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나온 반즈는 생명의 별의 복도를 지났다. 복도의 창문으로 우주에서 외롭게 회전하고 있는 인류 기원의 땅——지구가 보였다.
구조체는... 인간이 지구로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승리의 불씨가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자식들이 평안하길...
공중 정원의 각 곳에는 의장의 유명한 안내방송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격한 선동질 때문에 구조체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 있다.
지구로 돌아간다는 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명예? 책임?
또는 기성세대가 이루지 못해서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는 무거운 숙원이란 말인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저런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짓말로 구조체들을 전장으로 내보낸다는 거야...?
생명의 별, 세계 정부 최고의 의료 기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세계 정부 세력의 모든 멤버에게 이롭고 효율적인 의료를 보장해줍니다.
구조체 점검실. 반즈, 행운을 빕니다.
반즈가 생명의 별에서 나가자 시스템에서 익숙한 인사가 들려왔다.
'구조체 점검실'이라는 수천 번도 들었던 단어가 반즈 귀에는 망치가 머리를 내리치는 듯이 아프게 들려왔고 그의 뇌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 수업을 예약할까요?
묵묵히 시스템의 화면에 '아니오'를 터치했다. 입구에 있던 보안 요원 두 명은 반즈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서서 거리를 뒀다.
형님, 구조체 점검실은 한가하지 않나요?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고생한 얼굴이죠?
또 군부 정책에 속아서 왔다가 대우도 좋지 않고, 구조체라는 기계는 만지기도 어렵다는 걸 깨달은 녀석이겠지.
그런가요?
그래, 뭐 생명의 별의 의사는 다 똑같을 줄 알았냐?
구조체 점검실의 사람들도 의사라고 하지만 그쪽 일은 의사보다는 수리공에 가깝지.
구조체는 부품 하나만 잘 못 달아도 큰 영향을 끼친다더라. 그래서 구조체를 점검하는 건 수술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지.
다 생명의 별의 사람인데, 왜 근무 부서를 옮기지는 않나요?
그렇게 쉬울 것 같아? 인체 의학은 구조체 점검이랑 차이가 커. 그러니 어떻게 부서를 옮기겠어?
그 점검실 녀석은 결국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생활하든지 아니면 세계 중공업으로 가든지 할 거야.
이상한 일도 아니지 뭐. 그냥 과학 이사회에서 번거롭다고 느끼는 업무를 가져왔을 뿐이니까.
그렇군요. 그럼 생명의 별은 왜 그 구조체들을 점검해주는 거예요? 망가졌으면 새로 바꾸면 되잖아요.
너 바보야? 원래 기체는 수리만 잘하면 다시 싸울 수 있잖아.
새 기체를 만들려면 자원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잖아. 새 기체를 만드는 시간 동안 병력 보충은 어떻게 하려고. 설마 네가 직접 침식체랑 싸우겠다는 거야?
지금 공중 정원의 인구 수로는 절대 전쟁을 견딜 수 없어.
역시 구조체가 좋아.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마지막에 도저히 안 되면 의식 회수를 작동할 수도 있잖아.
그럼 너도 구조체 하지 그래?
나? 아유 됐어, 난 "인간"으로 남을래.
... 정말 어이없네.
어이없다.
그렇다. 얼마나 어이없는가.
구조체든 인간이든 그들의 인식 속에 구조체는 마치 영생하는 존재와 같았다.
인간의 외형을 가진 도구, 무기, 심지어 괴물까지.
구조체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은, 오늘날 공중 정원 대부분에게 구조체에 대한 황당한 인식을 존재하게 만들었다.
어이가 없네... 그럼 나는 뭐지...
나 자신이야말로 그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도덕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무슨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이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쓸 때, 그 둘은 일찌감치 다음 얘기를 시작했고 때때로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행복.
그건 아름다운 거짓말에 빠진 행복이었다.
과거에 나도 그런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은 적 있다. 그건 한 구조체를 점검한 뒤 하루빨리 전장에 나가 싸우길 바라는 그와 잡담을 나누면서 나온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추억은 머지않아 바쁘고 힘든 작업 속에 잊혀졌다.
그 후로 나는 그 구조체를 본 적 없는데...
과거 행복한 추억이라 여기던 그곳의 아래는 넘을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머릿속에서 그 구조체가 의식 회수를 사용한 뒤의 처참한 모습을 생각하니 위가 욱신욱신 쑤시고 구토를 하고 싶은 욕망이 몸 속을 가득 채웠다.
음... 윽.
비키세요, 비키세요!
조급한 외침이 보안 요원의 대화와 반즈의 추억을 끊었다. 간호사 몇 명이 두 대의 간호 침대를 끌고 생명의 별 입구에 멈춰 섰다.
