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는 빠르게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통과했다. 예정된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 거리에서 행군하는 인간 부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향을 확인한 뒤 루시아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침식체의 미행이 없다는 걸 발견한 뒤에야 그녀는 안심했는지 이동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아직 따라붙지 않았어. 팀에만 복귀하면...
윽!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루시아의 의식 속에 흘러 들기 시작했다...
인간...
안 돼. 가면 안 돼.
하지만 루시아의 두 다리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심한 두통을 참으며 방향을 바꾸어 인류의 거점을 향해 계속 전진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참 끈질기네...
이렇게 노는 것도 이제 질렸어...
루시아는 검을 들고 비틀거리며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장기간의 고강도 작전을 거친 데다 마인드 표식이 없는 탓에 의식의 바다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루시아의 기체는 이미 경보 상태에 접어든 뒤였다.
윽...
기체에서 송출한 기능 정지 경고와 함께 루시아는 땅 위로 쓰러졌고, 그녀의 무기도 먼 곳까지 튕겨 나갔다.
루시아는 무기가 떨어진 곳으로 천천히 기어가 오른손으로 무기를 잡고 무기의 의지하여 일어나려 애썼다.
아직 멈출 수 없어. 얼른 일어나라고...
루시아는 겨우 몸을 일으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때 그녀는 완전히 힘을 잃고 다시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루시아는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진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 눈을 천천히 뜬 루시아는 주위의 풍경이 049 도시의 폐허가 아닌 기억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그 익숙한 성당임을 발견했다.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루시아는 그녀의 손이 차가운 로봇 구조와 생체공학 피부가 아닌 따뜻한 온도의 살아있는 육체의 상태임을 발견한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때 루시아는 뭔가를 느끼고 뒤를 바라보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못생긴 개구리 인형을 들고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도 자동적으로 소녀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언니——
내가 널 지켜줄게——
——
소녀 루시아는 점점 멀어져 갔다. 루시아는 크게 소리쳐 소녀에게 뭔가 묻고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성당이 사라지고 루시아는 또다시 무한한 어둠 속에 빠져버렸다.
어둠 속에는 고독함과 공허함 뿐이었다. 이때 사방에서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더니 어둠이 점점 사라지고 루시아는 다시 두 눈을 떴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했는지 루시아는 드디어 무기를 다시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