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은 잘 기억이 안 나요. 아빠 말로는 제가 공방 문 앞에 버려져 있었을 때 몸에 개 인식표 하나만 들고 있었대요.
그때 그 인식표가 반짝이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 눈 속에서 얼어 죽었을 거예요.
아빠는 그 인식표가 저를 수호해 주는 부적이라고, 늘 지니고 다니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아꼈던 거구나.
네. 하지만 바늘 이모는 항상 저를 싫어하셨어요. 제가 더러운 떠돌이의 자식이니, 개가 물어온 애라느니... 하시면서요.
아빠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제가 아빠의 보물이라고 하셨어요.
소녀의 얼굴은 모자챙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의 시끄러운 소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새끼손가락으로 찻잔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곧, 은은한 목소리가 뜨거운 차 수증기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다음은?
오블리크의 어린 시절은 늘 조심스러웠다.
정체가 알려져 불필요한 소문이 퍼질까 두려웠던 공방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조용히, 얌전히 지내라 당부했다.
어린 오블리크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키가 자라자, 재봉사는 마침내 그녀를 자신의 딸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늙은 재봉사의 방에는 철제 상자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편지들이 빨간 "반려" 도장이 찍힌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하지만 오블리크가 나타난 뒤로, 그는 더 이상 반려된 편지를 그 상자에 넣을 일이 없게 되었다.
녹슨 냄새와 빈 옷장도, 그녀 덕에 의미를 잃었다.
그는 오블리크를 진심으로,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이 아이는 하늘이 제게 주신 선물이에요.
늙은 재봉사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다.
제가 안고 있는 존재가, 곧 저의 행복입니다.
늙은 재봉사의 손은 언제나 그 아이의 가벼운 무게와, 잠시 스치듯 남은 따스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멜로디아, 키가 또 자랐네? 이제 곧 처마에 닿겠구나!
늙은 재봉사는 나무 자로 선을 그으며, 나이테처럼 늘어나는 흔적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느 날, 공방의 제자들은 스승님께서 더 이상 반려 도장이 찍힌 편지를 쓰지 않고, 대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걸 발견했다.
「매일 직접 밥을 해주고, 귀여운 옷을 입은 멜로디아와 손을 잡고 함께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 걸까. 어서 성인이 된 멜로디아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늙은 재봉사는 펜을 내려놓았다. 안경을 벗은 그는 일기장 위에 떨어진 작은 잉크 방울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니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구나. 넌 아직도 이렇게 어린데... 조금만 더 네 곁에 머물고 싶구나.」
재봉사는 오블리크의 성장이 기쁘면서도, 자신이 곁에 오래 있어 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첫걸음마, 첫 번째 넘어짐, 그사이 울고 웃는 시간들. 재봉사는 오블리크의 생일마다 케이크를 구워주었고, 무료함을 호소하는 딸의 성화를 못 이겨 바늘에 실 꿰는 법, 아동용 가위를 안전하게 쓰는 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아직 너무 어렸던 오블리크는 자신이 공방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알지 못했다.
어른들의 미묘한 태도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자신이 보고 배운 재봉사 일에 몰두했다. 해진 천 조각을 가지고 놀던 것에서 시작해 삐뚤빼뚤하게나마 자기 옷을 기워보기까지 이르렀다.
이건 재봉실이고, 이건 실뜯개야.
실은 보기엔 부드럽지만, 팽팽히 당기면 칼처럼 날카로워. 쓸 땐 조심해야 해.
그녀는 바닥에 앉아, 일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실 이모! 지난번에 못 찾으셨던 바늘, 여기 있어요!
어머, 눈이 참 밝구나.
아이들은 항상 밝게 웃어 주는 실을 무척 따랐다.
천이 사용할 비단을 안고 걸어오면서 궁금한 듯 물었다.
멜로디아, 왜 재봉이 배우고 싶어졌어?
재봉할 줄 알면, 공방 일을 도울 수 있잖아요!
