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외전 스토리 / 영웅의 이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미래를 향한 찬가

검은색 날개를 가진 침식체가 천천히 흙무더기 위에 착륙했다. 달빛 아래 나타난 그 괴이한 모습에 두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부상을 입은 구조체와 함께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가브리엘이 여유롭게 물었다. 심지어 그의 시선은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향해 있었다.

애나, 내 뒤에 숨어...

로이드라는 구조체 병사가 다리에 부상을 입은 구조체를 자신의 뒤로 숨긴 뒤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가브리엘을 도발했다.

하, 비행은 너무 반칙 아닌가? 하지만 부상을 입은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가브리엘은 그제야 책을 덮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몸에 걸친 망토에 파손으로 인해 새어나온 기름의 흔적이 선명하게 묻어있었다

뛰어난 전사라는 걸 인정해 주마.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든 사람들 중에 나에게 상처를 낸 사람은 몇 없었으니까. 정말 훌륭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어.

가브리엘이 망토를 살짝 찢었다. 로이드가 낸 상처는 퍼니싱의 도움을 받아 진작 복구가 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괴물이네.

로이드의 잔뜩 굳은 얼굴에 억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침식체는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침식체 주제에 높은 지능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로이드 씨, 저 계속 싸울 수 있어요.

애나는 자신의 제식 태도를 뽑았다. 제대로 설 수 조차 없는 그녀가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저 자식은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뿐이야. 침식체 한 마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여긴 나한테 맡겨.

로이드는 뒤에 있는 애나에게 제스처를 취했다. 신호를 주면 바로 동쪽으로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네 임무는 지금 당장 공중 정원 사령부로 돌아가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고 보고하는 거야, 알겠어?

참 안타깝군. 인간들은 퍼니싱을 보면 품을 생각은 않고 도망칠 궁리부터 한단 말이지.

이 세계를 멸망시킨 재앙과 친구가 되라고? 난 영웅이 될 사람이야. 너 같은 괴물처럼 될 생각 없어!

로이드는 기창을 들고 갑자기 앞으로 돌진했다.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로이드는 가브리엘의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그래, 좋아. 하지만 로봇들에게 그 정도 "예상치 못한 기습"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기창의 창끝과 가브리엘의 날카로운 손톱이 부딪히고 강렬한 불꽃을 튀겼다. 하지만 단순히 파워만 놓고 본다면 가브리엘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애나!

애나는 로이드를 힐끗 바라보다 이를 악물고 동쪽으로 뛰어갔다. 전에 철수하던 부대와 합류한다면 안전해질 것이다.

아쉽지만, 이미 늦었네.

날카로운 발톱에 순간 힘이 들어갔고, 가브리엘은 로이드를 밀쳐버린 뒤 왼손에 장착된 지팡이 모양의 칼날을 애나에게 투척했다. 애나 두 눈을 감은 채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애나가 다시 눈을 뜬 순간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발견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로이드는 들고 있던 기창을 던져 지팡이의 방향을 비튼 것이었다.

참으로 놀랍군. 그 순발력, 판단력, 정확도... 그리고 당신의 멍청함까지.

가브리엘은 큰 동작으로 두 손을 펼치더니 로이드의 오른쪽 어깨에 박힌 발톱을 뽑아냈다. 순간 로이드의 입에서 새빨간 순환액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로이드는 중상을 입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거리를 벌리더니 애나 앞을 막아섰다.

고작 전투력도 없는 구조체 하나 구하자고 무기를 버리고 중상을 입다니... 이게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영웅"인가?

가브리엘의 비웃음에 로이드도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허세가 심하네. 로봇한테도 "예상치 못한 기습"이 통하는 모양이야?

고개를 돌린 가브리엘은 왼쪽 날개의 뿌리 부분이 파괴되어 세 개의 날개가 비행 능력을 상실한 걸 발견했다.

그렇군. 무기를 두 개로 나누어 절반은 저 구조체를 구하는데 쓰고 남은 절반은… 내 날개를 조준했던 거였군.

