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3 연주로 엮인 서문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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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3-10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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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크!

삑삑 울리던 규칙적인 알람은 거대한 소음에 묻혔고, 곧 수송기의 착륙 방송이 흘러나왔다.

…!

오블리크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몸을 감싼 안전벨트가 끝까지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이 벨트가 아니었다면, 수송기 안에서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드디어 깼네. 깜짝 놀랐잖아. 또 전 기체처럼 후유증이 발생해서 널 업고 공중 정원까지 가야 하나 했다고!

의료 캡슐 VIP가 한 명 더 늘었네. 이젠 생명의 별 그 VIP 기록까지 따라잡겠는걸.

…전 기체?

아차, Ⅴ가 기체를 변경한 뒤에는 의식의 바다가 불안정해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혹시 최근 기억도 그 영향을 받은 건가?

그녀는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최신 파일을 찾기 위해 애썼다.

성갑충 소대에 들어온 이후, 그녀의 기존 기체는 전면적인 기술 점검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행동 장애가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기체 자료는 과학 이사회의 아시모프에게 전달되었고, 공중 정원에서는 새 기체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말해줄까?

네 의식의 바다는 누군가가 하나씩 다 뜯어냈다가, 엉망으로 꿰매놓은 것 같아.

마치 부품이 빠져 구멍투성이가 된 열차가 아직도 달리고 있는 꼴이지. 궤도 위에서 버티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야.

사오토메 유우카가 만든 의식 투사 안에서 무슨 꿈을 꾸셨나요?

죄송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검사 결과, 복부에 지속적인 관통성 손상이 확인되는데, 외부 충격의 흔적은 전혀 없어요.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몰랐어요.

새로운 수술을 받을지, 진지하게 고려해 보세요.

다시 일어나 걷기 위해, 오블리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땀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한때 자부심까지 느꼈던 반사신경은 이제 고통의 근원이 되어 오블리크를 괴롭혔다.

뇌는 존재하지 않는 두 다리에 끊임없이 통증 신호를 보냈다. 절단 부위는 바늘로 찌르고 칼로 베는 듯한 감각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반복적으로 뇌 속을 찌르던 고통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오블리크의 재활을 응원하며 항상 밝고 사랑스럽게 곁을 지켜주던 하녀의 얼굴도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

...

어쩌면 오블리크는 이 모든 변화가 갑작스레 일어난 게 아님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 미세 조정이야. 만약 이 기술이 안정적이고 대량으로 활용 가능했다면, 이런 구조체는 지금쯤 한둘이 아니었을 테지.

불필요한 의식을 버리는 건,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일이야.

일시적으로 효율이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인간성"과 정체성은 영원히 훼손된다.

계속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거다.

성갑충 소대 지휘관님, 대원 대신 새 기체를 신청하신 이유가 뭔가요? 또 무슨 남몰래 하셔야 할 일이 있으신 건가요?

개는 서열을 중시해서, 세상을 귀족과 평민으로 나눠서 봐.

아직도 마음에 두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개가 되든, 되지 않든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별반 다를 게 없어.

적어도 선택지는 있어야지.

정리된 자료를 건네받은 아시모프는 빠르게 문서를 훑어 내려갔다.

...

너희와 일하는 건 여전히 내키지 않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다행히 이런 의식의 바다 혼란 문제는 반즈의 치료 사례로 충분한 데이터가 쌓여있어.

오블리크에게도 시도해 볼 생각인가?

오블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찬성도, 반대도,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죠.

훌륭한 도구였지만… 위쪽 분들에게 있어서 그런 도구는 늘 넘쳐났으니까요.

오블리크는 원래부터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즐기지 않았다. 특히 무의미한 잡담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리고 리라코가 임무 중 연락이 끊긴 뒤로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임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는 그저 무의미할 뿐이었다.

임무를 받아 수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때로는 고정된 세트가 무너질 때도 있었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몽 속에서도 끊임없이 번져오는 그 구절, 오블리크는 무엇이 더 끔찍한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기체를 변경하기 전, 마지막 준비 단계로 맡았던 호위 임무에서 오블리크는 우연히 한 피난처를 발견했다.

모두가 우연이라 부르는 것조차 사실은 필연이었다. 오블리크의 갈망과 필요가 그녀를 이끌어왔던 것이었다.

보육 구역 외곽, 폐허가 된 성당 안에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건 석양과 저무는 빛에 바치는, 말없이 귀 기울이는 하늘과 땅에 바치는 연주였다.

