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타비와 하늘이 선택한 자는 "행렬"을 따라 계속 걸었다. 방금 지나온 안내도에 따르면, 아직 조사되지 않은 중추 코어 시설이 하나 더 있었다.
모든 연산 능력이 집중되는 중추라서, 지금은 가동이 멈췄어도 여전히 많은 계산 노드와 연결되어 있을 거야.
게다가 행렬 지면이 꽤 넓어서, 지난번 전투에서 봤듯이 계산 노드들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어.
그 수상한 녀석이 정말 이곳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면, 여기로 올 가능성이 높아.
그들이 여러 번 수색해 봤지만, 중추로 가는 길은 대부분 두꺼운 금속 문에 막혀 있었다. 문에 남은 긁힌 자국과 함몰된 흔적으로 보아, 꽤 심한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곳곳을 탐색하며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깊숙한 곳에 있는 실험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 낡은 실험실은 슈퍼컴퓨팅 센터의 차가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슨 축제라도 열리는 듯, 곳곳에 형형색색의 리본과 화환으로 꾸며져 있었다.
제타비는 눈앞의 광경에 놀란 듯, 방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늦췄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제타비는 손을 내밀어 색이 바랜 리본들을 만져보기도 했다.
아니. 그냥...
제타비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이건...
제타비는 실험대 옆에서 큐브처럼 생긴 작은 기계를 주워 들고는 멍하니 바라봤다.
이건 그냥 큐브가 아니라, 마치...
제타비는 흰색 "큐브"를 살짝 돌려보았다.
Ⅵ, 생일 축하해.
큐브 안에서 어떤 소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제타비에게는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
제타비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듯, 동공이 수축했다.
제타비는 무슨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큐브를 돌렸다.
Ⅵ, 생일 축하해.
...
Ⅵ, 생일 축하해.
유이... 유이...
잠긴 목소리로 그 이름을 읊조리며, 제타비는 흰색 큐브를 꼭 껴안고 몇 번이고 돌렸다.
그래. 이건 유이야.
기억이 안 나. 하... 하지만, 이건 분명 유이의 목소리야.
잊으면 안 되는데. 유이... 어디 있는 거야?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제타비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제타비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왜 이토록 동요하는 걸까?
실험실에 가득한 리본과 화환 그리고 "생일 축하해."
Ⅵ가 지칭하는 것이 제타비일까? 지휘관은 다른 단서를 찾다가 책상 위에 엎어진 액자를 발견했다.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마르타였다.
사진 속 배경은 게스트리고였고, 중앙에는 마르타가 서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연구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둘러서 있었다.
깨진 액자를 치우고 사진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르타 외에 다른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게스트리고에 재학 중인 기계체들이었다.
그 기계체들은 사진 속 연구원들과 묘하게 닮았다.
난 말이야, 과거 어떤 인간의 의식 샘플로 만들어진 기계 의식 모델이야.
행렬, 인간의 의식 샘플로 만들어진 기계 의식 모델, 기계체, 마르타, 학생...
흩어진 정보들이 모이자, 희미한 진실을 그려내는 것 같았다.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던 순간, 시선이 사진 속 또 다른 인물에게 끌렸다.
특이하게 흑백이 교차하는 긴 머리, 똑같은 붉은 눈동자...
하지만 표정만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응?
난 잘 몰라.
제타비는 흰색 큐브를 꽉 안은 채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성될 때 이산도가 높아서, 원래 의식 샘플과 완전히 다른 인격을 갖게 됐다고 누군가 말해줬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뭐라도 찾았어?
제타비는 호기심에 사진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유이?
모르겠어. 그녀를 보니까 그냥 내 처리 중추에서 이 이름이 떠올랐어.
고개를 다시 저은 제타비는 혼란스러운 듯 사진 속 소녀를 응시했다.
제타비는 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 목소리가 가지고 있던 감정은 잊어버렸다.
이 눈매를 본 적이 있지만, 그 따스함은 잊어버렸다.
제타비는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다른 건 완전히 잊었다.
이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진 그 "사람"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제타비는 감정을 가다듬고 단서들을 모은 뒤, 지휘관과 함께 흔적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찾았다.
파손된 통풍관을 따라가다 보니, 우연히 행렬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게 됐다.
우와...
눈앞에는 게슈탈트와 매우 흡사한 대형 기계가 있었는데, 동일 제작 기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작동이 멈춘 다른 계산 노드들처럼, 이 기계도 연산의 숨을 멈추고 죽은 것처럼 있었다.
