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직... 들리... 여긴... 치직... 소대다. 우린 지금... 지원을 요청한다! 제발... 이미..."
베라는 바닥에 떨어져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자동으로 재생되던 통신도 마지막 사명을 마쳤다는 듯 전송을 멈추었다.
이 메시지의 출처를 찾았어. 그렇다는 건 여기가 바로 임무 목표 지점이라는 건데...
베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온통 공중 정원 병사들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 한 것이었다.
생존자가 없어... 괜히 왔잖아?
임무 상황 기록 보고서를 제출하고 돌아가려던 베라는 다른 쪽에 서 있던 로이드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의 구조체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 깃발은... 로이드?! 혹시 로이드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로이드입니다.
로이드는 구조체 병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를 일으켜세웠다. 한 눈에 심각한 상태의 상처에는 퍼니싱 침식으로 인한 암적색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봐, 이 녀석...
로이드는 베라를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말을 이어나가기도 귀찮았던 베라는 그저 옆에 서서 로이드가 뭘 하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여러분! "불사신 로이"가 우릴 구하러 왔습니다! 우린 이제 살 수 있다고요!
하지만 구조체 병사의 고함에 그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는 막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시각 센서가 심각한 손상을 입은 탓에 주위의 환경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죽었어.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리고 너도 이제 곧 죽을 거야.
베라 씨!
역시 그랬군요. 다들 이미... 그리고 저도 그들처럼... 으악!!
퍼니싱 침식으로 인해 의식의 바다는 한계점까지 이르러 완전히 이성을 잃은 침식체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옆에 있던 베라는 코웃음을 치더니 말없이 버튼을 눌렀다. 태도가 칼집에서 튕겨져 나왔다.
괜찮아요. 당신은 죽지 않을 거예요! 맞아! 의식 회수! 지금 의식 회수를 수행한다면 살 수 있을 거예요.
의식 회수란 집행 부대의 구조체 병사들이 마지막 보험으로 남겨두는 자기 보호 수단이다. 의식 회수를 사용하는 순간 구조체의 의식은 기체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원격으로 공중 정원으로 전송된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죽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의식 회수라...
구조체가 평소에 기체를 변경할 때도 의식 전이를 거치지만 그건 항상 전문적인 장치와 기술자들의 서포트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의식 회수는 긴급 수단으로서 이런 조건들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리스크도 높아 궁지에 몰리지 않는 이상 쉽게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로이드의 말에 구조체 병사는 다시 희망을 얻은 듯 고군분투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의식 회수...
전에 멀리서 당신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불사신 로이"의 기창이 전장에 나타났고 모두 함께 포위망을 뚫었죠.
다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라가면 살 수 있다는 걸요.
그래요. 이번에도 그렇게 됐네요. 당신도 나… 아니 우리에게 구조되기를 기다렸잖아요.
로이드가 베라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저도 당신처럼 의식 회수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살아서 전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구조체 병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로이드는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짜냈다.
물론... 의식 회수에 성공한다 해도 의식과 기체를 복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결국 살아남을 겁니다.
구조체 병사는 로이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떨리는 손으로 경례를 했다.
그럼나중에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네... 꼭 전장에서 다시 만나요.
경례 자세를 유지한 채 병사는 완전한 침묵에 잠겼고, 그의 의식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베라의 칼이 병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무슨 짓입니까!
의식 회수가 종료된 이상 이 기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만일 퍼니싱에 침식이라도 된다면 결국 우리가 처리해야 해, 난 똑같은 일을 두 번이나 처리하고 싶지 않아.
곧이어 베라는 태도를 사선으로 휘둘러 구조체 병사의 기체를 완전히 잘라버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칼날에 묻은 순환액을 털어냈다.
그... 그렇죠. 의식 회수를 진행하면… 음, 의식은 공중 정원에서 다시 회복되겠죠.
로이드가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베라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이런 사소한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어서 철수해야 해. 침식체들이 다가오고 있…
베라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서 있던 땅이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모래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래들이 두 사람의 발목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베라는 바로 뒤로 한 발 점프해 함정에서 벗어났지만 로이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는 모래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잠시만...
이봐, 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거기서 나와!
베라가 불렀을 때 로이드는 드디어 원하는 물건을 찾았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모래를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침식된 초대형 벌레 형태 로봇, 바사고였다.
사막 지대의 바사고는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혼자라면 상대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영웅이라고 불리는 로이드가 위험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윽! 으악!
하지만 현실은 소문과 달랐다. 바사고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로이드를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날렸다. 기체에 실질적은 손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로이드 또한 기창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겨우 막아낼 뿐 반격 한 번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구덩이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침식체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한편, 바사고는 자신의 공격이 구조체에게 통하지 않자 다시 모래 속에 숨어들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로이드의 하체를 기습하려는 듯했다.
쯧… 이봐! 죽고 싶지 않으면 창부터 이리 내!
로이드는 망설이지 않고 기창을 베라의 손이 닿는 곳으로 뻗었고, 베라는 창끝을 잡아 모래 속에서 뽑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로이드가 밟고 있던 모래 속에서 바사고가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빠르게 튀어나왔다.
감... 감사합니다!
곧바로 베라는 로이드의 손목을 낚아채 뒤로 꺾은 뒤, 그가 들고 있는 기창으로 뒤에서 달려오는 침식체의 공격을 막아냈다.
베, 베라 씨, 위험해요!
침식체가 베라의 사각지대에서 다가오는 걸 발견한 로이드는 구조체를 향해 발을 뻗었지만, 침식체에게 발목을 붙잡혀 한쪽으로 내던져졌다.
됐어. 비켜!
베라에게 가슴을 차인 로이드는 몇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침식체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베라는 더 이상 로이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태도를 뽑아 공격 태세를 갖춘 뒤 벌떼처럼 몰려드는 침식체들을 바라보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삐-! 삐삐--!
그래, 누가 가장 먼저 죽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