잖아. 방금 의료 스프레이 말고도 다음 회차에 광고가 세 개나 더 들어와서 스케줄 조정을 못 하겠어. 홀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밖에.
네프티, 이따가 촬영 때 만약 속일 수 없을 것 같면 네가 직접 나서야 해. '롤랑'의 콘셉트 잘 알지? 변성 장치와 행동 시뮬레이션도 이전에 다시 코딩했으니 아마 비슷할 거야.
뭐, 좋아. 임시로 카메오 출연하라는 거지? 나도 다 알아.
스태프가 돌아서자 한 여성의 영상이 나타났고 그 여성과 함께 가상의 롤랑도 등장했다.
와! 저기 롤랑이다! 또 만났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저희 리얼리티 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네프티한테 맡기니 안심이 돼. 어디 보자. 그 다음은 또 뭐가 있을까……
…… 휴, 이쪽도 다 처리군. 다행이야. 이번에는 진도가 빠른 편이라서.
잠시 쉴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
좋아, 이 정도면 동생과 연락할 수 있겠어.
또 동생이랑 연락하려고? 가족이 그렇게도 좋나...하지만 일에는 지장을 주면 안 돼.
하하, 아니야. 가족들이 워낙에 원하니까…정말 귀찮다니까.
롤랑은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분주한 작업자 사이를 헤치고 작업실을 나섰다. 텅 빈 거리에 방을 찾았는데 방문 앞에 허리가 굽은 마른 노인이 앉아 있었다.
롤랑, 휴식을 신청합니다.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들자 입에서 로봇처럼 쉰 목소리가 났다.
알겠습니다. 다음 연극 준비까지 5시간 38분 남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롤랑. 이번 휴식시간을 충분히 즐기세요. 생체시계 관리 조정기가 당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참, 몇 번을 봐도 이 할아버지가 로봇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카메라와 문지기, 알람 서비스까지 겸하고 있다니. 나도 처음에는 깜빡 속았었지.
원래 악수라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안 할래요. 쉬는 시간은 소중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