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1 끝과 시작의 경계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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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1-5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시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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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이 부서진 몸을 끌고 학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출발할 때보다 인원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또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망막에는 꿈의 허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침 햇살도 악몽이 가져온 그늘을 걷어내지 못했다. 제타비... 그 소녀는 그렇게 꿈속에서 쉽게 사라져 버렸다.

단순한 악몽이었을까? 아니면 과거에 겪었던 진실이었을까?

허상이 조금씩 사라지면, 종소리가 계속 울렸다.

지휘관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순환액의 녹슨 쇳내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붉은 액체 자국이 계단에서 복도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 부축하며 지휘관의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 특별한 검은 그림자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멀리 교문에서 마르타와 아이비그를 발견한 지휘관은 지나가면서 목걸이의 숫자들을 조용히 기록했다. 8, 10, 13, 22, 24, 26.

불연속적인 숫자들... 마르타가 전투 전에 발표한 명단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르타 장관님, 제13, 14 전투 구역이 함락됐습니다.

모든 전투 구역의 통신 탑이 파괴되었고, 제7구역만 에너지 스테이션과 2개의 계산 노드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경제적 손실은 총 1,382개 표준 보급 단위입니다.

또한, 141호 도시 동쪽 벽면이 파손되어 좁은 틈이 발생했습니다. 침식체가 그 틈을 노려 기습 공격을 가한다면,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

침식체가 단시간 내에 다시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파악됐나요?

아직입니다.

인간형 전투 유닛의 사상자 상황을 보고하세요.

손실률은 약 40%입니다. 구체적인 번호는 9, 12, 14...

아이비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르타에게 일련의 숫자를 보고했다. 그리고 마르타는 몸을 곧게 편 채 묵묵히 보고를 듣고 있었다.

회사의 모든 자산 손실이 집계 완료되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마르타는 말없이 떠났다. 그러면서 인파를 헤치고 이곳에 도착한 인간과 스쳐 지나갔다.

소진 명단에는 없어요.

여기 있어요.

아이비그가 몸을 비키자 검은 마대가 지휘관의 눈에 들어왔다.

………………

마대 입구로 익숙하지만, 생기 없는 눈동자가 보였다.

아이비그가 마대를 열자, 산산조각 난 소녀 기계체의 몸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느다란 생체공학 피부가 크게 손상되어 조각난 기계 골격이 다 드러나 있었다. 대체 어떤 전투였기에 이 정도로 손상을 입은 걸까?

배터리가 없을 뿐, 아직 작동할 수 있어요.

제타비는 이런 게 일상이에요.

전투 시간이 길어지면 제타비의 의식이 불안정해지거든요. 그래서 무턱대고 적을 죽이다 보니 기체 손상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런 방식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어요.

네. 어제 전투만 예외였고, 보통은 이렇게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그날 제타비의 목표는 17호의 몸이었고, 선생님께서 17호를 먼저 데려오셨기 때문에 전투에 깊이 개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비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사실을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상황의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제타비답지 않은 행동이네요. 그녀는 보통 선생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요. 더구나 선생님과 함께 전투에 나서는 일은 더더욱 없었어요.

하지만 뭔가 변수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네요.

아이비그는 잠시 침묵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합리적인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가상 전투 시스템

게스트리고

게스트리고의 가상 전투 시스템.

오전 수업은 간단한 전술 협동 훈련이었다.

과거 전술 교사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간단히 전술 협동 훈련 결과를 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조금 전에는 제가 명령을 잘못 내렸어요.

다시 실패한 채 시스템을 빠져나오자, 아이비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계체의 데이터 처리 능력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주어진 명령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지휘관은 마르타의 요구 때문에 전투 지휘를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교실은 이미 3분의 1 정도가 비어 있었다.

그 학생들은 모두 희생됐을 것이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제타비는 이번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종이 울리자, 지휘관은 다른 학생들과 작별한 뒤, 수리실로 가서 제타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타비는 여기 없어요. 보통 이 시간이면 시계탑에 있을 거예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시계탑 꼭대기에서 제타비를 만났다.

?

제타비의 표정이 살짝 어리둥절해 보였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녀는 앉아서 오른팔을 어깨에 다시 연결하려 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입에서 이유 모를 사과가 튀어나왔다. 제타비가 수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실례야. 지휘관.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말도 없이 여기 와서 말이야. 내 이런 꼴을 보고 싶었어?

아무 말 못 하는 거 보니 내 말이 맞나 보네? 파편에 맞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이렇게 학생을 걱정하는 선생님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했네. 이제 돌아서도 돼.

제타비의 허락을 받고 돌아서니 반짝이는 소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휘관은 짐작할 수 없었다.