오블리크는 돌에 앉아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격렬한 분노로 가득 찬 선율을 듣고 있으면, 마치 깊은 신앙에 잠긴 듯 모든 것이 잊혀져갔다.

성당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한 줄기 희미한 빛만이 창문 틈 사이로 비스듬히 비쳐들고 있었다.

이날, 성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오블리크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안으로 들어갔고, 결국 그 집요한 연주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고통스럽거나 강렬한 기억이 연상되면, 네 의식의 바다는 그게 좋든 나쁘든 자동으로 전부 잘라내 버려.

감정 "미세" 조정?

그럴 리가.

바렐리아의 가면 아래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유난히 차가웠다.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 그것이 곧 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블리크는 성갑충 지휘관과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지, 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할 말 있어?

...

아니요…

그저 피아노 소리를 따라온 것뿐이에요.

그럼, 이리 와.

오블리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금 전 아름다운 선율이 연주되었던 악기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낡고 초라해진 악기, 이 상태로 며칠 동안이나 격렬한 선율을 자아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악기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이내 손을 거두었다.

해보고 싶으면 해봐.

바렐리아의 시선은 오블리크를 지나 존재하지 않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나중에 후회해 봤자 이미 늦어.

저, 저는…

바렐리아는 평소답지 않게 오블리크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거절하며 뒷걸음치려는 오블리크를 개의치 않고, 억지로라도 자리에 앉게 한 뒤,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한때 전 많은 걸 잃었어요. 남은 건, 이 곡뿐이에요.

오블리크는 불안한 마음으로 손을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렸다. 훈련받은 근육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지만, 손가락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에 누군가가 비슷한 부탁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곧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과 함께 흐려졌다.

하지만 바렐리아는 재촉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연주자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머리카락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손목이 힘차게 오르내릴 때마다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연주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오블리크의 흐릿한 기억 속, 전문 연주자와 다를 바 없는 실력이었다.

연주자는 분명 음악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건 자연스럽게 음악을 탐구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연주였다.

F단조 제2번 피아노 협주곡 Op.21.

곡명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블리크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눈부신 감동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 빛 속에서...

Ⅴ, 와서 이것 좀 봐봐! 피아노가 있어!

폐허 속에서 반쯤 부서진 피아노를 찾아낸 슈트롤은 두 손가락으로 서툴게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만해. 그러다 적이라도 오면 어쩌려고.

유명한 협주곡인데, 어때? 듣기 좋지?

...

피아노 소리는 엉성하고 음정도 맞지 않았지만, 슈트롤은 끈질기게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하는 중에도 슬쩍 눈치를 살피며 바렐리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형편없어.

바렐리아는 무너진 벽에 기대어 상처를 감싼 채, 연주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자리를 지켰다.

한때 폐허였던 곳들은 조금씩 정비되면서 지금의 보육 구역으로 바뀌었고, 낡은 피아노도 기적처럼 보존되어 남아 있었다.

연주는 중단되지 않고 협주곡으로 이어졌다.

피아노 건반이 눌릴 때마다,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슈트롤이 네 이야기를 한 적 있어.

처음 보자마자 길을 잃은 게 티가 났다고, 예전 근무 때 만났던 울음을 멈추지 않던 어린아이와 똑 닮았다고 했어.

...

바렐리아는 멈추고, 오블리크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블리크는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떨려왔지만, 마치 누군가 그 손을 받쳐주고 있는 듯했다. 귓가에 들리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오블리크에게 연주할 용기를 전해주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띵—

모든 혼란스럽고, 깊고, 시끄럽고, 무질서한 들끓음이 전부 사라졌다. 마치 피아노 소리에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 것처럼.

이어서 두 번째 건반, 세 번째 음이 이어졌다.

멜로디는 기억보다 느리고 서툴게 흘러갔다. 오블리크는 천천히 속도를 올려 음표의 변화를 느끼며, 점차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이 놀랍게도 그녀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더 이상 선율이 그녀를 이끄는 것이 아닌, 그녀가 곡을 이끌고 있었다.

처음 마주했던 달빛, 숨 막히던 사투, 자유의 회랑.

신성한 밤과의 재회, 죽음을 알리는 연회, 마지막 이별.

멀고도 아득한 시간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왜곡되었던 순간들이 다시금 그녀 앞에 찾아왔다.

그녀는 지금, 이 곡을 직접 연주하고 있었다.

