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렬의 물리적 중추
게슈탈트의 핵심 구조를 참고했지만, 눈앞에 있는 건 결국 게슈탈트의 서브 단말기일 뿐, 본체와 동일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 여기 서 있는 연구원들은 행렬을 연결해 더 큰 연산 능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게슈탈트를 초월하길 갈망하는 사람들이었다.
또는 그 누군가의 도구라고 할 수도 있다.
집행관님, 이게 바로 현재 행렬에 있는 모든 모델입니다.
호르스트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전방을 향해 45도로 허리를 굽혔지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아주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의기양양하면서도 억지로 공손함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도 일말의 악의까지 뒤섞인 표정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르스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연로한 집행관이 갑자기 배를 잡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팬 소음 속에서도 그의 웃음소리는 귀를 찌르듯 날카로워서 듣는 이들마저 얼굴을 찡그렸다.
그윈플렌 집행관님, 혹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르스트는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하, 됐다, 됐어, 호르스트. 내 웃음소리가 너무 불편하진 않았길 바라.
별말씀을요, 저희가 왜 불편하겠어요?
하하하하. 내가 늙어서도 이 버릇은 고칠 수가 없어. 이렇게 뜬금없이 웃어버리고 말이야.
호르스트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곁눈질로 집행관이 더 이상 웃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사가 041호 구역의 검증 임무를 집행관님께 맡겼으니, 집행관님께서는 저희의 중요한 손님이십니다.
이번 저희 실험 진행 상황을 잘 살펴봐 주시고, 나중에 연산 능력을 좀 더 신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연산 능력이 충분하면, 저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레보비츠에 비어 있는 행렬이 꽤 있어서, 다른 서브 단말기와의 연동은 어렵지 않아.
그럼, 한번 보시겠습니까?
하지만 단일 행렬도 상당한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이미 그렇게 많은 자원을 썼는데도 유의미한 결과물이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야.
네. 네. 그렇죠.
나야 이미 노인네지만, 레보비츠 회사는 아직 한창이네.
노인네 하나 눈감아주는 거야 그렇다 쳐도, 다른 집행관들은 그리 너그럽지 못할 거야.
네... 네. 혹시 이 개체 중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십니까?
하늘이 선택한 자와 Ⅵ... 내가 이름을 잘못 기억한 건 아니지?
노인은 눈썹을 내리깔고 가느다란 눈으로 줄지어 있는 캡슐들을 살펴봤다.
너희 둘은 하늘이 선택한 자와 Ⅵ의 캡슐을 중추에 넣고 자극성 테스트 준비해.
하지만 Ⅵ는 방금 부화된 거라, 당장 자극성 테스트를 하면 모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시키는 대로 해.
옆에 서 있던 연구원이 동료를 막아섰고, 호르스트가 화내기 전에 하늘이 선택한 자와 Ⅵ의 캡슐을 얼른 꺼냈다.
거대한 중추가 차가운 기계음을 울리며 두 캡슐을 동시에 흡입했다.
작동이 시작됐다.
잠깐, 조명 시스템이 왜 이래? 중앙 제어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확인해 봐.
빠르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다가, 이어서 고주파의 빠른 점멸이 시작됐다.
경보가 울리면서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이 실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관리자님, 행렬이 통제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통제 같은 소리하네! 캡슐이 출력 장치와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잖아. 어서 끊어!
갑자기 연결을 끊으면 모델이 과부하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Ⅵ의 외상 반응이 너무 강해서, 시뮬레이션 통각 신호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자, 다들 침착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윈플렌이 연구원의 다급한 손놀림을 막아섰다.
그윈플렌은 의아한 시선 속에서 경보음에 맞춰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불빛 아래에서 도약하고 회전하는 그윈플렌의 늙고 둥근 몸체가 뒤편의 거대한 행렬 중추와 어우러져 기이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것은 그 모델의 "고통" 위에서 피어난 기쁨 어린 웃음소리라는 것을 호르스트조차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경보음이 점점 더 귀를 찌르는 동안, 호르스트의 흥분도 함께 고조되었다. 그는 거의 기뻐서 뛰어오를 뻔했다.
뚱뚱하고 연로한 집행관은 이 모든 상황에 만족한 모양이다. 검증만 통과한다면 다른 행렬의 연산 능력을 얻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관리자님, 버퍼 중단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그 모델은 조정도 안 거치고 자극성 테스트를 받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오염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호르스트는 연구원의 발언을 무시한 채, 이상한 집행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경보음에 맞춰 춤을 추며 웃고 있었다.
지금은 집행관님을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 모델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하나 망가지면 다른 걸로 바꾸면 돼.
그런데 연산 능력을 얻을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잖아.