간호 침대 위에는 각각 인간 한 명과 구조체가 있었다.
그의 가슴 붕대 아래에는 적조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그 구조체는 더 심하게 다친 것으로 보여졌다. 두 팔은 기괴한 각도로 구부러져 있었고 허리 아래 부위는 무거운 물체로 눌린 듯 납작하게 부서져 있었다. 새빨간 순환액이 간호 침대 옆의 홈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보안 요원은 이 광경을 본 뒤 즉시 휴대 단말기를 켜 응급 진료과에 통신을 연결했다.
응급 환자, 응급 환자 발생, 부상당한 사람이 한 명 있다.
통신이 끊기자 썰렁했던 생명의 별 입구가 분주해졌고, 여러 개의 비행 로봇이 생명의 별 안으로 날아들어와 각종 약제를 가지고 인간의 몸에 주사했다.
한 의사가 조수를 몇 명 데리고 그 뒤를 따라간 뒤 간호사에게 간호 침대를 건네 받아 응급 수술실로 향했다.
이쪽 구조체를 잊지 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야. 그냥 한 기체가 망가진 것뿐이지. 절차대로 하자.
말을 마친 의사는 조수들과 인간의 부상 상태와 수술 세부 사항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간호사들은 부상자를 인도하고 수송차를 타고 떠났다.
두 명의 보안 요원은 눈을 맞추고 구조체의 간호 침대를 밀어 생명의 별의 부상자 접수 단말기로 향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아 온 광경이다.
보안 요원이 가까워질수록 반즈는 그 구조체의 부상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구조체의 인조 피부는 모두 사라져 금속광택이 나야 할 로봇은 이미 고온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의 절단된 왼쪽 다리에는 고형 금속이 고온으로 액화된 뒤 다시 굳어진 흔적까지 보였다.
구조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반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상대방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아파...
의식의 바다가 이탈되지 않도록 구조체의 통각 모듈이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증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너무 아파... 윽...
침대는 반즈 바로 옆을 지나갔다. 심하게 다친 구조체의 손이 침대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런...
반즈는 두 주먹을 힘껏 불끈 쥐고 돌아서서 간호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재빨리 품에서 시약을 꺼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중상 입은 구조체의 왼쪽 다리를 능숙하게 눌렀다.
당신?
정비가 우선이야, 절차는 나중에 밟으면 돼.
보안 요원이 어리둥절한 사이 반즈는 이미 그들의 손에서 간호 침대를 넘겨받아 생명의 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봤자 기체 하나인데 뭐 때문에 이리 급한 거지.
몰라, 하여간 정말 이상한 놈이야.
긴급 정비를 마치고 구조체는 가까스로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반즈는 피곤한 듯 휴게실로 향했다
그 점검실...
콜록... 의사 선생님, 통각 모듈 좀 꺼주세요...
그럴 수 없어. 꺼버리면 의식의 바다 이탈 현상이 발생할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곧 좋아질 거야.
후... 후...
네... 알겠어요...
앞의 마지막 구조체의 점검을 마친 뒤 교수는 천천히 반즈의 곁으로 다가갔다.
반즈, 왜 당시에 소아과를 떠나 구조체 진료과로 넘어온 거지?
이곳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고 복지도 좋지 않다. 그리고 소아과 주임이 몇 번이나 네게 소아과에 있는 것이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다고 하던데.
음... 여기에 일손이 부족해서요.
눈앞의 광경을 보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구조체 점검과 관련된 공부를 하게 되었고요.
인간과 구조체는 모두 상처로 고통받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생명의 별들의 몫이 아닌가요?
생명의 별의... 역할이란 말인가.
그래, 구조체가 고통에서 벗어나 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지.
계속 노력해 봐. 지켜볼 테니.
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이 떠올랐다. 생명의 별 곳곳에 반즈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수년 동안 구조체를 위해 뛰어다닌 자신의 청춘이었다.
음... 과거 내가 했던 일들이 정말 치료라 할 수 있을까...
이 시대는 어쩌면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오히려 행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가 말했던 대로 앞의 고통스러워하는 구조체들을 보니 반즈는 여전히 매정하게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기억과 현실이 반즈의 신경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반즈는 벽에 기대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지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 기체 테스트는 순조롭게 끝났어.
교수의 익숙한 목소리가 반즈의 주의를 끌었다. 소리를 따라 걸어간 반즈는 한 정비실에 이르렀다.
...전장에 나가는 걸 두려워할 필요 없어. 구조체는 의식 회수라는 최후의 구조 수단이 있으니까.
정비실 안의 교수와 구조체의 대화가 들려왔다.
정말 의식 회수가 존재한다면, 왜 이런 짜증 나는 연결선을 빼주지 않는 거죠? 어쨌든 의식 회수가 있으니 이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잖아요.
