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1 끝과 시작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11-16 "형제"

>

기계체. 호르스트는 기계체를 가장 싫어했다.

새하얀 침대 시트, 차가운 조명,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니터링 장비 음, 그리고 재활 장비의 거슬리는 마찰음까지.

이 모든 게 호르스트.슈미트가 지난 2년 동안 겪은 모든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일기장에 오늘 있었던 일, 자신의 기분, 내일에 대한 소망을 적곤 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매일 적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늘: 약 복용, 주사, 재활 훈련."이라는 단 한 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르스트가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매주 부모님이 병실에 찾아오는 면회 시간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면회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익숙한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호르스트는 멍하니 생각했다. 길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약물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

몽롱한 상태에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소리에는 의사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말투로 봐서는 다투는 것 같았다.

호르스트 보호자님, 아드님의 병세가 치료를 받은 후 확실히 호전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완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이렇게 포기하는 건 정말 아까워요!

흥, 치료한 지 거의 3년이 다 돼 가요. 그렇게 많은 돈을 썼으면서도 아직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잖아요.

저 아이에게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정말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에요!

퇴원해도 후유증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제가 평생 돌봐줘야 한단 말인가요?

남들이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볼지 창피하네요. 차라리 저런 아들은 없는 게 나아요!

선납한 돈 다 쓰고 나면, 치료 결과와 관계없이 더 이상 돈 달라고 하지 마세요.

호르스트

…………

어머니, 아버지. 절 포기하지 마세요. 전 살고 싶어요.

호르스트는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메마른 목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는 공포가 밀려왔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호르스트는 손을 뻗었지만, 그들은 잡히지 않았다.

호르스트는 부모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건 권태였을까? 냉담함이었을까? 아니면... 싫증이었을까?

참 불쌍한 아이야.

의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들리더니, 호르스트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의사와 부모님이 대화를 나눈 그날 이후, 호르스트는 면회 시간에 부모님을 보지 못했다.

호르스트, 부모님께서 지금 여러 가지로 바쁘셔서 면회가 어려우시대. 하지만 많이 걱정하고 계시니, 네가 치료에 전념하는 게 좋겠어.

네. 의사 선생님, 감사해요. 부모님께 제가 많이 보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호르스트는 의사의 서툰 선의의 거짓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size=42>"오늘: 약 복용, 주사, 열심히 재활 훈련. 의사 선생님께 훈련 한 세트 추가 요청함."</size>

<size=42>"오늘: 진통제 반으로 줄임. 재활 훈련 강화. 일상생활 자립하기."</size>

<size=42>"오늘: 몸이 아프지만 진통제 거부. 보조 장치 제거 요청."</size>

<size=42> …………</size>

<size=42>"오늘, 퇴원 수속."</size>

병원 입구에 선 호르스트는 코트를 열심히 당겨봤지만, 아무리 당겨도 몸에 맞지 않았다.

호르스트는 병원 입구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서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빗속에서 차가 산길을 따라 달렸다. 차 안은 엔진 소리 외엔 어색한 정적만이 흘렀다.

아버지와 함께한 일상에는 이미 3년의 공백이 생겼다. 익숙한 차 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호르스트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다.

아버지...

어?

저... 앞으로는 더 잘할게요. 절대 실망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예요.

호르스트, 말로만 하지 말고, 말한 걸 실천해라.

집에 가면 네 동생을 소개해 줄 테니, 옷 좀 단정하게 입어라.

동생이요?

아버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앞길만 계속 바라보았다.

우리가 저 아이에게 들인 공이 얼만데요, 참나, 체면만 깎이고 말았네요!

남들이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볼지 창피하네요. 차라리 저런 아들은 없는 게 나아요!

호르스트, 알잖아. 이게 현실이야.

호르스트,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마. 호르스트, 철 들자.

네. 좋아요. 아버지!

차가 집 마당에 들어섰다. 호르스트는 3년 만에 이곳을 다시 밟았다. 차 소리를 듣고 나온 어머니가 다른 아이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형, 집에 온 걸 환영해요.

그의 "동생"은 귀엽고 뽀얀 아기가 아니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그 아이를 보자, 호르스트는 시선이 굳어버렸다.

호르스트. 이쪽은 네 동생 데니스란다.

드디어 형을 만나다니, 정말 기뻐요. 계속 형 만날 날만 기다렸거든요.

호르스트는 자신과 똑같은 키와 이목구비를 가진 데니스를 바라보며, 마치 거울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데니스는 착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포옹하려 했다.

