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는 "최종 시험"을 통과한 다음 날, 서둘러 이 실험 시설로 달려왔다.
축하의 박수도, 한가로운 휴가도 없었다. 거대한 기계 앞에서 나사 하나의 성장이란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학원의 보호로 악몽 같은 퍼니싱과 침식체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게스트리고를 졸업한다는 것은 남은 평생을 레보비츠의 소유가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게스트리고의 모든 학생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회사의 낙인이 찍혀 회사의 자산이 되었다.
적자생존은 그들의 운명이었고, "최종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은 적어도 생존권을 보장받았다는 의미였다.
정신 차리고, 잘 따라와.
앞서가던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하자 헤르타의 생각이 끊겼고, 어쩔 수 없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자기 디스크 어레이에서 연산 모듈로 들어서자, 갑자기 거세진 바람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눈앞에는 거대한 랙들이 장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광자 회로에서는 란다우어 한계를 돌파하는 최대 엔트로피가 흘러넘치며 고속도로 연산했고, 기계들은 묵묵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빽빽하고 정연하게 늘어선 랙들은 한 줄 옆에 또 한 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b><size=50>통시적 인공지능 부화 엔진, 제7 행렬</size></b>
사람들은 이렇게 이름 붙였다.
약 2만 제곱미터의 대지를 차지하고 지역 에너지의 90%를 소비하는 이 시설은 레보비츠가 141호 도시 지하에 설치한 슈퍼컴퓨팅 센터였다.
음...
긴반지름을 따라 중심을 향해 걸어간 지 얼마나 됐을까?
무한 while 루프처럼, 이 풍경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돔의 높이 곳에 매달린 얼음 빛이 흔들거리며 눈을 찔렀다. 헤르타는 저도 모르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긴 여정과 차가운 풍경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위산이 갑자기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호르스트... 관리자님.
헤르타는 앞에서 빠른 걸음으로 안내하고 있는 남자를 힘겹게 불렀다.
호르스트는 행렬 연구 책임자이자, 헤르타가 행렬에 익숙해지도록 이끌어줄 관리자였다. 그는 처음 만난 후로 계속 차가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
그녀의 실험실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구두 소리는 여전히 또각거리며, 호르스트는 빠르게 나아갔다.
상대는 멈추기는커녕 속도를 늦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헤르타는 이 말을 하려다가 결국 삼켰다.
(할 수 있어. 넘지 못할 산은 없으니까...)
의미 없는 위로의 말을 작게 중얼거린 헤르타는 구토하려는 충동을 억눌렀다.
거대한 야수의 포효가 모든 잡음을 집어삼키듯 공랭 시스템의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추웠다.
헤르타는 저도 모르게 얇은 실험복을 여몄다.
진정한 슈퍼컴퓨터 실험실 입성을 축하하고자 헤르타는 일부러 일찍 실험복으로 갈아입고 긴 머리도 잘랐다.
성숙하면서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일부러 도수 없는 안경을 쓰고, 차가운 표정도 지어 보였다. 이것이 한 학생이 연구원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정말 지루하네.
헤르타는 계속 깜빡이는 LED 불빛의 계산 노드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떻게든 그 속에 녹아들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노드 끝에는 케이블로 연결된 몇 개의 선실이 있었다. 헤르타는 호기심에 투명한 유리 덮개를 통해 고개를 내밀어 옆에 있는 실험체를 들여다보았다.
으으...
갑자기 일그러진 얼굴이 유리 덮개에 부딪히자, 헤르타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헤르타는 그 실험체들의 모습을 흘깃 보았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팔을 휘두르거나 힘껏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 배어 나오는 고통과 일그러진 표정에 헤르타는 소름이 돋아 발걸음을 멈췄다.
호르스트는 선실 중 하나로 급하게 걸어갔다.
현재 상황은 어때?
보시다시피, 이 모델들은 모두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많은 샘플들이 다 쓸모없다는 말인가?
조건에 부합하는 개체가 희소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은 인간이 견디기 매우 힘들어요.
단시간 내에 사고를 모델링하려면, 고강도의 외부 신호로 신경 세포 방전을 자극해야 하고, 신경전달물질의 정상적인 전달도 차단해야 하죠.
