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억의 회랑 / 심연에서 선택한 길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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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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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는 도시의 폐허를 무작정 걷고 있었다.

비가 온 뒤 도시는 먼지가 날리지 않아서 오히려 맑고 상쾌한 것 같았다.

구조체가 된 뒤, 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부대에 입대한 루시아는 발걸음을 멈추거나, 폐허가 된 땅에서 천천히 걸어 본 적이 없었다.

엘리트 소대의 지휘관 중에서도 레븐쉬는 계산해서 배치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레븐쉬는 구조체의 모든 에너지를 계산에 넣었다. 그는 연이은 전투에 적절한 휴식 시간을 추가해, 효율을 보장함과 동시에 사상률을 최소화했다.

결단력 있고 능력이 출중하며 부하들에게 잘해줬다. 이는 집행 부대가 레븐쉬에 대해 느낀 인상이자, 루시아 일행이 레븐쉬에 대해 느낀 인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레븐쉬가 한 행동은 이런 평가를 받을만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랬다.

기체 손상이 매우 심각해요. 특히 오른팔이 이 정도로 손상됐을 경우, 완전히 교체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여기 서명해 주세요.

레븐쉬

완전히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미리 만들어져 있지 않은 부품은 일단 신청한 후 배송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 전투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외에, 현재 전황이 좋지 않고, 사방에서 지휘관님의 엘리트 소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대원들에게 잊지 마시고, 최대한 휴면을 시켜 주세요. 그들의 의식의 바다 안정 상황이 지난번 검사 때보다 더 나빠졌어요.

레븐쉬

그건 내가 신청할 거야. 너의 말이라면, 지휘부 사람들도 나의 휴가 신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겠지?

모를 일이죠.

의사는 동정 어린 눈길로 심하게 손상된 루시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말을 여러 번 했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 지휘관과 지휘부 사람들은 의식의 바다 문제는 작은 문제일 뿐이고, 불안정한 상황이 생기면 의식을 연결해서 안정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의식의 바다 문제가 어디 그리 간단한가요. 손상과 피로는 누적될 거고, 충분한 휴면이 없다면 의식의 바다는 계속 피로한 상태로 있을 거예요. 의식 연결은 일시적으로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킬 뿐 잠재적인 위험은 계속 존재해요.

의사는 서명한 작업판을 들고 몇 마디 더 당부한 뒤 자리를 떠났다.

지휘관님, 전 계속 전투할 수 있어요.

레븐쉬

이일은 너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의사, 나 그리고 기타 대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넌 지금 휴식을 취해야 해.

미안해요. 저와 진이 그 침식체들을 잘 막았더라면...

레븐쉬

그 침식체들은 원래 다른 팀이 막았어야 했던 목표였어. 계획에 어긋난 예상 밖의 변수로,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상부에 015호 도시로의 이동을 잠시 보류하겠다고 신청할게. 당분간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여기서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하지만 015호 도시에도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텐데요.

레븐쉬

루시아.

레븐쉬는 늘 사용하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븐쉬

네가 강한 것도 알고,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 하지만 너 혼자서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 네가 구해야 하는 건 아니야.

공중 정원에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외에도 구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엘리트 부대가 많아.

너의 전우를 믿고, 공중 정원을 믿어. 그리고...

내가 널 대장으로 가장 신뢰하는 만큼, 내 판단을 믿어주길 바란다.

무롤과 진이 뭔가를 더 말하려는 루시아를 말렸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회복하도록 노력할게요.

레븐쉬

그래. 무롤과 진, 너희도 마찬가지야.

난 먼저 상부에 이번 전투를 보고하고 휴식 기간을 신청할게.

레븐쉬는 단말기를 켜면서 야전 병원 밖으로 나갔다.

루시아, 그만해요. 지휘관님 말이 맞아요.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이번엔 고마웠어요.

구조체가 될 때부터 소처럼 일 만하게 될 거라고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부려 먹다니, 상부도 정말 사람 같지 않네요.

됐어요. 그만 불평해요. 적어도 그레이 레이븐엔 아직 큰 인명피해가 없잖아요. 다른 소대보다 훨씬 나아요.

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나 지휘관님께 불만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제 말은 지휘부 사람들이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건 지휘관님의 권한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활약으로 지휘부가 지휘관님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중요하게만 생각할 뿐, 지휘관님이 상부의 생각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기껏해야 임무상에서 일정 정도만 쟁취할 수 있을 뿐이에요.

어휴, 우리 지휘관님은 언제 지휘부로 승진하실까요? 지휘관님이 지휘부에 계시면 우리 처지도 개선될 수 있을 텐데요.

