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언니...이것 좀 봐! 루나가 해냈어! 루나가 침식체들을 전부 쓰러트렸어!
그래. 아주 잘했어. 그런데 이제 네가 필요없어.
모든 침식체를 처치한 루나는 "언니"의 칭찬을 기대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를 맞이한 건 차가운 총알이었다.
총알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루나의 복부를 명중했다. 루나가 안고 있던 바보 개구리 인형도 관통되어 안에 들어있던 솜이 눈처럼 천천히 흩날리기 시작했다.
언...언니...?
루나는 복부의 상처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언니라고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난 너 같이 역겨운 괴물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괴물? 내가 괴물이라고? 난...
한때 사라졌던 잡음이 또다시 루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퍼니싱 농도가 다시 대폭 상승했고 루나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윽——윽——
루나는 호흡을 안정시키려 애쓰며 레이티를 향해 기어갔지만 그녀가 루나를 안아줄 리가 없었다.
아니야...언니...난...루나야. 난 괴물이 아니야...
쳇...저리가!
레이티는 루나를 차버리고 바닥에 떨어진 바보 개구리 인형을 발로 밟았다.
괴물은 그냥 얌전하게 죽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탕...탕...레이티는 또 총 두 발을 발사했고 루나는 완전히 침묵했다.
언...언니...
자신처럼 더러워진 인형을 보던 루나의 두 눈은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다.
언니라고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난 너 같이 역겨운 괴물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난 루나야...난, 난 괴물이 아니라고...
쳇...저리가!
언니...왜 그래...루나를 버리려는 거야?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생겨도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로...
괴물은 그냥 얌전하게 죽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언니...언니, 가지 마! 언니!!
인간의 비열함은 영혼에 새겨져 있지...누구든 배신할 수 있고,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는 게 인간이야.
정말 네 언니였다고 해도 널 버렸을 거야...약속도 결국 어겼을 거고. 그녀도 인간이기에 널 받아들일 수 없어.
왜냐하면 쟤는 인간이고...넌 괴물이니까.
레이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권총을 들더니 허공을 향해 또 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인간... 인간을... 인간을... 소멸...
하하하! 망할 놈의 아저씨, 봤어? 머리만 굴리면 나도 침식체를 죽일 수 있어!! 난 쓰레기가 아니라고!! 이봐!! 얼른 내보내 줘...
레이티가 공장의 문을 두드리며 외부의 주의를 끌려던 순간, 뒤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루나 주위의 공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야? 왜 아직도 안 죽은 거야? 정말 짜증나네.
하지만 레이티가 권총을 꺼내려던 순간, 루나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그녀 곁에 다가왔다.
뭐야?!!
레이티가 총을 들기도 전에 총을 들고 있던 팔 전체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루나는 그녀를 제압했다.
칼날로 변한 팔이 레이티의 경동맥을 조준했다. 주위를 맴돌지 않는 적색 빛은 이미 통제를 잃은 뒤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루나는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아직 침식되지 않은 오른손을 통제해 공격을 멈추었다.
언니...어서 도망쳐...
레이티는 루나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남은 손으로 허리춤의 비수를 꺼내 루나를 공격했다.
으아아아악! 죽어, 이 괴물!!
——안 돼!!
금속이 부딪히는 불꽃이 반짝이고, 공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루나의 가슴에 꽂힌 비수는 급소를 찌르지 못했지만 루나의 손은 레이티의 목을 관통했다.
윽...윽...!
레이티는 순환액을 쏟아내더니 두 눈은 곧 빛을 잃고 말았다.
내가...언니를 죽였어...
난 괴물이야...
고농도 퍼니싱이 주위에서 루나의 곁으로 모였고 눈부신 적색빛을 내뿜었다.
인간... 인간을... 인간을... 소멸...
괴물...괴물이 되는 거야...그래서 다시 태어나...
쿠로노 소속 부대 진영 밖, 격렬한 진동과 파동이 느껴지며 붉은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봐...이게 뭐지?
장관님...
헤론... 아직 살아있었나?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나?
쓰레기 처리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 속에서 침식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주위의 여과탑을 파괴했습니다.
저희도 그녀를 막으려고 했지만, 군 전체가 괴멸했고 대장도...
헤론, 내 말 듣고 일단 푹 쉬게나... 전자 대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니야? 침식체 따위가 어떻게...
그린스가 비웃으려던 순간, 하늘을 바라본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순백의 소녀가 공중에 떠 있었고 그녀의 아래에는 폐허와 잔해가 가득했다. 신성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괴이했다.
주위의 침식체들도 폭발의 충격에 인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침식체들은 소녀 또한 피해자가 될 거라 믿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벌레 같은 것들.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손을 들었다. 퍼니싱 이중합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가시가 모든 침식체들을 관통했다.
남은 침식체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소녀가 누구인지 말이다. 그들은 루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쟤입니다...저 침식체가 대장을...
침식체? 아니...천사...저 아이는 천사잖아!
그는 소녀의 이름을 진작 잊은 뒤였다. 아니,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린스가 봤던 "루나"라는 구조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봐! 나 여기 있어! 천사 아가씨!
그린스는 아이처럼 두 팔을 휘둘렀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우는 듯, 웃는 듯 기묘한 표정이었다.
……
루나는 그린스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관심 밖이라는 듯 천천히 멀리 날아갔다.
아아아아! 천사! 천사 아가씨!
그린스는 주위에 다른 부하들이 있음에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장관님, 남은 전투력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도망간 침식체를 추격할 예정입니다!
다시 해산시켜...아직도 모르겠어? 저 아이가 손만 들어도 우리 모두가 죽을 거야. 우리가 살아남은 건 우리한테 관심이 없어서라고.
멀어져 가는 루나를 바라보던 그린스의 눈물 맺힌 얼굴에 광기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퍼니싱을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은 침식체라...가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
저 아이는...인류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거야...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인간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빛이기도 하지.
그린스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치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이런 전개는 너무 심쿵이잖아. 이 자리에 리틀 닉이 없다니 정말 안타까운 걸.
백발의 침식체 소녀, 반드시 널 찾고 내 손에 넣을 거야...그리고...
이때 그린스의 미소가 굳어버렸다. 뭔가 짜증 나는 일이 생각난 듯 말이다.
젠장...
저건 더 이상 "침식체"가 아니야. 소녀에겐 새로운 호칭이 필요해...
뭐라고 하면 될까...젠장! 난 이름 짓는 건 잘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