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네가 그 **무리와 난투극을 벌이고 정화 구역을 떠난 이유야? 덕분에 정화 부대의 옛 동료들이 나를 계속 추궁하잖아.
수많은 추적을 따돌리고 정화 구역에서 탈출한 노안과 지휘관은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리 준비된 오토바이를 찾은 뒤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이 일에 관여된 이들은 적을수록 좋아. 지금 섣불리 움직이면 시몬 지휘관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어.
정말 서투른 납치 방식에 지루한 협박이야.
시몬 지휘관한테 최근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고, 그가 준비하는 것도 봤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가까운 이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미처 경계하지 못했던 것 같아.
하. 릴리안의 단말기에 반응이 없어. 같이 잡혔거나 릴리안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문제를 가장 쉽게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의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게다가 릴리안이 전에 이상한 질문을 했었어요.
파르마 리더님. 시몬 지휘관과 노안이 동시에 호수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실 건가요?
네가 말한 그 호수, 우리 집 문 앞에 있니?
네. 아마도요.
그럼, 이사 갈 거야.
릴리안 얘기는 그만하시죠. 저도 정화 부대로부터 노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이렇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데리고 나오다니,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날 잡으러 올 때, 지휘관을 데리고 돌아가면 되잖아.
이렇게 귀찮은 일을 나한테 떠넘기는 거야?
하?
연락이 되든 말든 비앙카는 이 모든 걸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일단 종이에 적힌 요구대로 따르겠지만, 확인해야 할 게 많아. 예를 들면, 릴리안의 행방 같은 것 말이야.
그들에게 다음 계획이 있다면, 나도 시몬 지휘관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너도 임무를 받았으면, 이참에 나와서 도와주는 게 어때?
(돌아가는 길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도 데려가는 게 좋겠어.)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입 모양의 움직임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짜증 나.
우린 진짜 맞지 않는다고 시몬한테 소대 해체를 신청하라고 했는데, 시몬은 듣지 않았어. 진작에 해체했더라면 이런 일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위에 있는 늙은이들이 일부러 그런 것 같아. 블랙 램 소대의 휴식기를 빨리 종료하고 싶었다면, 더 강경한 지휘관을 보냈어야지.
위험을 알려줬는데도 속은 녀석을 뭘 보고 믿어요?
블랙 램 소대의 지금 상황으로는 구조될 가능성이 희박해요.
쳇.
말은 그렇게 해도 시몬이 이런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시몬은 자신의 안위보다 진실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노력했는데도 또다시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소대가 재구성되는 걸 지켜봐야 한다면, 그는...
불편하다면 나 혼자 갈게. 이번 일은 처음부터 나 때문에 발생한 문제니까.
이번 일은... 하...
방법을 찾아서 나가볼게.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인질을 데리고 승격자에게 투항할 생각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야.
잊지 마.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실종됐던 그 강가에서 네 모습이 보였던 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
이를 악물고 말한 파르마는 단말기 앞에서 자신이 가져갈 무기를 정리했다.
방금 "추궁" 당할 때, 정화 부대에서 네가 승격자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고 말해줬어.
심지어 승격자를 도와 배신자를 이송하는 거점을 학살했다는 얘기도 있어.
일단은 "가능성"뿐이죠. 증거를 찾기 전까지는 누구나 복제체가 아닌 본인이 수작을 부린 거로 의심할 수 있어요.
이제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누가 증언을 해준다고 해도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블랙 램의 휴식기는 다시 연장될 거고요.
파르마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블랙 램 소대는 언제쯤이면 나가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지난 심사 때, 가상 전투 팀워크 테스트에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건 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조용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노안의 망토를 날리자, 뒷좌석에 앉은 지휘관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쳇. 그건 연습만 하면 해결할 수 있잖아. 네 문제는 해결 불가야!!
윗선의 의도는 분명해. 너의 "특화 기체 적응성"은 연구자들의 실험용 쥐가 되게 하거나 도둑만 끌어들일 뿐이야.