그건 지휘부 고위층 한 명이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지휘관님이 승진하시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지휘관님을 교체해야 하는데, 다음 지휘관님이 지금 지휘관님보다 더 좋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

우리 같은 군용 구조체가 후방 지휘로 승진할 가능성은 없어요. 머리가 좋거나 손재주가 좋으면 정비 부대나 고고학 소대에 갈 수는 있겠지만요.

그런데 조건에 부합되는지 가슴에 손 얹고 말해 봐요.

하, 지휘관님이 교체되는 건 진짜 싫어요. 그렇지만 지휘관님께서 승진하시는 건 좋은 일인데, 너무 고민되네요.

그레이 레이븐의 이번 실패를 놓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전부터 질투하는 사람들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임무를 선택해서, 중요한 임무만 한다고 손가락질하는 걸 들었어요. 그레이 레이븐은 매번 운이 좋다... 이런 거요.

미안해요. 그때 제가 좀 더 빨랐다면...

루시아, 자신을 너무 몰아세워요.

그래요. 지휘관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일을 혼자서 짊어지지 말고 다른 이를 좀 더 믿어 보세요.

지휘관님은 침식체를 빨리 물리칠수록, 좀 더 빨리 지구를 탈환할 수 있다고도 말했었죠.

……

이건 우리 집행 부대의 작은 소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제 가장 큰 소원은 전역할 때까지 살아남아서 훈련련소의 교관이 되는 거예요.

저도 비슷해요. 루시아는 계속 최전선에서 전투하려는 건 아니죠?

전 탈환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싸울 거예요.

……

루시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탈환하는 날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러면 저와 진도 힘내야겠어요. 모든 짐을 루시아한테 떠넘길 수는 없잖아요.

왜 자꾸 저 대신 결정하세요? 저도 그 말 하려고 했어요.

무슨 말이요? 제가 뭘 놓쳤나요?

이때, 미리 불려 나갔던 헤론이 휴게실로 돌아왔다.

아, 헤론, 마침 잘 왔어요. 방금 침식체를 처치하고 지구를 탈환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너무 생략하는 거 아니에요?

지구 탈환...

몇 분 전, 야전 병원 밖.

루시아의 부상은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서 치료하는 게 좋아요. 왜 이곳에서 쉬겠다고 신청하신 건가요?

레븐쉬

……

그 특별한 구조체를 위해서인가요?

여기까지 말한 헤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레븐쉬

그는 지구를 탈환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단서야.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잡아야 해.

정말 자신 있으세요?

레븐쉬

상부에 지원을 신청할 거야. 그가 인간에게 적대적이라면 무력으로 붙잡거나 없애버릴 수밖에 없어.

상부에서 믿을까요?

레븐쉬

네가 말하면 상부에서는 믿지 않겠지. 그때, 네 기록 기기는 파괴됐었고, 말만으로는 믿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난 그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내 모든 명예를 걸 거야.

참, 이건 중요한 일이니, 루시아나 다른 대원에게는 말하지 마.

헤론의 얼굴에서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자, 레븐쉬는 헤론의 어깨를 톡톡 쳤다.

레븐쉬

헤론,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대장인 루시아가 아니라 너야. 네 딸도 내 인맥을 동원해서 사립 병원에 입원시켰잖아.

너와 나만 이 무거운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렇지?

알겠어요.

레븐쉬는 후속 전투 진행의 신청과 배치를 해야 한다면서, 몇 마디 말을 더 강조하고 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헤론도 동료들에게 비밀을 숨겨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휴게실로 걸어갔다.

헤론이 레븐쉬를 위해 비밀을 숨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헤론?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의 말이 맞아요. 침식된 모든 개체를 처치해야 지구를 탈환할 수 있어요.

예전의 루시아도 그렇게 생각했다. 퍼니싱은 이미 루시아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인간이었을 땐, 루시아의 비수는 생존과 루나를 보호하기 위해 휘둘려졌다.

구조체가 된 후, 루시아의 장검은 퍼니싱을 향한 복수 때문에 갈고닦아졌다.

하지만 지금의 루시아는 더 이상 생존 걱정이 없어졌고, 루나도 루시아보다 훨씬 강하게 변했다.

꿈과 믿음이 배신당했고, 루시아와 루나 모두 인간의 희생양이 됐다. 둘은 오히려 퍼니싱 때문에 배신당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난 어디에 머무르고, 어디로 가야 하며, 누굴 위해 검을 휘둘러야 할까?

내 원한, 내 꿈, 내 믿음은 또 어디에 걸어야 할까?

아니면 내가 한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 아래 무의미한 소용돌이에 흔들리고 있는 걸까?

……

한 발의 총소리가 루시아의 생각을 끊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루시아는 습관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