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는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베라는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혼전에 이미 익숙했다.
반면 옆에 쓰러진 로이드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봐, 다친 건 아니지?
비록 충분히 힘을 조절한 덕에 부상은 입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다시 점검해 보았다.
이건… 퍼니싱 침식 증상. 아직 경미하긴 하지만…
베라는 로이드가 신형 역원 장치를 장착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이 정도 퍼니싱은 침식체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침식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병사를 계속 안고 있었던 거야?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야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야?
베라는 방금 전 침식된 병사가 흥분한 탓에 로이드의 기체에까지 상처를 남긴 걸 발견했다. 상처 중 일부는 인공 근육까지 깊게 파여있었는데 그게 바로 침식 증상이 악화된 이유인 듯했다.
베라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장착하고 있던 나노 복구 주사를 로이드에게 던져주었다. 하지만 로이드가 버둥거리며 주사약을 집지 못하는 걸 보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시 약을 주워 익숙한 손놀림으로 로이드에게 주사했다.
고맙습니다. 베라 씨...
네가 침식체로 변하면 널 죽일 수밖에 없으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난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걸 싫어해서 말이야.
로이드의 옆에 떨어진 건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방탄 수첩이었다. 베라는 마침 떨어지며 펼쳐진 수첩을 훑어보게 되었고, 노트에는 로이드의 행적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방금 전 이걸 주우려고 모래에 갇혔던 거야? 네 영웅 스토리가 기록된 노트를 주우려고? 왕자병 말기가 따로 없네.
돌려주세요.
베라는 차갑게 웃은 뒤 수첩을 로이드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로이드의 떨리는 손은 이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수첩은 다시 바닥에 떨어져 여러 병사들의 인식표가 와르르 쏟아졌다. 인식표들 위에 적힌 이름은 전부 "로이드"였다.
이게 도대체 뭔데? 도련님들은 인식표도 여러 개씩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참나…
순간 로이드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인식표를 줍기 시작했다. 순간 뭔가 깨달은 베라는 로이드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이봐, 니콜라와 너...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되게 많은 인식표, 소문과는 다른 전투력,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 청년…
너... "로이드",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베라는 거칠게 조사 이력서를 니콜라의 책상 위로 던졌다. 하지만 니콜라는 이에 동요하지 않고 베라를 쳐다봤다.
임무는 완료했나?
말 돌리지 마. 로이드 이 녀석은 도대체 뭐야? 그리고 의식 회수는 또 뭐냐고!
니콜라는 베라를 스쳐지나 그녀의 뒤에 있는 로이드를 바라보았다.
전부 알려줬나?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조사한 거야. 자료의 출처에 대해서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래? 모든 걸 알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건 너도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베라는 분노 어린 시선으로 니콜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 모든 건 그녀의 추측에 불과했다.
애초에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 전부 다 알려주겠네.
니콜라 사령관님…
괜찮네. 베라도 언젠가 알게 될 걸세. 실마리를 얻었음에도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면 케르베로스는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의식 회수는… 전부 거짓말이겠지? 그렇지?
그래. 의식 회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네. 우린 의식 회수를 통해 병사의 "사망"을 막을 수 있는 기술도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지.
니콜라의 당당함에 베라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듯 주먹으로 사무용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 거짓말 때문에 다들 자신이 진짜 죽을 거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죽어버렸어! 그런 건 생각 안 해?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 절망하는 수많은 병사들을 구원하기도 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언젠가는 분명 밝혀질 거짓말이야.
아니… 이 거짓말은 들키지 않을 걸세. 로이드가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불사의" 영웅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베라는 그제야 로이드가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 깨달았다. 그는 의식 회수의 "상징"이자 병사들의 "동경"이었고, 그의 존재가 이 황당한 거짓말을 덮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 회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로이드가 불사신이라는 것도 허황된 거짓이라는 걸 의미했다.
"로이드"가 전장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한 그의 전설은 계속될 걸세. 로이드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로이드가 죽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또 새로운 "로이드"를 만들면 되는 거였다. 비슷한 기체와 "로이드"를 연기할 병사, 그리고 대대적인 홍보로 구성된 치밀한 설계까지.
혹은 병사들이 스스로 "불사신 로이"가 정말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바랄지도 모른다. 이미 전장에서 쓰러진 전우들과 곧 전장에서 쓰러질지 모르는 그들 자신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로이드 자신도 작동된 순간부터 알고 있던 비밀일세. 결국 우리에게 협조해 "로이드"가 되기로 결정했지. 모든 "로이드"들은 이 거짓말이 이어지는 걸 바랐고 그 길을 선택했다네.
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로이드를 바라보았다. 베라는 이건 마치 자신의 인격과 존재의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거와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로이드"들은 알고 있었다네. 애초에 이 모든 게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다는 것을. 거짓된 희망조차도 희망이니까.
하, 정말 당당하네. 내가 그 비밀을 사람들한테 전부 알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우린 "로이드"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네. 수많은 병사들이 그런 정신적 지주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 그리고 또…
니콜라는 공격적인 미소를 지으며 베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케르베로스 소대 또한 내 도움을 받아 공중 정원에 가입할 수 있었다는 점, 그걸 잊지 말게나.
니콜라는 자신이 베라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베라와 로이드가 함께 작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이번 임무의 공적 또한 로이드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었다.
정말 쉽고 간단한 협박이네. 그렇군, 나도 너희들의 발판에 불과했어.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를 위해 굳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뭐,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만 하지.
베라 씨...
베라는 돌아서더니 문쪽으로 다가갔고, 차가운 눈빛으로 로이드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로이드는 고개를 숙인 채 수첩을 꽉 쥐었다.
거짓은 어디까지나 거짓일 뿐. 영웅이 아닌 자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