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ze=45><b>"■■■외 전원 전사. 지휘관 레븐쉬 승격자 진영으로 배신."</b></size>
광기로 물든 붉은 문구가 임무를 브리핑하는 단말기 스크린 위에서 불길하게 빛났다.
스크린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최전선 부대와 승격 네트워크 간의 은밀한 교신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런 심각한 배신을 방관한 건, 군부의 무능한 처사였어.
정장 차림의 군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최전선의 군인이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야. 선택과 결과는 그들의 몫이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통해 구조체 시스템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어.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철저히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해야 해.
진정한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군사 통솔자로서 품게 된 의구심은 차가운 논리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다.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퍼니싱을 지배한 승격자와 함께해야 한다."... 이것이 헤론 대원의 마지막 음성 기록이야.
그동안 우리가 상대했던 침식체들은 대부분 지능이 낮았어.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퍼니싱을 악용하는 조직적 세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지.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지휘관이 배신하고 구조체가 사라진 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
그래서 이 문제의 뿌리를 뽑자고 제안하는 거야.
전투 기록을 분석해서 승격자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배후 세력을 찾아내자고.
그리고… 기회는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어.
구체적으로 말해 봐.
로프라도스. 들어본 적 있어?
사막 지대
로프라도스 근교
며칠 전
며칠 전, 로프라도스 근교, 사막 지대
적과 접촉. 목표 움직임 포착. 전원 대기.
구조체는 센서의 이상을 감지하곤 낮은 목소리로 전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신 완료. 목표 위치 확인.
확인~
드몽의 제멋대로인 성격은 임무 수행 중에도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 "후배"의 지휘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블리크의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루스, 침식체의 움직임을 경계하세요. 드몽, 제가 발포한 직후에 그들을 통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풍은 13.9m/s. 30분 후 임무 구역에 모래 폭풍이 몰아칠 거야. 계속 적외선 스캔 중인데, 목표 외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구속 장치, 준비 완료.
오블리크의 눈에 그녀의 유능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망설임이 잠깐 스쳤으나, 그녀는 곧 의식의 바닷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좋아요. 각자 전투 위치로 이동하세요.
온 하늘을 뒤덮은 황사 속, 비틀거리는 구조체는 목표로 지정된 자신의 운명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를... 나를 선택해줘...다시 한번... 기회를...
난... 아직... 이 몸... 전부가... 아니야...
목표물에 아직 의식이 있는 것 같아. 퍼니싱에 완전히 오염되지는 않았어.
경계를 맡은 구조체는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며, 눈에 보이는 상황을 진지하게 전달했다.
오호? 혹시 대화라도 해볼 생각이야? 우리랑 같이 가자고 설득하려고?
치명적인 수단을 쓸 생각이야?
이사루스는 갑작스럽게 끼어든 드몽을 무시한 채, 곧바로 오블리크에게 의견을 구했다.
목표물의 행동 능력을 무력화하겠습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최근 출몰한 미확인 구조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며, 상부에서도 목표 제거를 우선시하진 않았습니다.
오블리크는 정밀 저격 소총의 전자 조준경을 조정한 뒤, 노리쇠를 당겨 철갑탄 한 발을 약실에 장전했다.
알겠어.
오블리크는 총을 들어 올려, 모래바람을 뚫고 힘겹게 전진하는 고독한 구조체를 조준하였다.
자주포 발사음을 방불케 하는 총성이 소대가 숨어 있던 바위 뒤에서 울려 퍼지면서, 먼지와 모래 사이로 은빛 섬광이 번쩍였다.
두 구조체 동료가 반응하기도 전에 목표물은 왼쪽 다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쓰러졌다.
드몽, 목표를 제압해 주세요.
오블리크는 총구를 내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마스크가 그녀의 표정을 가리긴 했지만,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대장의 권위를 여실히 드러냈다.
나한테 맡겨.
명령을 받은 구조체는 바위를 넘어 재빨리 구조체의 잔해에 접근했다.
