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외전 스토리 / 영웅의 이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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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속의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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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뭔데? 왜 이번 "임무"는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거지?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었는데 바로 호출하다니.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베라의 의심에 니콜라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고민에 잠겼는데 니콜라가 이토록 망설이는 모습은 베라도 오랜만이었다.

별다른 일 없으면 난 먼저 돌아갈게.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니콜라가 고개를 들어 베라의 두 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탈영한 구조체를 좀 제거해 줬으면 하네.

니콜라는 자료를 베라의 단말기에 전송했다. 비록 이런 임무는 보통 정화 부대 담당이었지만 일부 특별한 임무는 니콜라가 직접 베라에게 의뢰하곤 했다.

이건 뭐지? 이 기체는...

베라는 자료에 새 기체에 관한 완벽한 정보가 적혀 있음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눈치챈 니콜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홀로그램으로 새로운 기체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었다.

이건 자네의 새 기체야. 구조체와의 전투를 위해 비밀리에 제작되었고 파워와 아머의 성능을 강화했지. 이 기체는 아직 공중 정원 기체 리스트에 등록되지 않은 모델이니 반드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네. 이해했나?

구조체와 싸우기 만들어진 기체라… 동료들을 죽이는 "도살자"가 되라는 말이네. 나와 어울리긴 하지만…

등록도 되지 않은 기체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급한 상황이라면 솔직하게 말해 줘. 목표가… 도대체 누구야?

통제할 수 없는 영웅을 죽이는 일… 자네 같이 잔인한 칼잡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니콜라는 다시 한참 동안 베라의 두 눈을 바라보다 드디어 임무 목표의 이름을 내뱉었다.

임무의 목표는… "로이드"라네.

무인 수송기가 꽃밭 위를 맴돌았다. 이름 조차 알 수 없는 꽃잎들이 기류에 의해 하늘로 날아오르다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수송기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붉은색 장발을 한 구조체가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지상에 착지했다. 그러자 또다시 하늘에서 꽃비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한쪽에는 이미 이곳에서 베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임무의 목표—— 로이드가 있었다.

로이드

역시… 베라 씨였네요.

베라를 발견한 로이드는 예전과 다름없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퍼니싱에 심각하게 침식된 상태로 언제 침식체로 변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로이드

이건 베라 씨의 신규 기체인가요? 예전에 쓰시던 것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네요.

베라

이 기체는 구조체를 죽이기 위해 디자인된 거야… 그리고 오늘 난 널 죽이러 온 거고.

베라는 평소에 보여주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고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로이드

네… 알죠.

로이드의 덤덤한 태도에 베라는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베라

왜… 왜 지금은 도망치지 않는 거야?

베라는 니콜라에게서 로이드가 구조체 병사 소대를 이끌고 일반 침식체 소탕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침식체들에게 포위되었고, 이에 그가 모든 멤버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베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로이드

침식체… 단 한 명의 침식체로 인해서 저희는 모두 절망에 빠지게 됐어요.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그는 스스로를 "가브리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침식체지만 자아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힘도 강력했어요. 게다가 다른 침식체들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의 목표는 그 병사들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녀석의 목표는 저뿐이었죠.

베라

자아 의식을 가진 침식체라…

과거 베라는 쿠로노 그룹을 위해 일할 때, 승격자라고 불리는 특별한 침식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로이드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가브리엘의 끝없는 침식체 공격을 겨우 버텨내는 정도였어요.

로이드는 겨우 침식체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포위망을 뚫었지만, 이 모든 건 그의 계획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랑 거래 하나 하자. 당신은 구조체로서 우리의 새 동료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이 승격 네트워크의 시련을 받아들인다면 저 병사의 목숨을 조금은 연장해 줄게.

나더러 침식체의 말을 믿으라고? 아직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어.

가브리엘은 고개를 젓더니 들고 있던 책을 닫았다.

난 인간들과 다르거든. 거짓말은 하지 않아. 약자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가브리엘이 손을 젓자 멀리서 병사들을 공격하던 침식체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포위 상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

동시에 가브리엘은 로이드를 향해 해골처럼 깡마른 왼손을 뻗었다. 퍼니싱이 그의 손 위에 모이기 시작했다…

로이드의 퍼니싱 침식 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심한 통증이 그의 의식을 잠식하려 했다.

윽!!

하지만 그럼에도 로이드는 가브리엘의 빈틈을 노리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로이드는 기창으로 가브리엘의 팔목을 찌른 뒤 빠르게 뒤로 물러선 후 벼랑 아래의 숲으로 뛰어내렸다.

