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a.m.
짙은 한기 때문에 눈이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간신히 노안을 등대 꼭대기로 끌어 올린 인간은 하얗게 질린 채로, 헉헉거리고 있었다.
응.
이름이 불린 청년이 다가와서, 인간의 몸에서 다치기 쉬운 부위를 확인했다.
다른 데 다치진 않았지?
노안의 태도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걱정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청년의 붉은 액체 범벅이 된 양손에서 순환액이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져 끈적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줄이 끊어진 악기처럼 잔잔한 가락을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래?
……
블랙 램의 현재 상황은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만 호전될 가능성이 있어.
이건 기회야.
혹사는 "복제할 수 있는 본체"를 기꺼이 만나려고 할 거야. 그러니 내가 해결하는 편이 나아.
아니. 하지만...
해결책이 이것밖에 없다면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복제체를 일부 소멸시키거나 조금이라도 정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렇게 기다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노안의 담담한 표정에 드디어 균열이 생겼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이들과 일들이 나의 소대는 물론 지휘관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어.
…………
문제의 답이 눈앞에 있다는 듯, 노안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지휘관이 베테한테 끌려간 적이 있잖아.
내가 예전에 했던 설명이 부족했었어?
그의 신분만을 말하고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도덕심을 잃은 이가 얼마나 골치 아픈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니?
사람을 구하기 위해 베테의 은신처까지 쫓아갔던 그날.
우리가 세 개의 문을 연 후에, 그의 거점 가장 깊은 곳의 모든 문에 가느다란 낚싯줄이 걸려 있음을 발견했어.
그래서 문을 열 때 줄이 끊어지면, 누군가가 비명을 질러 베테의 "초인종" 역할을 하게끔 되어 있었지.
그 문에 걸려 있던 모든 줄은 한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었어. 바로 우리가 구하려던 그 사람에게 말이야.
4월 1일 실종 사건이 베테와 관련이 있다고 말해줬을 때, 순간 혹사가 그를 막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하... 혹사가 그를 막아줘서 다행이라니...
노안은 힘없이 눈을 감았고, 숨겼던 감정들도 두 손에 묻은 핏자국처럼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이 일들이 지휘관이나 시몬 지휘관에게 일어났다면, 내가 어떻게...
노안은 나머지 말을 삼켰다.
이 일은 처음부터 내가 규정을 어기며 단독으로 행동했어야 했어. 그리고 네게 도움을 청하지 말아야 했어.
정화 구역을 떠날 땐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그땐 지휘관이 시몬 지휘관과 함께 돌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싫다고 해도 따로 행동한 뒤, 파르마 리더가 지휘관을 데리고 갈 거로 생각했었어.
지휘관이 근처에 있는 한 파르마는 반드시 그렇게 할 걸 알았으니까. 그녀라면 신뢰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을 꼭 지킬 테니까.
리더가 지휘관을 찾지 못했더라도, 위험에 처하면 나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부르기로 우리 둘이 약속했으니까.
내가 빠져나올 수 없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해도 무적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꼭 달려왔을 거잖아.
하지만 베테가 보내온 건 지휘관이 "또 다른 나"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이었어.
난 더 이상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지휘관.
장래가 밝아지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마다 결과는 더 나빠질 뿐이었어.
아무리 자신을 다잡으며, 겸손과 냉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해.
그러다가 이런 차분함 자체가 틀린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어.
…………
"충동적으로 변할 이가 아니야."라고?
노안은 자조적인 냉소를 내뱉었다.
노안은 지휘관이 이렇게 행동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몸을 약간 떨었다.
피 묻은 손을 들어 올린 노안은 지휘관을 안고 싶었지만, 손에 묻은 피가 지휘관의 코트에 묻을까 걱정됐다.
3초 정도 망설인 뒤, 이성적 사고를 포기한 듯, 노안은 앞에 있는 사람을 꽉 끌어안았다.
……
어쨌든... 지금은 괜찮아서 다행이야.
그래도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는 나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어.
그가 기억을 전부 되찾기 전까지는 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나을 거야.
내일이 되면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 되겠지.
금방 상할 빵을 얻게 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맞아. "나"도 그렇게 할 거야.
기억을 되찾은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면...
아니.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혹사는 "그"가 기억해 내는 걸 절대 놔두지 않을 거란 거야.
혹사를 속일 방법이 있다면, 가능성은 있겠지만 말이야.
노안은 등대 아래의 바다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분명 살아있겠지.
시간이 지체됐으니 쫓아가긴 어려울 거야.
돌아간다고?
……
노안이 시몬을 데리러 갔을 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시몬의 의심과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그 약...
그 후, 노안은 파르마가 시몬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봤다. 그러자 시몬은 노안을 향해 총을 쐈다.
그래도 돌아갈 수 있을까?
…………
에티르?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응.
노안은 담담한 목소리로 찬성을 표했다.
파르마 리더에게도 무책임한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려줘야지.
자신도 연루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야 다음에는 더 많이 생각할 거야.
근데... 단결 우애의 전문가가 이런 비우호적인 계획을 말할 때도 있네?
알았어.
노안은 곧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그 미소가 천천히 사라진 뒤에야, 원래 있던 슬픔이 허락받은 듯 노안의 얼굴에 떠올랐다.
인간이 찬바람 속에서 연속 두 번 재채기했다.
나올 때 옷도 가지고 오지 못한 거 같던데,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픽업 요청할까?
등대를 떠나 눈이 녹지 않은 폐허의 거리를 따라 거점으로 향했다.
노안과 지휘관은 나란히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하늘에서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본 노안의 눈빛이 점차 침울해졌다.
눈이 오네.
또 눈이 오네.
응.
어.
언제까지 이용당하게 될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게 될지 모르잖아.
혹사도 그의 눈을 보면 의심할 테고, 넘어간다고 해도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게다가 난 내가 복제됐다는 증거를 손에 넣지 못했어.
인간이 노안에게 단말기를 흔들어 보였다.
언제?
이 증거를 얻으려고 납치당한 거야?
노안의 표정이 순간 미묘해졌다.
아니. 그 문제가 아니야. 어떤 면에서 폐를 끼치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한 것 같아.
그리고 나도 이기적인 면이 있어, 교환하거나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어. 그게 비록 "나"라도 말이야.
반딧불이에 주의가 끌려서 오지 못했나 보네?
…………
왠지 모르게 예전에 실종됐던 친구가 나에게 "잠깐"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고개를 돌렸는데, 오랫동안 찾던 물건이 네 손에 있는 게 보였어.
…………
노안은 침묵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안도 손을 내밀려 했지만, 뭔가를 눈치챈 듯 멈췄다.
잠깐만.
노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길가에 쌓인 눈을 잡아, 손에 묻은 피와 상처에서 흐르는 순환액을 닦아냈다.
그렇게 자신의 손을 잠시 응시하며 말이 없던 노안은, 붕대로 상처를 감은 뒤, 지휘관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그제야 고문 기구에 갇힌 영혼이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
괜찮아. 지금은 괜찮아.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