옆에서 재단 작업을 하고 있던 바늘과 가위는 그 말을 듣고 순간 손을 멈칫하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재단용 가위를 쳐다보는 오블리크를 보며, 천은 문득 미래에 태어날 자기 딸의 모습이 그려졌다.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고, 천은 그런 마음을 담아 다정한 목소리로 오블리크를 칭찬했다.
기특하네. 하지만 그런 날카로운 건 아직 네겐 위험해. 차라리 인형이랑 노는 게 더 좋지 않겠니?
단지 아이의 순진한 말이었지만, 몇몇 제자들에게는 그다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공방의 수입은 이미 예전만 못했고, 기술을 배워도 과연 앞날이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시대는 기계가 제품을 양산하는 단계까지 발전했고, 유명 디자이너들의 이름은 언제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시대에 손바느질을 고집하는 평범한 공방은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뿐이었다.
세계 최고의 유흥 도시, 로프라도스에는 상류층 고위 인사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장부의 신용 포인트는 한 번의 손가락 튕김으로도 분수처럼 솟아올라 넘쳐났다.
값비싼 정장과 드레스, 그리고 그 위에 뿌린 VIP 살롱 향수는 신분과 재력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매일 달라야 했고, 단 하루라도 남에게 뒤처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권력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유일무이였다.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 자원을 들이든 상관없이, 그 과시 경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장인 정신과 순수 핸드메이드!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사교장에서 뽐낼 수 있는 진정한 우월감의 원천이었다.
사람들은 미디어가 쏟아내는 성대한 만찬과 뉴스 속 돌파구에 열광했다. 보험업은 그 어느 때보다 융성했고, 마치 이 화려한 시대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 눈부신 삶을 황금시대의 빛이라 불렀다. 빛이 눈 부신 탓에 주변은 잘 보이지 않았고, 작은 공방 같은 구석진 곳은 더더욱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공방 일을 돕는다라...
시대는 바뀌었어…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여자아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다들 무슨 시대를 말하는 거예요?
미래를 걱정할 필요 없는 자만이 마음껏 삶을 즐길 수 있었다. 황금시대의 의미는 사람에게마다 달랐다.
오블리크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고, 시대의 흐름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인형을 품에 안은 채 깡충깡충 뛰어가며, 무거운 침묵이 가득한 공방을 떠날 뿐이었다.
지금 다섯 살 된 아이에게 걱정거리는 단 하나였다.
우리, 걔네한테 같이 놀자고 해볼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 인형도 보여줄 수 있어!
가서 물어봐, 근데 걔네가 널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망설이던 오블리크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른 뒤, 용기를 내어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우리 같이 놀래?
넌 개가 물어온 버려진 자식이잖아! 너하고 안 놀아!
한 여자아이가 손가락질하며 비웃자, 다른 아이들도 킥킥거리며 따라 웃었다.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봐, 내가 뭐랬어.
부모 없는 애랑 놀면 우리까지 재수 없어진단 말이야!
아니야, 있어! 재봉사가 우리 아빠야!
하, 그 사람은 네 할아버지나 다름없잖아. 너도 언젠가는 함께 버려질걸?
그렇지 않아!
봐, 널 무시하고 네 아빠 욕까지 하고 있어.
그때가 되면, 넌 더러운 길바닥에서 강아지처럼 쓰레기나 주워 먹고 있겠지! 하하하!
이참에 본때를 보여줘!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버려!
오블리크는 이를 악물고, 우두머리 소녀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비웃고 있을 때, 옆으로 다가가 힘껏 밀쳐 버렸다.
여자아이는 차가운 웅덩이에 그대로 넘어졌고, 옷과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더러운 흙탕물로 뒤덮였다. 여자아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리자, 다른 아이들도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졌다.
잘했어! 힘이 전부라는 걸 보여줘야 해.
봐! 이제 누가 더러운 애 같아?
이제 아무도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자, 가슴속에 묘한 쾌감이 일렁였다. 오블리크는 어쩌면 블라터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늙은 재봉사가 늘 중얼거리던 기도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늙은 재봉사는 독실한 신자였다.