애나가 달려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로이드를 부축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로이드의 상처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로이드 씨! 어째서..

애나! 내 말 잘 들어!

로이드가 거칠게 애나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들에게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다리 부상을 입고 거동이 불편한 건 맞지만 저 침식체는 이미 비행 능력을 상실했어. 내가 저 녀석과 함께 벼랑 밑으로 떨어진다면 더 이상 널 쫓지 못할 거야.

당장 일어나! 그리고 도망쳐! 내가 막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로이드 씨가 죽잖아요.

로이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웃었다.

괜찮아. 난 저 녀석을 잠깐 잡아두다 의식 회수로 이곳을 떠날 거야. 날 믿어.

로이드 씨, 제가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알 수 있어요. 저렇게 강력한 침식체 앞에서 의식 회수를 수행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요.

하지만 이미...

아니요.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

애나는 로이드를 놓아준 뒤 한쪽으로 물러서더니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제가 의식 회수를 진행할게요. 로이드 혼자라면 분명 도망칠 수 있을 거예요!

안 돼! 의식 회수는...

사실 의식 회수는 거짓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구원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로이드는 그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이 거짓말의 무게는 그와 애나의 생명을 더한 것보다 더 무거웠다.

그럼, 로이드 씨. 전장에서 다시 봬요.

안 돼! 안 돼!!

로이드가 달려가 애나의 손을 잡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두 손은 이미 활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애나라는 이름의 구조체 의식은 "의식 회수" 기능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음? 이 구조체는 스스로 멸망을 택한 건가? 아쉽지만 너무 늦었네. 저 짐 덩이를 조금만 더 일찍 포기했더라면 당신은 살 수 있었을 텐데.

가브리엘은 애나 옆에 쓰러져 있는 로이드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더니 그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검붉은 퍼니싱의 힘이 그의 손바닥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한테는 잠재력이 보이는군. 어쩌면 우리의 새로운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자, 승격 네트워크의 심판을 받아들이도록...

치명적인 검붉은 빛이 점점 더 강렬해졌고, 그사이 가브리엘은 로이드가 몰래 애나가 남긴 검을 잡는 걸 놓치고 말았다.

은회색 빛이 반짝이더니 가브리엘의 왼손이 뿌리째로 잘려 나갔다.

잘못된 판단이었단 걸 인정해야겠군… 당신은 내가 예상했던 그 이상으로 강해서 말이야. 심지어…

가브리엘은 날카로운 손톱에 가슴이 뚫린 로이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로이드가 가브리엘의 왼손을 자른 순간 그의 손톱 또한 로이드의 가슴을 관통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군.

가브리엘은 붉은색 순환액이 묻은 오른손을 어색하게 움직이더니 한쪽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로이드를 향해 살짝 허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당신 덕분에 오늘 "영웅"이라는 단어를 새로 배울 수 있었네. 강력한 힘, 강인한 정신력… 하지만 아쉽군. 당신은 승격 네트워크의 힘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인간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지.

인간은 "영웅" 같은 존재를 가질 자격도 없다.

가브리엘은 다시 모자를 쓰고 자리를 떴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엉망이 된 로이드의 몸을 조용히 적셔주었다.

미안해, 애나... 마지막까지 난 너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조차 없었네.

죄송합니다, 니콜라 사령관님, 영웅이 되어 다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로이드는 엉망으로 찢어진 옷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품에 꼭 안았다.

어쩌면 언젠가 또 다른 "로이드"는 영웅도 거짓말도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그 로이드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어쩌면 과거 황금시대의 극작가들처럼, 우리가 기록해 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쓸지도 몰라. 그땐 이런 내용들은 더 이상 기밀이 아닐 테니까…

로이드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수첩을 꼭 잡고 있던 손에도 점차 힘이 풀려갔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희생과 거짓말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 거야.

모든 건 너한테 맡길게...

미래의 "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