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는 낮에 여간해서는 은신처에서 나오지 않는다.
외부의 움직임이 너무 심상치 않아서, 그녀도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정비 부대가 출동할 때도 북에 깃발에 소란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봐야겠어)
평소에는 붐비지 않는 앞 칸이 지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다들 노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주위에 모여 있었다.
앞으로 밀지 마! 어차피 심사가 있으니 앞으로 밀어도 소용없어!
맞아! 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아랑곳 하지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필사적이었다. 진정되지 않는 상황을 보고 귀족 호위병의 손이 총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또 다른 작업복 차림의 키 큰 남자가 귀족의 호위병을 밀어젖히고 앞으로 나섰다.
뭐 이리 시끄러워? 겨우 신입 모집하는데 이게 무슨 소란이냐?
대장...!
이 녀석들 아무 생각이 없어요. 먹을 것만 주면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느니...
다들 조용!
뭐 하자는 거야? 내일 죽어도 상관없어? 네놈들의 목숨은 그 정도로 싸구려냐?!
남자의 힘 있는 목소리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밥 먹고 싶고, 배급도 매일 배불리 받고 싶어? 좋아!
내가 내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지!
정비 부대 대장인 이 안드레 스미르노프가 약속하지!
사람들은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으나 10분 정도 지나 조용해졌다.
좋아. 아직까지는 말이 통하는 모양이군.
자, 맞춰봐라.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이름이 뭐지?
안드레는 렌치 모양의 물건을 손에 들고 있지만 일반적인 렌치와는 모양이 달랐다.
사람들은 제각기 외친다. ‘렌치’, ‘드라이버’, ‘철봉’...
렌치 또는 라쳇 렌치라고 대답한 놈은 남고 그 이외는 다 돌아가라. 대충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난 귀가 아주 좋거든.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안드레의 말을 믿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귀족 호위병의 손에 있는 기관단총을 두려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3분의 2 정도가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문제다. 평민칸 하나에 몇 개의 에어컨 시스템이 있지? 환풍구는?
주위가 조용해졌다. 어쩌다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아무 숫자나 내뱉었다.
...대충 내뱉지 마라.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안타깝지만 너희들에게 배급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이면...오늘 신입을 찾기는 글렀군. 해산이다.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흩어졌다.
대장, 인력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곤란해요...
그렇다고 기본 지식도 없는 녀석들에게 일을 시킬 수는 없잖냐. 간단한 일이라도 언제나 위험은 존재해.
하지만 귀족들이 장비를 보충해주지도 않는 상황에 없는 인원으로 죽어라 열심히 일 해봤자 저 탐욕스러운 놈들은 고마운 줄 모를 겁니다...
아직 다른 칸이 남았으니 거기에 인재가 있기를 바래야지.
그 때, 안드레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작은 소녀가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지? 정비 부대의 일은 애들한테는 맡길 수 없다.
평민 칸 1칸당 에어컨 시스템이 4개 있고 에어컨 시스템마다 환풍구가 16개 있으니 총 64개.
당신의 손에 있던 건 세계 중공에서 생산한 NT64 라쳇 렌치. 톱니는 32개.
소녀의 대답을 들은 안드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 알고 있지만 꼬마가 하는 말이어서야....
어디서 배웠지?
난 64개의 환풍구에 전부 들어가 본 적이 있어.
농담하지 마. 나조차 모든 환풍구를 다녀본 적이 없는데.
...내 말을 안 믿네.
허튼 소리야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널 믿어야 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네가 꼬맹이라도 밥을 먹이는 데에 문제는 없겠어.
……
...사람들 보내서 4호 에어컨 시스템을 점검해봐.
어째서?
당신들 요즘 가스 역류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거 같은데, 거기 에어 덕트가 고장났어.
농담하지 마. 4호 에어 덕트는 얼마 전에 교체했어.
확실히 덕트는 새 거고, 문제도 일시적으로 개선되었지.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필터에 있는 쥐를 내쫓지 않으면 쥐의 배설물 때문에 가스는 다시 역류할 거야.
...칼리아, 가서 보고 와라.
네.
……
[삐——] 진짜, 더럽네...
어때?
저 꼬마가 말한 대로였습니다. 커버를 전부 벗겨내고 쥐 떼를 몰아냈습니다.
쥐를 찾아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텐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안드레는 '하이에나'의 허름한 옷을 보았다. 어깨와 등에 대량의 먼지와 쓸린 자국이 보였다.
너 정말로 환풍구 안에 들어갔구나? 왜지?
음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익숙한 일이야.
...넌 나와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