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0 사기술의 황홀경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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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0-20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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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너머로 희미한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서는 기술의 정점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층층이 쌓인 바위를 넘어 도시와 사막의 상공을 낮게 맴돌며, 부서진 돔을 향해 악의로 가득 찬 붉은 빛을 발산했다.

목표물인 몬자노의 생체 반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생존한 지상 부대는 신속하게 수송기에 올라타 이 분쟁의 소굴에서 철수했다.

그 비행 장비들은 대기권 내에서 핵융합로 엔진을 가동했고, 분사구에서 뿜어나오는 플라스마의 푸른빛은 V자 편대를 이루며 긴 선을 그렸다.

귀중한 샘플과 자료를 가지고 복귀하는 지상 부대를 엄호하라는 것이 니콜라가 공중 전력에 내린 마지막 명령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공중 정원의 영웅들은 결국 겨울 계획의 어두운 비밀을 밝혀내게 될 거고, 그 비밀을 직접 묻어야만 했다.

다만, 오늘 이곳에서 이뤄질 일은 아니었다.

릴리스가 만든 살육의 공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로프라도스 상공에서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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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편대장기, 레이더 경보! 미사일 궤적 육안 확인, 회피 기동 실시!

파일럿들은 침식체 무인기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벌떼처럼 뭉쳐 대지의 중무장 항공기와 제공권 우위의 전투기 편대를 압도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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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장 항공기 편대, 방어에 주의하라!

대지 화력을 방어하기 위한 필사적인 외침이 전체 통신 채널을 타고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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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 소드 3호, 회피! 회피하라! 또 공격이 온다!

앞서 간신히 살아남은 편대장이 다급하게 경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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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어 발사! 으윽...

격렬한 폭발음이 통신 채널을 뒤흔들었고, 이어 가속도에 눌린 생존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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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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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엔 5호, 샤이엔 6호 피격! 다시...

무선 전신에서는 광기 어린 서커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천지간에 울려 퍼지는 교향곡처럼 조용히 음미했다.

좋아, 계속 도망쳐봐.

훈련받은 엘리트라도 퍼니싱의 거미줄에 걸리면 벗어날 수 없지. 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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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접촉! 9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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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 소드 3호, 응답하라! 회피 기동! 회피 기동!

갈라진 목소리가 간절하게 외쳤지만, 이번만큼은 편대장이 자신의 기체 후방을 살피지 못했다. 곧이어 통신 채널에는 다가오는 무인기의 엔진 소리와 호위기 조종사의 다급한 경고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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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6시 방향! 브로드 소드 1호, 독충 둘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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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브로드 소드 5호! 우측 돌파, 요격 실시!

그때, 새로운 신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기관포 발포음과 함께 무인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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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 소드 2호! 근접전투 미사일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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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쳐낼 수가 없어! 젠장, 플레어가 다 떨어졌다! 4호, 4호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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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브로드 소드 4호! 샤이엔 편대장은 피격됐으며, 대지 화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반복합니다, 대지 화력...

고함, 굉음, 비명이 뒤섞이더니, 이내 짧은 노이즈가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

돔을 뒤덮은 네트워크가 죽음을 퍼뜨리는 동안, 통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유언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Cheyenne-1

샤이엔 1호, 각 중대에 전달한다. 불시착을 실시하겠다. 진입 각 605!

녹색 기체가 길게 이어진 검은 연기와 함께 날카로운 각도로 지면을 향해 돌진했다.

그 모습은 결코 불시착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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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엔 1호, 뭐 하는 거야!!!

Cheyenne-1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장관님.

이어서 짧은 전자음이 울렸다. 결사대가 통신 채널을 끊은 것이었다.

음? 환영 선물을 주는 거야?

공연은 이제 끝을 맺어야 했다. 그녀는 마치 파리처럼 왱왱거리는 인간들이 맑고 붉은 하늘을 더럽히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릴리스가 의지를 실행에 옮기자, 하늘을 뒤덮은 무인기들과 연결된 승격 네트워크가 그녀의 부름에 응답했다.

추락하는 중무장 항공기의 날개 아래, 3만 톤 규모의 전술핵이 소리 없이 활성화되었다.

네 걸작 속에서 익사하도록 해.

햇빛에 깨어나는 대지 위로, 남아 있는 어둠을 녹여버릴 듯한 인공의 여명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충격파와 음파가 돔을 산산조각 내었고, 섬광은 지평선 끝자락의 도시를 어두운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연기와 먼지가 뒤덮인 하늘이 더욱 짙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릴리스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암석 사이의 오솔길을 걸었다.

한때 거짓된 별바다를 비추던 유리 파편이 바람에 실려 그녀의 발치에 스쳤으며, 그곳에는 불티가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아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잔해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은 진흙 위에서 굳어 흉측한 조각상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릴리스는 갑각 위로 올라가 황무지 너머의 험난한 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땅에서 일출의 따스함을 처음으로 느낀 선택받은 자였다.

흐읍.

곧이어 그녀는 눈을 감고 달콤한 방사성 낙진과 퍼니싱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것은 승리의 맛이었다.

이번에는... 어땠나요?

릴리스가 승격 네트워크를 통해 초대를 보냈다.

신입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야.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릴리스는 우산을 펴고, 그에게 침울한 미소로 답했다.

승격 네트워크가 줄 수 있는 힘이 이게 전부일 리 없잖아요.

