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고래의 위에서 뛰어내린 로제타는 푸브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 배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의 몸 일부가 문드러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게 뭐예요! 할아버지는 다치지 않았잖아요...
퍼니싱... 망할... 하필이면 이럴 때에...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제타는 푸브에게서 퍼니싱에 대해 들었다. 황금시대의 세계를 무너뜨린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대해서...
농도가 아주 낮은 고위도의 극지 외에는 곳곳이 퍼니싱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그리고 특제 혈청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매일 제게 놓았던 그게... 혈청이었어요?
로제타는 황급히 푸브의 옷을 뒤지며 혈청을 찾았지만, 푸브는 로제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찾을 필요 없다. 내 혈청은 진작에 떨어졌어...
로제타는 급히 확인해봤지만, 혈청은 혼자 돌아갈 분량만 남은 상태였다.
어째서... 왜 혈청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가지 않은 거예요!
반드시 이 외뿔고래를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내 목숨을 거는 한이 있어도.
도대체 이유가 뭐예요! 왜...
이 할아버지는 죄인이다. 숲을 지키는 자보다도 훨씬 더 죄가 깊지...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죄인이라니요? 그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해요!
로제타. 잘 들어라. 외뿔고래를 죽여야만 우리가 항구의 주민으로 인정받고 항로 연합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럼 항로 연합 같은 거에 가입하지 않고 그 눈으로 덮인 숲에서 계속 살면 안 돼요?
나는 상관없지만, 넌 안 된다. 평생 그곳에 갇혀 지낼 수는 없어. 너도 친구를 사귀고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해.
로제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항구에는 자신의 중요한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소녀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푸브는 전압 작살을 로제타의 손에 쥐여주면서 외뿔고래의 눈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틈에 기계 외뿔고래를 죽여야 한다. 이것의 전자뇌 코어를 관리인에게 가져다주면 그 가치를 알 거다.
로제타는 작살을 들고 멍하니 외뿔고래의 머리까지 걸어가 외뿔고래의 눈을 주시했다.
외뿔고래는 마치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사람과 고래가 서로 묵묵히 상대를 바라봤다.
(그래. 그것만 죽이면 넌 이제 자유다. 로제타...)
(넌 더 이상 네 죄가 아닌 것들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평범한 소녀로서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로제타는 고개를 저으며 작살을 바다로 던진 후 외뿔고래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수호신이라면 부디 내 기도를 들어줘...
소녀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두 사람이 남은 혈청으로 신무르만스크 항구까지 돌아가려면 외뿔고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로제타. 포기하거라... 그것은 수호신이 아니다. 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그것은 우리가 만든... 차가운 병기다. 어리석은 시대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죄의 증거일 뿐이다.
하지만 참전이 아닌 인간을 지키는 걸 선택했어요. 그러니 차가운 병기 따위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예요.
기계 외뿔고래의 눈이 빛나면서 기나긴 울음소리를 냈다. 힘겹게 몸을 돌린 후 두 사람의 배가 있는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이럴 수가... 설마 외뿔고래의 의식의 바다 모델이 로제타로 인해 깨어난 건가...
앞으로는 "수호신"이나 "외뿔고래"라고 부르면 안 되겠어요. 이름을 지어줘야죠.
서로 이름을 알아야 "친구"가 될 수 있어 그렇지? --드레이크
외뿔고래는 대충 지은 이름에 불만스러운 듯 연달아 울었다.
할아버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살아서 돌아가야 해요. 이곳에서 끝낼 수는 없어요!
(로제타 이미 다 컸구나...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나 뿐이었구나.)
그렇게 두 사람과 외뿔고래 드레이크의 여정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육이 아닌 마지막 희망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