감시와 제한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망 없는 새 기체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승격자를 죽이는 게 더 빠를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할 수 있겠어?
이 말을 마친 파르마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찡그렸다.
낚시할 물고기가 더 있는 거야?
아니. 이번엔 시몬 지휘관만 찾으려고.
그 승격자를 상대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적어도 그가 복제한 의식의 바다와 본체가 각각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해.
마음대로 해. 그리고 죽기 전에 시몬에게 심리 상담을 해준 뒤, 웃으면서 널 보낼 수 있게 해줘.
파르마는 깔끔하게 통신을 끊었다.
……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노안을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노안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지휘관 목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상처는 괜찮아?
노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계속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 상처는 구조체에게 별거 아니야.
이번엔 시몬 지휘관을 구출하는 게 우선이야.
행동할 기회가 생긴다면...
계속 기다린다고 한들 그들은 스스로 사라지지 않을 거야.
공중 정원에 온 후로 블랙 램과 내 처지는 상황은 한 가지 사실만을 증명했어.
"양 우리" 안에만 있는 한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어.
혹사뿐 아니라, 그에게 "안정적인 의식의 바다"를 찾아주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이제 좀 지겨워.
노안은 침묵 속에서 주행 속도를 높였다.
지휘관?
구름이 오후의 햇살을 조금씩 삼키자, 차가운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넌 나와 함께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왜?
지휘관의 재채기 소리를 들은 노안은 한숨을 내쉬며, 폐허 앞에서 오토바이를 멈췄다.
일단 이거 덮어.
노안은 사물함에서 오토바이를 덮는 방수포를 꺼내 지휘관에게 덮어주며 말했다.
…………
저녁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만약 파르마 리더가 지금 출발했다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시몬 지휘관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의식이 혼란스러운 시몬은 감옥에서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노안이 걱정했던 대로, 베테는 결과만 중시하지 않았다.
그 손톱을 뽑기 전, 베테는 감옥 안에서 고드름으로 혹사에게 지배당한 분노를 풀고 있었다.
청년 군인인 시몬에게 큰 관심이 있었다면, 노안의 피투성이 예감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날이 오기 전, 노안의 경고를 받은 시몬은 여러 상황을 상상하며 주변인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같은 소대의 동료, 특히 이 경고를 건넨 노안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안이 가져다준 약을 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왜?
그 약병은 밀봉되어 있었고, 노안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누가.... 몰래 바꾼 건가...
아니면 시몬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실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감옥 너머 노안의 뒷모습을 본 순간, 시몬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무리가 구석에서 흘린 몇 마디 말이 시몬의 신뢰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이 꾸민 것일까? 아니면 이게 노안의 진짜 모습이었을까?
기억 속 깊은 곳의 후회가 계속 후자의 가능성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에티르.
오래전에 사라진 이름을 조용히 되뇌인 시몬은 손끝에서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며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옛 블랙 램 소대가 다시 해체되고 재구성을 준비하는 동안, 에티르와 시몬은 같은 혼성 소대에 배치됐다.
둘은 오랜 지인 사이였기 때문에, 다른 소대 대원들보다 적응 속도가 빨랐다.
에티르가 있었다면, 블랙 램 소대는 해체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에티르는 북극 항로 연합 임무가 끝나면, 블랙 램 소대에 정식으로 전근 신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좋아. 우린 잘 맞으니까.
웃으며 말한 에티르는 구토하는 시몬의 등을 토닥여줬다.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 그건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
그렇게 궁금하면... 임무가 끝난 뒤에 알려줄게. 그래도 되지?
하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임무가 끝났을 때, 시몬이 받은 건 그녀의 배신과 부고뿐이었다.
에티르는 북극 항로 연합 출신이었어. 이 임무에 참가한 것도 복수를 위해서였지.
복수요? 에티르에 대해 말하는 거 맞나요?
