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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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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는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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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a.m.

붕괴하면서 발생한 먼지가 가라앉고, 갇혀 있던 시신들이 해방되면서 겨울날 하늘 아래로 흩어졌다.

겹겹이 쌓인 잔해 속에서 허약하고 늙은 그림자가 기어 나왔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몸 위에 쌓인 시신들을 밀어내며, 매장된 상태에서 반쯤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베테

나까지 데려가려고! 쳇.

베테는 앞의 평평한 길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한참 기다리고 있던 검이었다.

노안

그 사람은 어디 있지?

그를 짓밟은 청년이 냉담하게 정보를 캐물었다.

베테

뭐. 뭘 말하는...

모른다고 말하기 전에 베테는 왼쪽 어깨에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베테

아아아악!!

노안

다른 정보는 묻지 않을게. 이 상황에서 네가 진실을 말해주진 않을 거고, 나도 널 천천히 괴롭힐 인내심이 없으니까.

지휘관이 어딨는지 말해.

베테

이 자식아. 아아... 노인을 이렇게 대하다니!

노안

그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문할 때 이렇게 될 거로 생각해 본 적 없어?

베테

아이들? 하하...

내 막내딸의 복수를 위해 여기까지 온 거야?

노안

벨라에게는 정말 고마웠고, 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어. 하지만 그녀가 너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 나도 알 권리가 없는 일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네가 데려갈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서야.

그 외의 이유는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어.

노안은 다리를 들어 오른쪽의 빗장뼈도 밟았다.

베테

아악! 그만! 그만!!

노안

어디 있는지 물었어.

베테

꿈 깨! 말한다고 네가 날 살려주겠어? 넌 혹사가 보낸 복제체보다도 못한 짐승이야... 적어도 그는...

노안

그건 너희들이 "그 노안"에게 수송 부대 혁명 실패 이후의 일을 잊게 했기 때문이야.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 결정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이 방법뿐이니까.

노안은 손목을 돌려 베테의 몸통 쪽으로 꿈틀거리는 손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런 뒤, 그 칼로 손바닥을 반으로 갈랐다.

응답 없는 비명이 다시 한번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노안

시간 끌고 있는 거야? "그 노안"이 구하러 올 거라고 믿는 건가?

베테

내가 미친개의 시간을 끌어준다고?

노안

처음부터 좀 더 "협상적인" 방식을 사용했다면, 나도 이런 식으로 널 만나진 않았을 거야.

노안은 다시 한번 다리를 들어 베테의 오른쪽 가슴을 밟았다.

노안이 힘을 주기도 전에 아이들을 고문하는 걸 좋아하던 이 노인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낙엽처럼 몸을 떨었다.

베테

넌 배신자야. 레이첼도 사람을 잘못 봤어. 수송 부대의 혁명이 실패한 것은 네 마지막 선택 때문이었어!

그런데도 넌 여전히 그들의 은인을 해치고 있어! 내가 수송 부대에 무기를 주지 않았다면, 넌 이 검을 손에 넣지도 못했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노안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노안

그들에게 제공한 무기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그중에서 상위 귀족들이 도태시킨 게 얼마나 될까?

레이첼 대장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녀 몰래 오슬란에게 군용 구형 로봇을 판매했잖아. 아니야?

베테

그걸 네가 어떻게?!

노안

공중 정원에는 지상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남아 있어. 소유자를 조사하고 추론하면 그중의 연관성을 알 수 있지.

베테

공중 정원? 하하...

공중 정원에게 있어 넌 그저 쓸모 있는 병사일 뿐이야. 물건이나 도구 같은 존재일 뿐이지.

넌 네가 영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영리해도 개 중에서도 목양견일 뿐이야. 언제든지 복제되고, 양산되고, 다시 아무렇게나 버려질 수 있는 그런 존재일 뿐이야!

노안은 그가 진술한 사실에 조소했다.

노안

그런 말은 얼마든지 해. 난 내가 신경 쓰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신경 쓸 테니까.

그보다는...

날 목양견 취급하면서도 내 곁의 양을 데려가려 했어?

베테

너...!

베테는 심한 통증 때문에 숨을 헐떡거렸다.

노안

네가 말했잖아. "수송 부대의 미친개들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적을 물어뜯는다"고.

베테

하하... 수송 부대... 레이첼은 예전에...

네가 온화하고 착한 아이라고 했었지. 이제 보니, 레이첼은 널 몰라도 한참 몰랐어. 그러니까 배신이나 당했지.

노안

레이첼 대장은 내가 9살 때 비슷한 일을 하는 걸 봤어. 단지 너에게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야.

몇 년 동안 얌전히 있었다고 해서 너 같은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 정도로 물러터지지 않았어.

베테

…………

노안

시간은 충분히 끌었지? "그 노안"이 정말로 이곳에 오기는 하는 거야?

베테

어떻게 변해도 넌 배신자야!

노안

마지막으로 묻지. 지휘관은 어디에 있어?

베테

**, 넌 레이첼이나 수송 부대의 수천 마리 짐승들과 함께 눈밭에서 죽었어야 했어!

노안

…………

노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복부 근처 갈비뼈에서 연달아 들려오는 뼈 부서지는 소리는 베테의 비명 속에 묻혔다.