안 돼, 그렇게 하면 의식의 바다가 이탈되는 데다가, 막대한 자원 소모를 초래할 거야.
그 의식의 바다가 이탈된다는 말 좀 그만하세요!
이런 개인의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교수님, 망설일 필요 없어요.
아니, 의식 회수의 부작용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커. 네가 굳이 그러겠다면 내가 너를 대신해서 조기 복귀 신청을 해줄 수 있어...
그만하세요!
정비실 내 구조체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은 반즈는 정비실의 대문을 힘차게 열었다. 교수와 그 구조체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정비실로 들이닥친 반즈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왜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거죠?
진실?
이런 상태로 돌아가면 자살이랑 뭐가 다릅니까!
반즈, 멍청한 짓 하지 마.
하지만 우리가 구조체를 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건, 그들을 생사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개죽음을 시키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반즈... 내가 말했지, 소용없어.
……
당신도 의심한 적 있잖아, 안 그래?
구조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은 존재하지 않아.
교수님?
하... 그의 말이 진짜라 해도 뭐 어쩌겠어.
...그랬구나.
하긴, 위의 놈들이 어떻게 우리 같은 이런 전쟁 도구의 사활에 관심을 가지겠어.
의식 회수... 거짓말이면 또 뭐 어때?
거짓말도, 진실도, 우리 구조체에겐 그냥 무의미한 거지.
맞아.
교수님, 의사 선생님, 지금은 조용히 혼자 있고 싶네요.
하지만...
반즈, 넌 거짓말을 폭로할 용기가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건 올바른 답이 아니야.
교수는 반즈를 데리고 천천히 정비실을 나왔고, 그 구조체는 정비실 주변의 로봇과 완전히 하나가 된 것처럼 조용히 정비실에 앉아 있었다.
반즈가 처음으로 구조체에게 진실을 밝힌 뒤 수일 동안 상대방의 목소리가 반즈의 귓가에 맴돌며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위의 놈들이 어떻게 우리 같은 이런 전쟁 도구의 사활에 관심을 가지겠어.
거짓말도, 진실도, 우리 구조체에겐 그냥 무의미한 거지.
내 행동이... 무의미한 걸까...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고요한 공간에 반즈의 마음은 답답함만 쌓여갔다.
……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반즈는 손으로 테이블 위를 무겁게 내리쳤다. 반사된 진동의 힘에 그는 손이 얼얼했지만 육체의 일시적인 통증은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즈는 자신의 의자에 털썩 쓰러져 머리 위를 바라봤다. 천장의 부드러운 불빛이 반즈의 눈동자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오랜만에 찾아온 졸음이 반즈를 휩쓸기 시작했다.
음... 오랜만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똑——똑——똑——
사무실 대문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반즈의 졸음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는 손으로 뺨을 비비며 테이블 위의 파일과 잡동사니들을 서랍에 집어넣었다.
음... 들어오세요.
반즈는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반즈가 본 것은 그 구조체였다.
구조체는 반즈에게 빠르게 다가가 팔꿈치로 반즈를 때려눕혔다.
차가운 로봇의 촉감이 뺨으로 전해졌다. 반즈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상대방의 의도를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뭐 하는 짓이야?
구조체는 자신의 품에서 전자 수갑을 꺼내 반즈의 두 손을 뒤로 묶었다.
미안하지만 저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응?
구조체는 말을 마친 뒤 반즈를 들고 사무실 밖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반즈를 밀며 생명의 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반즈는 사무실 밖의 감시 장치에 옅은 파란색 전깃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구조체는 반즈를 밀치며 생명의 별 복도를 걸었다. 그 진행 경로에는 구조체의 정밀한 계산이 담겨있었다.
코너를 통과하는 타이밍, 통로의 전진 시간 모두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명의 별의 의사가 납치돼도 주위에서 빠르게 눈치를 채지 못했다.
망막 스캔 중... 신원 확인 완료.
반즈, 행운을 빕니다.
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조금 반항하는 것뿐이에요.
기만 당한 것에 대한 반항.
너...?
거짓말 뒤에 진실을 알게 되면 당신도 반항하지 않겠어요?
……!
둘은 생명의 별의 보호를 넘어 마지막 시스템 음성을 끝으로 마침내 생명의 별 바깥으로 나왔다.
후...
생명의 별을 벗어난 구조체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지구와 생명의 별이 아닌 곳에는 정말 오랜만에 와보네요.
구조체가 주위를 둘러보자 두 명의 다른 구조체가 건물의 그늘에서 나와 반즈를 구속하고 있는 구조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 투하 플랫폼으로 가자. 그쪽은 이미 해킹을 완료했어. 아무도 모르게 공중 정원을 탈출할 수 있어.
