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1 끝과 시작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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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1-9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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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도시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았고, 일기장에 기록된 건 대표적인 장소뿐이었다.

지휘관은 학생들을 여러 팀으로 나누어 각 구역을 조사하게 했고, 자신은 음반 가게 방향을 계속해서 탐색했다.

어이, 피하면서 가, 저 기계체들 못 봤어?

지휘관이 모퉁이를 돌려는 순간, 구석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리하게 정보의 냄새를 감지한 지휘관은 벽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아... 그 교복 입은 여자애들 말하는 거야?

"여자애들"은 무슨. 걔네가 도시 중심을 습격했던 그날을 잊은 거야? 네 이웃집의 처남도 그때 사고로 돌아가셨잖아. 까먹었어?!

하지만... 지금은 도시를 지키는 "무기"가 됐다고 들었어. 지난번 침식체 침입도 그 아이들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던데.

젠장, 무기는 무슨? 그냥 살인마들이지. "생존"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은 도시를 지키고 있지만, 그래도 기계체에 불과해! 언제 미쳐 날뛸지 누가 알겠어?

그렇긴 하네. 조심해야겠어.

주민 둘이 모퉁이로 사라지자, 대화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지휘관은 희미해진 소리를 따라가던 중 갑자기 왼쪽 전방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관찰력이 대단하군.

정장 차림의 남자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칭찬의 손뼉을 쳤다.

직원 번호 035034. 게스트리고의 신임 지휘관, 맞나?

ID 카드 정보만 알더라도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컸다. 그래서 지휘관은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긴장할 필요 없어. 나도 우연히 네 얘기를 들었을 뿐이거든. 나도 회사 소속이야. 번호는 000679, 호르스트라고 하네.

호르스트는 두 손을 들어 적의가 없음을 밝혔다.

그냥 호르스트라고 해.

호르스트는 앉아서 이야기하라며 손짓했다.

학생들이 141호 도시를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게 만든 너의 능력에 난 감탄했어.

똑똑한 사람일 테니 간단히 말하지. 더 이상 학생들의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해.

혼란스럽겠지만, 우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내 기억이 맞다면, 게스트리고 학원은 지휘관이 직접 전장에 나가는 걸 금지시켰어.

지난 회의에서 게스트리고의 작전 총괄인 마르타가 발표한 명령이었지.

그런데 넌 그 명령을 어기고 전투에 참여했어.

참전한 학생들은 다 살아남았지만, 많은 계산 노드가 손상됐기 때문에, 네 전투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

당연히 아니야.

호르스트의 시선에서 묘한 칭찬의 눈빛이 느껴졌다.

보아하니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것 같군.

그래. 회사의 이념과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너처럼 그 아이들이 살아남기를 바라.

그쪽도 눈치를 챘을 텐데? 기계체이긴 하지만, 그녀들에게 "감정"이 없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게스트리고는 그녀들을 단순히 무기로 취급하며, 잔혹한 전투에 계속 희생시키고 있지.

난 뭐라도 하고 싶어. 아니, 난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당연하지.

게스트리고는 강제 법령을 설정해 그녀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했어. 일종의 통제 도구인 거지.

법령을 해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 침식체가 도시 중심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그녀들에게 씌워진 강제 법령이 풀릴 거고, 그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어.

그녀들이 "자유"를 얻으면, 더 이상 희생도 없을 거야.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녀들의 전투에 간섭하지 않는 거지.

그 애들이 침식체와 싸우지 않게 유도하고, 주민들을 지키게 하면 돼. 그 애들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하...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 아이들의 생사는 나와 내 미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해 주게.

호르스트는 지휘관에게 명함을 건넸다. 거기에 적힌 호르스트의 직급은 "지휘관"보다 두 단계 높았다.

넌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지켜냈지만, 전투 성적을 논하자면, 솔직히 이상적이지 않잖아.

이번 일에 협조해 준다면, 본부에 특별 보고서를 올려서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도와주지. 네가 정말 지켜야 할 걸 지킨 거니까 말이야.

잘 생각해 보고, 명함의 개인 통신 포트 번호로 최대한 빨리 알려줘.

호르스트는 재촉하는 말투로 강조했다.

뭐야? 제타비의 추적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

제타비가 되물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호르스트라는 남자와 헤어진 후, 지휘관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갔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한 거였다.

호르스트가 제안한 내용은 사실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회사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잠입 조사 중인 지휘관에게 그가 그린 큰 그림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큰 "그림"이라면, 분명 뒤에 뭔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목적인 걸까?

법령을 해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 침식체가 도시 중심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그녀들에게 씌워진 강제 법령이 풀릴 거고, 그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어.

호르스트의 목적이 침식체를 도시 중심으로 유도하는 거라면, 최근 자주 일어난 침식체 침입 사건들이 그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지휘관은 호르스트와 만나자마자 제타비에게 암호를 보내 호르스트를 추적하게 했고, 단말기에 표시된 꼬마 악마 표식을 따라 이 폐허까지 찾아왔다.

그냥 폐허일 뿐인데, 주황색 반투명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제타비가 호기심에 고철 조각 하나를 던졌더니 순식간에 녹아 쇳물로 변했다.

그냥 폐허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막아 놓을 필요가 있어?

보호막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니 규칙적인 구체가 아닌 네트워크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근처에 이 보호막을 유지하는 네트워크 노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이걸 찾는 거야?

제타비는 꼬리로 높은 원형 난간을 가리켰다. 양쪽이 서로 다른 각도의 보호막과 맞닿아 있는 걸 보니, 추측한 노드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뚫어야 할까?