시대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종교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보다 진보를 더 믿게 되었지만 그는 달랐다.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는 대화를 마무리할 때 가끔씩 이 말을 덧붙였다. 공방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에게는 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양심이 부끄럽지 않은 자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
늙은 재봉사는 매주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걸 무엇보다도 중요시했고, 가끔은 오블리크도 함께 데려갔다.
어른들의 기도문을 이해하기에 아직 이른 나이였던 오블리크는, 그저 발밑의 타일을 하나둘 세며 시간을 때웠고, 타일이 170개, 180개쯤 될 때면 기도가 끝났다.
성당에 가지 않는 날이면, 늙은 재봉사는 손을 깨끗이 씻고 거실 문가에 앉아 이렇게 기도했다. “세상을 떠난 자들이 빛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재난에서 구해주소서.]
흑흑... 너 나빠...
나... 난...
으앙... 이를 거야! 네가 한 짓, 전부 다 얘기할 거야!
내가… 내가 잘못한 건가?
그럴 리가.
신경 쓰지 마.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진짜 친구는 나라고~
우리 그네 타러 가자.
오블리크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하지만 늙은 재봉사를 욕한 건 분명 옳지 않았다.
소녀는 그렇게 두 세계의 경계 사이에서 헤매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 세계는 빛나고 따뜻하며 언제나 옳음을 요구했다.
거기서는 잘못을 저지르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선한 영혼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는 낯설고 불길했으며, 잿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규율을 어긴 자들만 모여 있는 곳임에도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다.
블라트 같은 존재가 바로 그랬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며, 세상의 질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블리크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따뜻하고 안전한 질서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다른 세계에 남아,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왜…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는 거야?
넌 나만 있으면 충분해.
그냥 장난이었겠지? 난 잘못한 게 없어…
오블리크는 자신을 달래 보았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발목을 옥죄었다. 소녀는 늙은 재봉사가 이런 일을 싫어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늙은 재봉사가 있는 공방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고 공정해야 했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꾸짖음을 받고, 반드시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제자들은 그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불평했지만, 그의 "절대적인 옳음" 앞에서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성모님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끝없는 사랑으로 감싸주신다. 그 말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안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오블리크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성모님께 기도하면, 과연 자신의 불안이 사라지고, 옳고 그름을 알려주실까?
오블리크는 조심스럽게 작업실 문을 열었다. 천 더미 속에서 고개를 든 늙은 재봉사가 미소 지으며 손짓했다. 그 순간, 익숙한 향기와 함께 따뜻하고 안전한 공기가 퍼져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이제 다시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올겨울만 지나면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준비물도 다 마련해 뒀단다. 곧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될 거야.
학교요?
오블리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반 발짝 물러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을 꼬아 쥐던 그녀의 눈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학교는 뭐 하는 곳이에요?
절 보내시려고요? 이제 제가 필요 없어진 건가요?
날씨가 금세 나빠졌다. 짧은 겨울 햇살은 사라지고, 두꺼운 구름이 솜이불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공방 안은 잿빛으로 가라앉고, 사방에 먼지가 흩날렸다.
오블리크의 밝고 안전했던 세계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하하. 그런 게 아니란다. 내가 널 왜 버리겠니? 낮에 학교에 가고, 저녁이면 내가 데리러 갈 거야.
왜 꼭 "학교"에 가야 해요?
학교에서는 지식도 배울 수 있고, 네가 좋아하는 것도 찾을 수 있어. 무엇보다도 새로운 친구들이 많단다. 학교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야.
새로운 친구... 블라터 말고 다른 친구도 생길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애들은 저와 친구 하고 싶지 않대요. 저보고 엄마 아빠 없는 나쁜 아이래요...
늙은 재봉사는 그녀의 축 처진 얼굴을 보며 손을 맞잡았다. 그는 자신의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왜 나쁜 아이야…
매일 재봉 일도 열심히 배우고, 커서 아빠를 도와주겠다고도 했잖니? 학교에 가면...