잠시 멈춰 베테에게 숨을 고르고 말할 시간을 주며, 노안은 상대방의 목숨을 바로 빼앗지 않기 위해 자신의 힘을 조절했다.

수많은 죽은 자들의 잔해가 지켜보고 있었으며, 정의 따윈 중요치 않은 "심판"이었다.

형집행자는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것에 대해 가학적인 만족감을 보이지도 않았고, 어떠한 연민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에너지 방출 검만이 주인의 손을 따라 가볍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한겨울의 밤처럼 차분한 표정 아래에는 분노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억누르려 애쓰는 노안의 영혼이 있었다.

갈비뼈에서 작은 다리뼈, 무릎 관절까지...

모든 탈출의 희망이 늙은 육체에서 박탈당하자, 베테는 처절한 비명 속에서 마침내 타협하기 시작했다.

베테

위치... 아악... 말할게...

노안

…………

베테는 떨리는 목소리로 77킬로미터 떨어진 좌표를 내뱉었다.

노안

"그 노안"이 널 구해주길 바랐으면서, 그와 함께 있는 지휘관은 그렇게 먼 곳에 있다?

베테

진짜야. 믿지 못하겠으면 날 데리고 가든가.

오랫동안 잠잠했던 암호화 채널에서 익숙하고도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관! 지금 어디 있어?

그 장소는 여기서 가까워... 바닷가의 등대인가?

뭐...

인간의 목소리가 잡음에 묻혔다가, 이내 완전히 끊어졌다.

베테

아니. 난 널 속이지 않았어. 난 그렇게...

에너지 방출 검의 우르릉거리는 엔진 소리가 모든 걸 끝냈다.

여기까지만 말해.

청년은 인간의 단말기를 보며 파괴하려 했다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단말기를 꺼버린 뒤, 반딧불이와 함께 지휘관에게 던졌다.

또 다른 내가 기억이 있다면, 곧 이곳으로 찾아올 거야.

……

통신 속 베테와 노안의 대화를 들은 청년의 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공중 정원이든 승격자든 어느 쪽에서 거짓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아.

혹사는 종종 정교한 상황극을 연출해. 베테가 "또 다른 나"와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하지만...

청년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혹사가 "다른 나"를 데려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건 맞아. 내가 그를 죽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거든.

오랜 시간의 실랑이 끝에 나는 베테가 독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길 수 있는 기회를 찾았어.

그의 말대로 "다른 내"가 본체이고, 원래의 의식만 복제될 수 있다면...

혹사가 날 막은 이유도 이해가 가.

기억 속 이질감도 아마 그 때문이었겠지.

아. 안 돼.

난 아직 너희들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이 목소리들이 연기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

진실을 알게 됐음에도, 너무 많은 거짓말을 감내한 이는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청년은 갈팡질팡했다.

언젠가... 내가 찾은 기억이 너나 "다른 내"가 말한 것과 똑같다면...

벽에 기댄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과...

아니. 사과로는 아무것도 만회할 수 없어. 무언가를 해야 해.

그 낯설고 어두웠던 두 눈은 이 순간 노안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 일들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너희와 혹사의 말을 모두 거짓말로 생각하고 경계할 거야.

그는 다시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벽돌"이야. 사람을 때리거나 벽을 쌓는 용도로 쓰는 "벽돌".

그는 표정 없이 자신을 가리켰다.

혹사는 내 앞에서 두 번이나 죽었어. 그리고 각각의 혹사는 다 조금씩 달랐어.

지금 그는 그저 지루함을 달래고 손에 잘 맞는 도구가 필요한 것뿐이야.

돕다니? 그럴 리가.

혹사는 내게 퍼니싱과 적조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과 승격자 계획에 접근할 기회를 줬을 뿐이야.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이용하는 사이일 뿐이지.

다른 나보다는 낫지. 감시당하면서 어디에도 갈 수 없고, 뭘 해도 제한이 많잖아.

이 일을 언급하자 청년의 눈에 분노의 빛이 스쳤다.

"다른 내"가 공중 정원에 머문 지도 꽤 됐지? 그동안 어떤 성과를 거뒀지?

성가신 일만 더 생긴 것뿐이잖아. 차라리 여기서 나한테 죽는 게 낫겠네.

"원래의 의식"이 죽으면 더 이상 새로운 복제체도 나오지 않겠지. 그럼, 더 나은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많은 "내"가 필요 없어. "다른 나"도 이렇게 생각할 거야.

머리를 숙인 청년이 혼란스러운 생각과 자기 의심 속에서 혼잣말했다.

멋진 감옥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그 상태가 얼마나 역겨운지 너 같은 상급자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 기체에는 그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남아있어.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야. 그리고 지금 여기서 들은 말을 다 믿는다고는 하지 않았어.

청년은 일어서서 감옥 문을 밀고 나갔다.

6:33 a.m.

혹한의 바닷바람이 등대를 치며,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더럽고 낮게 깔린 구름은 혼탁하고 어두웠다.

