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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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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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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는 기지 좌표를 확보한 후, 정화 부대의 다른 대원들을 각 출입구에 배치해 분산 공격으로 초병의 힘을 가능한 한 약화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카레니나와 함께 기지 내부로 잠입했다.

이 기지는 이미 반쯤 버려진 상태였지만, 내부엔 쓸만한 단서가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길고 긴 복도 안에는 카레니나와 비앙카밖에 없었고, 유일한 소리는 그들이 걸으면서 울리는 메아리였다.

죄송해요. 카레니나. 제가 먼저 말했어야 했어요.

사실, 말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요.

오랜 침묵 끝에 비앙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짐작은 했었어. 부대 대원과 대화할 때, 정화 부대에 대한 소문을 얘기하곤 했었거든.

그래서 왜 나한테 말하기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화가 풀린 건 아니야!

네, 이해해요.

카레니나. 전...

비앙카가 말하는 순간,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복도 전체가 경고등으로 인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다른 대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요. 얼른 가시죠. 카레니나.

단말기로 스캔한 지도를 따라간 비앙카는 실험실 중앙의 가장 깊은 곳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 전자 잠금장치는 너무 복잡해서, 제 연산 능력으로는 해킹하기가 어려울 거 같아요.

걱정할 필요 없어. 비앙카. 뒤로 물러서!

카레니나의 손에 들린 대포가 뜨거운 불빛을 집중시키자, 거대한 울림과 함께 실험실 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쿨럭... 쿨럭...

짙은 연기가 사라진 후, 카레니나가 먼저 구멍을 통해 어두컴컴한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르고 여윈 연구원 한 명이 비상등만 켜져 있는 실험실 안 단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연구원은 종이와 펜으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안 돼. 실패야. 실패, 실패... 이전의 실험 데이터가 전혀 도움이 안 돼.

젠장. 시간이 없어. 사용했던 모든 공식을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 그럼,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건지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카레니나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와이어스?

그 사람이었군요...

전 과학 이사회 연구원 와이어스 가일. 즉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몸을 돌려 당신의 눈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비앙카는 활을 들어 와이어스의 뒷모습을 겨냥했다.

종료 시각 알림을 들은 시험 응시생처럼, 와이어스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펜이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똑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끝난 건가?

그 후, 와이어스는 평소의 태도로 돌아왔다.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차분하게 몸을 돌리자, 자신을 보고 있는 카레니나와 비앙카가 보였다.

와이어스. 너...

카레니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 차가운 남자의 얼굴은 죽은 듯 창백해져 있었고, 카레니나가 나타난 것에 전혀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와이어스 가일. 당신은 공중 정원에서 사라진 후, 정화 부대의 용의자 명단에 올라가게 됐어요. 하지만 당신을 여기서 만나게 줄은 몰랐네요.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어요? 이 지상 기지를 지원하는 사람도 누구죠?

말 좀 해봐. 와이어스!

카레니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들고 있던 대포를 휘둘러 실험실의 벽에 움푹 팬 깊은 자국을 냈다.

카레니나... 흐흐, 신께선 정말 나와 장난을 치시는 건가.

이런 때에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어야 한다니.

캐논 박사님의 마지막 제자이자, 세계 엔지니어 연합 멤버로서, 왜 공중 정원을 배신하고, 정비 부대의 구조체를 선동하는 거죠?

오해하지 마. 난 구조체의 마음을 조종하는 데엔 조금의 흥미도 없어.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거야. 그게 전부야.

난 이곳의 시설과 자료를 이용해서 해내지 못했던 일을 완수하고 싶었을 뿐이야.

뭐...

네가 할아버지의 제자였어?

왜 이 사실을 계속 내게 숨겨왔던 거지?

연이은 충격적인 사실에 카레니나는 상당히 동요했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와이어스가 설명해 주기만을 바랐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카레니나. 기억 안 나? 분노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고, 내가 말했었잖아.

난 박사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했어.

난 실력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이자 살아남은 자야.

난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마지막 실험에 참여하지 못했다. 내 동료 선배들은 모두 "그 실험"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는데 말이야. 캐논 박사님도 마지막엔 그렇게 되셨지.