시몬은 에티르의 밝은 미소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어린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 그 어디에도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절친한 동료인 줄 알았지만, 정작 자신은 사실을 알 권리조차 없었고, 이상한 점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도, 온전한 작별 인사도 하지도 못한 채, 눈 오는 날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왜...
왜 시몬은 항상 사실을 알 권리가 없었던 걸까?
우리는 친구잖아?
의식을 잃기 직전, 시몬은 겨울에 대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에티르는 마침내 여정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몬과 에티르는 하얀 설원을 오랫동안 걸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눈을 감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든 여기까지는 왔을 거야.
결국 인간들은 다 그렇잖아.
각자의 추억 속에 갇혀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또 그 감정에 지배당해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잖아.
봐. 시몬... 너의 대원들도 너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눈 속에 갇혀 있어.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7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저녁 무렵 목표 지점 근처에 도착했다.
그건 비밀이야. 어쨌든 규정에 맞지 않으니까.
처음엔 나 혼자 올 계획이어서... 이걸로 충분했어.
낡은 교통수단을 잘 주차하자, 파르마가 다시 통신을 보내왔다.
릴리안을 찾았는데, 부상이 심해.
……
아직 숨은 붙어있어. 시몬이 끌려가는 걸 보고 쫓아가다가 여기 근처에서 잡혔대.
음... 지금은 부상자를 심문할 시간 없어. 일단 릴리안을 근처 거점에 보낸 뒤, 나중에 다시 물어보는 게 좋겠어.
알았어.
네가 말한 장소에 도착하려면 1시간 정도 더 걸릴 거야. 오늘 내로 내가 네 명패를 회수할 수 있도록 일단은 시도해 보는 게 어때?
내일 죽을게.
파르마가 "팍"하고 통신을 끊었다.
파르마의 뜻은 무모하게 행동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거야.
청년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건 정상적인 임무가 아니야, 지휘관. 난 여전히 네가 시몬 지휘관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
그럼, 우리 따로 행동하자. 사람을 데려가는 건 그들의 요구에 맞지 않아.
단말기를 꺼내 노안에게 암호화된 채널의 초대를 보냈지만,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
아니야.
아니.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청년이 자신의 단말기에서 암호화된 채널의 초대를 수락했다.
장담할게.
가볍게 한숨을 내쉰 노안은, 주머니에서 낡은 태엽 반딧불이를 꺼내 지휘관의 손에 올려주었다.
내 수호 부적이야. 명패만큼이나 나에게는 중요한 물건이지. 여기 있는 흠집은 날 한 번 구해주느라 생긴 거야.
꼭 안전하게 돌아올 거라고 약속할게. 그때 이걸 다시 나에게 돌려줘.
대신, 너도 조사할 때 조심해. 그리고 위험하면 나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불러.
어두운 노을이 구름 속으로 숨어들자, 땅 위에 얼마 남지 않은 빛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노안은 기록된 주소를 지나 주변 폐허로 숨어들었다.
창밖 마지막 광선을 빌려 다리의 보호구를 떼어낸 노안은 생체공학 피부에 마련된 인터페이스를 찢어냈다. 그리고 단말기를 다리 부분 기계 구조 사이에 숨겼다.
이런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통각 시스템이 경고했지만, 노안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 후, 흘러나온 순환액을 닦아내고 생체공학 피부를 다시 붙인 후에 보호구를 입었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아래로 숨자, 등불조차 없던 폐허는 완전히 캄캄해졌다.
잔해 사이 깊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노안이 조용히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그 녀석은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기다려봐. 수송기 타고 당당히 올 것 같아? 그들의 상황을 보면, 아마 뛰어오고 있을 거야. 하하.
입구에는 구조체 두 명과 인간 세 명이 있었다. 노안은 한순간 반짝이는 라이터 불빛을 보고 뒤편 폐건물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기서는 손쓰기 힘들 것 같네.)
노안은 이 거점을 다시 한번 관찰했다.
근처 생활 흔적과 여기 있는 인원수로 보아 이곳은 임시 경유지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 내부 기반 시설은 오랫동안 버려진 것으로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림자 속에 숨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노안이 예상했던 대로 남자 한 명이 문에서 나와 폐건물 뒤에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
휴.