그는 투사 무기를 두 번 연달아 발사해 목표를 아크 구속 벨트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모래 폭풍이 28분 후 도착할 거야. 침식체 활동은 발견되지 않았어.
오블리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방 경계를 맡고 있던 동료들과 함께 목표물 가까이 다가섰다.
너희들... 어느 화력 소대 소속인 거지?
정화 부대다. 우리 마크 안 보여?
알아들었으면 얌전히 질문에나 답해. 대장님 기분이 좋으면 목숨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거야.
...
개인 정보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 오블리크보다 끊임없이 떠드는 드몽이 동료들에게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드몽은 끝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것 같았다.
화력 소대? 무슨 소릴 하는 건가요?
너희들, 몬자노가 보낸 회수 팀 아니야?
이번에는 드몽조차 오블리크의 당황한 기색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짧은 몇 초 동안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날 죽이러 온 건가...
괜찮아! 난 의식 전이 같은 속임수 따윈 필요 없어!
나는... 난 네트워크의 계시를 봤어! 우리는 영생을 얻었다고!
아크 구속 벨트의 푸른 빛이 튀면서 구조체 잔해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는 점점 더 흥분한 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몬자노는 누군가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심문을 이어갔다.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엘리너 대장이 날 버렸어. 너희들도 냉혈한이 되고 싶은 거야?!
같잖은 척은 집어치워! 멍청하긴! 이 명령만 따르는 것들아! 난 영생을 얻었다!
지구 탈환... 거짓말! 네트워크가 날 선택했어! 조금만 더, 내가, 내가!!
센서에서 붉은빛이 번쩍였고, 그것은 마치 사냥꾼의 탐욕스러운 눈빛처럼 번득였다.
조심해! 목표 체내의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하지만 오블리크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구조체 잔해를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엘리너? 그녀는 이미 몇 년 전에 실종됐어요.
흐흐흐... 하하하하하하하하!
몬자노의 오른팔이자 구조체 부대의 제1지휘관을... 너희들이 모를 리가!
그 말은 오블리크의 머릿속까지 파고들었고, 그녀는 자신의 이성이 서서히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블리크의 기본 사고 논리는 명령에 대한 복종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는 완수해야 했다.
다른 승격자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나요? 묻는 말에 당장 대답하세요.
나를 승격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게 그런 영광은 과분해!
엘리너는 그 생지옥에서 나와 모든 전우를 버렸지만, 네트워크가 날 부활시켰어!
내 순환액을 다시 흐르게 해주었다고! 내 몸은 더욱 강해졌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까지 보게 됐지.
퍼니싱이 지배한 지구… 진홍빛으로 물든 세계… 부패와 번성이 공존하는 장엄한 광경…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
드몽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아크를 발사해 목표를 무력화하지도 않았다.
오염이 임계치에 도달하려 해! 모래 폭풍은 20분 후에 닥쳐올 거야!
이사루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를 보냈다. 그들 중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는 구조체였다.
원래의 회수 좌표를 말해주면, 저희가 그곳으로 데려다줄게요.
돌아가? 대체 왜?! 그 소위 '정원'이라는 곳도 머지않아 독 꽃이 만개할 텐데!
난 네트워크를 한 번 실망시켰지만, 두 번은 없을 거야.
그 순간, 효력을 잃은 방전 송곳이 땅에 떨어져 모래바람 속에 묻히면서, 목표물이 아크 구속 벨트에서 벗어났다.
엎드...
오블리크가 본능적으로 동료들에게 엎드리라고 외치려던 그때, 두 번의 짧은 화약 폭발음이 울렸다.
그녀에게 달려들던 구조체의 머리가 총알에 관통당했다. 이어서 두 번째 총알은 그 금속 덩어리를 산산조각 냈다.
상황이 급박해서 살상 화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
총을 발사한 이사루스가 탄창을 교체하며 자신의 행동을 해명했다.