그렇게 말을 마치자 세 구조체는 반즈를 재촉해 순찰 중인 구조체 소대를 피해 은밀하게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갔다.
다음은... 됐다.
이들 앞에서 기계음이 울렸고 투하 플랫폼의 검은 해치가 그 소리와 함께 열렸다.그곳에는 강하 투하선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해치를 해킹했다는 구조체는 자신의 팔에서 접속 케이블을 끌어내어 강하 공중 투하선 옆의 단말기에 연결했다.
됐어, 이쪽은 끝냈어. 이제 갈 준비하자.
의사는 어떡해.
우리에게 맡겨.
누구냐?!
구조체가 말을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날라온 총알이 구조체의 가슴을 관통하며, 옆에 있는 반즈의 전신에 순환액이 튀었다.
정화 부대가... 어떻게...
공중 투하선 주위의 연결 플러그가 잇달아 열리면서 공중 투하선에 연결되어 있던 구조체의 접속 케이블이 갑자기 모두 뜯겨져 나갔다. 끊어진 접속 케이블에서는 맹렬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돌발 상황으로 인한 통증으로 구조체는 고통스럽게 주저앉았다. 검은 비수 한 자루가 그의 목구멍을 찔렀고, 비수는 빙빙 돌며 반대편을 그어 이 구조체의 목을 잘랐다.
사살해.
솔론! 하워드!
반즈를 생명의 별에서 납치한 구조체가 다른 두 구조체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등 뒤에서 무기를 꺼내 주위를 향했지만 주위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반즈와 동료의 잔해 외에 정화 부대 멤버의 그림자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극심한 통증이 구조체의 온몸을 관통하며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은 순간, 그는 손을 뻗어 검은 큐브 여러 개를 사방에 뿌렸다.
큐브가 지면에 떨어지면서 서로 연결되 주변에 옅게 빛나는 전력망을 형성하여 정화 부대의 접근을 막았다.
후... 후...
정화 부대... 생각보다 빨리 왔네...
너... 이럴 줄 알았던 거야?
……
당연하죠. 거짓말 뒤의 진실을 본 뒤 저희는 결말을 알았어요.
인간을 위해 죽는 건 구조체가 저항할 수 없는 결말이지요.
다만 일찍 죽거나, 좀 더 늦게 죽거나 아니면 어디서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게 현실이에요.
왜 현실인 줄 알면서도...
제 이름은 지터예요.
저 백발 녀석은 솔론이라 하고 해킹에 능한 녀석은 하워드라고 해요. 우린 전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죠.
지터라 불리는 구조체는 손을 뻗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동료를 가리켰다.
우리는 지상에서 싸우다가 다음 전장에서 다음 전장으로 가는 이런 반복되는 악몽에 질려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요.
정말 오랜만에 저희 스스로의 결정을 내렸어요.
이런 악몽에서 도망가기로요. 물론 처음부터 도망갈 장소도 없었지만.
지터 주위의 전력망 빛이 약해지자 지터는 무기를 이용해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는 자세 대신 간신히 서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전력망 빛이 사라지고 또 한 발의 폭탄이 지터의 얼굴을 반쯤 날려버렸다.
이게... 현실이... 에요.
도주 구조체 사살 완료.
수송차, 수송차를 불러줘, 이 사람이 다쳤는지 검사해 봐야겠어.
반즈 눈에는 선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지터의 모습이 담겼다. 완전 무장한 정화 부대가 전력망을 넘어 반즈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자 수갑을 풀고 멍해 있는 반즈를 부축해 플랫폼에서 빠져나갔다.
기밀 누설자 체포 완료. 현재 포로로 잡힌 사람의 부상 상태를 점검 중이다.
교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다니.
뭐? 교수... 아니야... 분명...
투하 플랫폼을 빠져나온 반즈가 처음 본 것은 호송차에 갇혀있는 교수였다. 그리고 여러 정화 부대원들은 호송차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녹초가 된 교수가 창가 쪽에 앉아 있었는데, 반즈를 본 뒤 한 손을 내밀어 입가에 갖다 대며 입을 다물라는 손짓을 내보였다.
반즈는 말을 걸고 싶었지만, 주변의 정화 부대원들은 바로 반즈를 옆에 두고 부상 상태를 확인했다.
사람들 틈 사이로 반즈는 교수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호송차 안에서 자신을 향해 애써 웃음 짓는 것을 보았다.
이게 바로...
그동안 정화 부대원은 반즈의 몸 상태를 계속 물었지만, 반즈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주위의 모든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정화 부대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해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주변의 모습은 점점 어둠에 휩싸였다. 반즈는 어둠 속에 홀로 서서 중얼거렸다.
누군가의 포효나 발악으로 뭐가 바뀌진 않아.
이게... 거짓말 뒤의 현실...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