표정이 좋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공기는 완전히 식어, 서늘한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저녁 종소리가 울렸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렐리아가 성갑충 휴게실 문 앞에서 오블리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짙은 안개빛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오만과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사령관님과 과학 이사회는 이미 알고 있어. 얼른 이 기체를 바꾸는 게 좋아.

네 의식의 바다를 하나씩 다시 채워 넣을 거야.

근교

지상

지상, 근교

정신이 고갈돼 쓰러진 Ⅴ 대신...

...

풀이 죽어 있는 대원의 모습을 본 팔지는,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이번 임무 지휘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player name]에게 맡길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Ⅴ랑 오랫동안 함께했는데, 원래 말없이 이런 일 하는 스타일이야.

Ⅴ가 묻지 않는 건, 이미 네 답을 알고 있다는 뜻이야.

그나저나, 잘 적응하고 있지?

네. 기억이 모두 돌아왔어요.

대답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오블리크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자가 점검 결과, 기체 상태는 양호해요. 임무 수행에는 문제없어요.

정말이지?

팔지의 시선이 오블리크의 머리카락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걱정이 담긴 얼굴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고.

끝나면, 기체 출력 상세 데이터를 보고해 줘.

만약 기체가 이상하다고 판단되면, 나나 [player name]에게 언제든지 얘기해. 지원 요청해 줄 테니까.

알겠어요.

나...

팔지가 마치 총알을 피하듯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헤바가 찡그린 표정으로 십자 모양을 만들었다.

…박하 탄산음료 전해액 10병이야.

…정보 수집은 내가 확실히 할게.

오블리크는 눈을 떴을 때 팔지가 곁에 있었던 게, 이번이 몇 번째인지 떠올리며 서툴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고맙긴, 우린 동료잖아. 내가 뭐라고 했어, 널 업고 돌아올 때마다 인사하면, 평생 해도 다 못 할걸?

침묵이 이어지는 게 어색했는지, 팔지는 머쓱한 듯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다, 너 재봉 잘 한다면서? 부탁 좀 해도 돼? 다음에 정원 고등학교 교복 하나 만들어줄 수 있어?

...네.

인간이 임시 거점에 도달했을 때, 성갑충 소대의 대원 셋은 이미 완전무장하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블리크가 새 기체로 변경할 때, 아시모프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해 주었다. 특히 그녀의 의식의 바다와 관련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었다.

임무는 로프라도스 근처에 있는 숨겨진 거점에 잠입해, 가치 있는 자료를 모두 가져오는 것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승격자가 이곳을 자주 오간 흔적이 있다고 했다.

출발을 앞두고, 낙성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오블리크는 줄곧 고개를 숙인 채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단순히, 깊은 연이 있는 장소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어 심경이 복잡한 줄 알았다. 그러나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에, 기계 구조와 함께 붉은빛이 깜박이는 전자 펄스 목걸이가 채워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

필요한 안전장치예요.

만약 의식의 바다 문제로 제 기체가 통제를 잃게 되면, 지휘관님이 긴급 신호를 입력해 제 행동을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어요.

인간 지휘관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당시 리브가 사용했던 기술과 유사한 방식이었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원리는 같았다.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몸을 살짝 떨더니, 순순히 돌아서 지휘관 앞에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휘관이 권한을 이용해 목줄의 잠금을 해제한 것이다. 긴급 해제 경보음과 함께, 붉은빛을 내던 장치가 가볍게 벗겨졌다.

?!

임무 수행 전, 기체 적합 기간에 바렐리아를 대신해 오블리크의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킨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상황은 더 많은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강압적인 수단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휘관은 오블리크라는 구조체를 알게 된 후, 그녀를 신뢰하게 되었다. 오블리크 역시 동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목줄에는 위치 추적 기능도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

알겠어요.

케르베로스 소대는 승격자의 흔적을 쫓고 있었고, 백로 소대는 상공에서 대기하며 지원 임무를 맡았다. 성갑충 소대는 주력 공격수답게 목표 지점에 은밀히 접근해 침투할 준비를 마쳤다.

헤바가 수집한 지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점의 3D 예측 모델이 모든 대원에게 전달되었다.

이곳은 거점이라기보다는...

황량한 산속에 계류된, 완전한 기능을 갖춘 함선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시설이 과거의 재앙을 겪고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목표 거점까지 5킬로미터 남았어.

수송기가 천천히 하강했다. 은밀한 작전 수행을 위해 차량으로 바꿔탄 후 계속해서 이동했다.