지휘관과 제타비는 각자 살펴보기로 했다. 구석에서 칩 하나를 발견한 지휘관은 휴대용 단말기에 넣어봤지만, 데이터 락 때문에 읽을 수 없어서 일단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제타비는 인터페이스 부근에서 바늘 모양의 블록 노드를 발견했다. 그 노드는 중추를 통해 비정상적인 주파수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 신호가 침식체를 끌어들이고 있어!
노드를 제거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제타비의 표정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신호원 하나를 제거한다고 위기가 해결되는 게 아니야. 이게 여기에 있다는 건 누군가가 일부러 설치했다는 거거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단연코 방금 만났던 그 남자였다.
하지만 조금 전 제타비와 행렬을 철저히 수색했는데도 용의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노드를 설치한 자가 멈추지 않는 한, 침식체는 언제든 공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전 전투의 강도를 고려했을 때, 동부 성벽이 뚫린다면 이 도시는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size=40>증원 요청: 지점 141호 도시</size>
<size=40>위험 등급: 중</size>
<size=40>상황 개요: 침식체 유도 신호원 존재. 일부 병력 지원 요청.</size>
지휘관은 위급 상황의 가능성을 간단히 정리해 세리카에게 전송한 뒤 그곳을 벗어났다.
둘은 폐허를 떠나, 제타비가 해제한 외부 차단막을 우회하여 도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방금 선생님이 몰래 정보 보내는 거 봤다~
히. 설명할 필요 없어~ 선생님이 뭘 하러 왔건, 난 전혀 관심 없으니까.
제타비는 하늘이 선택한 자만 찾으면 여기를 떠날 거야.
!
제타비의 꼬리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폭발이야!
갑자기 돌아선 제타비가 지휘관을 확 밀쳐냈다.
쾅.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뜨거운 기류가 맹수처럼 포효하며 사방을 휩쓸었다. 제타비는 지휘관을 꽉 감싸 보호했지만, 둘은 충격파 때문에 몇 미터나 밀려났다.
고막이 울리는 것을 참으며 몸을 일으키자, 먼지 속에서 침식체들이 덮쳐왔다.
폭발로 인한 어지러움 때문에 총알 몇 발이 빗나갔고, 침식체의 날카로운 칼날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꺼져.
제타비가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제타비가 다시 움직이기도 전에, 남은 침식체들이 그녀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들었다.
윽...
제타비는 침식체를 힘껏 떨쳐냈지만, 상처에서 순환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하하하하하, 내 폭탄 쇼 어땠어?
짙은 화약 연기 속에서 쉰 듯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연기 속에서 얼핏 보이는 것은 회색 구체 같았다.
제타비는 말 없이 총을 들어 사격했다.
맞추지도 못하네~
회색 구체는 몇 번 튀더니, 짙은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체 뭐지?
눈살을 찌푸린 제타비는 침식체가 튀어나온 방향을 바라봤다.
다섯. 아니, 열, 스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여긴 도시의 중심부인데 여기까지 침입하다니.
하나가 아니었나 봐.
번호 035034 전술 교사, 게스트리고 본부에서 호출합니다.
갑자기 마르타의 통신이 연결됐다.
대규모 침식체 신호가 도시 외곽에서 감지됐어요. 동부 틈새가 완전히 무너졌고, 남동쪽과 북동쪽 성벽도 뚫렸어요.
도시 중심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요. 그러니 신속히 게스트리고로 철수하세요.
아이비그와 짝수 번호 개체들이 게스트리고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고, 홀수 번호 개체들은 엄호를 맡고 있어요.
마르타가 전에 중심부가 침식되면 학생들은 폐기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에요. 지형을 이용해 버티더라도 이런 대규모의 침식체를 상대로는 결국 전멸할 뿐이에요.
게스트리고는 도시 서쪽 교외에 있고 도로가 좁아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선생님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지금 즉시 게스트리고로 복귀하세요. 전용차가 데리러 갈 거예요.
제타비, D-33 거리는 남동쪽과 북동쪽 침식체의 합류 지점이에요. 침식체 대부대의 진격을 최대한 늦추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교사에겐 현장 지휘 권한이 없어요. 대신 지휘관님의 안전은 보장될 거예요.
여기서 죽을 필요 없어요. 이 도시는 끝났고, 그녀들의 시험은 실패할 거예요. 선생님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떠나셔도 책임질 필요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폐허의 일부가 되고 싶으시다면, 막지는 않을게요.
침식체를 피해 사격하던 지휘관이 마르타가 통신을 끊기 전에 서둘러 물었다.
...
통신 맞은편에는 침묵이 흘렀다. 마르타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제7 행렬 계획의 피해자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