반응이 꽤 빠르시네요.
비록 위기는 넘겼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공포의 잔상이 어른거려 숨이 막혀왔다.
목표의 데이터 칩을 수거하고 철수해야 합니다. 드몽, 운송 장비 호출을 부탁하겠습니다.
...
옆에 서 있던 구조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드몽? 모래 폭풍이 곧 다가옵니다. 즉시 철수해야 합니다.
구조체... 인간처럼 살 수만 있다면, 누구도 이런 존재가 되고 싶진 않을 거야.
드몽은 혼잣말로 한탄하더니, 이내 통신 채널을 열었다.
잡담은 그만. 경계를 늦추지 마.
오블리크는 동료들의 대화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숙련된 손놀림으로 구조체의 잔해를 뒤져 데이터 칩을 회수했다
<size=40>공용 강화 프레임</size>
<size=40>흰담비 화력 소대</size>
<size=40>Ferret-2</size>
칩에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맨 아래 기체 출고 정보에 적힌 문구를 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에덴 III형 식민 함선, 구조체 연구 부서"
황금시대의 잃어버린 전설. 시간의 바닷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았어야 할 존재. 그리고—
그것은 오블리크가 이 기계 신체 신체를 얻기 전까지 떨쳐낼 수 없었던 악몽이었다.
작전 회의실
2시간 후
2시간 후, 작전 회의실
이상으로 작전 결과를 보고드립니다. 회수한 데이터 칩은 백업 작업을 마친 후 과학 이사회로 이관하겠습니다.
수송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린스로부터 긴급 보고 요청이 들어왔다. 장비 점검이나 전투 손상 확인도 못 한 상태였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레븐쉬는 승격 네트워크와 접촉한 후 배신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새로운 위협이 실체를 드러내자, 쿠로노와 군부는 즉시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목표물이 최초 회수 좌표를 말했다고? 정확한 좌표를 알려줘.
만약 진술이 사실이라면, 철수 목적지는 외곽의 뉴 넬리스 공군기지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공군기지 폐시설을 말하는 거잖아? 그 기지는 이미 수년째 폐기된 상태인데...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해당 집단은 공중 정원 소속 부대가 아닙니다. 또한 몬자노는 공식적으로 실종된 인물입니다.
오블리크가 상대방의 말을 단호히 끊자, 그린스는 그녀의 격앙된 반응의 의미를 즉시 알아차렸다.
그래, 내가 놓친 게 있었군.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그의 정신을 교란시켰을 가능성도 있지. 그렇다면… 네 지인들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뜻이 되는 건가?
로프라도스에 대한 조사 임무를 신청하겠습니다.
오블리크는 상관의 망언에 극도의 반감을 느꼈다. 이번만큼은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요구를 꺼냈다.
절차대로 진행될 거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그리고 너는 군부 직속 정화 부대의 일원이지, 쿠로노의 사설 부대가 아니야.
승격 네트워크의 최근 동향을 고려해, 우리는 북극 항로 연합과 협의를 마쳤어. 겨울 계획을 다음 단계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의회가 승격 네트워크에 보이는 관심은 우리보다도 크다는 걸 명심해라.
로프라도스는 이미 폐도시가 됐어. 몬자노가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곳이지.
이번 상황을 이용하면 군부의 정찰 작전을 유도할 수 있고, 동시에 몬자노를 제거하는 것도 가능할 거야.
그들이 현장에서 수집하게 될 정보는… 아마 파란고스키의 증언과 일치하겠지.
즉, 과거 실험은 이미 종결되었고, 몬자노의 행동은 쿠로노와 무관하다는 걸 입증하게 될 거야.
겨울 계획은 변함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겠지.
보고된 "에덴 III형" 건은 리스트에게 전달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니까.
그린스는 쿠로노가 벼랑 끝에서 승격 네트워크와 마주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심연으로 뛰어들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희생이 의미를 갖게 될 거야!
