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제타비가 또 유령처럼 사라졌다.
지휘관을 알아본 백발의 소녀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선... 선생님. 17호는 어떻게 됐나요?
백은 지휘관 앞에 멈춰 서서 인사를 건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백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죄송해요.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선생님께서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죠.
목걸이...
굳어 있던 백의 얼굴에 기쁨이 엿보였다. 백은 주변에 아무도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목걸이를 받아 품에 숨겼다.
하지만 어떻게 가져오신 거예요?
그랬군요.
백은 지휘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빨리 노트를 꺼내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백. 이건 우리의 예의 규범에 맞지 않아.
차가운 표정의 다른 소녀가 앞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조금 전에는 저희가 실례를 했네요. 학원 종소리가 저희에게는 절대적인 구속력이 있어서 정해진 시각에 강당에 도착해야 했어요.
그리고 백에 대해서...
아이비그는 웅크리고 앉아 빠르게 그림을 그리는 백을 힐끗 보고는 이어 말했다.
백은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일기 모드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려요.
네! 오늘 일기의 주제는 경단 대모험이에요!
백은 무슨 예술 작품을 완성한 것처럼 일기장을 보여줬다. 하지만 거기엔 각기 다른 크기의 원들만 그려져 있었다.
이 회색 동그라미는 전문가님, 흰색 동그라미는 저, 파란색 동그라미는 아이비그 그리고 우리 사이에 끼어 있는 건 17호예요.
17호는 어제 소진됐어. 그녀를 지워야 해.
알아. 그래서 속이 빈 원형으로 그렸잖아.
백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17호는 혼자 있는 걸 무서워했어요. 처음부터 저희랑 좀 달랐던 겁 많은 "무기"였죠.
하지만 지난번 "시험"에서 17호를 혼자 제6 전투 구역으로 파견했어요.
17호의 인격 모듈은 "두려움"과 "외로움" 신호가 쉽게 발생하는 편인데, 전임 선생님께서는 17호가 전투 구역 하나를 단독 방어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선생님 말씀으로는 17호가 제6 전투 구역에서 오랫동안 홀로 버텼고, 마지막에 가서야 소진됐다고 하셨어요. 전술적 관점으로 보면, 그 판단이 맞았던 거죠.
그게 문제가 아니야. 아이비그.
백이 한숨을 쉬었다.
17호가 완전히 정지되기 두 시간 전, 제6 전투 구역의 회사 자산은 거의 다 파괴되었어요. 그곳을 지킬 의미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어요.
17호는 "저희"를 위해서 그곳에 남기로 선택한 거예요. 제6 전투 구역은 후방에 있어서 그녀가 포기하면 대부대가 앞뒤로 공격받을 수 있었거든요.
결국 17호는 홀로 거기서 죽고 말았어요. 저희 중에서 "외로움" 신호가 제일 잘 발생했었는데.
백은 말하면서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위의 원들을 더 촘촘하게 그렸다.
그런 건 의미 없어요. 17호는 소진됐으니까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그녀의 목걸이를 가져다주셨어요.
적어도 제 일기에서는 그녀가 덜 외롭기를 바라요.
하지만 백의 처리 중추에는 "일기 모드"만 기록되어 있고, 백도 "일기 모드"만 실행할 수 있어요.
백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한 듯 지휘관 쪽을 바라봤다.
"이야기"라... 참 좋네요! 그럼, "일기 모드"를 "이야기 모드"라고 해도 되겠죠?
선생님, "경단 대모험"이라는 이야기가 어떠세요?
음... 그렇긴 하죠. "이야기"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방금 결정했어요! 선생님, 절 가르쳐 주세요!
하지만 선생님은 원래 선생님이시잖아, 그렇게 말하면 정의가 중복되는 거야.
전술 측면의 선생님이시고, 또 "이야기" 작성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되어 주세요. 이 내용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데,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마르타 장관님께서 전투 외의 외출을 금지하셨어요.
백의 말에서 어색함을 감지한 지휘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제2차 시험이... 끝난 후부터요.
그 이후로 저희에게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고, 도시 거주지에 출입하는 걸 금지하셨어요.
그 전투에서 많은 개체가 소진됐거든요. 그래서 장관님께서는 시험 결과에 크게 실망하셨고요.