검 두 자루를 움켜쥔 청년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그의 뒤를 밟았다.
그 남성은 관목 숲을 통과한 뒤, 주변을 살펴보고는 큰 나무 앞에 멈춰 섰다.
잎이 무성한 식물은 쉽게 소리를 내기 때문에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노안은 원치 않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하더라도 단말기 통신이 연결된 상태에서 고양이 흉내를 내며 위장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노안은 그 남성을 향해 자주 쓰는 단검을 던졌다. 예상한 위치에서는 조금 빗나갔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곳에 박혔다.
순간 멈칫한 틈을 타 뒤에서 뛰쳐나온 청년은 에너지 방출 검을 그의 목에 갖다 댔다.
소리 내지 말고, 손들어.
당황한 남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 옆에서 위아래로 흔들린 두 손을 세 번이나 망설인 끝에 들어올렸다.
내... 바지가...
그건 도와주지.
말만 친절하게 했던 노안은 나무에 박힌 자신의 단검을 뽑은 뒤, 상대방의 모든 무기를 압수했다.
바지는?
내 질문에 대답해.
저기! 나 지금 용변을 보고 있어. 공중 정원에서 왔다고 하면서 이렇게 무례해도 돼!
미안하지만, 난 아딜레 수송 부대 출신이야.
협박을 받은 남성은 곧바로 도덕성에 대한 대화를 포기했다.
**. 뭘 물어보려고?
이 모든 상황은 단말기의 암호화된 채널을 통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귀에 선명하게 전달됐다.
안전한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선물을 가져오는 산타클로스와 같았다. 적어도 몇몇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낡은 수송 수단으로 어떻게 막힌 길을 통과했는지, 인간의 육체로 어떻게 침식체의 공격을 물리쳤는지 묻는 이는 드물었다.
또 아딜레의 심각한 내부 투쟁에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대량의 화물을 가진 상태에서 어떻게 굶주림에 눈이 돌아간 도적들을 물리치고,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적어도 일반적인 전투와 전술로는 인간 상호 간의 갈등에 대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마...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엎드린 자세를 다시 조정한 뒤, 계속해서 임시 거점 근처를 수색했다.
갑자기 어둡던 구석에서 익숙한 모습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조용히 뒤를 쫓아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확인해 보니, 지휘관이 추측한 대로...
아니. 아니다. 단말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가 여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노안은 여기 없었다.
노안과 쏙 빼닮은 이 청년 구조체의 동공은 암적색이었고, 노안처럼 안경을 쓰고 있지도 않았다.
가슴에 벌어진 상처에서는 순환액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때 복원하지 않는다면, 흐르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그는 순환액 부족으로 죽을 것이다.
승격자들에게 노안은 아직 쓸모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되게 놔두는 것일까?
아니면... 이용해야 해서 "도구"가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한편, 노안은 검으로 그 남성을 위협하며, 다른 이들 앞까지 데리고 나왔다.
양쪽은 간단하고 비우호적인 인사 끝에 서로의 요구를 빠르게 이해했다.
친구. 네 지휘관은 데려갈 수 있지만, 넌 남아야 해.
우린 모두 베테 어르신에게 빚이 있는데, 어르신께서 너를 만나고 싶어 하셔. 우린 그냥 명령에 따를 뿐이야.
날 보고 싶어 한다고? 정화 부대 대원들도 날 보고 싶어 하던데. 설마 혹사와 다 같이 만난 적이 있는 건가?
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 대원들도 혹사와 거래했어. 그래서 내 의식의 바다를 복제하고 싶어 했지.
그들이 내 몸에 있는 위치 추적기를 이용해서 이곳까지 따라오면 어떻게 될까?
쳇.
리더로 보이는 인간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승격자가 한 명도 없는 모양이야. 있었다면 이렇게 간단한 거짓말에 겁먹지 않았겠지.)