늙은 재봉사는 오블리크의 품에 안겨 있던 인형을 살며시 받아 들고,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가기 싫어요. 저는 바느질이 좋아요! 아빠가 계속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전 그걸로 충분해요!
네 이름과 아빠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지 않아?
이름이고 성이고… 전 잘 모르겠어요.
하하, 아빠 이름은 멜로디아보다 훨씬 길어. 할아버지와 그 윗대 조상들, 그리고 이 공방의 역사까지 다 담겨 있단다. 너도 그동안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 도구 이름으로 부르며 불평했었잖니.
학교에 가면 이름도 다 배우게 될 거야. 남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예의이기도 해.
정말이에요? 학교만 가면 다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럼. 그 전에 아빠가 먼저 멜로디아 이름을 여기에 꿰매 놓을게.
자, 봐. 멜로.. 디아.
늙은 재봉사의 투박한 손가락이 나비처럼 움직이며 바늘과 실을 집어 올렸다.
짙은 남색 실이 천 위에 얽히며, 그녀의 머리 색과 꼭 닮은 흔적을 남겼다.
오블리크는 눈을 반짝이며 인형 귀에 새겨진 막대기와 동그라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그것이 글자라는 것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곧 학교에 가서 배우게 될 테니까.
바늘과 실로 낡은 천을 이어서 인형과 옷을 만들 수 있듯이, 너도 네 손으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꿰맬 수 있단다.
원하는 대로...
귀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아지 인형이 몸을 돌려 오블리크 쪽으로 다가왔다.
강아지야, 강아지야, 어디로 갔니?
짧은 귀에 긴 꼬리, 우리 강아지.
[어디~ 어디~ 어디에 있을까?]
방금 나무 뒤에 있었는데
지금은 왜 안 보일까?
짧은 귀에 긴 꼬리
귀여운 우리 강아지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뽀뽀도 해줄 거야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강아지 인형에 푹 빠진 소녀는, 늙은 재봉사의 따뜻한 품에 안겨 바느질 자국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재봉 일은 누구든 배울 수 있었기에, 그것만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들은 남들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공방은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였지만, 새로운 인력이 끊임없이 투입되면서 부지런히 운영되고 있었고, 큰 사고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현실의 변화를 마주해야만 했다. 공방의 주문량은 점차 줄어들었고, 대형 공장들이 공방의 일감을 대체하고 있었다.
천 년간 쌓아온 의복 예술이 기계 코드에 의해 놀라운 속도로 학습되었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새로운" 제품들이 넘쳐흘렀다.
때문에 큰 면적의 복잡한 자수에 더 고급스러운 실을 사용해야만 했고,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다.
자수와 패턴은 고귀함과 품격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스팽글과 구슬로 매우 복잡하게 디자인되었다.
이런 정교한 작업을 기계로 구현하려면, 현재의 수작업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 비용이 필요했다.
공방의 주문은 점차 손도 눈도 많이 가는 어려운 일로 바뀌었고, 그것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큰 공장의 부속이 되었다.
늙은 재봉사의 머리칼은 어느새 눈처럼 희어지고, 손도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그는 번잡한 일은 모두 제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단순히 꿰매는 작업이나, 오래된 양식의 여자 옷을 만드는 것만 하기로 했다.
비록 당장은 쓸 일이 없었지만, 그는 손수 지은 옷들을 하나하나 옷장에 걸어두고, 이름표를 곱게 달아 놓았다.
이건 멜로디아가 첫 등교 날에 입을 옷이고, 이건 성인이 된 후 입을 옷이고, 이건 멜로디아의 첫 번째 양모 조끼고,
저건 언젠가 파티에 갈 일이 생기면 입을지도 몰라…
늙은 재봉사는 오래 간직해온 손수건을 꺼내 잠시 바라보았다. 마치 아내의 미소가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나날에 만족하는 건 아니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면서 내부에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새로운 기술은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거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한 번 여쭤는 봐야지.