그녀의 기쁨은 곧 갈망으로 바뀌었다. 릴리스는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앞으로 더 많은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직 릴리스의 눈에만 보이는 형상이 담담하게 답했다.

쿠로노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겨울 계획’을 통해 승격 네트워크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거야. 나는 적당한 때에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생각이다.

결국... 인간이 이 혹한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니까.

그들의 유전자에는 정보와 역사를 기록할 수 없어.

모순적이지만, 대대로 전해지는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취사 선택된 뒤 가공된 기억의 파편에 불과하지. 유전체가 작동하는 방식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어떤 기억이든 결국 인코딩된 정보일 뿐이죠.

정확해. 인간의 기술은 모든 정보를 보존하고 변질되지 않는 상식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인간 자체는 부패하고 말았어.

상식이 걸러지지 않은 채, 다음 세대로 곧바로 전달되지.

그렇게 되면 도태는 일어나지 않아. 이른바 상식이 만들어낸 "진실"이 세상을 포화시키고, 그러다 서서히 쇠망으로 향하게 되는 거야.

결국 그로 인해 진화가 멈추겠지.

제가 사랑하는 고모도 공중 정원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거겠죠? 고모는 자신이 믿는 진화만을 고집했던 것 같아요.

릴리스는 본 네거트의 논리를 진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인식한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퍼니싱처럼 유전 외적인 방식으로 탄생한 존재야말로 가장 중요한 변수야.

너에게 낙원은 하나면 충분해. 너를 공중 정원으로 보내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야.

하지만 저한테 주어진 건 열쇠 하나뿐이잖아요.

어느 낙원의 문을 열지는 결국 제 선택이죠.

릴리스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충성이나 복종 따위는 당연히 승격 네트워크의 본질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손에 넣게 된다면, 지금 눈앞의 "대행자"조차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될 거라 확신했다.

고모는 그저 이 게임에서 제가 상대해야 할 플레이어일 뿐이에요. 그리고 게임은 계속돼야 하죠.

몬자노가 봉인한 크틸라 계획 자료는 필수적이야. 이 점에 대해서는 네 가치를 부정하지 않겠어.

적절한 때가 되면, 네 실습 시험이 시작될 거야.

승격 네트워크의 연결이 끊기자, 본 네거트의 형상은 잿빛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

윽... 콜록콜록...

그때, 바위 뒤에서 릴리스가 예상치 못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곱슬머리와 낡은 양복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그는 시설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가까스로 화를 피한 듯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세우고, 릴리스 앞에 멈춰 섰다.

케프하트

네거트니 열쇠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이... 이럴 리가 없어요!! 콜록콜록... 트라우트, 그는 어디 있죠?

전... 전 그의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읽었어요! 본... 콜록... 본 네거트가 바로 트라우트라구요!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릴리스는 이 어리석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의 고백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케프하트 씨...

죄송하지만, 불꽃놀이는 이미 끝났어요.

남자는 쉰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외쳤다.

케프하트

저한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전 누구와 대화했던 거죠?! 콜록...

릴리스는 케프하트에게 동정심마저 들었다. 그는 전화, 홀로그램 통신, 심지어 뇌에 심는 칩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퍼니싱이 만든 네트워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당신에게는 사자 같은 야망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어요.

케프하트

으윽...

그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가느다란 주사기를 목에 찔렀다.

하지만 주사기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그의 목숨을 부지해 줄 혈청은 남아있지 않았다.

케프하트

난… 그 노인네를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콜록, 콜록… 공중 정원에도 가지 않았는데…

트라우트가 몬자노의 계획을 도운 것까진 좋았어요!

왜냐하면... 몬자노의 제국은... 으윽... 콜록콜록... 결국 제 것이 될 테니까요!

제가 트라우트와 협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당신이 모든 걸 망쳐 버렸어요!!!

나라, 권력, 명예... 전부 다 제 것이었다고요!!!

구시대의 논리에 사로잡힌 망언이 노골적으로 쏟아졌다.

배신과 음모로 세속의 권력을 쥐려 하다니. 이토록 전형적이고도, 걸러지지 않은 채 전해진 상식이란 우스울 뿐이었다.

돈 때문인 건가요? 아니면 "에덴 III형 식민 함선"의 세력을 이끌고 공중 정원에 도전할 기회를 위해서?

릴리스는 다소 천진난만하게 의문을 던졌다.

케프하트

로... 로마는 벽돌 하나... 하나씩 쌓아 올려졌어요. 전 어딘가에서부터... 콜록... 시작해야만 했다고요!

릴리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선 하늘의 서커스처럼, 옛 세상이 남긴 이 독백극도 더는 흥미롭지 않았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참 고전적이에요.

케프하트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케프하트는 마지막 기운마저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데 낭비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더 품위 있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모든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보고 고전적이라 하죠.

릴리스는 몸을 돌리며, 매혹적인 문양이 새겨진 월산을 케프하트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그의 귀에 들린 목소리는 차가운 독처럼 스며들었고, 마지막까지 그를 붙잡고 있던 이성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당신...

미처 끝내지 못한 말과 함께, 옛 세상의 마지막 인간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끌어안은 채 쓰러졌다.

굳어버린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와, 한때 찬란히 빛나던 값비싼 장신구를 꼴사납게 물들였다.

새로운 세계에는 당연한 것이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