가장 두드러진 부작용은 각종 환각을 보게 된다는 점이에요.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또는 침식체에게 쫓기는 장면 같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광경을 보게 되죠.
효율이 너무 낮은데.
더 이상 속도를 빨리 낼 수 없어요. 한 번 더 샘플링하면 그들 모두 망가지게 될 거예요.
모두가 침묵에 빠졌고, 헤르타는 긴장한 채 품에 안은 노트패드를 꽉 쥐었다.
옆에서 랙의 전류 소리가 딸깍거리며, 인간에게 다음 명령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델라웨어에게 한 번 더 시도하게 해.
관리자님. 델라웨어는 오늘 세 번이나 샘플링했어요.
괜찮아. 델라웨어는 견딜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델라웨어?
더 긴 침묵이 이어졌다.
감시기 중앙 격자에 초록불이 켜졌다. 동의한다는 신호였다.
헤르타는 그 실험체가 직접 대답할 힘도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럼, 어서 시작하지.
호르스트는 헤르타를 힐끗 보고는 다시 빠르게 걸었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헤르타는 어쩔 수 없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관, 관리자님... 저것들은...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나?
그... 그냥...
호르스트가 헤르타 앞에 멈춰 서더니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확인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이 제7 행렬 계획이다... 기계체 의식 각성을 검증하는 실험이지.
기계 의식 각성... 이것은 헤르타가 학원에서 봤던 시험 내용이었다. AI 모델이 방대한 정보를 처리 및 피드백할 수 있으며, 인간의 사회적 도덕과 감정을 갖출 때 이를 "각성"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의식을 샘플로 해 모델의 배양 속도를 가속화하는 거지. 그리고 저 실험체들은 그 샘플링을 위한 것이다.
그럼, 제가 앞으로 이런 연구를 담당하게 되는 건가요?
하지만, 그때 당시 제가 맡은 임무는 이게 아닙니다...
물론, 네 연구 방향은 이게 아니지, 이런 연구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
너의 임무는 저 새장에서 "그녀"가 낳은 "알"을 가져오는 거다.
"삐——" 홍채 인식 음이 울렸다.
이어서 낮은 진동음이 들리면서 거대한 보안 문이 하나씩 열리더니 통로 끝에 있는 좁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한 수식이 바닥에서부터 멀리 있는 실험 캡슐까지 이어져 있었다.
따뜻한 인공조명이 실내를 비추자, 헤르타의 떠다니던 발끝이 다시 땅을 딛을 수 있었다.
방문객의 발소리를 들은 소녀가 힘겹게 선실에서 일어났다.
……
피아노 건반처럼 흑백이 섞인 특이한 색의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에는 실험 용액이 여전히 묻어 있었다.
앞서 헤르타가 봤던 실험체들과는 달리, 소녀의 얼굴에는 무심함과 슬픔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새끼 새의 솜털처럼... 혼란스러움을 담은 채 헤르타에게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델... 델...
유이·델라웨어입니다.
아... 네. 델, 델라웨어 님.
생소한 접두사 때문에 헤르타는 순간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저, 저는 회사에서 파견한 보좌관이고, 제 이름은 노이만... 아니. 헤르타요! 헤르타·노이만이에요. 그냥 헤르타라고 불러주세요.
……
……
……
(헤르타. 헤르타라고... 한 번만 불러줘!)
헤르타는 당황해서 안경을 밀어 올리고는 뻐근한 다리를 어색하게 문질렀다.
델라웨어 님?
델라웨어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고, 몸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용액이 증발하며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연기처럼 퍼지는 가운데, 델라웨어는 천천히 몸을 웅크렸다.
델라웨어 님?!
헤르타는 실험 캡슐로 재빨리 달려갔다.
너무 차갑네요!
캡슐 안으로 손을 넣는 순간, 뼈를 에는 듯한 저온에 헤르타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켰다.
저는 괜찮아요.
유이는 뭔가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헤르타가 팔을 잡기도 전에 캡슐 벽에 기대어 천천히 일어섰다.
회복됐나?
