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구룡 상회의 도시를 방황했고, 거대한 공허함이 맴돌았다. 주위의 모든 것들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마치 이 세상과 단절된 유령과도 같았다.
어느새 난 주거 구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구룡의 주인을 뽑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누구에게 투표할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저기,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비리야님이지 않을까? 최근 연설에서 얼마나 멋있었는데!
눈 마주쳤을 때 그 깔보는 시선! 아, 너무 좋아. 내가 꿈꾸던 주인이라고.
고고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영웅이라.
... 이게 장난이야? 우리의 리더를 뽑는 건데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어떡해.
신경 꺼! 그럼 넌 누굴 지지할 건데?
젊은 여자는 화난 표정으로 손을 허리춤에 얹으며 자신을 비난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윤 님이지, 리더는 그런 기백이 있어야 해. 몇 년 전, 구룡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윤이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덕에 해결할 수 있었어. 윤 같은 사람이야말로 정말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정말 그 이유뿐인가요? 비리야를 선택하지 않은 건 전에 구룡 무관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죠?
그 사실이 바로 증명이지. 아무 이유 없이 우리 아버지의 두 손을 부러트린 사람이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겠어?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 곡은 뭐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고!
도로에서 사람들이 의논하는 소리가 곡의 귀에 들려왔다. 이건 곡이 진작 예상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곡이 고개를 돌려던 순간, 맑은 여자 목소리가 세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아니야, 곡님이야말로 우리에게 더 좋은 삶을 가져다주실 거야!
그 말을 들은 곡은 잠시 멈칫했다. 멀리 서 있던 주민은 곡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예를 올렸다.
곡, 곡님께선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방금 전 모여 선거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네 사람은 주민의 말을 듣고 곡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급히 입을 다물고 곡에게 인사를 올렸다.
곡님, 언제 오신 건가요? 아까는 그저 저희 마음대로 떠든 것뿐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다.
곡은 자신이 왔음을 숨기지 않고 그녀를 변호했던 여자아이 앞으로 걸어갔다.
넌 왜 날 믿는 거지?
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곡님이 모두를 지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어, 아이가 멋대로 말한 겁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래.
곡이 말을 마치자 모여서 얘기를 나누던 주민들이 전부 흩어졌다.
주민들과 헤어진 뒤 곡은 길 옆 벤치에 앉았다. 벤치는 여전히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곡은 방금 전 이곳에 앉았던 인간의 느낌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인간은 왜 여기에 앉아서 쉬었을까?
곡이 상상력을 애써 발휘하던 그때, 비리야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정말 가엾네.
그 아이는 우리가 전부 가면을 쓴 채 다른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란 걸 모르나 봐.
응...
하지만 방금 전 여자아이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가슴 속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움직임이 느껴졌어.
응?
이 느낌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비리야가 뭐라고 하려던 순간 멀리서 가벼운 흥정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좀 보세요~ 여기 좀.
두 사람이 소리를 따라가보니 흰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뒤에는 요즘 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 수레가 있었다.
수레 위에는 "묵연 로봇 인형"이라고 붓으로 대충 적혀 있는 간판이 있었다.
여자는 곡을 발견하고 빠르게 수레를 밀어 곡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벤치 다른 한쪽에 앉았다.
후우... 힘들다,
저기 대신 물 한 잔만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 그래.
감사합니다~
묵연은 곡의 말을 듣고 신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곡은 근처의 상점으로 다가가 묵연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자.
감사합니다. 참 좋은 분이시네요.
다른 사람이 준 물건인데 의심도 하지 않는 거야?
아, 아니에요. 절 해칠 거란 느낌은 안 들어서요.
느낌이라...
네, 제 직감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오늘 왠지 꽤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보세요. 얼마 안 남았잖아요. 다른 지방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나서 한 번에 여러 개를 팔았다고요.
요즘 그런 여행객들을 워낙 보기가 드물어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어요. 구룡 상회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주더라고요.
저것들 다 네가 직접 만든 건가?
네, 가진 재주가 이것밖에 없어서요. 구룡 상회를 통틀어도 저처럼 로봇 인형을 만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을걸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솜씨거든요~
곡은 수레에서 인형 하나를 집었다. 정교한 공작새였다. 외관은 매끄럽게 정리되어 있었고 날개의 깃털 하나하나가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었다.
정교하긴 하네.
그렇죠? 어렸을 때부터 배웠어요.
어렸을 때부터?
네, 집안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별로 안 좋으셨어요. 제가 그나마 나은 편이라서요. 쿨럭... 쿨럭...
묵연은 말을 하다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고 있잖아. 염유를 불러주지.
괜찮아요. 별일 아닙니다.
묵연은 품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약을 입에 넣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스읍... 하아... 하아...
됐어요.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인형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실력이 별로라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다들 제가 불쌍해서 하나둘씩 사간 건 빼고요.
그래도 익숙해지면서 장사는 점점 더 잘 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제 인형을 구룡 밖의 지역에 팔 거예요. 직접 바깥의 세상을 볼 거라고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은 걸로 상상만 하는 거 말고요.
그렇구나.
네! 됐어요! 이만 그만 쉬고 일어나야겠어요. 동생들이 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잠깐만... 그 인형...
말을 마친 묵연이 일어서서 수레를 밀려고 하자 곡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선물이에요. 물을 사준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손에 든 인형을 잡고 곡은 번화한 도시를 바라봤다.
연기가 도시의 건물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공중의 환기장치를 거쳐 흩어졌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길가의 가로등이 하나 둘씩 불을 밝혔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진 못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감정이 나에게로 느껴진다.
이런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인간의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일은 나도 보장할 수 없어.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알겠어. 따뜻한 느낌이 주위에서 내 사지를 통해 오장육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이건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야.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아.
참 불행하네.
……
방금 전 증상대로라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곧 죽겠지.
하지만 저 여자는 의료 비용을 부담할 수 없겠지.
저 여자의 꿈은 언젠가 깨질 거야.
착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죄악이야.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
응? 행복?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행복이라는 게 존재하긴 해?
급박한 경보 소리가 비리야의 품속에서 울려 퍼졌다. 단말기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비리야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
이 비밀 메시지를 봐. 윤이 반란을 일으켰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