아직도 도망칠 힘이 남아있다니… 뭐 어쨌든 상관없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까. 나머지는 승격 네트워크의 심판에 맡겨질 거야.

전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퍼니싱에 침식되었다는 사실이 제 몸에 생긴 상처보다 더 아팠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도 전 살고 싶은 걸까요? 더 추악하게 변한다 해도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로이드는 자신의 제복을 찢어 오른손을 묶었다. 그의 오른손은 침식으로 인한 떨림으로 더 이상 기창을 잡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정말 엉망진창이네요…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싸운다니. 난 약한 겁쟁이일 뿐인데.

살기 위해 싸우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넌 잘못한 거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난 널 죽여야 해.

베라는 로이드를 바라보다 칼집에서 태도를 꺼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태도가 번뜩이는 빛과 함께 기창과 부딪혔다. 그제서야 베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덤벼. 싸움을 통해 성장한 너의 모습을 보여줘!

베라 씨!!

로이드는 포효하며 기창으로 베라의 다리를 찌르려 했으나, 그녀는 가볍게 다리를 들어 창을 밟아 무게로 움직임을 제압했다. 로이드의 힘으로도 기창을 그녀의 발밑에서 뽑아낼 수 없었다.

죽어!

로이드가 망설이는 순간 베라의 일격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로이드는 기창을 둘로 쪼갰고, 밟히지 않은 부분으로 베라의 일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복부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비록 베라가 바로 태도를 회수해 공격을 막아냈지만, 충격으로 인해 몇 발자국이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훈련한 것 같네…

로이드는 저번에 베라에게 훈련을 도와달라 부탁한 뒤로 종종 베라를 찾아와 전투 스킬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곤 했다. 베라가 말도 안 되는 훈련 방식을 사용해도 로이드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전에 사용하던 보조형 기체를 장착했다면… 정말 너에게 제압당했을지도 모르겠어.

신분이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준비한 베라의 일반 제식 태도는 로이드의 공격으로 인해 금이 간 상태였지만, 로이드도 무기의 반쪽을 잃은 상태였다.

윽…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침식 상태가 심해지며 거친 숨을 내쉬던 로이드는 기창을 지팡이 삼아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베라도 로이드도 알고 있었다. 다음 공격이 두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마음이라도 통한 듯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꽃비 속에서 부딪히는 칼날이 차가운 빛을 내뿜었고, 두 사람은 다시 멈춰 섰다.

이걸로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로이드의 가슴을 관통한 제식 태도는 그 소임을 다했다는 듯 절반으로 갈라졌고 로이드 또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저 이번에는 끝까지 싸운 거 맞죠? 베라 씨?

베라는 싱긋 웃더니 로이드의 곁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뒤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로이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짓더니 호주머니에 넣어둔 수첩을 꺼냈다.

베라 씨, 제가 비밀 하나 알려드릴게요…

베라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 없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 몰래 "로이드"들이 겪었던 스토리들을 극본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익명으로 예술 협회 산하의 극장에 원고를 보내고 있죠.

"로이드"의 진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알릴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연극을 통해 저희의 이야기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로이드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어쩌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보다 펜과 종이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들을 창작하는게 저에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죠. 하지만 "로이드"가 되어 영웅의 숙명을 이어가게 된 걸 후회하진 않아요…

로이드는 심각하게 침식되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왜곡되고 변형되는 오른쪽 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 결국 영웅이… 모두의 마지막 희망이 되지 못했어요.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넌 구조체들을 구했고 시간도 충분히 벌어줬어. 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거야.

그래요?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 이야기도 이 수첩에 기록될 자격이 있는 걸까요?

로이드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관통당한 상처에서 흐르는 순환액을 따라 그의 에너지도 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하지만 제 이야기는 아직 마지막 결말을 남겨두고 있어요.

로이드는 들고 있던 기창을 무기를 잃은 베라에게 던져주었다.

"불사의 영웅 로이드는 강력한 적을 물리치고 모든 전우들을 구해냈다.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참 식상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결말이네.

베라 씨였다면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멤버들과 함께 결국 승리를 거뒀을 거예요.

넌 내가 왜 나한테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 일을 승낙했다고 생각해?

……

참나,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단 말이지 제멋대로 나에게 부탁을 한다거나...

……

창은 받을게. 아무래도 이 기체에는 태도보다 창이 더 어울리는 것 같으니...

뭐, 실수로라도 네 계약금을 받았으니 의뢰는 끝까지 완료할게. 넌 여기서 한숨 푹 자고 있어.

…………

무인 수송기가 다시 떠오르자 그 충격으로 인한 바람에 꽃잎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로이드의 몸과 펼쳐진 수첩의 새로운 페이지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