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침식체들의 습격이 곧 올 거야.
알겠다.
부상을 입은 자들은 모두 여과탑 근처의 엄폐물에 숨은 뒤, 각 소대와 함께 움직여 침식체들을 전선 밖으로 밀어내고 여과탑 근처의 안전을 확보한다.
응, 알았어~
의사, 부상자는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응.
반즈,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
내 말 기억하지? 당장의 더 중요한 일을 잊지마.
부대는 부상자들이 숨어 있는 엄폐물을 보강한 뒤, 전선으로 출발했고 반즈는 엄폐물 속에서 구조체들의 부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것 좀 들어봐.
반즈는 연결선의 한쪽 끝을 앞의 구조체의 손에 놓고 다른 한쪽 끝을 자신의 단말기에 연결했다. 손가락이 단말기를 빠르게 두드렸고 반즈의 두드림과 함께 약한 전류가 연결선을 타고 구조체의 기체에 전달됐다.
감사합니다.
괜찮아.
반즈가 일어나 다음 부상자에게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엄폐물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가 끝난 건가?
아, 아니요.
어?
조심하세요. 특수 위장을 사용해 전선을 넘은 침식체예요.
톰슨은 그렇게 말하며 벽 쪽으로 다가가 벽 틈새로 외부를 살폈다.
안 되겠어요. 이 정도 수준의 침식체는 지금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반즈, 뒷문으로 도망가세요. 우리 구조체는 정 안되면 의식 회수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한동안 제 아이를 못 볼 테지만요.
반즈, 넌 거짓말을 폭로할 용기가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건 올바른 답이 아니야.
거짓말도, 진실도, 우리 구조체에겐 그냥 무의미한 거지.
당연하죠. 거짓말 뒤의 진실을 본 뒤 저희는 결말을 알았어요.
인간을 위해 죽는 건 구조체가 저항할 수 없는 결말이지요.
다만 일찍 죽거나, 좀 더 늦게 죽거나 아니면 어디서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게 현실이에요.
이게... 현실이... 에요.
다음에 버틸 수 없다면... 그냥 의식 회수를 가동하는 건 어떨까?
괴로움에서 벗어난 기체의 의식의 바다를 공중 정원으로 되돌려 놓는 거야.
마치 생전의 상태로 돌아간 듯 따뜻하고 편안할 거야.
이겨서... 살아가야 해...
어떤 방면으로 봤을 때 당신과 그가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나요? 걱정한다든지, 어떤 것을 털어놓기 싫다든지 이런 거 말이에요.
그래서 마음에 남거나 후회하느니, 차라리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생각해요.
중요한 건 네가 더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승리와 미래는 내게 너무 먼 것이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 것일까?
구조체의 상처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점검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고통과 이별을 더는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손에 닿을 수 있는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
눈앞의 광경을 보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구조체 점검과 관련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 핏속에 새겨진 생각들을... 나는 거짓말이 옳고 그른지에 고민하는 동안 점차 잊혀져 갔다.
안 돼.
에?
……
반즈, 무슨 일이에요?
난... 너희들이 의식 회수를 사용하는 것을 반드시 막을 거야...
예전에 나는 거짓을 들추어내는 게 남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 겪게 만들었어.
그때부터 후회, 유감, 타협, 고통은 내 생활의 중심이 됐어.
거짓말의 존재가 필요한 현실을 받아들였거든...
하지만 여기서 깨달았어. 구조체들이 거짓말 때문에 헛되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기서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전선의 카무이랑 공중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톰슨의 아이를 어떻게 대면하겠어.
여기서 진실을 말하는 건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는 거야.
어어, 드디어 털어놓는 건가요?
응... 의식 회수는... 사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그 모든 건 구조체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어...
네?
생명의 위협은 우리 모두 똑같아.
여기서 너희들에게 의식 회수를 믿고 자신의 안위와 상관없이 전투에 참여하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너희들에게 자살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이제 도망치기보단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거야. 너희들과 함께 싸워서 아무도 의식 회수를 사용하지 않게 할 거야.
의사는 타인을 구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과 함께 싸워 모두를 보호해야 돼. 우리... 같이 살아남는 거야...
흥분한 탓에 반즈는 기진맥진해 보였고 온몸이 떨렸다. 톰슨은 반즈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반즈의 어깨를 토닥였다.
정말 용감하네요.
그래요,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과거를 짊어지고 지금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 내가 너무 나약해서 그래...
결코 나약하지 않아요. 현실을 깨닫고 계속 나아가며 고통스러운 어둠 속에서 모색하고 전진하는 것은 나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반대로 그런 사람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인하다고 할 수 있어요.
참, 우리가 왜 한순간 의식 회수를 사용하려 하겠어요. 그건 전선의 동료를 내던지고 도시의 승리를 포기하는 거잖아요.
맞아... 우리는 분명 모두와 함께 승리하기로 약속했어. 반즈, 당신 말대로 우리 함께 살아남아요.
다들...
"깃발"은 동료를 보호하고 인도할 것이며, "깃발"은 결코 무너지거나 후퇴하지 않을 겁니다.
가자, 전우들이여.
톰슨이 그렇게 말하며 큰 소리를 외치자, 움직일 수 있는 몇몇 구조체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뒷문 옆에 서있던 반즈가 자리를 뜨려 할 때 톰슨이 저격총 한 자루를 반즈의 손으로 던졌다.
받으세요.
바깥의 괴물에게 완전무장한 "깃발"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세요.
톰슨은 자신이 들고 있던 다른 저격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반즈는 톰슨의 동작을 흉내 내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무기를 사격 준비로 조정했다.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