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고강도 콘크리트와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아머 장벽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그윈플렌"이라 불리는 구형 침식체는 자욱한 먼지 속에서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도서관 안에 있는 이들에게 신사인 척 인사를 건넸다.
흐흐흐...
거대한 몸체가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붉은 전기톱을 들고 빽빽한 인파를 향해 내리쳤다.
아!!!
저리 꺼져!
재빠르게 여자아이 앞을 막아선 제타비는 그윈플렌에게 힘껏 검을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명중하지는 못했다. 그윈플렌의 몸은 두꺼운 탄성 소재로 덮여 있어서 제타비의 공격을 튕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 차례다!!
윽...
[잔여 에너지 25.49%]
[기체 파손율 54.33%]
한 대 맞았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공격이 명중하자, 독특한 쾌감을 느낀 그윈플렌은 그대로 서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
[무기 에너지 30% 충전 완료]
더 재밌게 해볼까?
[무기 에너지 70% 충전 완료]
몸을 한 바퀴 돌린 그윈플렌은 고속 회전하는 전기톱으로 제타비의 대검을 쳐냈다. 그러자, 그녀의 기체에 긴 균열이 남게 됐다.
윽...
[잔여 에너지 12.29%]
[기체 파손율 71.56%]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기 에너지 100% 충전 완료]
그윈플렌이 웃는 틈을 타, 제타비는 그의 탄력 있는 외피를 딛고 튀어 올라 꼬리가 던진 총을 손에 쥐었다.
?
죽어라!
그윈플렌이 멍하니 있던 순간, 고에너지 입자 광선이 갑자기 그의 방어를 뚫고 팔 하나를 관통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파! 너무 아프잖아!!
그윈플렌은 상처를 움켜쥔 채, 귀청이 터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파서 그런지, 그는 거대한 몸집을 끌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잔여 에너지 7.31%]
[기체 파손율 71.56%]
[저전력 모드로 전환됩니다.]
후... 후...
시각 모듈에 불길한 붉은색 데이터가 떠다녔고, 제타비는 극심한 고통에 몸을 굽혔다.
문득 총알이 바람을 뚫고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윽!
제타비의 어깨가 관통됐다. 처리 중추가 위험 신호를 감지했지만, 저전력 모드로 인해 정상적으로 반응할 수 없었다.
(분노의 비명을 질렀다.)
도서관 벽이 광대에 의해 폭파되자, 그 거대한 구멍으로 침식체들이 밀려 들어왔다.
그녀의 시야는 흐릿해졌고, 몸은 떨렸다.
또 한 발의 총알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제타비는 본능적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홀로 방어선을 사수했다.
윽...
검과 몸으로 총알을 막아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제타비의 귓가를 스쳐 지나간 미세한 광선들은 마치 유성과도 같았다. 그녀는 시각 모듈로 포착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후방에 있는 무방비한 군중을 향해 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죽음의 꽃이 순식간에 피어났다.
도망치는 인파 속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고, 시청각 정보가 처리 중추로 끊임없이 쏟아졌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제타비는 동료의 힘없는 손을 꽉 잡는 청년의 모습을, 꼿꼿하게 굳은 남편이 아내 품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아버지가 피 흘리는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 모습을 보았다.
제타비는 자신의 품에서 잠들었던 아기가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아기를 안고 있어야 할 여인은 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안을 힘이 없어 보였다.
[player name] 선생님은 중상으로 의식을 잃었고, 학생들은 긴급 정지 상태에 빠졌다. 싸울 수 있는 건 제타비 혼자뿐이었다.
왜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걸까?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그렇게 숭고한 감정은 아니었다.
제타비는 그들이... "부러웠다".
끼익!!
비켜.
제타비가 몸을 돌려 침식체 하나를 베어냈지만, 또 다른 침식체 무리가 칼날로 등 뒤를 노렸다.
윽...
필사적으로 하나를 떨쳐내면 다른 하나가 또 달려들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침식체들이 미친 듯이 제타비의 기체를 물어뜯었다.
다 꺼져!!
제타비의 몸에서 붉은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침식체가 순간 주춤한 틈을 타, 그녀는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잔여 에너지 6.29%]
[기체 파손율 77.56%]
후... 후...
제타비는 대검을 땅에 박아 부서진 몸을 지탱했다.
제타비가 뒤돌아보니 서로를 의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의 깊은 슬픔과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울부짖을 수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하늘이 선택한 자"를 가지고 있었다. 제타비는 그게 부러웠다.
삐——!!!
침식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적조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 습격은 회사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이었다.
"'최종 시험' 후에 하늘이 선택한 자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제타비를 이곳에 붙잡아두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잔여 에너지 6.01%]
[기체 파손율 77.56%]
현재의 에너지와 출력으로 전투를 계속한다면, 결말은 파멸밖에 없을 것이다.
피와 순환액이 도서관의 하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player name] 선생님, 마르타, 학생들 모두 중상을 입었다.
"하늘이 선택한 자"는 이곳에 없었고, 제타비 혼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타비에게 소중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
제타비는 대검을 뽑아 앞으로 겨눴다.
제타비는 파멸로 향하기 전에, 소중한 이들을 지켜야 했다.
제타비...
선생님?
지휘관의 전투복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지휘관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 마인드 표식을 통해 제타비에게 말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시간이 다시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지원군?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제타비한테 장난치는 거야?
지원군이 온다 해도,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3분도 안 될걸?
[마인드 연결을 요청합니다.]
[수신단에서 거부되었습니다.]
야~ 선생님, 그렇게 제타비와 같이 있고 싶었어?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남은 에너지는 모두 전투 모듈 작동에 써야 해.
선생님의 의식 안전을 위해서, 마인드 표식을 받는 인격 모듈은 강제로 잠금 처리할게.
[긴급 에너지 재배치 전략을 실행합니다.]
인격 데이터를 좀 잃긴 하겠지만, 선생님이 그때 제타비한테 자기소개 한 번 더 하면 되잖아~
[에너지 이전 중입니다.]
[인격 모듈 잠금이 완료되었습니다.]
[전투 출력 재조정 중입니다.]
[인격 데이터 손실을 경고합니다.]
선생님, 욕심이 너무 많으시다. 제타비가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먼 미래를 상상하는 거야?
하지만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음 제타비한테는 너무 잘해주지 마.
다음 제타비한테는 너무 잘해주지 마.
"전장"? 전장이 대체 뭔데?
제타비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듯 희미하게 들렸다.
수많은 이를 잃는 거야? 아니면 가장 사랑하는 이를 수만 번 잃는 거야?
제타비는 하늘이 선택한 자가 없는 이 세상에 지쳤어.
아쉬운 듯 지휘관을 바라본 제타비는 총과 대검을 든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한편, 전투복을 입은 지휘관은 몸의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신경 신호를 필사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마인드 표식 출력을 최대치로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