예전에 그 사고가 다시 발생할까 봐 두려워서, 더 나은 기계로는 죽어도 안 바꾸시잖아.
엄격하고, 고집 세고, 융통성도 없고, 방해만 된다고!
낙성 쪽 주문은 계속 늘고 있어. 무도회, 연회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고... 배우나 가수들 자리를 빼앗지 못하면 발붙일 틈도 없어.
그래도 공방의 강점을 고수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강점? 품질 같은 건 이제 아무도 신경 안 써. 요즘은 뭐든, 옷 갈아입듯이 쉽게 바꿔버리잖아.
근면 성실은 더 이상 칭찬받지 못해... 요즘 사람들은 투자 종목이나 거리 곳곳에 있는 복권 가게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옆에 있는 빵집, 거기 청년이 복권 1등에 당첨돼서, 바로 일을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못 들었어?
쾅, 쾅, 쾅! 문짝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울리자, 순간 모든 대화가 멈췄다.
그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문 앞의 손님에게로 향했다.
평소에 얘기했던 그 흰 셔츠 손님이에요.
오블리크는 가지고 놀던 바느질 도구를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사장님, 시의회에서 편안한 은퇴 생활을 하실 수 있게, 충분한 금액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늙은 재봉사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손에 쥐고 있던 가위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요즘, 흰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하루건너 찾아왔고,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은퇴? 수십 년을 바느질만 해 온 나더러 그만두라고?
제가 사장님이라면, 진작에 서명하고 활기찬 로프라도스로 옮겨 편히 살았을 겁니다.
계속 버티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버티긴 뭘 버텨?
화가 난 늙은 재봉사가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고, 커피를 소매에 쏟기까지 했다.
이 마을의 모든 외투, 양복바지, 캐시미어 조끼, 네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입던 앞치마까지, 전부 우리 공방에서 만들었어!
내가 왜 이걸 금화 몇 닢에 바꿔야 하나?!
나가! 더 말하기도 귀찮아!
흰 셔츠를 입은 사내는 입술을 핥더니, 직업적 소양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장님, 시대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지요.
책을 읽는 사람도, 손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도 이제 거의 없습니다. 금화와 지폐는 이미 신용 포인트로 대체됐고, 앞으로는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로 완전히 변할 겁니다.
지름 600미터의 소행성이 향후 5년 안에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높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기술 연합에서 비행선을 보냈다는 뉴스 보셨습니까?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위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충돌이 일어났을 때, 공룡은 완전히 멸종했고, 수 세기에 걸친 빙하기가 찾아왔었죠.
인류의 과학 기술이 발전한 지금, 그런 재앙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이 고귀하고 명예로운 영광은 온 인류의 것입니다!
늙은 재봉사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흰 셔츠 사내는 허공에 치켜들었던 주먹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런 연설을 하고 다니면, 사람들 주머니에서 금화라도 쏟아져 나오던? 신식 구걸이 따로 없군.
(쯧… 무지한 천민 주제에.)
물론 저도 사장님의 장인 정신과 이 공방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존중합니다.
최초의 방직기가 파괴된다 해도, 인간은 물레와 베틀 북의 시대로 후퇴하지 않습니다. 진보는 되돌릴 수 없지요. 사장님, 이 땅 역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길을 내주셔야 합니다.
아니! 그건 달라!
무엇이 가치 있고 없는지를, 너희들이 무슨 권한으로 함부로 평가해?!
흰 셔츠 사내는 낡은 공방을 둘러보았다. 찾는 손님은 드물었고, 100년 된 간판 글자는 페인트가 벗겨져 흐릿해졌지만, 아무도 보수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흩어져 있던 일꾼들은 건성으로 일하는 중이었고, 지루한 바느질 작업보다는 그들의 대화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흰 셔츠 사내는 다시 의기양양해졌다.