그들은 공중 정원, 지구 그리고 인류 전체를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조차 기억될 권리를 갖지 못했다.

그들의 일을 아직 끝내지도 못했는데, 과학 이사회는 내 연구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지.

그래서 난 공중 정원 밖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과학 이사회가 원래의 실험 방향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과학 연구원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당신의 연구를 멈추게 한 거였어요.

그래? 하지만 과학은 그런 허울 좋은 이유로 구속될 수 있는 게 아니야.

과학자들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선택된 인류의 제물이야. 그리고 우린 그런 사명을 받아들였지.

카레니나. 결국은 너도 이 길을 걷게 될 거다. 넌 나조차도 부러워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캐논 박사님에 관한 모든 자료를 지워버렸지만, 언젠가 넌 그것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캐논 박사님께서 널 거둬주셨으니, 내가 그를 대신해 널 가르쳐서 박사님의 기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어.

하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사소한 일뿐이군.

아니.

와이어스, 넌 틀렸어. 지금 넌 모든 걸 잘못 생각하고 있어!

할아버지는 날 과학자로 키우려고 데려간 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나한테 기대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으셔.

단순히 빈민가에서 굶어 죽기 직전의 여자아이를 구해준 것뿐이야. 그리고 그 아이가 무사히 자라서 어른이 되길 바라셨어.

"할아버지의 손녀"든, "정비 부대의 카레니나"든, 이런 "수식어"는 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할아버지는 과학이 가진 힘을 알려주셨어. 하지만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아는 척 그만해. 예전부터 너의 그런 성격이 정말 싫었거든!

……

그리고 네가 한 일은 "하찮은 일"이 아니야.

넌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일 필요가 전혀 없어!

카레니나. 넌 아직 아무것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

선택이라건 가끔 개인이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속한 세상이 네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기도 해.

태양의 중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중력은 항상 너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하지만 누군가 없어진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지.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조차 혼자선 아무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어.

결국, 사람은 "중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것에 이끌려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되지.

언젠간 너도 "중력"에 직면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기술자로서 져야 할 "운명"과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후회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거야.

이해?

이를 악문 카레니나가 이빨을 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내가 무슨 [삐-] 이해를 해!

전에도 이해 못 했고, 앞으로도 이해 못 할 거야.

네가 이 모든 걸 왜 하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이해할 수도 없어!

네가 말한 그날이 진짜로 와도, 그 "중력"에 난 꺾이지 않을 거야.

난 내 마음이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 선택할 거야.

결연한 목소리로 선언한 카레니나는 과거 스승과 생각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

그런... 가?

와이어스는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고통스러운 경련을 시작했다. 검붉은 피가 격렬한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고, 전력을 다한 듯 그의 몸이 반쯤 바닥에 쓰러졌다.

너...

카레니나는 눈앞의 와이어스가 퍼니싱에 침식됐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붉은 멍이 혈관을 따라 그의 목까지 올라온 상태로 보아, 말기 침식 증상인 거 같았다.

비앙카. 혈청! 혈청 가져왔어!?

아니요. 하지만 가까운 보급지에서 가져올 수 있어요.

헛수고할 필요 없어. 내가 죽을 날을 계산해 봤는데, 지금 상태에서 혈청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내 실험은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 기지를 포기했고, 나도 포기했어.

난 그냥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어.

와이어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이 과학자의 눈 속엔 생존의 의지를 나타내는 불꽃이 이미 꺼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충고하지.

너희가 이곳을 이렇게 쉽게 찾아냈다는 건, 이미 함정에 빠졌다는 걸 의미해.

와이어스의 말을 들은 비앙카는 왜인지 바로 묻지 않았다. 그녀의 예리한 직감이 이미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경보음이 조금씩 크게 울려 퍼졌고, 비앙카는 즉시 자신의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정화 부대의 모든 대원은 들으세요. 즉시 이 지역에서 철수하세요!

비앙카. 우린 와이어스를 데려가야 해!

카레니나. 빨리 떠나.

카레니나에게 마지막 말을 한 와이어스의 태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엄격했다.

난...

그리고 날 죽여줘.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을 만나게 해줘.

