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진짜 나인지 의심하곤 했다. 남들과 다른 외모, 다른 기억을 지녔지만…
정작 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자신의 결말을 알 수 없었고, 누가 운명을 좌지우지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왕은 신하에게 명령할 수 있고, 부모는 자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운명을 선택하고, 인생을 온전히 장악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통증도 주인의 몸으로 돌아왔다.
앗. 드디어 깼네.
...내 말 들려?
이 누에고치 같은 미니어처 가든에서 길을 잃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블리크 스스로가 택한 길,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의지였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오블리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도 많은 이들이 오블리크를 이끌어주고, 믿어주며, 그녀가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정한 순간들은 영원히 이어지고 되감겨서,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것들이 곧 의미 그 자체였다.
넌 곧 나야. 그래서 잘 알아.
...
전쟁은 모두의 과거와 미래를 앗아가요.
저는 전쟁이 끝나길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전쟁 속에 영원히 머물길 원했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늘 한발 앞서 있었고, 언제나 승리하는 쪽이 될 거라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아직 인간의 본성을 믿는 거야?
인간은 태생부터 싸우는 걸 좋아해, 끝도 없지. 퍼니싱이 없었어도, 다른 이유를 찾아 싸웠을 거야. 바벨탑은 결국 전 인류의 무덤이 될 운명이었어.
전쟁은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영원히 끝나진 않아. 그러니까 여기 남아, 내가 곁에 있어 줄게…
고마워요, 엘리너. 하지만…
이제 저는 선택할 자유가 있어요.
…날 버리겠다는 거야? 설마, 네가 가장 혐오하던 일을 나한테 하려는 건 아니지?
오블리크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과거라 불리는 붉은 실이 심장을 지나며 감정의 빛깔로 물들었다. 그 실은 얽히고 엮여, 애틋한 마음이 담긴 가위의 형상을 이루었다.
「앞으로... 네 인생을 원하는 대로 꿰맬 수 있기를 바라.」
버리는 게 아니에요. 그저 언젠가는 찾아올 이별을 하는 것뿐이에요.
더 이상 이별이 두렵지 않아요.
어쩌면 잊어버리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블리크는 온 힘을 다해 가슴을 꽉 감싸안았다.
가위를 들어 올리자, 차갑고 맑은 물결이 그녀의 내면에서 잔잔히 퍼져나갔다. 오블리크는 그것이 새롭게 태어난 자신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상 체험이든 꿈이든, 제가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게 곧 현실이에요.
전 미니어처 가든의 주인을 찾을 거예요.
미니어처 가든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모욕도 실패도, 거절도 없었다. 그것들은 애초에 진정한 힘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나의 단순한 진리가 드러났다. 오블리크는 결코 꼭두각시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녀는 실을 쥔 자로 태어날 운명이었다.
선택하는 것, 과거를 잘라내는 것, 미래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희망을 품는 것까지 전부 다 제가 직접 할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 없어요. 이젠 직접 선택한 그다음을 향해 나아갈 거예요.
이건 임무가 아닌... 제 소원이에요!
뒤엉킨 수많은 환영 속에서, 오블리크는 창문의 유리를 깨뜨리고 미니어처 가든 아래로 곧장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