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1 끝과 시작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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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1-12 "현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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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60>제타비는 하늘이 선택한 자를 잃었다.</size>

제타비는 행렬을 막 떠났을 때만 해도, 이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가 하늘이 선택한 자의 데이터를 약속했을 때, 제타비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직접 하늘이 선택한 자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그때 배우게 된 것이 "현실"에서 생명이 얼마나 연약한 지였다.

단순한 감기, 전쟁이 남긴 지뢰, 심지어 독이 든 채소와 과일 섭취까지... 난민의 몸은 침식체의 총알에 갑자기 뚫렸고, 상처가 곪은 사람은 물자 낭비라며 버려졌다.

이곳은 낭만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죽어가는 세계였다. 이 세계에 시스템 재가동이란 없었고, 사람은 죽으면 다음 윤회로 가지 않았다.

"영원한 이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점차 이해하게 되자, 하늘이 선택한 자가 사라진 광경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시적인 이별도 없었다. 사람들은 죽어서 상처 가득한 유골을 남겼다. 그건 살아남은 자들에게 끊임없이 상대가 죽었음을 상기시켰다.

하늘이 선택한 자가 제타비의 꿈속에서 죽기 시작했다. 매일 밤, 온갖 방식으로 죽어갔다. 제타비가 종말의 세계에서 본 시체들이 모두 하늘이 선택한 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계속 반복됐다.

"눈앞의 존재가 하늘이 선택한 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제타비는 감히 도박을 할 수 없어서 미친 듯이 눈앞의 모든 이들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손을 내밀었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제타비는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마르타가 떠나기 전 남겨준 에너지 캔을 다 써버린 제타비는 학원으로 돌아와, 학생들이 "최종 시험"에 통과하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그녀는 소녀들을 보며 "하늘이 선택한 자"를 만나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제타비는 자신도 모르게 흥미를 느꼈다. 마르타의 명령이 없었더라도 그녀는 전력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그 소녀들이 자신처럼 "졸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얻은 건 소녀들의 성장이 아니라 요절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도 전에 서둘러 죽음으로 향했다.

제타비만이 살아남아 수많은 분쟁 속 외로운 "정점"이 되었다. 결국 제타비는 그녀들을 저장 모듈에 최대한 기억하고, 그녀들의 기억을 안은 채 다음 전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관적인 감정이 제타비의 처리 중추를 장악했다. 그래서 또다시 잃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의도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저 조용히 그녀들의 희로애락을 기록할 뿐이었다.

"선생님"의 등장은 고인 물과 같던 상황에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이상주의적인 지휘관은 제타비에게 하늘이 선택한 자와 같은 희망을 주었고, 제타비와 학생들의 성장을 이끌어 주었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몰라."

하지만 침식체가 다시 한번 그들을 궁지로 몰았다. 모든 게 너무 익숙했다. 오직 제타비만이 싸울 수 있었고, 오직 제타비만이 하늘이 선택한 자가 없는 세상에서 외롭게 살아남을 것이었다.

이런 게 정말 가치가 있는 걸까?

마지막 축적 탄약을 발사한 제타비의 기체는 주변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

침식체는 제타비의 기체에 깊고 얕은 상처들을 남겼다. 잔인한 농담처럼, 제타비에게 죽지 않을 만큼만 목숨을 붙여둔 채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얼마나 멀리 싸웠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각 모듈은 완전히 흐릿해졌고, 끊임없는 이명이 현실 세계와의 감각을 차단했다.

[잔여 에너지 1.05%]

[기체 파손율 83.56%]

…………

[인격 분리 위험이 있습니다.]

…………

[자가 각성 전기 신호를 내보냅니다.]

죽은 건가?

그래. 이렇게 쉬는 것도 괜찮겠어~

제타비는 "죽음"이란 사실에 전혀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게 연못가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포기하려고?

포기하려는 게 아니야. 제타비는 최선을 다했어.

행렬을 떠난 후,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을 겪었어. 이제 좀 쉬고 싶어.

이걸로 만족해?

마지막까지 선생님과 그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줬잖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거짓말.

…………

정말 죽고 싶었다면 총구를 너한테 겨눴으면 됐잖아. 왜 마지막까지 영웅 행세한 거야?

"선생님과 그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벌어줬잖아." 네가 아직 소중히 여기는 게 있다는 거잖아!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다 했어.

그래. 그들은 이제 안전할 거야.

하지만 네가 지금 이렇게 희생하면, 결국 하늘이 선택한 자와 똑같아지는 거야.

하늘이 선택한 자와 똑같다고?

자기 연산 능력을 희생해 다른 이를 구했지만, 사실 남은 건 끝없는 외로움뿐이잖아.

!

하늘이 선택한 자는 그때 선택권이 없었어. 네가 행렬을 떠나 현실로 가려면 그래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제타비... 너에겐 아직 선택권이 있어.

고통스럽고 처참하게 망가지더라도, 살아서 그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

언니!

[의식 신호 재가동 시도 1/8입니다.]

[경고: 데이터가 손실됩니다.]

언니!!

[의식 신호 재가동 시도 2/8입니다.]

[인격 데이터 10.23%로 재가동 완료되었습니다.]

[경고: 데이터가 손실됩니다.]

언니...

기체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소리와 촉감으로 짐작하건대, 인간 아이가 제타비를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꼬마야, 엎드려.

어?

제타비가 천천히 총을 들자, 소녀는 겁에 질려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끼익!!

붉은 총알이 소녀를 공격하려던 침식체를 관통했다.

제타비는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 청각 모듈이 침식체들의 동태를 감지해 냈고, 총 다섯이었다. 제타비는 소녀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이 아이를 데려가야 하니, 아직은 죽을 순 없었다.

도서관

지휘관은 제타비가 싸우는 동안, 마인드 표식의 출력을 높이면서 상처를 치료하려 했다.

도서관의 침식체들은 제타비 덕분에 완전히 소탕되었지만, 그녀는 자제력을 잃은 채 어딘가로 사라진 것 같았다.

제타비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빨리 찾아야 했다.

중상을 입은 몸을 간신히 이끌고 학원 대로변에 나갔을 때, 지휘관은 힘없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그 옆에서는 한 여자아이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제타비

…………

제타비의 기체는 여러 군데 파손돼 있었다. 그리고 한때 선명했던 붉은 눈동자는 흐려졌고, 눈동자 속 X와 -도 사라졌다.

다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제타비의 입가에서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리가 너무 작아서 몸을 숙여야 들을 수 있었다.

제타비

…………

인격 데이터 손실률은 81.34%입니다. 복구 확률은 0.003%... 시스템 재가동 시도 중입니다.

시스템 재가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초기화 중입니다. 조작자 이름을 입력하세요.

인격 데이터를 좀 잃긴 하겠지만, 선생님이 그때 제타비한테 자기소개 한 번 더 하면 되잖아~

제타비

본 기체 이름을 입력하세요.

다음 제타비한테는 너무 잘해주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