하지만 Ⅵ라는 그 모델은... "기적"에 가까운 샘플입니다. 이런 실험 샘플은 워낙 드물어서 망가지면 대체품을 찾기 어렵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데이터나 잘 지켜보면서 네 일이나 제대로 해.
알겠습니다.
데이터를 주시하던 다른 연구원이 긴장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23.33%, 19.45%, 13.21%. 큰일 났습니다. 감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감도는 모델이 상처에 보이는 반응 강도로, 모델이 안정적일수록 자극에 대한 반응은 강해지고, 반대로 불안정하면 반응이 약해진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모델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데이터이다.
쳇.
그윈플렌은 아직도 멈추지 않는 건가? 이대로 가다간...
호르스트는 그 모델이 폐기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집행관이 모델이 폐기되기 전에 저 망할 왈츠를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검증 통과 기회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경보음이 점점 작아지면서 모델이 곧 붕괴할 경지에 이르렀다.
행렬의 펄스 진폭을 낮춰.
오호?
집행관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호르스트는 조작하려는 연구원을 급히 막아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10%! 10%! 수치가 안정됐습니다!!
이건 변화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순간으로, 빠르게 하강한 뒤 갑자기 평편해진 곡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펄스가 뭔가에 의해 멈춘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하늘이 선택한 자의 신호 파형이 감지됐습니다!!
하늘이 선택한 자?! 자극성 테스트에 한 번도 반응한 적 없던 그 모델이?!
하늘이 선택한 자가 Ⅵ를 위해 펄스를 막아냈습니다!
그 대가로 하늘이 선택한 자의 감도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95.31%, 87.28%, 80.05%...
서프라이즈를 아주 다양하게 보여주는군, 호르스트?
노인은 마침내 우스꽝스러운 춤을 멈추고, 흥미롭게 호르스트 쪽을 바라보았다.
보신 대로입니다, 집행관님. 그럼, 검증 관련해서는...
자극성 테스트가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남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마지막으론...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겁니다.
연구원들이 모두 침을 삼켰다.
두려운 건 그 단어 자체가 아니었다, 두 모델이 모두 과부하 상태였기 때문에 펄스가 한 단계만 더 상승해도, 더 이상 단순한 테스트가 아닌 진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집행관님 말씀대로 해.
이를 악문 호르스트는 "기적"과 현실의 연산 능력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호르스트의 신호를 받은 연구원이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테스트의 시작 버튼을 누르려 했다.
집행관님, 잠시만요.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연구원은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델라웨어,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델라웨어를 데려가서 쉬게 해. 오늘 피곤했을 테니까.
유이가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호르스트는 침착하게 옆의 두 경비를 불렀다.
델라웨어? 유이·델라웨어?
호르스트, 그렇게 흥분하지 마. 내 기억이 맞다면, 델라웨어가 하늘이 선택한 자와 Ⅵ의 개발자잖아, 그렇지 않나?
개발자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는 게 어때?
하지만 집행관님, 저 여자는 모델 테스트에 편견이 있습니다. 실험에 개입하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윈플렌이 원하는 그 "죽음의 쇼"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윈플렌이 호르스트에게 잠시 입을 다물라고 신호를 보낸 뒤, 유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이는 호르스트의 말을 무시한 채,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의 연구원들과 그윈플렌에게 인사했다.
집행관님의 너그러움에 감사드립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입을 연 유이의 말투는 평온하고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곁눈질로 대형 스크린의 감도 곡선을 계속 확인했다. Ⅵ 9.23%, 하늘이 선택한 자 43.59%, 두 값 모두 급격히 하강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테스트에 반응이 없던 하늘이 선택한 자가 갑자기 왜 오늘 반응을 보이는지, Ⅵ의 데이터가 왜 10% 근처에서 안정되었는지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캡슐을 빨리 중추에서 꺼내지 않으면, 그들은 진정한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집행관님, Ⅵ는 한 시간 전에 제 의식 샘플링으로 생성된 것으로, 모든 파라미터가 조정을 거치지 않은 초기 형태입니다.
하늘이 선택한 자도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 있지만, 충분한 순환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강제로 테스트한다면 84.23% 확률로 데이터 오염이 일어날 수 있고, 한번 오염되면 두 모델의 데이터는 전부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델라웨어!
호르스트가 멀리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두 모델은 네가 개발하긴 했지만, 사실상 회사의 자산이다.
개인의 연구 욕망 때문에 정상적인 실험 진행을 방해하지 마.
하늘이 선택한 자 23.52%, Ⅵ 8.45%.
유이는 억누르기 힘든 초조함을 느꼈다.
마음은 초조했으나, 연구원으로서의 이성은 차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호르스트 관리자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 두 모델은 회사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성급한 실험으로 폐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충분한 발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회사에 더 유익할 것입니다.