뼈가 시린 한기 속에서 등대 꼭대기의 외곽 전망대 쪽으로 서둘러 올라오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노안

……

노안은 자신과 극히 닮은 개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상대의 어두운 눈동자와 가슴의 상처를 훑어본 노안은 이 기체가 여전히 승격자의 통제하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이름을 잃은 청년도 고개를 들어 "또 다른 자신"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상대방의 시선은 그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간 지휘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안전을 확인했다.

"다른 자신"은 그의 무심함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안에 있어도, 그는 여전히 그가 다가갈 수 없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현재"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 안에 있어도, 그에게 있어 수격자의 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어째서?

네 선택이 옳다고 굳게 믿는 거야?

오랫동안 숨기고, 마음속에 묵혀져 있던 진흙이 이 순간 둑을 무너뜨렸다.

이름 없는 "복제품"은 모든 행동을 감시받는 꼭두각시를 향해 웃었다.

에너지 방출 검의 파공 소리와 비웃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고, 수격자는 눈 깜짝할 사이 노안 앞으로 다가왔다.

챙!

칼이 부딪쳤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노안이 쌍검으로 수격자의 참격을 막아냈다.

어째서...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꼭두각시가 "진정한 나"일까?

참을 수 없는 사실을 토해낸 그는 에너지 방출 검에 가하는 힘을 조금씩 늘렸다.

그렇게 복제체가 주는 문제를 끝내고 싶다면 차라리 여기서 죽어!

수격자가 지니고 있던 퍼니싱이 진홍색 전류로 변한 뒤, 그의 움직임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침식은 깨끗한 기체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감싸며 침식했다.

"원본"이 사라지면, 복제체도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거야!

충돌하는 검날 사이에서 뇌광이 눈 부신 빛을 내뿜었다.

모습이 닮은 두 청년이 비슷한 전투 방식으로 등대 꼭대기에서 온 힘을 다해 싸웠다.

밤샘 전투로 인해 과부하가 발생하면서 노안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반면 수격자의 힘은 강화됐다. 과거의 보조 무기가 없이도 그는 한 자루의 에너지 방출 검으로 더 강한 참격을 날릴 수 있게 됐다.

두 자루의 에너지 방출 검이 다시 한번 짧게 맞부딪혔다. 노안은 침식과 막기 힘든 공격을 끊임없이 피했다.

이대로 끌려간다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몸을 돌려 검날에서 튀어나오는 뇌광을 피한 노안은 두 발로 가드레일 위를 밟고, 훌쩍 뛰어올랐다.

승부수를 던진 에너지 방출 검이 아래 그림자를 향해 내리쳤고, 엔진 소리는 천둥처럼 컸다. 그 순간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목표를 잃은 수격자는 관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돌아선 순간, 기다렸다는 듯 보조 무기가 위에서 공격해 오고 있었다!

!!

다친 오른쪽 눈을 가리며 빠르게 뒤로 물러난 청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자세를 다시 잡고 공격하려 했지만, 기체는 예상외로 느리고 뻣뻣하게 반응했다.

뒤이어 공기 중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수격자 옆에서 수많은 진홍색 가시가 만개하더니 사방팔방으로 쇄도했다.

지휘관! 조심해!

혹사가 근처에 있는 걸 증명하는 듯 붕괴한 시야가 진홍색으로 물들었다.

혹사?!

아니. 혹사가 근처에 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갑작스러운 사고에 청년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씩 후퇴하던 청년은 바다 쪽 가드레일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 두 손이 그의 멱살을 세게 잡았다.

뭐...!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보조 무기가 눈에 박힌 후, 주인을 돕기 위해 청년의 꿈틀거리는 눈동자를 뽑아냈다.

끊임없이 순환액이 흘러나오는 오른쪽 눈을 가린 수격자는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상처 하나로 혹사가 심어둔 "감시기"를 발견하다니 운이 좋군. 다른 것이 더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무슨 소리야?

그는 놀랍게도 진홍색으로 뒤덮였던 시야가 회복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이상 현상은 혹사가 자주 쓰는 수법이야. 넌 항상 혹사의 감시하에 있었어.

감시용으로 사용되는 이 눈을 다치게 하는 것조차 반항의 신호로 간주할 수 있어.

그럼, 혹사는 이런 방식으로 네가 기체를 제어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노안은 퍼니싱 가시에 관통한 손으로 물러서려는 청년을 꽉 붙잡았다.

아직도 모르겠어? 누가 꼭두각시인지?

!

혹사를 상대하지 못하겠다면 비켜. 내가 가서 끝장낼 테니까!

비키라고?

남아 있는 청각과 촉각의 혼란이 청년의 정신을 흐렸다. 청년은 멍하니 "다른 자신"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넌 널 감금했던 우리를 무단으로 빠져나왔더라도 이 길을 가야만 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그림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진짜 자신" 옆으로 다가가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어슴푸레한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혹한의 바람이 오만한 저주와 함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말을 들은 노안이 잠시 주춤한 사이 "그림자"는 "또 다른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등대 아래 심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잠깐!

노안은 주저 없이 가드레일을 밟고, 그 그림자를 쫓아 탑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인간은 다친 전사의 손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