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13-13 먼 곳에서 온 존재
<size=50><i>강아지야, 강아지야, 어디로 갔니?</i></size>
매일 이렇게 여기에 서 있는 건, 네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거야?
함께 놀아줄 친구 없어?
야, 너 말이야!
나?
그래, 너.
당연히 놀아주는 친구 있지. 내 강아지랑 놀고 있잖아.
매번 인형이랑 소꿉놀이하는 건 너무 유치해. 우리 둘이면 더 재미있는 게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무슨 게임?
휘파람 불어 볼래? 공방 노동자들이 퇴근할 때 신나게 부는 그 휘파람 말이야~
후, 후—— (소리를 내려고 애쓴다.)
너무 어려워…
그럼, 휘파람은 다음에 배우고, 오늘은 모래성을 쌓자. 네가 기지를 만들면 내가 꼭대기를 완성할게!
아, 무너졌네… 하하하!
너 옷 더러워졌어... 아빠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아빠는 깨끗이 씻으면 된다고 하실 거야.
와, 하늘 진짜 예쁘다.
고개만 들면, 언제나 이렇게 예쁜 하늘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들은 우리한테 관심 없어. 우린 주인공이 아니니까. 사라지고, 잊히고, 희생되는 건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의 비밀 기지야! 여기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못 찾아. 그러니까 넌 여기서 몰래 옷을 만들어도 돼.
난 네 옆에서 휘파람이나 불고 있을게~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에겐 이렇게 소소한 자유가 있잖아~
사실 너, 내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지?
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꿈이 뭔지도 알게 됐어.
아니, 난 네가 모르는 건 가르쳐 줄 수 없고, 네가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킬 수도 없어.
그 모든 동경과 갈망은 네 마음속에서 비롯된 거야.
부를 줄 아는 게 한 곡밖에 없으면, 내가 다른 곡도 가르쳐 줄게!
중요한 건... 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고 싶어야 해.
아무도 네 이야기에 관심 없어. 누군가에게 털어놔도, 너 말고는 그 인형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난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몸도, 마음도.
만약 아무도 네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들어줄게.
나... 동료가 생겼어. 앞으로 더 많아질지도 몰라.
축하해. 그럼,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난 네 인형이 정말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
맞아, 정말 소중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두뇌 수술을 하고 나서, 네가 꿈꾸던 그 모습으로 됐어?
아니면 여전히 멍하니 지내면서, 고통만 잊은 거야.
돌아가. 언젠가 다시 나를 떠올린다고 해도, 난 나타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전 여전히 외로워요.
외로움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그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값진 거야.
추억 말고도, 훨씬 더 넓은 세상과 수많은 선택이 널 기다리고 있어.
이제 네 진짜 이름을 알게 됐으니,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아니요, 아직 과거를 버리고 싶지 않아요.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것도 제 일부니까요.
그럼, 새로운 이야기를 엮을 자리만 남겨둬… 그리고 다시는 우리를 찾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수년 전, 선물 상자를 열었던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서는 이미 "고마워"를 "잘 가"로 바꿔 쓰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별이 올 줄 알았지만, 그 순간은 늘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오블리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상자 안에는 강아지 인형이 조용히 누워 있었고, 여러 번 꿰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제 새로운 여정이야.
그럼, 모두들, 안녕.
이번엔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많은 실타래 속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실은, 그녀가 이별을 배웠을 때 비로소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
주변의 소란 속에서 오블리크가 눈을 떴다. 온몸이 아파왔지만, 상태 지표는 정상이었고, 기체 외부의 손상된 부분도 모두 수리되어 있었다.
의식의 바다에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요즘 왜 가는 곳마다 네가 보이는 것 같지?
뭐?
너무해! 내가 무슨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꼬마 정령이야?
그래도 이번엔 나도 좀 도움이 됐잖아. 그치, 그치?
내 공로를 인정해 줄 거지? 응, 응?
...
누가 스피커 좀 꺼봐.
쉿! 다들 조용히. 오블리크가 깼어!!
네가 제일 시끄러워!!
오블리크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다.
낙성 잠입 임무 중, 오블리크는 승격자의 공격을 받아 함선 최하층으로 추락했고,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웠었다.
의식의 바다 병증은 본래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난제였다. 그래서 상태가 안정된 후에는 그저 기다림과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팔지는 걷기가 어려워 처음엔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결국엔 지원하러 온 청정 백로 소대의 라이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녀들을 공중 정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승격자를 마주친 걸 감안하면, 90%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 건 꽤 괜찮은 결말이었다.
한쪽 다리가 고작 5%밖에 안 돼?!
그 사이,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헤바는 함선이 받은 자폭 신호와의 사투에 정신이 없었다. 숨겨진 위기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다행히 남은 자료들은 전부 추출할 수 있었고, 에피알테스라는 승격자도 비행선을 개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 전투에서 맞닥뜨렸던 분신들 또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성갑충 소대의 성과는, 차단 장치가 내장된 정밀 실험 자료에 기록되었고, 이는 기존 데이터와 비교되며 역원 장치의 실험 데이터 저장량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다.
역원 장치라니~~~ 너무 눈에 띄게 만들면 내 패션에 영향 준다고~
라이어는 괜히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오블리크의 기체와 재율의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다.
...패션?
원하시면, 기회가 될 때 옷을 수선해 드릴 수도 있어요.
라이어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부탁할게!
헤헤. 오블리크, 너도 패션 감각 좀 키워보는 거 어때? 예를 들면 머리에 리본을 묶는다든지? 나 리본 엄청 많아!
사양할게요.
오블리크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처음 본 팔지와 헤바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했다.
하지만 라이어는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팔지와 헤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 나도 필요 없어!
오지 마. 난 머리가 짧아!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더 이상 어색함 따윈 없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젠 내가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네, 오블리크.
[player name] 님.
오블리크는 멀리서 지켜보다 떠나려는 인간을 불러 세웠다.
전에 하신 질문, 이제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재봉사 일을 하고 싶어요. 직접 만든 옷에… 제 마음을 담고 싶어요.
그리고, 하루빨리 평화로운 날들이 오길 바라요.
소중한 것들과 제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저는 앞으로도 계속 싸울 거예요.
<i>새벽의 마지막 별이, 곧 떠오를 태양을 알리고 있었다.</i>
<i>운명의 방직기 앞에서 그녀는 바람에 이끌려... 말없이 재단을 기다렸다.</i>
<i>하지만 실은 곧 현이 되어 마음의 시를 울렸고, 내일을 향한 서곡을 엮어냈다.</i>
오블리크는 손을 내밀어, 조금 늦어진 대답을 건넸다.
밝고 맑은, 하나의 선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