아치볼드 사장님,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저희 쪽에서도 꽤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때의 사고는 저희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서류에 서명만 해 주신다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기꺼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서명? 그때도 그랬지. 문서에 서명하고 나니, 모든 게 끝나 있었어.
내가 그 말을 또 믿을 것 같아?!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늙은 재봉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텅 비어버린 옷장을 바라보며, 연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 사고로 마음이 상하신 건 이해하지만, 이번 일은 따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따로 생각해라…
매번 와서, 공허한 말만 늘어놓다 돌아갈 뿐이지. 너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진심으로 신경 쓰지 않고 있어.
입을 막으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뿌린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난 단지, 진짜 책임질 수 있는 누군가가 나와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누가 실수했는지를 분명히 얘기해주길 바랄 뿐이야! 잘못된 건 고쳐야지! 이렇게 돼선 안 됐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매일 항의 편지와 청원서를 보내셨고, 지금도 계속 울분을 토하고 계시는데, 정녕 그것으로 사장님의 심정이 전달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그 일은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더는 참지 못한 흰 셔츠 사내는 맨 위 단추를 거칠게 풀어 젖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은 고집스럽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이런 낡은 집 따윈 불붙으면 재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겁니다!
일찍 결정하시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겁니다.
숨을 죽이고 있던 누군가가 그만 실타래를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감입니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흰 셔츠 사내는 고개를 치켜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반짝이는 새 가죽구두가 낡은 마룻바닥을 짓눌러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실은 고개를 저으며 문을 닫고는 다시 자수에 몰두했다.
바늘과 가위는 한쪽에 서서 작업대 위의 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왼쪽은 간신히 펴졌지만, 오른쪽은 여전히 주름이 잡혀 있었고, 목에 감겨있던 줄자가 서서히 목을 조이고 있었다.
위선자들!!!
늙은 재봉사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리듯 욕을 한 후, 제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실망이 담긴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스, 스승님… 혹시 그 제안… 고려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힘들게 입을 연 바늘의 손바닥엔 땀이 고여 있었다.
배은망덕한 놈! 이 공방을 팔아넘기라고 너한테 기술을 가르친 줄 알아?!
늙은 재봉사는 분노하며 작업대를 여러 번 내리쳤다. 무서운 소리가 공방 안에 울려 퍼졌고, 도구들도 크게 흔들렸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때 천이 나서서 급히 분위기를 수습했다.
캐서린, 농담이잖아, 그치? 넌 우리 중에 뭐든 제일 잘 하고, 바느질도 가장 뛰어나잖아.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받는 돈은 변하지 않으면서 마감 기한만 짧아졌어요. 더 힘들고 어려워진 건 사실이잖아요.
가위도 일어나서 바늘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너희들!!
스승님, 화 푸세요. 요즘 잡다한 일이 많아, 다들 지쳐서 그래요.
…너까지 이럴 거냐?
성모님이시어, 우리를 지켜주소서…
과거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늙은 재봉사의 기억 속에서는 도살자, 노동자, 제빵사, 대장장이, 재봉사 모두가 문 앞 벤치에 앉아, 같은 햇빛 아래서 웃음을 나누며 매우 활기차게 지냈었다.
서로 함께 도우며, 강한 몸과 단호한 눈빛으로 수공예의 아름다움과 자부심을 묵묵히 지켰었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어서들 일해! 아니면 정말 이 공방이 오늘 당장 문을 닫아도 상관없다는 거냐?
늙은 재봉사는 지쳐 있었다. 그는 커피 얼룩을 닦아내고, 앞치마를 벗은 뒤, 방으로 사라졌다.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남은 건 찌푸린 이마들과, 재봉틀 바늘이 딸깍딸깍 움직이는 소리뿐이었다.
다들 왜 이렇게 화가 나 계신 거예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의 역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옛 질서가 갑작스레 무너졌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과연,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날카로운 무언가가 답답한 공기 속을 가르며 지나갔다.
지금 뭐라도 더 할 말 있는 사람? 예를 들어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허황된 소리 같은 거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