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업무를 끝내면 라스트리스는 항상 제시간에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기지의 방 배치는 마치 벌집과도 같았다.
기지 깊은 곳에 위치한 복도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라스트리스의 눈에 들어온 건 두 "절벽"이었다. 절벽 위에는 반짝이는 네모 격자가 가득했는데 마치 거대한 유리에 맺힌 서리처럼 보였다.
사실 각 모든 네모 격자들은 실험실이나 연구실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채 복도를 거니는 사람들은 마치 날개 없는 일벌들 같았다.
그들 사이로 드론이 웅웅대며 날아다니곤 했는데 후방 지원 부서의 배치에 따라 다양한 사이즈를 가진 수십만 대의 드론들이 기지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구원들이 모든 집중력을 영점 원자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마치 혈관속을 이동하는 세포처럼 분주하게 복도, 통풍로와 케이블 선로를 이동하며 이물질을 제거하고 고장난 부분을 보수하고 있었다.
광할한 기계실에 반짝이는 서버의 신호등이 찬란한 바다를 이루었고 거대한 기계들은 마치 비석처럼 웅장했다. 그에 비하면 그 사이에서 일하는 데이터 인원들은 마치 먼지처럼 하찮게 느껴졌다.
학술은 연구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존재였다.
기지의 어디를 가도 라스트리스의 귀에 들리는 건 물리, 수학에 대한 토론뿐이었다. 파라미터, 변수와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언어가 기지 전체를 잠식했다.
그런데 요즘 기지에 작은 변수가 하나 생겼다.
그래. 그 멍청한 인간 아이 말이야.
방 문 앞에서 배회하는 여자아이를 발견한 라스트리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어—— 아! 팀장님!
왜 여기로 온 거야? 누가 허락한 거지?
아……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저 때문에 화가 나신 건가요?
아직이야. 무슨 일로 온 거지?
네, 네……
1분 줄 테니 말해.
어, 네? 무엇을 말하나요?
네가 날 만나러 온 이유 말이야. 50초 남았어.
의료부 아저씨들이 말했어요. 팀장님이 기지에서 지위가 가장 높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요——
지위가 가장 높은 것도 가장 똑똑한 것도 사실이야. 40초 남았어.
묻, 묻고 싶은게 있어요. 그런데 의료부 아저씨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아서——
질문해. 35초 남았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이 질문이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걸까요? 그래서 다들 입 밖에 내지 않는 걸까요?
질문을 받은 사람의 반응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28초.
……
20초.
"엄마"가 뭐죠?
……
팀장님?
저 때문에 화 나신 건가요?
아니, 난 의료부 사람들한테 화가 난 거야.
왜요?! 의료부 아저씨들은 다들 착한 분들이에요. 혼내지 마세요.
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그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일을 너에게 숨겼고 내가 직접 해명해야 하는 이 상황 때문에 화 난 거니까.
들어와.
여긴 책이 참 많네요. 제가 전에 봤던 곳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런 건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이리 와.
라스트리스는 컴퓨터를 켜고 라비아의 파일을 확인했다.
이게 바로 네 엄마, 널 낳은 사람이다.
"낳았다"가 뭐죠?
인간들에게 번식이란 정자와 난자가 여성의 자궁에서 결합해 태아로 발육한 뒤 여성의 분만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가리키지.
잘…… 잘 모르겠어요. 팀장님.
쉽게 말해서 널 만든 사람이라는 말이야.
기계부 아저씨들이 기계를 만드는 것처럼요?
비슷해.
여기, 보여? 현재 상태: 사망. 죽었다고.
……
엄마는 언제 돌아가신 거죠?
네가 태어나는 그날.
그, 그래서 엄마가 죽은 건가요?
아니. 라비아는 자신의 멍청함 때문에 죽은 거야.
…… 제 엄마는 멍청한 사람이었나요?
대부분 상황에서는 아니었지. 하지만 아틀란티스에서 멍청한 실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너무 슬퍼요……
라스트리스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런 거라면 난 널 도울 수 없어.
저…… 저 너무 아파요…… 의료부로 돌아가야겠어요. 아저씨들이 저한테 약을 줄 거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널 도와줄 수 있는 약 같은 건 없어.
그럼…… 엄마는 지금 어디 계시죠?
네 엄마의 시신을 말하는 거라면 바다에 묻었다.
이 파일 위에 있는 게 바로…… 엄마의 사진인가요? 한 장만 프린트 하면 안 될까요?
안 돼.
왜?
이건 기밀사항이야.
제발요, 팀장님. 하나도 안 될까요?
안 돼.
……
왜 그렇게 원수 보 듯 날 보는 거야?
난 일반적으로 부탁을 단번에 거절해. 하지만 오늘 특별히 두 번이나 널 거절했으니 고맙게 생각하렴.
라스트리스! 미워요!
작은 그림자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미끄러운 바닥에 의족이 미끄러져 라미아는 우당탕탕 넘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빠르게 일어서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긴 복도 끝에서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라스트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라비아의 파일을 끈 뒤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