집행관님께서 조금 전 테스트에서 보셨듯이, 그들은 고통 자극에 대해 정상적인 두려움과 반응을 보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 실험은 충분한 검증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모델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특히 방금 탄생한 두 모델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개발자로서 집행관님께 이번 실험을 잠시 중단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충분한 시간을 주신다면, 완성도가 더 높은 실험 성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윈플렌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긴 모자챙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표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델라웨어, 네가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의 흥이 깨졌다는 걸 알고 있나?
낮고 음울한 목소리에 호르스트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집행관님, 그녀의 의견은 무시하셔도 됩니다. 실험은 지금 바로 이어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윈플렌은 손짓으로 호르스트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죽음"은 모든 개체가 마주해야 할 숙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면, 인간이 이런 모델을 신뢰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하늘이 선택한 자 12.22%, Ⅵ 5.67%."
유이...
그것이 유이를 부르고 있었고, 힘없고 희미한 그의 목소리에 유이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조여들었다.
이건 유이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캡슐은 여전히 그녀와의 원거리 의식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유이는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네. 맞습니다.
방금 외부 출력 장치의 반응을 보면, 불빛이 깜빡이고 경보가 울렸습니다. 이 두 모델이 고통 자극에 보인 반응은 "두려움"뿐이었을 겁니다.
배의 기적 소리, 하수구의 물방울 소리...
하지만 인간이 온갖 위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용기와 큰 연관이 있습니다.
차가운 침식체 손바닥, 종아리에 전해지던 통증...
오호?
그윈플렌의 침울한 목소리에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용기입니다. 이 두 모델은 이제 막 탄생해 아직 유년기 상태로 위험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만 느낍니다.
만약 조기에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면, 매우 지루한 결과만 나올게 뻔합니다. 결국 모두가 예상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겠죠.
집행관님께서 성장할 기회를 주신다면, 충분히 각성할 그날이 올 것이고, 새로운 서프라이즈를 안겨드릴 겁니다.
용기라...
그윈플렌은 수년간 듣지 못했던 단어를 곱씹으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좋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딱딱한 도구들 속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제안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델라웨어, 넌 회사 본부로 갈 만한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내가 너의 추천인이 되어주마.
근데 말이야, 난 첫 번째 모델의 "죽음" 체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도 상당히 가치 있는 실험 결과라고 생각하거든.
그윈플렌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하얀 수염 사이로 피처럼 붉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지금 그것들을 꺼내도 되지만, 데이터는 여기서 중단될 텐데, 만약 네가 고집하겠다고 하면, 난 방금 했던 제안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군.
다시 말해서, 본부 추천 여부와 041호 행렬의 연산 능력 확충 여부를 나중에 다시 논의한다는 거지.
어쨌든... 네가 방금 말한 "각성"의 가능성을 입증하려면 완전한 데이터가 필요하니까.
(이런... 젠장.)
집행관님의 이해와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Ⅵ 1.51%, 하늘이 선택한 자 7.89%.
유이. 잠깐만. 041호 행렬의 연산 능력은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리고 본부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유이는 호르스트의 외침을 무시한 채, 그대로 행렬 중추로 빠르게 걸어갔다.
종료되었습니다. 배출을 진행합니다.
젠장!
두 캡슐을 모두 안고 나온 유이는 호르스트의 고함을 무시한 채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뇌를 가득 채운 이명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남아 있는 이성이 유이를 실험실로 데려왔고, 그녀는 결국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기이하고 낯선 공간
약 1시간 전
지휘관은 이곳이 결코 친근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굳이 꿈에 비유하자면 악몽으로 분류되어야 할 곳이었다.
왜 꿈속에 있는지,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끽!!!
끔찍한 괴물들이었지만, 이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른 한쪽 구석에서 떨고 있는 빛을 에워싸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높이 들어 올려 힘껏 내리쳤다.
(극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순환이 반복됐다.
약해져 있던 빛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겁에 질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그 칼날은 계속 내리쳤다.
결국 빛은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고, 칼날들이 빛을 다른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다시 높이 들어 내리쳤다.
붉은빛이 거품처럼 튀었다. 그리고 빛은 계속 떨고 있었다.
왜 아무도 빛을 도와주지 않는 걸까? 그 빛은 아직
<size=40>아이에 불과한데.</size>
이상한 생각이 순간 지휘관의 마음을 덮쳤다. 이곳에는 빛을 제외하면 지휘관밖에 없었다.
(허약한 비명을 질렀다.)
다음 칼날이 빛을 향해 내리쳐지는 순간, 마음속 선한 의지가 지휘관의 몸을 앞으로 던졌다.
