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낙석이 비가 오는 듯이 21호 등 위로 계속 떨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쓰러졌지만 계속해서 일어섰다.
체형 때문에 21호의 몸으로는 베라를 완전히 가릴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숙이고 두 손을 베라의 겨드랑이 밑으로 밀어 넣어 등을 받쳐 돌들이 베라의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보조 기계가 그녀의 뒤를 따라와 베라의 발을 들어 올리자, 21호는 아래로 등을 구부린 채 베라를 끌어안고 적색 구조체의 몸통을 끌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광선포는 그녀를 위해 커다란 낙석을 부쉈고 갈라진 자갈은 21호의 얼굴에 촘촘한 혈흔을 남겼다.
후... 윽... 후...
그녀는 돌이 빗방울처럼 떨어져 보조 기계에 떨어져 탁탁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원형 기계의 로봇팔은 이러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몇 차례 미끄러졌다.
힘내……
그녀는 몇 번 듣고서야 마침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꼬마야……
그녀는 동료의 "코드 네임"을 "꼬마"라고 지어줬다.
……힘내, 꼬마야……
21호의 손은 베라의 순환액에 의해 젖었고, 그 끈적끈적한 차가운 액체가 21호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액체가 뚝뚝 떨어지면서 마치 그녀의 심장을 베는 듯한 느낌을 들게했다.
21호는 이 복도를 혼자 처음 건널 때보다 지금 더 아픔을 느꼈다. 커다란 통증이 몸 여기저기에서 전해져와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세계는 서서히 정적에 잠겼다……멀지 않은 곳에 열린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출구만이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새빨간 구조체를 품고 "바깥세상"을 향해 전진했다.
왜?
그녀는 답을 모른다... 어쩌면 이게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발버둥치며 빛을 향해 나아갔다.
베라는 비에 젖어 깼다.
심한 충격으로 베라의 기체는 잠시 감각이 없어졌다. 그녀가 손을 뻗어 얼굴의 빗물을 닦아내자 흐릿했던 시선이 조금 또렷해졌다.
머리를 숙이고 방수 봉투에 담긴 자료가 온전하게 그녀의 손에 놓여 있다. 그러나 21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1호?
베라가 일어서려고 하자 뒤에서 전해져 오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의 등을 만졌다. 등의 인조피부는 마치 사람이 수십 개의 돌로 한 시간씩 번갈아 문지른 듯 망가져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끊어진 피부조직을 통해 직접 자신의 내부 구조를 만질 수 있었다.
……이 바보 같은 자식.
베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밤이 되어 있었고, 쿠로노 본사가 그녀들을 데리러 올 시간은 이미 넘긴 상황이었다. 무너진 자갈로 입구가 완전히 막힌 연구원 입구는 적막한 무덤 같았다. 주위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소리만 들렸다.
……21호! 살아 있다면 무슨 소리라도 내봐!
……나는 먼저 철수할 거야. 지금이라도 나오지 않고, 나중에 네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 널 탈영병으로 베어버릴 거야.
베라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 들려준 우스갯소리 같았다.
……역시 "사신"이라는 칭호를 뿌리칠 수 없는 걸까.
베라는 비아냥거리며 웃었고 옆에 있는 칼을 집어 들고 자신을 지탱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삐.
연구원 출구에 있는 돌무더기가 흔들렸고 자갈이 계속 떨어졌다. 이어 작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돌멩이가 양쪽으로 와르르 미끄러졌고 그 속에서 하얀 머리가 튀어나왔다.
……
……
21호는 틈 사이로 재빨리 굴러 나와 잔디밭에 엎드렸다. 그녀는 베라를 보았다.
깨어났네.
앙상한 체형의 구조체가 삐뚤삐뚤 땅 위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 같았고, 한쪽 다리도 부러져 과장된 각도로 그녀의 몸 아래에서 끌려다녔다.
그녀는 한쪽 발로 껑충껑충 베라를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은 매우 놀랍고 동시에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베라의 눈썹이 살짝 뛰었다.