헤르타는 방 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모든 게 일상인 것처럼 차갑게 그녀들을 바라볼 뿐, 도와줄 의향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1시간 43분 52초. 이번 샘플링에 걸린 시간이야. 조정과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2시간이 소요됐어.
신경 펄스는 더 상향 조정할 여지가 남아 있겠지?
잠시만요. 호르스트 관리자님?!
있어요.
10% 증폭을 시도해 볼게요.
20%로 해. 견디기 힘들면 중단하면 되니까.
네.
관리자님. 유이가 견디고 있는 출력은 이미 다른 실험체의 두 배예요. 20%를 더 올린다면 그녀의 신경 시스템이 붕괴할 거예요.
괜찮아요. 헤르타 님. 이 정도의 압박은 견딜 수 있어요.
99%의 신뢰 수준에서 실험 결과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예요. 이건 행렬 추론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이에요.
나머지 1%는요?
캡슐의 안전 시스템이 펄스 전류를 적시에 차단할 거예요.
하, 하지만...
그녀는 아프지 않은 걸까?
헤르타는 이전에 마주했던 실험체들이 생각났다.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일그러진 얼굴들을 통해 그들이 받는 정신적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고통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다만 그들을 구분 짓는 것은 고통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표정뿐이다.
헤르타는 캡슐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유이를 바라보았다. 하얀 입김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미간을 찌푸린 호르스트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두지. 잠시 쉬는 것도 좋겠군.
헤르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델라웨어 님, 제... 제가 손을 잡아드릴게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비틀거리며 실험 캡슐에서 나온 유이는 오른손으로 옆에 있는 실험대를 짚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이번 샘플 데이터가 내 단말기에 도착했다. 다른 실험체들과 비교하면 효과가 훨씬 뛰어나지만...
호르스트가 말을 돌렸다.
이
네. 모델의 견고성과 일반화 능력에 결함이 있어서 추가 샘플이 필요해요.
오늘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어서 준비해.
한 번 더 시도해 볼게요.
좋아.
어... 하지만, 델라웨어 님, 오늘 이미 3번... 아니, 4번째 샘플링 아닌가요?
조금 전 밖에서 들은 연구원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헤르타는 낮게 중얼거렸다.
헤르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호르스트는 모깃소리처럼 작은 그 중얼거림도 놓치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내가 강요하는 건 아니니 그렇게 긴장하지 마.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고개를 든 헤르타는 관리자의 태도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엄격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호르스트에게 말했다.
델라웨어는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실험의 위험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델라웨어가 샘플링에 동의하더라도, 담당 연구원이 이런 위험한 실험을 허락해도 되는 걸까요?
헤르타가 실험실을 둘러보았지만, 그들 셋 외에 다른 개체는 보이지 않았다.
헤르타가 고려해 볼만한 문제를 제기했군.
델라웨어, 네 의견은 어떠니? 실험을 승인할 건가?
승인할게요.
아... 네??
헤르타는 이 "행렬"에 들어오기 전에 받았던 연구실 자료를 허둥지둥 펼쳤다.
유이·델라웨어, <레보비츠 행렬·양자 병렬성의 경사 하강법 최적화 전략>, <신경 신호와 모델 구조의 연결 및 전환>...
<인간 의식 샘플 기반 모델 사전 학습 방안>
레보비츠 041구역의 행렬 계획 전 수석 연구원.
제7 행렬 계획 NO. 00001 실험체.
델라웨어는 연구원이자, 실험체라는 말씀인가요?
전... 수석 연구원...
본인이 자원했다고는 하지만, 실험체가 된 사람이 다시 연구원직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아.
뛰어난 과학 인재이자, 최고의 실험체... 어느 면으로 보나 델라웨어는 비할 데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관리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 소름이 돋은 헤르타는 그 무거운 갑문의 존재 이유를 이해했다.
여기는... 델라웨어의 우리란 말인가?
근무 환경에 만족하나?
이런 대우가 너에게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군. 헤르타 보좌관.
회사의 자산에는 가치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델라웨어는 회사의 가장 귀중한 자산 중 하나야.
그에 따라 회사의 연산 자원도 델라웨어에게 우선적으로 할당되어 있어. 그러니 그녀는 원하는 모든 연구 자료를 얻을 수 있지.