내 요구는 변함없어. 속임수를 부리지 말고 시몬 지휘관을 여기서 안전하게 내보내 주는 것이 내 조건이야.
시몬 지휘관이 안전하게 떠나는 즉시 내 위치 추적기를 넘겨주겠다. 만약 강제로 뺏으려 든다면...
노안이 앞에 있는 남성의 바지를 움켜쥐자, 남성은 벌벌 떨었다.
리더! 정말이야! 다른 사람과 통신하는 거 봤어. 곧 있으면 여기로 올 거야!
……
이 형편없는 거짓말에 리더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리더가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 지휘관을 밖으로 내보내 주지.
노안은 정화 구역에서 빠져나온 지 9시간 만에 드디어 시몬과 다시 만나게 됐다. 시몬의 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노안은 그 남성의 끊어진 허리띠를 매듭지어 준 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인질을 교환했다.
……
방금 파르마 리더로부터 신호가 왔어. 곧 여기에 도착할 거야.
시몬의 상처를 확인한 노안은 아무 말 없이 시몬의 찔린 손에 상처 치료 젤을 바른 뒤, 간단하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노안은 항상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니네요.
어. 릴리안이 구조체 정비에는 더 능숙하잖아. 그리고 우리 소대 대원 중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의료 지식을 가진 건 나뿐이니까.
약을 가지고 다니는데, 의료 지식이 필요한가요?
뭐?
그 약병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히 말해주세요.
설명하려던 찰나, 멀리서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노안과 시몬이 뒤를 돌아봤다. 달빛을 등진 파르마가 구조체 머리 두 개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 녀석이 약속을 어겼다. 공격해!
잠깐. 그녀는 시몬 지휘관을 데리러 온 것뿐이야. 난 약속한 대로 너희들과 함께 갈 거야.
노안은 뒤로 한 발 물러서서 자기 몸으로 그 무기들을 막아섰다.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
지휘관은 먼저 파르마 리더랑 정화 구역으로 돌아가.
여기의 방어 상태를 봤을 때, 노안과 파르마 둘만으로 충분히 떠날 수 있어요!
노안은 고개를 저었다. 배신자들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로 봤을 때, 시몬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베테가 살아 있는 한 혹사는 오늘과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같이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야. 일단 돌아가.
방금 압수한 권총과 비수를 시몬에게 던져 준 노안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파르마가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블랙 램 소대가 이런 일을 겪는 게 처음은 아니잖습니까. 배신자와 함께 떠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시몬은 노안에게 자신의 알 권리를 요구했지만, 앞에 있던 청년은 에티르와 너무나 비슷한 말을 했다.
복귀하면 제대로 설명할게. 약속해.
그렇게 말한 노안은 에티르처럼 몸을 돌려 바로 떠났다.
……
그 녀석이 이렇게 갈 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노안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납치해서 데리고 나왔어요. 당신을 구하러 왔다고 했지만, 같이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잖아요.
손에 들고 있던 구조체 머리를 내던진 파르마가 가장 부정적인 추측을 내뱉었다. 그녀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방금 여기 주위를 수색했는데,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없었어요.
복수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진 것 같아요.
노안이...
복수요? 에티르에 대해 말하는 거 맞나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옛 기억들이 귀청을 찢는 듯한 울부짖음을 내뱉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은 지휘관님을 구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 녀석도 함께 처리해서 블랙 램의 명패를 되찾아오는 것도 가능해요.
수석님도... 없어졌다고요?
수석님...
시몬은 그제야 이해한 듯, 휘청거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 바보야?!
이 상황에서는 배신자를 죽이면 그만이야.
정신이 순간 멍해졌다.
시야가 돌아왔을 때, 시몬은 자기 손에 쥔 권총 구경이 미세하게 뜨거워진 것을 발견했다.
달빛 아래, 익숙한 그 얼굴엔 혈흔이 남아 있었고, 앞에서 걷던 악당 중 한 명도 총에 맞아 쓰러졌다.
노안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시몬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