다 타서 없어진 땅 위로 차가 바큇자국을 남기며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뒤에 왜 침식체가 따라오지? 들킨 건가?

아니, 원래 이곳은 실험장이었어. 방금 수송기 소리 때문에 근처에 남아 있던 놈들이 따라붙은 거야.

전자 궤도포 한 발이 지휘관의 차량 주변에 떨어지자, 거대한 누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번엔 진짜 외곽 자동 방어 시스템에 걸린 거 같은데.

참 빨리도 알려준다, 고마워.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은밀하게 행동하라는 거야?!

팔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블리크가 움직였다.

차에서 뛰어내려 거대한 가위를 높이 던지더니, 바닥에 깔린 자기장을 밟으며 궤도를 조정해, 궤도포의 포구 방향을 하늘로 돌렸다.

소대의 나머지 대원들도 즉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최대 사정거리 안에서 보조 연산으로 궤적 수정 중이야.

셋, 둘, 하나! 팔지, 지금이야!

눈부신 섬광과 함께 발사된 궤도포가 움직이는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했다.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는 오블리크의 치맛자락을 스치고 날아가, 멀리서 폭발을 일으켰다.

인간은 재빠르게 총을 뽑아 사격했다. 우아하게 착지한 오블리크는 즉시 거대한 가위를 휘둘러 근처에 굴러든 침식체를 완전히 베어냈다.

황무지에, 마치 심판과도 같은 십자 섬광이 하녀의 주변을 중심으로 연이어 번쩍였다.

운전석에 앉은 헤바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자, 강렬한 가속이 몸을 짓눌러 숨이 턱 막혀왔다.

멈추면 안 돼! 침식체가 점점 더 몰려들 거야!

그럼, 오블리크는 어쩌고?

셋의 시선이 일제히 폭풍 속에 홀로 서 있는 하녀에게로 향했다.

오블리크는 양쪽으로 나뉜 가위를 각각 실로 당겨오더니 힘차게 땅을 딛고 달리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침식체들이 일제히 그녀를 쫓으며 차량 뒤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질주하는 차량 앞에도 침식체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인간의 외침이 강한 바람에 흩어졌다.

괜찮아. 이 정도는 지난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미안하지만,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성갑충 소대야!

헤바, 계산 좀 도와줘!

이미 하고 있어!

팔지는 순식간에 차량 지붕 위로 올라서더니, 눈앞의 적 무리를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번쩍이는 전광이 잔영을 남기며 퍼져나가자, 앞을 막고 있던 적 무리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잘려 나간 기계 팔과 다리들이 굴러다니다가 차량 바퀴에 깔려 먼지 속에 묻혔다.

몇몇 침식체가 차량을 쫓던 걸 멈추고, 달리고 있는 오블리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녕. 그리고 잘 가!

오블리크가 가위를 땅에 깊이 박고 회전하며 베기 시작하자, 주변에 무수한 균열이 생기며 공터가 만들어졌다.

오블리크는 쓰러진 침식체들을 디딤돌 삼아 계속 앞으로 달려갔다. 자기장이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차량의 뒤 범퍼에 연결되었다.

타이어에서 나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차량이 멈췄다.

차량은 거친 땅 위에서 미끄러지며 고약한 고무 타는 냄새를 풍겨왔다.

죄송해요.

작은 보루처럼 견고했던 군용 차량은, 오블리크의 충격파에 의해 들어 올려지더니,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결국 차량은 앞뒤로 완전히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지붕과 운전석에 있던 팔지와 헤바는 급히 차에서 뛰어내렸다. 과부하에 시달리던 엔진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침식체들이 가장 밀집한 중심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뒷좌석 중앙에 앉아 있던 인간 지휘관은 차 문을 잡기도 전에, 차량과 함께 허공 2~3미터 위로 던져졌다.

새 기체가... 아직 좀 불안정한 것 같아요.

남은 차량 외장이 가위로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오블리크는 그 중심에 서서 떨어지는 인간을 두 손으로 받아낸 뒤, 별로 미안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해요.

아...

하?!

...돌아가면 공공물 파손 보고서 써야겠네.

그 후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목표 지점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잠금장치가 풀리며 함선 문이 서서히 열렸다. 안쪽은 음침하고, 적막이 짙게 깔려 있었다.

헤바는 높은 곳에 남아 정찰 및 경계를 맡기로 했고, 나머지는 줄지어 내부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