데니스의 목에 QR코드와 작은 글씨가 보였다. "레보비츠 주식회사. 가정용 생체공학 인간 MTHD-III형"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이건... 생체공학 인간이잖아요?!

"데니스"는 여전히 상냥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호르스트는 자신과 똑같은 그 얼굴을 보며 역겨운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신 거죠?!

어떻게 동생이 저와 얼굴이 똑같을 수 있죠? 너무 징그럽잖아요!

호르스트, 넌 이제 다 큰 어른이잖아,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말거라.

넌 데니스에게서 철들고 예의 바른 모습을 좀 배워야겠구나.

저런 쇳덩어리를 제 동생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저건 그냥 저와 똑같이 생긴 괴물일 뿐이라고요!

어...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그만해! 호르스트! 어떻게 그런 태도로 아버지, 어머니한테 말대꾸를 하는 거야?

창고로 가서 반성 좀 하거라. 네가 잘못한 걸 깨닫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버지는 병아리를 다루듯 호르스트를 창고로 밀어 넣었다. 창고 문이 닫히는 순간, 그 빌어먹을 생체공학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어쩌면 형은 아직 몸이 불편해서 그런 걸 거예요. 앞으로 제가 형의 절친이 될게요.

아버지, 방금 커피 내려 두었어요. 어머니, 제 방도 정리해 뒀어요. 그럼 전 오늘의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가 볼게요.

그래. 우리 데니스. 정말 착한 아이구나.

호르스트는 점심과 저녁을 굶어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문밖에서는 음식과 커피 향기가 풍겨왔고 피아노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도 나중엔 점차 사라졌다. 잘 시간이 되었지만, 호르스트는 여전히 춥고 어두운 창고에 갇혀 있었다.

호르스트는 이 집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체 왜일까? 어째서 저 철판 머리 안의 칩이 미리 설정된 대사 몇 마디를 했다고 "착하고 예의 바르다"라는 칭찬을 듣는 걸까? 저게 뭐라고? 인간도 아닌 저것이? 저게...

그렇게 호르스트는 분노 속에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마침내 창고에서 풀려났을 때, 굶주린 그는 분노마저 잊게 됐다.

호르스트,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겠지?

어머니, 아버지, 죄...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데니스를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됐어요.

그 순간에도 역겨운 생체공학 인간은 완벽한 미소를 유지한 채 부모님 곁에 서 있었다.

형, 괜찮아요.

그래. 이제 좀 봐줄 만하구나.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지저분하니? 좀 씻고 단정히 해라.

지금 바로 샤워하러 갈게요. 데니스, 조금 있다가 형이 찾아갈 테니까, 같이 게임이나 하자.

좋아요.

호르스트는 지붕 위에 서서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 높이라면 충분할 것 같았다. 부모님도 집을 비운 지금이 "게임"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데니스, 이제 게임을 시작하자. 여기서 뛰어내려.

형, 근데 이게 무슨 게임이에요? 그리고 왜 뛰어내려야 하나요? 이러다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괜찮아. 저 나무 위로 뛰어내리면 안 다쳐. 지금부터 넌 범인 역할을 맡고, 난 경찰 역할이야. 네가 뛰어내리면 내가 잡으러 갈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 어서 뛰어. 아직도 안 뛰고 뭐 해?

좋아요.

생체공학 인간이 몸을 날려 정원의 나무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지만 아직 자라지 않은 나뭇가지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무거운 물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거대한 파열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호스트는 ‘사건 현장’으로 걸어가, 사지가 뒤틀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생체공학 인간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흥, 멍청한 철판 머리. 어디 잘난 척 한 번 더 해 봐.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면, 네가 실수로 떨어졌다고 해. 알았어?

알... 겠... 어... 요. 형...

그러나 그의 예상과도 달리, 마침 부모님께서 일찍 귀가했고, 그러는 바람에 모든 과정을 목격했다.

어서 말해.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니! 데니스를 죽이려고 한 거지?!

넌 어떻게 이런 식으로 변한 거니? 너 같은 애를 낳은 게 정말 후회되는구나!

호르스트, 창고로 들어가서 반성해,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내 눈에 띄지 마.

데니스, 넌 괜찮니?

오늘 저녁에는 혼자 있지 말고, 함께 회사 저녁 모임에 가자.

아버지, 전 괜찮아요. 방금 자가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저녁 모임이요? 너무 좋죠. 제가 거기서 피아노를 연주해도 될까요? 어제 새로운 곡을 연습했거든요.

