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윽...
퍼니싱의 침식 증상을 버티면서 푸브를 업은 채 발걸음을 옮기는 로제타는 결국 체력이 바닥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삐이——!
무리를 벗어난 생체공학 로봇 하나가 이 기회를 놓치 않고 로제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한 거대한 그림자가 숲에서 뛰어나와 로제타를 덮치려는 생체공학 로봇을 발로 밟았다.
괜찮나요?
숲을 지키는 자...
생체공학 로봇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창에 동력 연결 부위를 뚫려 순식간에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어? 당신들은... 일전에 그 늙은 사냥꾼과 그의 손녀?
다행이다! 할아버지를 항구까지 데려다 주세요!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해요...
로제타의 희망찬 시선에 테미아는 그녀를 돕고 싶었으나 결국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같은 숲을 지키는 자는 항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활동 범위는 여기까지 입니다.
과거의 악몽에 얽매인 건 푸브와 로제타뿐만이 아니었다. 숲을 지키는 자... 그리고 이 극지의 모든 사람이었다.
로제타는 낙담하며 테미아를 바라본 후 이를 악물고 푸브를 다시 업었다.
알겠어요...
소녀의 눈빛에 테미아는 큰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고 숲을 지키는 자가 된 그날보다도 슬펐다.
하지만 결국 로제타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숲을 지키는 자의 미래도 있었다.
로제타는 마침내 항구 도시로 돌아왔다. 항구 사람들은 온몸이 피와 상처로 뒤덮인 소녀를 두려워하며 바라봤다.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저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로제타...! 로제타지!?
리하! 빠, 빨리 병원이 있는 곳을 알려줘. 할아버지가... 아, 맞아. 혈청.. 혈청을 찾아야...
리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묵묵히 로제타를 껴안았다... 그리고 한참 후 입을 열었다.
로제타... 너희 할아버지는 이미...
로제타가 업고 있는 푸브는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로제타는 그를 꽉 안은 채 놓지 않았다. 놓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처럼...
그럴 리가 없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곰 같은 생체공학 로봇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그럴 리가...
로제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로제타! 돌아왔구나!
항구 관리인이 구경하러 모인 인파를 뚫고 로제타의 앞까지 이르렀다. 시선으로 리하를 물러나게 한 후 작은 소리로 로제타에게 질문했다.
외뿔고래는 어디 있지? 푸브가 약속한 그것은 어디 있어?
로제타는 고개를 저으며 푸브의 유해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눈물을 쏟으며 핏자국과 생체공학 로봇의 순화액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을 닦았다.
푸브는 죽었군... 뭐,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어.
"조수"를 영원히 멈추는 건 헛된 망상일 뿐이야...
바로 이때 누군가가 관리인에게 소식을 전했다.
관리인!
무슨 일이지...
그 외뿔고래를 찾았어. 눈으로 덮인 숲 쪽에서 떨어진 해변에 있어. 아무래도 망가진 것 같은데?
뭐라고! 푸브가 그 외뿔고래를 죽이지 못했다고!?
항구 관리인은 로제타를 노려보다가 곧바로 웃음을 지어냈다.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아. 그 외뿔고래를 해체할 수 있으니까... 푸브가 그래도 약속은 지켰군.
항구 관리인이 손짓하자 생체공학 로봇 해체를 전문적으로 하는 엔지니어 몇몇이 옆에서 걸어 나와 외뿔고래를 해체하려고 다가가고자 했다.
그래도 항로 연합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나도 그와의 약속을 지켜야겠지. 이제부터 넌 북극 항로 연합의 일원이다.
항구 관리인은 로제타의 어깨를 토닥였지만, 로제타는 그 손을 사납게 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로제타는 창을 들고 관리인과 그의 부하 앞으로 나아가 눈으로 덮인 숲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았다.
그 외뿔고래는... 드레이크는 우리의 수호신이자 우리의 친구예요. 해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외뿔고래? 수호신? 아직도 그런 미친 소리를 하는 건가...
항구 관리인뿐만 아니라 현장의 다른 항구 주민도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로제타의 창에 맞설 용기는 없었다.
항구를 파괴한 재앙을 수호신이라 부르다니. 그런 애를 우리 연합에 들일 수는 없어!
로제타는 항구 주민의 욕설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버텼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겁쟁이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드레이크, 그리고 숲을 지키는 자들... 지켜주고 싶어...
드레이크! 들리니?
로제타가 하늘을 향해 외뿔고래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어서 도망쳐! 어디로 도망치든 상관없으니 살아! 나와 할아버지를 위해서 도망쳐줘! 그리고 다시 선택해!
오해를 받으면서도 인간을 구하든! 너를 해치려는 인간들과 싸우든! 난 너의 선택을 존중할 거야!
저기 봐! 외뿔고래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으악!
망할! 어서 붙잡아!!
바다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어떡하면 좋지?
응. 그걸로 됐어. 드레이크...
로제타는 이미 만신창이었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죽여! 저 아이 때문에 외뿔고래가 도망쳐버린 거야...
이런 큰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사형뿐이에요!
아니... 더 좋은 생각이 있다... 구조체로 개조해 숲을 지키는 자로 만들어 우리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게 좋겠어. 안 그래?
그러면 안 돼요! 로제타는...
리하, 조용히 해!
최근에 숲을 지키는 자의 일손이 줄었다고 하니 이제 성능이 더 높은 기체를 투입할 때가 됐어. 그녀로 실험하면 되겠어.
안타깝지만 죄인에게 주어진 결말은 이것뿐이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천천히 속죄하도록... 숲을 지키는 자 로제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