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르만스크 항구와 떨어진 깊은 산속에서 한 노인이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다.
나무 조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소녀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갑자기 오랜만에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노인은 나무 조각을 급히 숨겼다.
누구냐...
푸브 대장... 저희입니다...
문밖에서 전해지는 소리를 들은 푸브는 경계하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흰 가운을 입은 남성과 여성 연구자가 서 있었다.
대장이라 부르지 말게나... 난 이미 오래전에 너희와 연을 끊었으니.
이미 푸브가 쌀쌀하게 대할 줄 알고 있었는지 두 사람은 화내지 않았을뿐더러 미소까지 지었다.
역시 변함없으시네요... 분명히 실험체가 제어가 되지 않았을때 우리를 구해주셨잖아요.
너희들은 그래도 아직 양심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 남기를 선택했지. 그 무시무시한 실험을 이어갔어!
말을 하던 푸브는 두 사람이 상처투성인 걸 알아차렸다. 총상까지 있는 듯 하였다.
왜 다친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니프헤임 연구소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하,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어째서...
엠베리아 프로젝트는 완전히 통제를 잃었어요... 북극 항로 연합의 사람이 실험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쫓고 있어요.
어리석었어요. 대장처럼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실험 프로젝트로부터 일찍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퍼니싱 발발 후, 이미 불안정한 항로 연합이었는데 기회를 틈 타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푸브는 당시 항로 연합에 속한 무장 작전팀의 대장으로 폭동을 진압하면서 난민을 구조하는 걸 맡았다.
그래도 너무 늦었어... 무고한 그들을 내가 직접 지옥으로 보낸 거다.
푸브는 금방 알아차렸다. 자신이 구한 난민은 곧바로 니프헤임으로 이송되어 휴머노이드 구조체 연구 재료로 전락했다는 것을...
그중 선량한 소녀... 엠베리아도 이에 포함됐었다.
대장...
다만 우리가 연구소를 떠나지 않은 건 연구를 위해서가 아닌 "이 아이"를 위해서였어요...
푸브는 경악했다. 그녀는 품속에 잠이 든 아기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이 아이는... 너희의 아이들인가?
두 사람은 의아해하면서 서로를 바라본 후 잠깐 망설였지만 둘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의 딸이에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푸브의 품속으로 안겨줬다.
대장님께서 이 아이를 우리 대신 키워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이 아이가 저희들처럼 큰 죄를 저지르지 않는 어른이 되도록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푸브는 무언가 묻고 싶었지만, 품속의 아기가 움직이면서 깨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이때 멀리서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희는 떠나야 할 것 같네요. 푸브 대장님. 마지막으로 뵙게 되어 기쁩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지... 이 아이의 이름은 뭐지?
로제타... 이 아이의 이름은 로제타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정한 "이 아이"의 이름이에요.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푸브 품속의 귀여운 아기를 사랑스럽게 바라본 후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눈으로 덮인 숲을 향해 달려 나갔다.
푸브는 품속의 여자아이를 꽉 껴안은 채 황급히 떠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이게 바로 너희들의 속죄인가...
푸브는 품속의 여자아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눈을 뜨면서 신기한 듯 푸브의 두꺼운 손가락을 꽉 잡았다.
어쩌면... 이게 나의 속죄일지도 모르겠군.
가능하다면 내 생이 끝날 때까지 자네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