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그녀는 돌연변이일 뿐이라는 걸 라미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 아픔, 배고픔을 비롯한 모든 게 무서웠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흔들리는 그녀는 이곳에서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인간들이 다 저들처럼 냉혹하고 무정한 걸까? 아니면 그녀가 너무 연약한 걸까?
그런 생각은 항상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에게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는 건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의료 부장은 최근 무언가를 작성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참고자료와 노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는 라미아에게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라미아를 아주 오랫동안 돌봐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사육"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그에게 라미아는 그저 파라미터 집합체일 뿐이었다.
키, 체중, 혈압, 심장 박동, 폐활량, 기초대사 등 수치가 정상일 경우 그는 라미아에게 그 어떤 관심도 더 주지 않았다.
라미아도 그의 앞에서 울고 불고 떼를 써봤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라미아에게 심리질환이 있는 건 아닌지 진찰한 뒤 그저 떼를 쓰는 것임을 확인하곤 다시 차갑게 돌아가곤 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라미아가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을 쉼없이 써내려가고 있었다.
아저씨, 뭐 하고 계세요?
일하는 중이야.
하지만…… 아저씨 일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아니었나요?
그건 예전이고 지금은 임무가 바뀌었어.
임무가 바뀌었다는 게 무슨 말이죠?
의료 부장은 곧 사라질 거야. 그전에 동료들을 위해 의료 가이드를 작성해야 해.
잘……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의료 부장은 라미아의 무지에 대해 짜증을 내지 않았다.
기지가 배급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알아요.
음식이 곧 떨어질 거야.
그럼 어떡해요?
간단해. 소모를 줄여야지.
어, 어떻게 줄이는데요?
필요 없는 사람들은 굶어죽게 하는 거지.
라미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 하지만! 누가 굶어 죽는 걸 원하겠어요?
프로젝트 연구에 필요한 우선순위를 매기는 거야.
우선 행정부, 그리고 후방 지원부 그 다음이 의료부겠지.
아…… 아저씨도 굶어죽고 싶은 건가요?
의료 부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
물론이지. 의료부 일원으로서 예외는 없어.
……
의료 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라미아의 눈에 보이는 건 다가갈 수 없을 거 같은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는 업무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라미아는 이 모든 게 너무 무서웠다.
라미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저는요?
뭐?
저…… 저도 굶어죽는 건가요?
아, 넌 좀 특별한 존재야. 넌 그 어떤 부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 팀장님께서 결정하시겠지만 별다른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시면 결국 끝까지 못 남기겠지.
궁금하다면 너를 어느 단계에 배치했는지 대신 행정부에 물어봐줄까?
전, 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훌쩍이는 소리에 의료 부장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우는 거니?
북받치는 감정에 성대가 라미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더 세게 훌쩍이는 것뿐이었다.
전……
전 싫어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말이 안 통하는군.
최대한 빨리 감정부터 추스려. 그리고 다시 얘기하자.
그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랫동안 흘러 통제를 잃은 감정이 가라앉자 그녀는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라미아의 목소리는 쉬어버렸고 눈도 살짝 부어올랐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에 소매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울음 소리가 멈춘 뒤에야 의료 부장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말할 수 있겠어? 예, 아니오로 대답해.
예……
넌 왜 살고 싶은 거지?
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다들 미치기라도 한 거예요?!
감정을 드러내 봤자 아무 의미도 없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니 질문을 바꾸지.
하고 싶었던 일이 있는 거야?
……없어요.
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지?
없어요……
그렇다면 네가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없어.
필요성이요? 전 그저 죽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감정을 통제해.
제가 무조건 해내야 할 일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해보지 못한 일은 많고도 많죠!
전 육지로 가고 싶어요.
그다음엔? 그 뒤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육지로 가고 싶다고?
하지만 전 육지의 실제 모습이 제가 책에서 봤던 것처럼 멋진 곳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요.
전 직접 산과 숲을 보고 싶고 모래와 흙을 밟아보고 싶어요. 비가 그친 뒤 풀내음을 맡아보고 싶고 육지의 바람은 해풍과 뭐가 다른지 직접 들어보고 싶어요.
샘플실에도 바위 샘플과 흙 샘플은 있어. 육지는 그런 모습이야.
그, 그런 거랑은 달라요.
이유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르다는 건 알아요.
의료 부장은 차가운 빛을 반사하는 안경 속에서 그녀를 응시했다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왠지 그 빛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겠다. 그건 "호기심"이라는 거야.
아틀란티스에 가입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기서 일하기 위해 난 많은 걸 포기했어.
넌…… 참 신기한 존재야. 널 보면 그런 것들이 생각나.
네……?
넌 살고 싶어, 그렇지?
라미아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유용"해져야해. 이게 바로 아틀란티스의 규칙이야. 이곳에서 쓸모없는 사람은 필요 없으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제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거죠?
진정해. 네가 쓰일 수 있는 곳을 고민해 볼 테니까.
……참,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리스크가 너무 커.
할게요.
일단 내 말 끝까지 들어.
퍼니싱이 폭발하기 전 과학 이사회는 인간을 로봇으로 개조하는 기술을 연구했었어.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 기술을 기반으로 널 개조해 줄 수 있어…… 어디 보자. 넌 태어날 때부터 하체가 없었으니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움직이려면 바다에 적응할 수 있는 생체공학 기술을 추가해야겠어. 개조에 성공하면 우리 대신 바깥 세상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거야.
정보원으로서 넌 살아갈 가치를 가지게 되는 거야.
하지만 미리 경고할게. 이론적으론 탄탈-193 공중합체와 상성이 좋은 인간만이 개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건 초기 기술뿐이야. 그 뒤로 이 기술이 어느 정도로 진화했는지는 알 수 없어. 인간 개조는 우리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바깥 세상의 문명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개조된 인간들이 퍼니싱 침식을 막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나가고 싶어?
할게요.
의료 부장이 설명을 이어가기 전에 라미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