하지만 두 팔을 뻗어보니, 갓난아기 같은 여린 팔이 보였다. 이 꿈속의 자신은 이렇게도 약한 존재인 걸까?
괴물들이 그의 존재를 발견했고, 칼날들이 하나씩 내리쳐왔다.
작고 힘없는 몸으로는 도망칠 수도, 막아낼 수도 없었다. 칼날이 자신의 몸을 베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과 배를 베고 목을 베어 살과 피를 뒤섞었다. 그리고 한 번 또 한 번 끊임없이 반복됐다.
심장과 뼈가 중간에서부터 갈라지고, 근육과 살점이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는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하지만 바로 죽지는 않고, 몸이 재생되어 다시 칼날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피해야 할까? 비켜선다면 "그것"이 다시 칼날 앞에 놓이게 될 것이고, 지휘관 자신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괴물들이 빛을 발견했고, 계속해서 둘을 향해 칼날로 내려쳐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여전히 빛 앞을 지켰다. 빛은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는지 뒤에서 지휘관을 꽉 껴안았다.
둘의 생명이 모두 흘러 나가고 있었다. 몸이 재생되는 속도가 괴물들이 베어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지휘관과 빛은 점점 투명해졌다.
의식도 흐려지면서 고통조차 느낄 수 없게 됐다.
흐릿한 시야 속, 빛이 오히려 지휘관을 뒤로 숨기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칼날이 모여 거대한 단두대로 변했고, 꿈의 경계만큼 넓어져 둘의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이젠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단두대 칼날이 떨어졌다. 하지만 몸에 닿기 직전 산산조각 났다.
두 손이 나타나 빛과 지휘관을 부드럽게 손바닥 안에 감싸안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따뜻한 인공 빛이 빽빽한 수식 위를 조용히 내리쬐고 있었다. 넓은 실험실 안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경쾌하고 빠르게 울렸다.
총 324개의 대항 샘플 위치를 모두 확인했어요.
극한 테스트 환경에서 벗어났음에도, 데이터는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오염을 남길 수 있었고, 네트워크 깊이에 따라 점점 더 확대될 수 있었다.
입력층에서 중간층 그리고 출력층까지 안팎으로 다섯 번이나 재검토했다. 그리고 보이는 노이즈는 모두 찾아 제거했다.
하지만 분침이 또 한 바퀴를 돌았음에도 두 의식 캡슐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델의 복잡도는 인간의 뇌에 뒤지지 않았고,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그들 스스로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후...
유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초조함과 불안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려 했다. 원거리 연결은 안정을 돕기 위한 것이었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거꾸로 전달해선 안 됐다.
캡슐을 안아보니, 데이터 오염이 아직 제거되지 않아서인지 그들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반응은 없었다. 왜 아직도 안 되는 걸까? 유이의 머리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깨진 과거 속에서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유이는 생각이 났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유이는 어머니의 당시 행동을 어색하게 따라 하며, 캡슐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게 또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유이... 유이..."
약하고 작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모니터 스크린의 감도 곡선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Ⅵ의 목소리였다.
나, 나 여기 있어!
아직 살아있다. 다행이었다.
유이는 고개를 들어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는 여성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헤르타 님, Ⅵ의 의식이 깨어났어요. 복구의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 해요.
완화제와 포도당을 좀 더 준비해 주세요. 137호에서 198호까지의 원거리 연결 신경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해 주시고, 출력도 20% 더 올려주세요.
캡슐을 무릎 위에 놓은 유이는 새로 발견된 오염 지점을 손으로 확인했다.
"유이, 지 마. 지 마."
다시 Ⅵ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하는 거지? 가지 말라는 건가?
나 여기 있어. 안 갈 거야.
유이는 왼손으로 캡슐 외벽을 두드리며 자신은 떠나지 않을 거라고 표현했다.
"유이, 지 마. 지 마."
Ⅵ는 멈추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잠꼬대처럼 부르고 있었다.
자연스레 키보드 두드리던 걸 멈춘 유이는 몸을 숙여 귀를 가까이 대보았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걸까?
<size=60>유이, 울지 마.</size>
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가 순간 모든 이성을 부숴버렸다.
유이의 눈가가 흐려지더니 뭔가가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뚝, 뚝.
유이는 이제껏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예전의 산산조각 난 자신을 안아주듯 정말 꽉 캡슐을 끌어안았다.
관리자님, 이 실험체들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대로 계속한다면...
듣기 싫다. 닥쳐.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상상이 돼?! 연산 능력 확충이 눈앞에 있었어!! 그 여자가 내 일을 망치지만 않았어도.
너희가 똑바로 일 처리를 못하니까 우리가 집행관님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한 거 아냐?!
하지만 관리자님, 그들은 모두 141호 도시의 수용 기회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 어서 샘플링이나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