……

카레니나는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대포를 움켜쥐었지만,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주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보살펴 주시길.

화살 한 발이 카레니나의 귀 옆을 스쳤다. 그리고 한 인간의 고통이 그것으로 끝났다.

가시죠. 카레니나.

비앙카는 카레니나의 손을 잡고, 곧 지옥으로 변할 그곳에서 그녀를 끌어냈다.

그 후, 하늘을 울리는 불꽃이 기지 전체를 초토화했다.

반달 뒤.

정화 부대의 대장 정비실 내에서 비앙카는 개인 단말기로 임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상자 수"를 마지막으로 채운 후, 비앙카는 처참한 보고서를 한동안 바라봤다가, 보고서를 압축한 뒤 공중 정원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로 올렸다.

……

비앙카가 정비실에 잠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일어나려 할 때 문이 열렸다.

여긴 진짜 크네. 대장 전용 정비실은 역시 멋지구먼.

카레니나?

하지만 내가 이런 방을 쓰게 될 날도 멀지 않았어. 여기엔 얼마나 많은 원재료를 넣을 수 있을지 궁금한데.

카레니나는 방의 각 모퉁이를 살펴보며, 손가락으로 실측하는 동작까지 취했다.

카레니나.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라니, 며칠 안 봤다고 그렇게 냉담하게 말하기야?

아직도 저한테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

지난 지상 작전이 끝난 이후, 카레니나와 비앙카는 서로 만나지 않았다.

반달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지만, 카레니나와 비앙카에게는 이미 많은 일들이 쌓여 있었다.

비앙카는 자신이 카레니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여러 일들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카레니나를 피하고 있었다.

정화 부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카레니나에게 계속 숨기고 있었던 건, 비앙카의 신분이 카레니나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앙카가 지키고 싶었던 이 우정은 사실 자신 주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카레니나의 마음을 열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던 건 비앙카였다.

하지만 그녀 또한 자신만의 껍질에 갇혀 문제에 봉착했을 때도 많았다.

이를 깨달은 비앙카는 어떤 표정으로 카레니나를 대해야 할지 매우 망설였다.

너에게 화가 났었던 건 맞아. 그리고 와이어스에 대한 생각도 멈출 수가 없었어.

허리에 손을 얹은 카레니나는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들기를 반복했다. 어떤 감정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

결국, 카레니나는 웃으며 이 말을 했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속에선 항상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있어.

내가 널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화가 풀렸다는 건 아니야. 다만 계속 이런 것들에 얽매인다면, 난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어.

난 와이어스가 말한 것처럼, "중력"에 끌려서 살고 싶지 않아.

난 너와의 우정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도 않아.

네가 계속 의기소침해 있는 거 같아서,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 어때? 이거 꽤 성숙한 태도 아니냐?

카레니나의 진지한 말에 비앙카는 오히려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맞아요. 카레니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어린아이 같았어요.

비앙카가 걱정했던 일 혹은 두려워했던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비앙카가 손을 내밀자, 카레니나도 자기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 주었다.

알았어. 그럼, 이건 너에게 맡길게. 반대하지 마. 알았지?

이건...

비앙카 앞으로 제출된 파일은 카레니나라는 구조체가 정화 부대로 이동을 신청하는 요청서였다. 그건 카레니나가 비앙카의 "고정 지지자"로 정화 부대로 이동하고 뜻이었다.

지난번 작전에서 정화 부대가 큰 손실을 봤잖아. 그중 일부엔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주변에 좀 알아봤는데, 네가 이 일로 고민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내가 군부에 자원했어. 어때? 이 정도면 의리 있지?

카레니나. 당신의 마음은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정비 부대 소속인데 정화 부대로 옮긴다는 게...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네가 한 말 잊었어?

하지만... 제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면...

그땐, 꼭 도와주시길 바라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러 온 거잖아.

전...

딱히 다른 이유는 없어. 우린 친구니까.

비앙카는 카레니나를 바라왔다. 그녀의 진지하고 맑은 눈빛이 고향의 설경을 연상시켰다.

고마워요. 카레니나.

자기 가슴을 감싼 비앙카는 그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녹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