제타비의 몸에는 아직도 많은 기계 구조가 노출되어 있었고, 내부의 케이블과 인터페이스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몇 시간 전 마대 속에 산산조각 났던 모습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럭저럭. 하지만 정상적인 활동은 할 수 있어.

흥. 다리 쪽 신경 인터페이스만 끊어지지 않았어도 몇 명 더 구해올 수 있었을 거야.

제타비는 케이블 연결에 집중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무기"처럼 자신의 생명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제타비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건 다른 "무기"가 아닌, 더 귀중한 재산이어야 했다.

하하~ 걔네랑 어울릴 필요가 있나?

우리가 출발할 때, 그 할머니가 뭐라고 경고했지?

마르타를 말하는 걸까?

한 가지 충고드리죠. 그녀들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쏟지 마세요. 그게 당신과 그들 모두에게 좋을 거예요.

무기의 경우, 전투력이 강한 개체일수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소모하게 돼. 쓸데없는 감정은 오히려 그들의 전투력을 제한할 뿐이거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망가지는 무기를 인간처럼 대하다 보면, 결국 너희들 자신만 상처받게 되지.

감정을 가진 개체에게 감정을 쏟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선의라고 할 수 있다.

백을 말하는 거야? 내가 떠난 후 학교 안내한 개체 말이야.

제타비는 지휘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갑자기 백의 이름을 꺼냈다.

백은 방금 전투에서 희생됐어.

"이야기"라... 참 좋네요! 그럼,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건가요?

흥흥! 꼭 지휘관님께서 칭찬하실 만한 이야기를 쓸 거예요.

모르겠어. 백과는 서로 다른 전투 구역에 있었거든. 그런데 백의 번호가 손실 명단에 있었어.

제타비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어떤 무감각함 같은 게 느껴졌다.

백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걸 좋아했고, 재미있는 걸 발견하면 일기 모드를 켜서 현실에 없는 것들까지 적곤 했어.

맞아. 백과 대화한 횟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야. 어차피 그녀들은 언젠가 소모될 테니, 너무 많은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들을 기억하는 건 상관없잖아.

이곳의 모든 기계체들이 전쟁의 순환을 계속해서 겪고 있지만, 살아남은 건 나밖에 없었어.

내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이 재미있는 일들을 누가 기억해 주겠어?

마지막 이음매를 조인 제타비는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새하얀 햇빛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와 제타비의 몸을 꿈같은 은회색으로 물들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제타비는 돌아서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제타비

지휘관, 나와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니, 눈치챘을 것 같은데?

새하얀 햇빛, 새하얀 벽, 새하얀 천장과 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불쾌감을 주는 거대한 검은 시계가 방 중앙에 걸려 있었다.

아, 너도 그 시계 봤구나?

이 시계탑은 고장 났어. 그래서 시침과 분침 모두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

"카운트다운"이라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여기에 소유격을 만약 붙인다면 "생명"이겠지.

생명은 마지막을 향해 흘러가. 하지만 시곗바늘은 끊임없이 다음 윤회를 향해 돌아가며, 희망 없는 순환을 반복하고 있지.

제타비의 모습은 햇빛 아래에서 환상처럼 흐릿해졌다.

이곳의 모든 것들은 겉에서 보면 견고해 보여도 실제로는 모두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야.

역광 때문에 제타비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 아쉽지만, 나도 "부서지기 쉬운" 존재 중 하나인 것 같아.

다만...

제타비가 높은 곳에서 가볍게 뛰어내리자, 불꽃이 튀었다.

그때 일 기억나? 우리가 함께 "전투"했던 그때 말이야.

제타비의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대체 왜일까? 너와 함께 싸울 때만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거든.

눈을 가늘게 뜬 제타비가 기름때 묻은 손으로 앞에 있는 인간의 목을 살짝 눌렀다.

대체 왜?

흥흥~

다음엔 나랑 같이 출전할래?

다음번에는 아마 우리가...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달리고, 팔을 더 멀리 뻗을 수 있을 거야.

아련한 기시감이 공간을 부수고, 이성이 시선을 끌어당겨 시간을 현재에 고정하려 노력했다.

나를 믿어줘. 지휘관, 제타비를 믿어줘.

네가 손을 내밀어만 준다면, 난 절대 그 손을 놓치지 않을 거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제타비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땡... 땡... 땡... 땡... 땡...

급박하고 잦은 종소리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종탑 꼭대기에서 들으니 더욱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침식체의 기습을 알리는 경보가 다시 한번 울렸다.

설치가 다 됐나?

네. 완료됐어요. 이 주파수가 그들을 성벽의 틈으로 유도할 거예요.

좋아. 중앙지대만 함락되면 통제권은 우리에게 넘어올 거다.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좋은 실험체가 될 거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