그 후로 마르타 장관님의 태도가 바뀌었는데... 어떻게 보면 저희 책임이 맞죠.
또 "시험"이었다.
…………
…………
그 시기와 관련된 기억이 없어요. 그리고 마르타 장관님께서는 저희가 과거를 알아보는 것도 금지하셨어요.
그녀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한 무기로 취급받는 이들에게 정보를 통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제타비는 저희 중에서 전투력이 가장 강하고 가치도 가장 높은 개체예요. 선생님들 의견으로는 이미 졸업해야 했다고 해요.
이걸 보세요. 이 검은 동그라미가 그녀인데, 다른 동그라미들과는 떨어져 있죠.
백이 "경단 대모험"의 페이지를 가리켰다.
평소에는 혼자 다니지만, 저희와 함께 싸우기도 하고, 명령도 무시하면서 저희를 지키기도 하는... 참 이상한 개체예요.
그녀가 아주 외로운 데이터를 내뿜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제타비는 수많은 윤회 속 유일한 "고정점"이라고 할까요? 전투 중에 다른 학생들은 계속 소진되고 주변 동그라미들도 계속 바뀌는데, 그녀만은 변함없이 살아남아 있어요.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을 느낀 백이 다시 신비스럽게 말했다.
그럼, 경단 대모험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선생님, 지켜봐 주세요!
흥흥! 꼭 선생님께서 칭찬하실 만한 이야기를 쓸 거예요.
에이,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기대해 주세요. 백은 앞으로도 계속 선생님께 배울 거예요!
해가 저물었다. 두 학생과 작별한 지휘관은 학원의 화단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무기로서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제2차 시험 불합격 이후, 학원의 운영 방침이 180도 바뀐 것 같았다.
제타비는 특수한 개체로서 일상생활에서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시험 통과가 아닌 누군가를 찾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었다.
조사가 깊어질수록 수수께끼는 더욱 늘어나는 것 같았다.
땡... 땡... 땡... 땡... 땡.
탑의 종소리가 이전 회의 때와는 달리, 빠르고 빈번하게 울렸다.
곳곳에 있던 학생들이 빠르게 학원 중앙으로 집결했다.
"선생님"인 지휘관은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벽과 같았고, 학생들은 조용히 지나가면서 지휘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제각각이었지만, 문 앞에 다다르자 자연스레 정렬된 대형을 이뤘다. 또 시작됐다. 분명 교복을 입은 학생들인데, 기계적으로 정렬된 모습에 지휘관은 소름이 끼쳤다.
긴급 명령입니다. 제7, 13, 14 전투 구역이 침식체의 대규모 기습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르타가 학원 문 앞 계단에 서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쉰 듯 작았지만, 지휘관은 멀리 서 있으면서도 그녀의 명령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번호가 부여된 개체들은 각자 담당 전투 구역으로 출발하십시오.
7호부터 29호 그리고 32호부터 40호까지입니다.
사신이 명단을 부르자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불린 번호의 개체들 중 일부는 17호처럼 소리 없이 전장에서 "소모"될 것이었다.
이 앳된 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으로 보내다니...
출격하십시오.
교복을 입은 "무기"들이 순식간에 질서정연하게 전장으로 달려갔다.
…………
제타비는 어느새 눈앞을 스쳐 지나 지휘관 옆에 멈춰 섰다.
너랑 같이 싸우면 왠지 모르게 짜릿해. 어쩌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
선생님?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번에 같이 갈 거야?
다시 한번 그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제타비가 인간을 초대했다.
이번 전투는 각 인간형 전투 유닛이 자체적으로 전장 상황을 판단하므로, 전술 교사는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
지휘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마르타의 예리한 시선이 멀리서 그를 향하고 있었다.
"전술 교사는 현장 전투 지휘에 참여하지 않는다"라는 건 회의에서 발표된 "회사 명령"이었다.
그 명령을 공공연하게 위반한다면, 높은 확률로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141호에 잠입한 공중 정원의 첩자로서, 지휘관에게는 밝혀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전장의 정보와 이 무기라 불리는 소녀들의 전투 모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험 삼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을 뿐인데, 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순식간에 지휘관을 에워쌌다. 그러자 제타비도 두터운 장벽 뒤에 가로막혔다.