선생님, 좀 도와줘~

제타비의 꼬리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야!!!

뭐 하는 거야?!

제타비는 화난 표정으로 돌아보며 꼬리를 황급히 뺐다.

선생님,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연결하라고! 연결!

내 꼬리가 이 노드들에 접속할 수 있어서 해독해 보려고 해. 하지만 내 의식이 침투하고 나면, 되돌아올 길이 필요해.

다시 말해서 신호등이 필요하다는 거야. 알겠어?

제타비의 특별한 능력 덕분에 둘은 조심스럽게 폐허 깊숙이 잠입할 수 있었다.

외부 차단막의 방어력을 신뢰한 탓인지, 안에는 초병이 한 명도 없었다.

거대한 기계 랙이 늘어선 모습이 시야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랙 내부의 LED 조명 대부분은 꺼져 있었다. 이곳의 계산 노드는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와본 적 있다기보다는...

제타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기는 내가 태어난 곳일지도 몰라.

지휘관, 방금 그 거대한 랙들 봤지? 여기는 예전에 슈퍼컴퓨팅 센터였어.

그리고 만약 그런 슈퍼컴퓨팅 시설을 찾게 되면, 자료 좀 가져와.

역시나 아시모프가 예상한 대로 슈퍼컴퓨팅 시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제타비는 지휘관을 이끌어 랙 옆에 인쇄된 글자를 보여주었다.

NO.7-Matrix-B2-R03-15

행렬...

깊게 숨을 들이마신 제타비는 온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여기였구나.

어머, 지휘관은 제타비의 과거가 그렇게 궁금해?

정말 당해낼 수가 없구나~

난 말이야, 과거 어떤 인간의 의식 샘플로 만들어진 기계 의식 모델이야.

알고 있어야 마땅한데...

한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모델이라면, 보통 자신의 기억 일부를 파라미터로 입력하잖아? 그래야 외부 세계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황금시대의 일반 모델처럼 긴 반복 학습 과정을 거쳐야 할 거야.

그런데 난 기억이 시작됐을 때부터 내 이름이 제타비라는 것만 알고, 왜 태어나자마자 행렬에 있었는지, 날 만든 인간 의식 샘플이 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

어떤 기억을 잊어버린 것만 같아...

제타비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당시 기억이 희미해서 슈퍼컴퓨팅 센터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구체적인 위치는 몰랐거든.

게다가 전쟁이 잦아서 외출할 기회도 더 드물었어.

왜냐하면 내가 눈을 뜨자마자, 전원이 차단됐거든.

폐허에서 기어 나왔을 때 주변에 침식체만 있었던 게 기억나.

내가 힘이 거의 다 빠졌을 때, 그 여자가 교복 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날 침식체들 속에서 구해줬어.

제타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했다.

그냥 후배들을 부르는 호칭일 뿐이야. 난 이미 "각성"한 개체지만, 그 애들은 아직 각성하지 못했잖아. 그 멍한 모습이 딱 애들 같지 않아?

어쨌든 그 후로 그 학생들과 함께 게스트리고로 가게 됐어.

있지,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을 텐데.

거기에 머물면서 그 애들이 최종 시험을 통과하도록 돕는 건,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야.

"하늘이 선택한 자."

아직 기억하고 있네.

하늘이 선택한 자는 제타비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야.

나와 같이 행렬에서 수많은 훈련을 하고, 마지막엔 자신의 연산 능력을 희생시켜 날 현실로 보내줬어. 어쨌든 제타비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야 해.

예전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나중에 그 여자가 말하길, "하늘이 선택한 자"는 사실 빈껍데기일 뿐이래.

응. 그 여자 말로는, 하늘이 선택한 자는 제타비와 같은 실험실에서 "태어"났는데, 뭐 때문이라더라... "과적합"이었나? 어쨌든 그거 때문에 그녀는 태어날 때 "의식"이 없었다고 해.

같은 실험실에서 태어났는데, 하늘이 선택한 자는 항상 분홍 머리를 하고 있어서 제타비와는 전혀 닮지 않았어.

제타비는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빈껍데기라고 말한 걸 보면, 진정한 "하늘이 선택한 자"는 따로 있다는 말이잖아. 그래서 반드시 찾아야겠어.

그냥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만, 제타비는 하늘이 선택한 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관없어.

하늘이 선택한 자의 남은 데이터를 얻어야만, 그녀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마침 그 데이터를 회사 측에서 가지고 있거든. 그 아이들이 시험에 통과하도록 돕는 게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이었어. 그래서 내가 학원에 남아 있는 거야.

약 1시간 전

중앙 폐허에서 바늘 모양의 블록 노드를 꺼낸 정장 차림의 남자가 차를 타고 도시 곳곳에 노드를 배치했다.

중앙 신호원 하나로는 부족한 겁니까?

더 많이 배치해야 침식체들이 어디를 공격할지 더 명확히 알게 될 거다.

그 전술 교사와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휘를 포기하기로 했습니까?

포기하면 제일 좋지. 이번 작전에서 순순히 지휘를 포기한다면, 그녀를 우리 쪽으로 데려와도 좋을 것 같은데, 훌륭한 인재잖아.

만약 그렇지 않고, 굳이 나선다고 해도, 그녀 혼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거야.

침식체들이 모이면, 경로대로 공격하게 하지.

그리고...

"그윈플렌"도 함께 풀어줘.

?! 그윈플렌도 함께 투입하시겠다고요? 그 녀석은 우리 지시를 따르지 않잖아요.

머뭇거릴 필요 없어. 저 기계체들의 통제권만 빼앗을 수만 있다면, 이 도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