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3 연주로 엮인 서문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13-3 실

>

뭐라고?

시간을... 더 줄이라고?!

도시의 대형 공장들은 주문이 밀려서 기계를 24시간 돌려도 모자라는데, 이제 우리더러 남은 부자재까지 꿰매서 그 공백을 메우라고?

앞당겨!! 더 빨리!!

바늘의 외침이 밤하늘에서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큰 공장들이 일감을 다 가져가고, 우리는 찌꺼기나 건지면서 밤새 이 보잘것없는 구슬이나 꿰고 있고!

그 인간들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기나 할까? 이렇게 무거운 옷 한 벌 꿰매서 고작 빵 몇 조각 벌어오는 현실을 알기나 하냐고?!

퉤! 다들 자격 없어, 전부 다 자격 없어!

바늘은 점점 더 격해지며 온몸을 떨었고, 결국 반쯤 완성한 드레스를 힘껏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귀한 자수 실이 끊어지며 크고 작은 진주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 주문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며칠 밤을 새워가며 작업했다.

산더미 같은 작업량과 절반으로 줄어든 기한에 모두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은 기계처럼 끝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기진맥진한 얼굴마다에 짙게 패인 다크서클과 생기 잃은 눈빛이 도장을 찍은 듯 똑같이 박혀 있었다.

그만해! 이 진주들이 너나 내 목숨값보다 더 비싸다고!

천은 자신의 뚱뚱한 몸을 거의 바닥에 깔다시피 한 채, 떨어진 진주들을 조심스레 주웠다.

값... 값! 값!!

우리가 죽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진주 하나가 페달 틈새로 굴러 들어갔지만 손이 닿질 않았다. 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땀이 눈으로 흘러내려 따갑게 파고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덩치 큰 그마저도 무너져 내렸다.

그럼 어쩌라고? 손님이 왕이잖아.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시간이 모자라다고? 그걸 누가 알아줄 것 같아? 위약금에 0이 몇 개나 붙어있는지 보고 말해!

스승님은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오늘도 흰 셔츠를 내쫓고 혼자 안에 틀어박혀 계셔…

설득이 통하지 않자, 흰 셔츠가 문밖에서 목청껏 외쳤다.

여러분, 힘내세요! 아직 일거리가 있다는 게 어디예요. 기계에 다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는 것보단 낫잖아요!

천의 머릿속은 웅웅 울렸고, 심장 소리는 귓가에서 쿵쾅거리며 메아리쳤다.

아니타, 스승님께서 평소에 널 제일 많이 아꼈잖아. 네가 가서 좀 말씀드려봐!

나도 여러 번 얘기 했었어. 하지만 스승님은 절대 안 된다고, 이렇게는 물러날 수 없다고만 하셔.

실은 낙담한 채 고개를 떨구고, 손끝으로 바닥을 긁적였다.

정말 더 나은 선택지는 없는 걸까?

손가방 안에 신용카드가 한가득이야! 이 노인네는 우리가 끝도 없는 주문에 지쳐 쓰러지고 있는 게 보이지도 않는 건가?

난 그냥 내 입에 풀칠할 수만 있으면 돼. 챙길 가족도 없고...

…난 우리 딸 미래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게, 제대로 꿰매고 싶으면…

그만해. 바느질이 아무리 고와도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어! 대신 진주 하나라도 빠지면, 당장 집까지 찾아와서 따지겠지!

그럼 대충 꿰매면 되잖아?

말꼬투리 잡지 마. 이건 공정한 경쟁이야! 다른 사람보다 잘하지 못하고, 기계보다 빠르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는 게 당연해!

가위는 평소와 달리 침착함을 잃은 채, 야근에 미쳐버린 사람처럼 과장되게 고개를 흔들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삶에 만족할 거야? 평생 이대로 버틸 거냐고?

잠깐이었지만,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무슨 뜻이야?

실은 조심스럽게 진주를 주워 천에게 건네며, 바늘이 한 말에 대해 물었다.

무슨 뜻이냐고?

고객은 우리가 수백 시간을 들여, 밤낮없이 정성을 쏟아 만든 값비싼 드레스를 가져가. 그 안에 얼마나 정교한 기술이 들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깃들었는지 몰라…

빛깔이 풍부하고, 손끝에 닿는 촉감도 특별할 테지. 하지만 금실과 은사로 수놓은 그 옷은 결국 커다란 드레스룸 구석에 처박혀, 수천수만 벌 중 하나로 전락해 버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새 옷만 해도 백 년을 입고도 남아! 요람에서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계속 갈아입어도 모자라지 않다고!

바늘은 자기 옷에 묻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왼쪽 귀의 오래된 상처를 무심코 쓰다듬었다.

그녀는 납품 당시, 자신이 직접 만든 고급 실크가 아까워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그로 인해 고객에게 뺨을 세게 맞고, 고막이 터져 귀에서 피가 흐른 적이 있었다.

그 더러운 손 치워.

다행히 옷에 피가 묻지 않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한 대로 안 끝났어.