지금 네 모습이 광대 같아.
광대?
21호는 그녀에게 다가와 손바닥을 벌렸다. 손바닥 가운데 있던 것은 금속 조각으로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 어렴풋이 "20"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건 구조체의 잔해?
21호는 말없이 수색을 하던 중 베라가 반쯤 누운 자리 옆에서 하얀 꽃을 발견했다.
21호는 잔해를 꽃 밑에 놓았다.
네 친구?
……모르겠어.
쳇, 잘도 골랐네. 데이지는 죽은 사람에게 주는 꽃이야.
이 꽃 이름이 데이지?
21호는 자세히 보았다. 가늘고 긴 꽃잎이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새하얗다.
……예뻐.
……
……돌아가자.
너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쿠로노로 기어가고 싶어?
21호, 할 수 있어.
바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와서 나 좀 치료해.
……할 줄 몰라.
내 말대로 하면 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땅에서 푸른빛이 감돌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밤새 그치지 않을 것 같았고, 이 땅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겠다고 다짐하는 듯 했다.
베라는 21호를 위로 받쳤다. 그녀는 21호의 부러진 다리에서 순환액이 계속 빠져나가 탁한 웅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간단한 나노 보강 재료로는 두 사람이 입은 심한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었다. 실제 임무 정보가 은폐되지 않았다면...
쿠로노……이것이 쿠로노가 보고 싶은 상황이다. 우수한 것은 선택되고, 열세한 것은 배제한다.
베라는 이를 악물고 자신 등에 업힌 21호를 흔들었다.
야, 자지 마. 너 너무 무거워.
……음……
……일어나!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응?
그 남자가 네 아빠야?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그냥 죽였을 거야. 입만 열면 허튼소리를 하는 나쁜 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
세상 모든 것을 정의하려고 하지 마. 절대적인 흑과 백은 없어. 그들은 너의 부모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야.
20호가 한 말이 맞았어. 나는 그냥 감정이 없는 무기, 괴물일 뿐이야.
그래 나는 사신이야. 나에게서 멀어져. 나에게 한 발짝도 다가오지 마.
내일 나는 상부에게 너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신청할 거야. 자꾸 트집만 잡는 그 바보 구조체는 어때? 그는 너를 무척 좋아할 거야.
왜?
나는 사신이니까. 나를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체는 반드시 죽어.
21호, 죽지 않아.
네가 죽지 않은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신이라고 말하니까 난 사신이어야 해. 너는 반드시 떠나야 해.
……모르겠어……
너의 바보 같은 머리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자신을 정의하는 건 어리석고 자신을 속박하는 행위야.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싫어.
남이 뭐라고 하면 너는 남이 하라는 대로 해?
나에게 명령하려고 온 사람들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야.
나는 남이 말하는 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기도 귀찮아. 나는 단지 내 기분대로 내 마음대로 할 뿐이야.
욕망이 어디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
나는……
난... 당신과 함께 훈련하고 싶어.
나는……
시곗바늘이 6시를 가리켰고 눈을 떴다. 새하얀 침대에서 깨어났고 창밖에 새소리가 들렸다.
시곗바늘이 7시를 가리켰다. 기체 점검과 일상적인 정비를 했고, "꼬마"와 함께 훈련했다.
시곗바늘이 8시를 가리켰다. 휴게실에 앉아서 적색 구조체에게서 뭔가 다른... 인간의 기운이 있다는 걸 배웠다.
시곗바늘이 9시를 가리켰고 적색 구조체와 전투 훈련을 진행했다. 그녀의 전투는 특별한 색깔이 있었다.
……
난 더 많은 꽃들을 보고 싶고, 더 많은 냄새를 맡고, 다른 색깔들을 보고 싶다. 그 오렌지색 기이한 온도의 빛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야! 자지 마!
너는 내가 고생스럽게 시체를 메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거냐!
……안 잤어.
21호는 베라의 어깨와 가까이했고 편안하고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모르는 게 많지만.
하지만 어쩌면 21호도 자신만의 삶을 얻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