그... 그럼, 이것도 "우대"라 할 수 있나요?
호르스트는 대답하지 않고 헤르타를 차갑게 훑어보았다. 그러자 움찔한 헤르타는 의문을 가슴속에 눌러 담았다.
죄송해요. 관리자님.
우대인지 아닌지는 델라웨어가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내가 봤을 때, 행렬 계획의 연구 진전과 그녀의 개인적 행복은 동일한 가치를 지녀. 서로 대체한다 한들 상관없을 정도야.
지루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호르스트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유이는 이런 대화에 관심이 없는 듯, 옆에서 이번 실험 데이터를 무심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지. 펄스 강도를 올려서 실험 효율을 높이는 것을 잊지 마.
네.
오늘 할 실험 빨리 끝낸 뒤, 데이터 수집해서 보고서로 나한테 줘.
네.
그리고 내일, 하늘이 선택한 자 모델을 다른 부서에 전달해서 공동 연구개발을 시작해.
……
유이·델라웨어, 무슨 문제라도 있나?
…………
유이의 태도를 눈치챈 호르스트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이쪽을 향해 꽂혔다.
이런 중요한 일에서 실수하지 마!
헤르타는 불안한 눈길로 옆에 있는 유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약해져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무기력해 보이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고집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유이는 반쯤 기대고 있던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뒤, 관리자의 눈을 바라봤다.
하늘이 선택한 자는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에요. 하이퍼파라미터도 조정해야 하고, 데이터셋에도 노이즈가 많아요.
2주만 더 주세요.
데이터 노이즈 제거, 파라미터 조정... 분업하면 효율이 훨씬 높아질 거야. 게다가 너도 실험체와 연구원 역할을 동시에 할 필요가 없잖아?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 다른 부서에서 나머지 일을 분담해 주면 더 빨리 진행될 거다.
이전 모델이 테스트 중 데이터 오염으로 제어 불가 상태가 되어버려서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었죠. 이것이 신뢰의 결과인가요?
헤르타는 유이의 표정을 흘긋 봤는데, 그녀의 눈가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건 충분한 견고성이 없어서 자연 도태된 것뿐이야.
우리 연구개발 주기는 혼자 천천히 최적화할 만큼 여유롭지 않아. 최대한 빨리 초기 모델을 만들어서 다른 부서와 함께 반복 작업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야.
하나가 사용할 수 없다면 다음 것으로 교체하면 돼. 본부는 결과만 원할 뿐, 과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신경 쓰지 않아.
유이의 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헤르타가 부축하려 했지만, 유이는 손짓으로 말렸다.
황금시대의 완전히 인공적으로 외부 훈련된 모델들과는 달라요. 인간의 의식 샘플로 생성된 모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블랙박스니까요.
뛰어난 추론 능력을 갖춘 동시에, 내부의 해석 불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다양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대부분 생성된 인격에 달려 있어요. 어떻게 최적화하고 결함을 보완할지 가장 잘 아는 건 연구원이 아니라 "모델" 자체에요.
인간의 의식 샘플을 채취해 기계 의식 생성 연구 진행을 가속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모델은 다른 이들이 조정을 도와주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한 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한 탓인지, 유이는 몸을 굽힌 채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였다.
터무니없는 소리.
어두운 표정의 관리자가 실험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왔다.
행렬에 있는 인원이 다 해서 몇 명이고, 연산력 단원이 다 해서 얼마나 있는 줄 알아? 2주를 기다리라고 하면, 그 시간 동안 사람이든 컴퓨터든 다 공회전하고 있어야 해.
황금시대의 슈퍼컴퓨팅 센터는 1초에 수천 페타플롭스의 연산을 수행했어. 현재의 행렬이 얼마나 많은 연산 능력을 낭비하게 둘 셈이지?
동쪽 구역의 집행관님께서 얼마 않으면 시찰 오실 예정이다.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집행관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041호 구역을 벗어나지 못해. 단일 행렬 코어로는 근본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없으니까.
한 모델이 안 되면 다음 모델로 바꿔. 빠르게 반복하고 도태시키면 돼!