선생님,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요?
마르타의 차가운 말과 함께 병사들의 총구가 지휘관을 겨냥했다. 차가운 적외선이 일제히 머리를 조준하자, 순간적으로 생존 본능이 경보를 울렸다.
본 임무의 목적은 목표에 대한 정보 수집입니다. 다만 지휘관님의 안전 확보가 최우선 과제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저희와 계속 연락을 유지해 주시고, 돌발 상황이 예상되면 최소 한 시간을 확보해 주십시오.
게스트리고에 임명된 교관이시니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믿어요.
회사에서 후임 교사에 대한 추가 심사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당신과 말씨름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고집스럽게 명령을 거역하신다면, 당장 당신을 사살해도 상관없어요.
이 정도로 협박하는 건, 단순히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 아니었다.
즉시 물러나세요. 그리고 휴게실로 돌아가 대기하세요.
병사들이 천천히 흩어졌지만, 총구의 적외선은 여전히 지휘관을 겨냥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이해득실을 신중히 따져본 후, 우선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아직 밝혀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고, 조사 임무도 갈 길이 멀었다. 조급해할 때가 아니었다.
마르타에게 신호를 보내자, 지휘관을 향하던 시선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제타비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마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충고드리죠. 그녀들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쏟지 마세요. 그게 당신과 그들 모두에게 좋을 거예요.
마르타는 이 말만 남기고, 차갑게 돌아서서 떠났다.
?
공중 정원은 지금 새벽 2시야. 이 시간에 날 찾는 거라면,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겠지.
기계체? 잠입 임무 수행하러 간 거 아니었나?
황금시대의 대형 생체공학 인간 제조사인데, 카퍼필드와도 기술 교류가 있었어.
설마... 레보비츠 회사의 기계체를 만났다는 건가?
그들의 소식을 듣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거기가 레보비츠 회사 소속이라면... 게슈탈트와 비슷한 슈퍼컴퓨터 시설이 있을 수 있어.
게슈탈트 물리학의 창시자인 윌리엄·레보비츠가 그 회사 소속이었어.
당시 게슈탈트 연구 계획은 극비였지만, 외부로 유출된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어. 화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니까.
아무튼 레보비츠 회사가 게슈탈트와 관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게슈탈트와 유사한 슈퍼컴퓨터 시설을 갖추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겠지.
그래서 그 기계체들의 어떤 점이 이상하다는 거야?
그녀들은 "시험"이라는 명분으로 계속 침식체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제타비라는 소녀가 있는데...
이곳에서 겪었던 일을 아시모프에게 알리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간단히 답했다.
그녀들은 레보비츠 회사의 산물일 거야. 그 회사의 생체공학 인간 기술은 황금시대에도 이미 놀라운 수준이었거든.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 번째, 그들이 구조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수도 있고, 두 번째, 생체공학 인간에 어떤 AI를 입력해 인간의 "의식"을 대체했을 수도 있어.
지금 상황으로 보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겠군. 네 말대로라면 그녀들은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니 말이야.
쉽게 말하면, 예전 황금시대의 데이터셋을 이용해 AI 모델을 훈련하는 것과 비슷해.
그녀들의 상세 데이터는 나도 잘 몰라서, 당장 공유 가능한 정보는 여기까지야.
혹시라도 슈퍼컴퓨팅 시설을 찾게 된다면, 자료 좀 가져올 수 있나?
간단한 정보 몇 가지를 더 공유한 후, 아시모프는 통신을 종료했다.
텅 빈 교육 대강당, 마르타가 중앙에 서서 상부의 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5차 시험 성적이 좋지 않군. 마르타.
회사가 게스트리고에 임명하는 교사들은 모두 엘리트들이자, 전장에 관해 탁월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
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왜 긴급 임무 때 전술 교사의 현장 지휘권을 박탈한 거지?
이전 전술 교사들이 맡았던 작전 임무는 거의 실패로 끝났고, 시험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마르타, 그 말이 진심은 아니겠지?
이전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해도, 역대 선생님들의 존재가 전투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물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말이야.
많은 전술 교사가 전투 공적을 위해 회사의 최고 가치 자산 보호를 우선시했지.