물론이지. 참, 오늘 저녁 회식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네 이름을 "호르스트"라고 하렴. 알겠지? 착한 우리 아들?

네. 아버지.

호르스트는 그 자리에 서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가족을 바라보며, 문득 자신의 존재는 마치 이 집의 가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다.

저 생체공학 인간이 부모님의 사랑과 자신의 자리를 빼앗더니, 이제는 자신의 이름까지 빼앗으려 했다.

저게 무슨 동생이에요! 저건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역겨운 기계일 뿐이라고요!!!

넌 닥쳐! 우린 너 같은 아들을 둔 적도 없어.

호르스트는 부모님의 눈빛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이곳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

알겠어요. 그럼, 저 쇳덩어리를 아들로 삼으세요!

야, 철판 머리. 네 "부모님" 체면 잘 세워줘라. 그리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 꼭 곁을 지켜!

호르스트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뛰쳐나갔다.

몇 년 후, 호르스트는 그때 한 말이 슈미트 부부의 죽음을 예고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 저녁 퍼니싱이 습격해 왔을 때, "호르스트"라는 생체공학 인간은 어린 주인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했다.

호르스트는 폭주한 기계체들과 피로 물든 거리에서 다시 한번 부서진 슈미트 부부를 보게 됐다.

그들 곁에는 사랑하는 아들 "호르스트"가 있었고, 계속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호르스트" 예복을 입은 두 인간의 육신을 무자비하게 찢어내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제가 곁에 있어 드려야 해요.

아버지와 어머니, 드디어... 돌아가셨네요.

"호르스트"는 고개를 돌려 붉게 빛나는 눈으로 호르스트를 뚫어지게 응시했고, 그의 목에서는 기계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계의 마찰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광대의 공장에서 침식체를 제작하는 소리였다.

호르스트는 회상을 멈췄다. 그는 자신이 기계체를 극도로 혐오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혐오감 덕분에 누구보다 기계체의 내부 구조를 잘 알게 되었고, 어떻게 파괴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도 터득했다.

레보비츠는 호르스트의 재능을 알아봤고, 그를 상급 관리자로 채용했다.

아직도 안 됐나?

공장의 폭탄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타비의 공격을 받은 "그윈플렌"이 통제에서 벗어나 공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마침 그 공장의 존재는 호르스트가 의도적으로 침식체를 제작하여 회사 소속 도시들을 공격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다른 이들에게 "그윈플렌"의 존재가 발각되는 걸 막기 위해, 호르스트는 이 공장을 미리 없애버려야만 했다.

아직도 멀었어?

호르스트는 한 글자씩 끊어서 물었고, 톱니바퀴의 마찰음이 그의 초조함을 점점 더 키워갔다.

준비 완료됐습니다. 이제 잭과 폴의 신호에 맞춰 동시에 폭파시키면 됩니다.

둘 다 서두르라고 해.

"004802이 004803, 004801 호출. 콘솔 상황을 동시 보고하거라."

대답이 없자, 호르스트는 불안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호르스트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와 동행했던 호위병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호르스트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장관님, 우선 폭파시키는 게... 악!

부하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하하하하하하...

재밌어. 정말 재밌어.

더... 더 많은 "댄스 파트너"가 필요해. 하하하하!

춤을 추자! 같이 춤을 추자고!

어두운 불빛을 따라 광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댄스 파트너"들이 사방에 쓰러져 있었고, 검붉은 피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광대"가 방향을 틀더니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호르스트를 향해 다가왔다.

"그윈플렌"

춤을 추자! 나와 함께 춤을 추자고!

[제9법령. 의식 말살 명령 실행.]

[제10법령. 긴급 정지 명령 실행.]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명령을 거부합니다.

"광대"가 점점 다가오며, 고속으로 돌아가는 전기톱처럼 몸을 미친 듯이 회전시켰다.

하하하하하하하...

으윽!!!

같이 빙글빙글 돌자.

이미 폐허가 된 기계 공장에서 "광대"는 그의 왈츠를 계속했다.

"광대"는 이곳을 광란의 왈츠를 추기 위한 무대로 삼은 듯, 호르스트의 손을 잡고 공장 중앙을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광대의 "댄스 파트너"는 더 이상 그의 춤사위를 따라줄 수 없었다.

생명을 잃고 부서져 버린 호르스트는 이제 이 광경을 볼 수 없었고

"광대"는 호르스트의 차갑게 굳어버린 팔을 붙잡은 채, 광란의 춤을 멈추지 않았다.

이 기계 공장과 도시가 완전히 잊힐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