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붓을 들어 시선 속 소녀와 일직선으로 맞추었다.
아이라는 초보자가 아니었기에 비율 같은 것들은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을 것이었다.
혹시, 얼마나 더 걸릴까요?
금방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돼.
백발 소녀의 질문에, 아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더 빠르게 움직여, 붓이 종이 위에서 춤추게 했다.
이 기회를 틈타, 한 번 더 그 소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아이라가 또 쉽게 승리를 따냈고, 지휘관은 난장판 속에 서 있는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지켜봤는지 모르지만, 직감에 따라 그녀와 접촉해 보기로 했다.
전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전 예술에 관한 일은 잘 몰라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지휘관은 자신도 모르게 개인 단말기를 꺼내, 컨스텔레이션에 주둔한 인원의 정보를 다시 살펴봤다.
이 아이는 로봇이야.
아이라는 승리와 함께 그림 도구를 안은 채 돌아왔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음. 세르반테스 씨와는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닮은 곳이 있긴 있어.
……
아...
소녀의 시선을 느낀 아이라는 미안해하는 표정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계속 쳐다봐서 미안해.
괜찮아요.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과 담담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음… 그러면 그림 한 장 그려줄까? 그냥 사과의 의미로 말이야.
이로써 지금 이 상황에 이르게 됐다.
완성~!
아이라는 도화지를 떼어내, 뒤집어서 소녀에게 보여줬다.
저게 바로 인간의 예술인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응, 맞아.
그 말과 달리, 아이라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 당치 않긴 하지만. 헤헤헤.
……
그런 일은 시각 센서의 기록을 캡처하면 되는데 왜...
잠깐, 멈추세요.
마크가 급하게 소녀의 말을 끊었지만, 그녀는 그저 대답을 알고 싶은 듯 의혹을 품은 채 쳐다봤다.
뒤를 슬쩍 본 마크는 아이라가 불만이 있다는 안색을 보이지 않음에 놀랐다.
오히려 그 반대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될 것만 같았다.
재미없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이라는 그 그림을 옆에 걸어 놓았고, 다시 도화지를 깔고 붓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라가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그 그림엔 발끝을 세운 소녀가 풍차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뒤엔 각종의 열기구, 비행체 그리고 소형 부유 로봇 등으로 가득한 컨스텔레이션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뭐죠?
상상력을 발휘해 봤는데, 마음에 들어?
……
잘 모르겠어요. 이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네요.
그래서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거야.
상상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릴 수 없다는 규칙은 없잖아?
……
소녀는 아이라의 말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게 예술이라는 건가요? 이건 센서의 기록에 존재하지 않아요.
또 한 번 아이라에게 곤란한 말을 했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은 채 소녀에게 그림을 건네줬다.
아주 그렇다고 할 순 없지. 이건 그림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니까.
아이라의 미소 공세에 소녀는 다시 그 말을 반복했다.
전 예술에 관한 일은 잘 몰라요.
……
소녀가 이쪽을 돌아보는 동안, 아이라가 소리 없이 지휘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좋아요.
그래! 잘 부탁해!
아이라는 소녀의 대답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덮쳐"왔다.
내 이름은 아이라. 그리고 이분은 우리 지휘관이고, 이분은 위대한 마크야.
마크, 마크입니다. 전혀 위대하지 않은 마크입니다.
마크가 아이라의 말을 정정하며, 이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거뒀다.
참, 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
둘시... 둘시네아예요.
이 이름은 그분이 본 기체에 지어 주신 이름이에요.
둘시네아? 그럼 그림의 이름을 <둘시네아>로 정하면 되겠네.
그런데 둘시네아는 좀 길어서 부르기 힘든데, 둘시라고 불러도 될까?
좋아요.
그럼 잘 부탁해. 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