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구조체들은 기본적으로 야간 투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지만, 침식체들에게 포위된 채 갇혀있던 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험은 점차 퍼져나갔다.
대장님, 로이드는 정말 도망친 겁니까?
닥쳐! 로이드가 우리를 배신할 리가 없어. 분명... 분명 지원군과 함께 돌아와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구조체 대장은 호통을 쳤지만 목소리에서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장님! 동쪽에! 침식... 침식체들이 또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아직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무기를 들고 날 따라와, 어떻게든 로이드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병사들은 아무 말없이 기계적으로 다시 무기를 들고 대장을 따라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 영웅이 다시 그들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두들 직감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는 진정한 절망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대장님! 침식체들이 숲에 설치해 놓은 함정을 통과했습니다. 저희는 이제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침식체들은 낮은 수풀을 넘어 다가왔고, 부대 전체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고 말았다.
아!
부상을 입은 구조체는 넘어진 탓에 침식체들의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다른 구조체 병사들이 지원할 틈도 주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삐--!
하지만 미친듯이 달려드는 침식체들이 부상을 입은 병사를 조각내기 전에 날카로운 창이 침식체의 머리를 관통했고 창과 함께 바닥에 박혔다.
다른 침식체들은 갑작스러운 위협에 잠깐 멈칫했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그들도 눈앞에 있는 이 구조체가 가장 큰 위협이라는 걸 직감했다.
당, 당신은…
저 여자는 "사신"이야! 어서 떨어져!
부상을 입은 병사는 옆으로 굴렀고, 베라가 들고 있던 기창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창은 그녀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등 뒤에 있는 다른 침식체를 관통했다.
하하, 미안. 하마터면 침식체와 헷갈릴 뻔했네.
베라는 기창을 뽑아 창에 꽂힌 침식체를 떨궈낸 뒤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다른 침식체를 날려버렸다.——바닥에 꽂힌 침식체가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베라가 발로 그것의 머리를 밟아부쉈다.
자, 좋은 소식을 말해 줄 테니 다들 잘 들어. 너희들이 기다리는 로이드는 전투를 앞두고 도망쳤다.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불사신 로이"는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야!
웃기고 있네. 불사신은 무슨! 이 기창이 누구 것인지 기억하고 있겠지!
대장님! 저 여자가 들고 있는 기창… 로이드의 기창이 맞습니다!
어째서... 네가 로이드의 창을 들고 있는 거지?
그를 죽인 게 바로 나니까, 이 창이 확실한 증거지!
그 녀석은 폐급 같은 너희들보다 조금 더 영리했거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영리함을 잘못된 곳에 사용했지. 이곳에서 너희들과 함께 죽는 걸 선택했다면 내 손에 죽진 않았을 텐데.
그럴 리가 없어…
베라는 다시 포위망을 좁혀오는 침식체들을 바라보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뭐 다를 건 없지. 너희들도 결국 여기서 죽을 테니까…
수없이 밀려드는 침식체들을 보며 구조체 대장은 직감했다. 죽도록 저항을 해봤자 이 포위망을 뚫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로이드가 죽었으니… 우린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건가요?
의식 회수! 그냥 의식 회수를 진행하죠. 그래야 로이드처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고, 겨우 유지되던 방어선에는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병사는 이미 투지를 상실한 듯 들고 있던 무기를 버렸고, 침식체의 공격에도 더 이상 반격하지 않았다.
침식체의 날카로운 손톱이 병사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베라의 기창이 침식체의 가슴을 관통했다.
쓸모없는 녀석들! 로이드를 잃었다고,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이 없다고 해서 그냥 당하기만 할 거야?
베라는 창에 묶인 깃발을 번쩍 들어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로이드를 죽였으니 내가 로이드보다 더 강하다는 걸 의미하겠지. 그러니까 로이드가 할 수 없었던 일도 난 해낼 수 있어, 깃발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내 창도 아직 부러지지 않았어!
의식 회수인가 뭔가에 의지하는 나약한 놈들은 여기서 당하고만 있으라고… 나 혼자서도 침식체들의 포위망을 뚫고 살아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너희 그 쓰레기 같은 머릿속에 병사로서의 존엄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어서 그 녀석이 남긴 깃발을 따라 움직여!
베라는 기창을 돌려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침식체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촘촘한 포위망에 미약한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로이드가 저렇게 거만한 녀석한테 졌을 리가 없어……
대장님… 비열한 방식으로 로이드를 기습한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구조체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엉망이 되어버린 검을 뽑아들었다.
저 여자 말이 맞아요… 저 여자라면 우리와 함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로이드는 절대 죽지 않아…
그러니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저런 비겁한 자식이 우리를 무시하게 둘 순 없지!
일부 병사들은 망설였지만, 대부분 병사들은 다시 무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휘날리는 깃발을 따라 최후의 공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