…………
호, 호르스트 관리자님. 델라웨어의 연구를 저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네 의견을 물어본 적 없어.
호르스트가 낮은 목소리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각성한 기계 의식은 인간이 탐색해 보지 못한 영역입니다.
하늘이 선택한 자 모델의 현재 상태는 아직 테스트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
2주의 시간이 아니면, 50% 완성도의 불량품을 받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일주일 시간을 주지, 그전에 결과를 내놔.
……
입술을 굳게 다문 유이는 이 가혹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벼운 깃털이 떨어지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순간, 유이의 몸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델라웨어 님?!
헤르타가 뒤에서 델라웨어를 천천히 일으켰다.
너무나 가벼운 델라웨어의 몸은 종잇조각처럼 얇았다. 헤르타는 자칫 힘을 줄 뻔했다.
실험의 후유증 때문인지 유이는 완전히 힘이 빠져 버렸다. 헤르타가 그녀를 옆의 안락의자에 눕혔다.
델라웨어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요.
델라웨어는 지금 실험이 필요해.
호르스트가 한 걸음씩 다가오자, 마른 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분노에 찬 하악 소리가 났다.)
흑백 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가 유이 앞에서 호르스트를 향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세부 조정에만 매달리다가는 시간만 낭비하게 될 거다.
집행관님을 만족시킬 실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제어 불가 상태가 되어도 상관없다. 각성이라는 목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될 거다.
어서 컨디션 조절하고 다음 샘플링을 진행해.
유이를 안정시킨 호르스트는 헤르타에게 복도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헤르타, 넌 델라웨어의 조수로서 이번 주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성과를 내도록 해라. 그리고 하늘이 선택한 자를 빨리 다른 부서로 인계하도록 해.
하지만...
유이의 허약한 모습이 떠오른 헤르타는 난처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델라웨어의 생명 징후가 매우 약해요. 심전도에는 불규칙한 피크가 많고 체온도 비정상적으로 낮아 걱정이 돼요.
헤르타. 델라웨어가 낳은 알을 가져가는 것, 그게 바로 너의 일이다.
델라웨어가 하늘이 선택한 자 모델을 계속 수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건 정신 붕괴의 차원이 아니라,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이제 너의 업무에 관해 말해야겠군. 헤르타 보좌관.
네? 제가 맡아야 할 연구 내용 말씀이신가요? 전 델라웨어의 연구를 보조하러 온 게 아닌데요.
호르스트가 넥타이를 잡아당기자, 역광 속에서 흉악한 얼굴이 드러났다.
맞아. 너의 업무는 델라웨어가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야.
?!
물론 델라웨어가 만들어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다시 말해서...
헤르타, 너는 앞으로 델라웨어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완수해야 할 많은 임무를 마주하게 될 거다.
합격 모델만 내놓을 수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성과를 얻기 전까지 델라웨어는 살아있어야 해.
……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헤르타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난 하늘이 선택한 자가 필요해.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호르스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헤르타는 멍하니 실험실로 돌아왔다.
헤르타는 발에 복슬복슬한 털이 스치는 걸 느꼈다. 고개를 숙여보니, 조금 전 관리자에게 하악거렸던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편안하게 숨 쉬는 소리를 냈다.)
(애교스러운 야옹 소리를 냈다.)
흑백 고양이를 본 유이의 차가운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델라웨어 님, 제가 방금 의료 부에 연락했더니, 포도당과 몇 가지 신경 완화제를 보내왔어요.
네.
헤르타가 유이의 소매를 걷자,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다. 그녀는 고무줄을 묶고 알코올을 바른 뒤...
차가웠다. 실험 캡슐의 용액처럼 차가운 손에 헤르타는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켰다.
유이는 헤르타가 온열 패드를 대고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협조도 저항도 없이 안락의자에 줄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힘없이 누워있었다.
실험을 잠시 중단할 수는 없나요?
유이는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늘이 선택한 자를 현재 상태로 넘겨준다면, 폐기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관리자는 유이에게 재시도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샘플링을 포기한다면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한번 출발하면 멈출 수 없는 열차와 같았다.
헤르타는 애초부터 그들이 유이에게 멈출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