그래서 인간형 무기의 과도한 소진이 발생했고, 이것이 네가 지휘권을 박탈한 진짜 이유 아닌가?
…………
하지만 그 무기들이 스스로 전장을 판단한다고 해서 전투 상황을 반드시 만회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중심부만 잘 지키면 최종 시험을 통과할 수 있으니, 앞선 전투에서 힘을 비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그 무기들을 과도하게 보호하려다 외곽 전투 구역이 함락되면, 도시 구역도 위협받게 될 거다.
그래도 대부분 쓸모없는 기반 시설을 지키려고 무분별하게 손실을 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학생"들의 생사에 그렇게 신경을 쓰다니, 아직도 인간적인 교육 방침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 건가?
제2차 시험에서 대량으로 배신한 무기들이 제9 법령으로 처형된 일을 잊지는 않았겠지?
그들에게 자의식이 생기면 이런 결말을 초래하게 될 뿐, 우리 모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지 않아.
제2차 시험 이후로 학원은 오랫동안 군사화 관리를 고수해 왔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신분을 착각하지 마. 결국, 그들은 전쟁 무기일 뿐이야.
하지만 그들도 회사의 자산이고, 살아남는다면 귀중한 전투력이 될 겁니다.
현재 회사 내부에서는 반대파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걸 알고 있길 바란다.
대부분의 임원진은 그녀들이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없거나, 사회적 상식을 지키면서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반대파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141호 도시의 내환이 함락된다면, 그들의 통제권은 다른 파벌에 넘어가게 될 거다.
게스트리고의 통제권이 네 손에 있다고 해도, 조언하지 않을 수 없군. 최종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무기들의 통제권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고.
……………………
이만할 테니, 잘 생각해 봐.
상대방이 통신을 끊었다.
차가운 달빛이 처마 밖에서 비쳐 들었지만, 마르타는 끝까지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의식이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졌다.
악몽인가?
시야는 온통 섬뜩한 붉은색에 잠식되어,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 갑자기 뒤로 쓰러지더니 지휘관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어느새 붉은 실금이 가득 퍼져 조각난 것처럼 부서져 있었다.
■■■ 나는 이 세계의 종말과 함께 거품이 될 거야.
아름답고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진정한 시간을 함께 보냈어.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달리고, 팔을 더 멀리 뻗을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또 ■■■를 만나게 되면, 너무 잘해주지 마.
■■■는 지휘관의 손을 놓고 천천히 가슴으로 가져갔다. 리본 같은 적색 광선 여러 가닥이 가슴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팔을 벌린 채, 가볍게 몸이 떠오른 ■■■는 추악한 세계를 향해 따뜻한 포옹을 선사했다.
■■■, 다음에는...
다음에는 꼭 더 빨리 달려야 해.
지휘관이 ■■■의 손을 잡자, 그녀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중심에 있는 그들을 향해 세계를 휩쓸던 폭풍이 다가가자, 그들은 조용히 종말의 광경을 바라봤다.
안녕, 세계야.
안녕, ■■■.
나는 내게 "생명"을 준 이 기적을 포기하고, 이 세계를 "죽음"으로 보내버리는 힘으로 바꾸겠어.
다른 세계의 ■■■, 우리 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어둠을 밝히는 등대 혹은 새벽을 여는 여명처럼 아름답고 강한 빛이 칠흑 같은 세계를 찢어버렸다.
이거 받아. ■■■■.
■■■, 이것이 마지막 목소리야. 들어주길 바라.
그녀는 지휘관 앞에서 죽었다. 그는 수없이 지켜보았고, 수없이 잃었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일부가 찢겨나가는 것처럼 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전해졌다.
누구지? 대체 누구지?
…………
안녕, ■■■.
제타비의 얼굴이 문득 눈앞에 떠올랐다. 제타비는 연모와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지휘관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손이 제타비에게 닿는 순간, 그 모습은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
제타비의 대답은 거품처럼 쉽게 부서져 꿈의 경계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제타비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격렬한 몸부림 속에서 의식이 빠르게 떠올랐다.
불안한 악몽을 꾼 듯 저절로 큰 숨이 내쉬어졌다.
땡... 땡... 땡... 땡... 탑의 종소리가 울렸다.
전투가 끝나고 학생들이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