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결과, 사령부는 구조체 병사 로이드의 행위가 탈영이 아닌 전술 돌파였던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병사 로이드는 구조체 부대 전원이 포위를 뚫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혼자서 포위망을 뚫고 일부 침식체들을 유인한 후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신 교란으로 인해 병사 로이드는 사령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탈영을 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인된 정보에 따르면 로이드는 의식 회수를 성공적으로 실행했으나, 의식의 바다가 심각한 손상을 입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널찍한 사령관 사무실에서 니콜라와 베라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
……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던 그때 통신 접속음이 갑자기 울려 퍼졌다.
니콜라는 베라를 힐끗 바라보더니 통신기에 대답을 했다.
무슨 일인가?
사령관님, 그… 그린스가 또 사령관님을 만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거절할까요?
미간을 찌푸리던 니콜라의 얼굴에 혐오감이 피어올랐다.
괜찮네. 접견실에서 기다리라고 전해주게. 곧 갈 테니.
통신을 끊고 니콜라의 시선은 다시 베라를 향했다. 그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임무 범위를 벗어나 행동했더군. 내 승인도 없이 말일세.
그래? 우리가 전에 했던 약속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난 네가 준 임무를 수행하지만 임무 외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건 내 자유라고.
지금까지는 모르는 척 넘어가 줄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너무 눈에 띈 것 같군. 그래서 아주 귀찮아졌다고 할 수 있지. 이 대화가 끝나면 아마 네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러 가야겠지.
제멋대로 포위된 구조체들을 구해서 일이 더 복잡해졌네. 게다가 기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기까지 했지…
베라가 등록되지 않은 새 기체로 임무를 수행하는 건 눈에 너무 띄는 행동이었다. 결국 그 뒤로 그 기체는 거의 반 봉인상태가 되었다.
그건 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나랑은 상관없어.
그런가? 말은 잘 하는군. 의도치 않은 사고로 자네까지 거기서 죽을 수 있었다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건가…
베라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글쎄? 나도 한번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영웅이라...
사무실을 나가는 베라를 바라보던 니콜라는 고개를 저으며 책상 위에 놓인 로이드의 파일을 덮어버렸다. 니콜라의 깊은 한숨을 끝으로 사무실은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니콜라의 사무실에서 나온 베라는 복도에 기댄 채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제식 태도를 칼집에서 뽑더니 미소를 지었다.
참 웃기는군.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니콜라의 지적은 정확했다. 비합리적인 결정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녀가 타인을 이끌 수 있는 깃발의 재목이 아니라는 건 그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깃발이 가리키는 건 고통과 죽음, 가시가 가득한 연옥의 길뿐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당신이 그들을 구한 게 맞아요. 사신의 손에서 그 구조체들을 데리고 온 거죠.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그 깃발이 모두를 구한 거예요.
베라는 싱긋 웃더니 부러진 제식 태도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적어도... 한동안 후회할 일은 없겠어.
그리고 그 깃발이 없으면 또 뭐 어때요? 당신에겐 이미 당신을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 생겼잖아요?
그렇다. 베라는 이제 더 이상 쿠로노의 "사신"이 아니다. 지금의 그녀는 케르베로스의 대장이다.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더 늦으면 휴게실에 남아있는 두 녀석이 휴게실을 폭파시켜버릴 수도 있으니까.
케르베로스 소대 휴게실로 돌아가는 동안 수많은 구조체들이 베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비록 공식 보고서에서는 그녀가 "불사신 로이"를 죽였다는 사실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소문은 이미 퍼져나간 뒤였다.
사람들은 "영웅"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고, 매정하고 차가운 "사신"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라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작전 도중 포위된 구조체 병사들이었다. 어쨌든 베라가 그들을 살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베라, 고마움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야.
구조체 병사가 인공 꽃다발을 베라에게 건네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린 전부 죽었을 거야.
로이드에 관한 일은... 아마 너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 그런 거라면...
하지만 베라는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이 건넨 꽃다발도 대충 바닥에 던져버렸다.
뭐, 나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영웅 같은 게 아니야. 너희들을 구한 것도 임무 수행의 일환일 뿐이었어. 그러니까 나한테 이럴 필요 없어.
베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로이드를 죽이는 것도 임무일 뿐이었어. 누구든 내 임무 목표가 된 이상 망설이지 않고 죽일 거야. 언젠가 너희들도 내 목표가 될 수 있겠지.
베라의 시선에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더 이상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차라리 이게 최선이겠지. 영웅이 아닌 사람은 결국 영웅이 될 수 없는 법이지.
베라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바닥에 버려진 꽃다발이 밟히려던 순간, 베라는 살짝 발걸음을 멈추어 꽃다발을 주었다.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구조체 병사들에게 던져줬다.
이런 건 너희를 구한 진짜 "영웅"한테나 줘.
어쩌면 언젠가 "로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이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때의 기억은 이미 사라졌을 테지만 "로이드"라는 이름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한 사람이라면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
그때가 오면 그에게 웃으며 "고마워"라고 말해줘.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