그 정교한 자수들은 분명 바늘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더러운 걸 보듯 쳐다봤다. 바늘은 그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참고만 있는 늙은 재봉사의 모습을 보며, 바늘은 공방의 현실과 미래에 완전히 절망하게 되었다.

하, 그 고객은 공방에 오래 드나든 큰손이라,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대신 팁을 좀 더 얹어줬어… 위로금이라나 뭐라나…

지. 겨. 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쳐 있던 바늘의 눈이, 마치 불꽃이 튈 것처럼 이글거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가위는 바늘의 원망 서린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위는 바늘이 지난 10년간, 이 일대에서 가장 뛰어난 자수 장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쳐 쓰러지면서도 보답 없는 희망을 붙들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기적 같은 작품이 바늘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이젠 아무도 그 기적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새로운 생산 방식은 분명 인간에게 안정과 휴식을 가져다주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일만 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내 얘기는… 부자가 되지 못하면 결국, ** 드레스룸 구석에 처박혀 썩어갈 뿐이라는 거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세상은 가난뱅이에게 관심 없어. 난 무슨 기회든 붙잡을 거야. 노숙자 무리에 끼고 싶진 않아!

무슨 수로 설득할 건데? 이 땅을 사려고 열댓 번이나 찾아온 흰 셔츠도 매번 스승님에게 쫓겨났어. 아니타도 말했듯, 스승님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

처음에는 시세의 1.5배를 제시했지, 하지만 낮에 왔을 땐 가격이 이미 3배로 올랐어.

3배?! 그럼 엄청난 기회잖아!

바늘은 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돈만 손에 들어오면, 더 이상 이 낡고 허름한 방에서 물집 잡힌 손으로 바느질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황금빛 석양 같은 희망이 스칠지도 모른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익이 두 배가 되면, 사람들은 양심마저 팔아넘긴다.

천은 어딘가 불편한 듯 목을 가다듬었다.

네 생각은 달라? 뭐,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이 낡아빠진 공방을 쉽게 뺏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말해 봐.

아니. 없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야 해.

고집 센 늙은이… 은퇴식이라도 근사하게 치러 드려야겠어.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해 왔는데, 매정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

늦은 밤. 오블리크는 강아지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늘 그렇듯, 늙은 재봉사는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아 이불을 덮어 주었다.

오늘은 책 읽지 말고, 그냥 얘기나 할까?

오늘따라 재봉사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오블리크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멜로디아야, 바늘 이모... 어때?

바늘 이모는... 무서워요. 공방 여기저기에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막 던져놔서, 말 걸기가 겁나요.

숫자가 적힌 그 알록달록한 종잇조각들은 대체 뭘까요? 쓸모 있는 거면 왜 찢어버리고, 왜 자꾸 들여다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이 앞이라, 늙은 재봉사는 한숨을 꾹 눌러 참았다.

음, 그럼 실 이모는?

실 이모는 착해요. 자꾸 우는 바늘 이모를 달래주기도 하고, 천 아저씨 딸이 태어나면 입힐 거라면서, 어디선가 부드럽고 비싼 천도 구해왔어요.

근데 겁이 많아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말할 땐 항상 목소리를 낮춰요.

늙은 재봉사는 잠시 생각하다 또 물었다.

그럼, 천 아저씨는 어때?

천 아저씨만 저를 칭찬해 줘요. 그리고 사람들이 싸울 땐, 그 누구의 편도 안 들어요.

재봉사는 오블리크의 예리함에 놀랐다.

마지막으로, 가위 삼촌은?

모르겠어요. 가위 삼촌은 저한테 말을 안 걸어요…

오블리크의 눈이 점점 감기며, 긴 속눈썹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웠다.

가위 삼촌은 바늘 이모와 같이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 말을 많이 해서 피곤하지? 이제 잘 시간이야.

오블리크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공방은 여전히 밤새 돌아가고 있었지만, 소녀는 그 소음 속에서 잠드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노인의 그림자가 더욱 구부정해 보였다. 그는 편지를 담아 두었던 철 상자를 조심스레 감춘 뒤, 오블리크를 위해 옷장에 차곡차곡 준비해 둔 옷들을 하나씩 어루만졌다.

이제 나이가 들어 눈은 침침해졌고, 손도 더 이상 예전처럼 바늘을 다루지 못했다. 평생을 바쳐온 공방은 곧 머지않아 남의 손에 넘어가겠지만, 적어도 오블리크 곁을 지켜 줄 무언가는 남겨주고 싶었다.

이왕 태어났으니, 세상의 따뜻함을 좀 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때가 됐네.

늙은 재봉사는 결심했다.

캐서린은 성격이 급하고 계산에도 약하지만, 손재주는 누구보다 뛰어나. 좋은 디자이너 밑에서 조수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거야.

베시는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어디서든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알아서, 앞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적합하겠고... 커스턴스는 마음도 손길도 날카롭고 정확해서, 어리석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아니타는…… 참, 뭐라 해야 할까.

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사려 깊어. 지나온 삶 때문인가?

멜로디아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공방을 지탱해 줄 사람으로 적합하겠어…

늙은 재봉사는 짧게 깎은 연필 끝을 쥐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늙은 재봉사는 기침을 몇 번 한 뒤, 시작 부분만 적힌 누렇게 변색한 편지를 급히 숨겼다.

아처 스승님, 다음 달이 크리스마스잖아요. 저희가 작은 파티를 준비했는데, 오늘만큼은 일을 쉬는 게 어떠세요?

파티? 하지만 납품이 코앞인데… 주문받은 물건이 아직…

곧 멜로디아 생일이잖아요? 저희가 특별히 깜짝선물을 준비했어요.

음... 그러네.

그래, 멜로디아는 내 보물이니까!

공방의 불빛은 한층 어두워졌고, 재봉틀은 여전히 지친 벌처럼 느릿느릿, 공허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 이제 어쩌지?

…이렇게 된 이상,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럼... 멜로디아는?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목에 건 건 강아지 목걸이 하나뿐인, 더럽고 지저분하고 박테리아 덩어리 같은 꼬맹이. 스승님의 쓸모없는 것들을 주워 모으는 습관만 아니었다면, 진작 겨울 눈밭에서 얼어 죽었을 애야.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다들 알고 있잖아?

그치만… 아직 어린애잖아.

그때 그냥 눈 속에서 죽게 내버려둬야 했었어. 넌 그냥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은 거잖아, 이 겁쟁이!

오블리크는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공방은 기묘할 만큼 고요했지만 공기 속에서, 뭔가 낯선 냄새가 났다.

침대 머리맡에 있어야 할 가장 소중한 강아지 인형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속상함과 불안함을 꾹 누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어디 갔어, 강아지야...?

오블리크는 눈물을 참으며,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인형을 찾아 나섰다.

그냥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아버리자. 여자아이라 인기도 많고, 가격도 높게 받을 수 있을 거야.

뭐? 난 중개인들한테 좋은 일 해줄 생각 없어. 얼마나 떼먹을지 누가 알아?

저 머리색, 흔치 않잖아. 낙성의 어느 귀족의 사생아일지도 모르지. 그럼, 키워서 양육비 뜯어내는 거야.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 같은 얘기를 좋아하잖아.

흠, 어쩌면 그냥, 길 잃은 가난뱅이 둘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양심일지도 몰라. 넌 도박 좋아하니까 혹하겠지만, 난 질색이야.

평소보다 더 어두워진 공방 안에서, 오블리크는 벽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하루이틀 계속 이렇게 기다릴 거야? 저 거대한 낙성은 이제 엘리트와 상류층 사람들만 찾는 곳이 됐어.

잘 봐, 지금이야말로 좋은 찬스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어쨌든, 이제 이 공방에 멜로디아의 개인 물품은 하나도 안 남아있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아빠는요? 아빠는 어디 갔어요?

문 뒤에 몸을 기대고 반쯤 얼굴을 내민 오블리크는,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 그녀는 움츠린 채 두 팔로 스스로를 꼭 끌어안았다.

그림자 속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더니, 아이를 거칠게 붙잡아 공방 대문까지 끌고 갔다. 몇 년 전, 늙은 재봉사가 그녀를 처음 발견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아파요! 실 이모…

평소 여리디여린 실 이모에게 이런 힘이 있는 줄 몰랐다.

실은 소녀를 놓아준 뒤,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떨고 있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은 그녀의 눈엔, 깊은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스승님은... 아주 먼 곳으로 떠났어.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으실 거야.

착한 아이야, 얼른 도망가. 멀면 멀수록 좋아.

그녀는 차갑디차가운 무언가를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블리크는 그 익숙한 모양새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 인식표...

언젠가, 너에게도 기회가 올 거야.

실이 등을 떠밀자, 아이는 휘청이며 앞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사방에서 작은 불꽃들이 피어올라 한 점 두 점 모이더니, 벌레에 물린 자국처럼 빽빽해졌다. 곧 검은 연기와 함께 이글거리는 불꽃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착하지 않아서, 매일 성모님께 기도드리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야…

더 이상 날 원하지 않아... 저들은 더 이상 날 원하지 않아!

블라터… 전부 너 때문이야!

...

저리 가! 다시는 널 안 볼 거야!

...

성모 마리아는 너도, 그 누구도 구해주지 못해.

공포에 휩싸인 오블리크는 인식표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인식표 위로 번졌다. 그러나 소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마치 뒤에서 악마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필사적으로 휘청이며 도망쳤다.

친부모를 찾으라고요? 관심 없어요. 제게 부모님은… 늙은 재봉사 한 분 뿐이에요.

알아. 늙은 재봉사는 널 많이 아꼈지.

널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국엔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됐어.

과연 누가 늙은 재봉사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네 삶을 망가뜨리고, 널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만든 걸까?

넌 그 진실과,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범인을 알고 싶을 거야.

맞아요. 전… 진실을 알고 싶어요.

넌 방랑 생활을 하면서, 보육원과 재봉사 집에서 느꼈던 분노와 원한을 조금씩 잊어 갔어.

아니에요. 전 잊지 않았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예요.

넌 이제 힘을 가졌고, 자유도 얻었어. 더 이상 허둥대며 도망치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야. 늙은 재봉사의 복수를 하고 싶어?

복수...

네, 복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