그린스의 의식은 광기 어린 망상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저는 반드시 답을 알아야 합니다.
오블리크는 그의 선동적인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찾던 진실이 곧 밝혀질 거야. 네가 제공한 정보가 정말 큰 도움이 됐어.
네 지인이 사망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쿠로노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남겼군. 게다가 몬자노의 행보와는 별개로, 그 연구 성과가 승격 네트워크의 주목까지 받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운명이야! 그때 우리가 투입했던 모든 자원이, 이런 뜻밖의 순간에 결실을 맺다니!
그린스는 마른기침을 하며 씹는담배를 입에 넣었다.
이제 좀 쉬도록 해. 수고 많았다.
네, 알겠습니다.
오블리크는 냉담한 시선으로 그를 한 번 훑어본 뒤, 조용히 복도로 나섰다.
창밖에 쏟아지는 별들은 오리온자리 나선팔 끝자락의 작은 행성에서 벌어진 문명의 몰락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났다. 그 빛은 눈부시게 반짝이며,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별들은 인내심이 깊다. 자신이 뿜어낸 빛이 수천만 년을 건너, 관측자의 눈에 닿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오블리크의 시야에 비친 별들이 어딘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마치 라이트쇼처럼, 예정된 순간에 밝아졌다가 차례대로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새로운 별들이 있네. 지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별들이야.
오블리크는 과거의 한 간청이 떠올랐다. 그 낯선 목소리는 그녀의 머릿속에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창밖의 별들은 여전히 느린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 함선이 만들어낸 착시 효과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창밖의 풍경을 보며 현기증을 느꼈다.
공중 정원 회의실
현재
현재, 공중 정원 회의실
로프라도스라고?
황금시대의 유흥 도시였지. 쿠로노가 그곳에서 우주 함선의 생태권 안정성을 연구했었어.
쿠로노가 직접 우리 측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거기에 상당한 기밀이 보관돼 있을 텐데.
최근 로프라도스에서 퍼니싱 발생률이 급증했어. 정화 부대가 며칠 전 수상한 구조체를 제압하고, 데이터 칩을 회수했지.
그린스는 자신의 행보를 분명히 계산했을 거야. 어쩌면 쿠로노가 의도적으로 기밀 정보를 우리 쪽에 유출하려는 전략일지도 모르지.
군부 지도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정을 내리듯 입을 열었다.
오블리크가 지휘한 회수 임무 말인가? 과학 이사회의 데이터 분석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지?
그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야. 목표 구조체가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된 건 맞지만, 의식의 바다 모형이 우리가 아는 공중 정원의 구조체들과 전혀 달라.
오히려 지금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포스터 속 영웅과 더 닮았지.
그 말은…
은폐형 역원 장치를 장착하고 의식 회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방랑하는 구조체 말이야. 한때 우리 부대에 편입됐던 적도 있잖아.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격 네트워크를 둘러싼 또 다른 진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군부는 이런 선전을 이제 그만둬야 해.
의장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어. 그저 하나의 기적으로 여겼을 뿐이지.
하지만 기적은 이용당해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본래의 의미를 잃고 말 거야.
대부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그 소문이 퍼지면서 병사들은 그 기적을 희망으로 삼게 됐지. 그들에게서 생존의 의지를 빼앗을 순 없었어.
훈계는 승리를 거둔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의 말투에는 출전 허가를 구하는 듯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이 비밀을 우리가 직접 밝혀낼 수 있다면, 그 인위적인 신화도 무너질 거야.
승격 네트워크를 더 깊이 파악하고, 지상 전투에서 한 번이라도 승리를 거두게 되면, 그게 전장의 전설보다 더 의미 있는 희망이 될 거야.
의회 쪽은 내가 처리할 테니, 작전 계획은 네가 맡아.
니콜라는 가볍게 경례한 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로프라도스라...
하산은 조금 전 니콜라 앞에서 로프라도스에 대해 모르는 척했다. 수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군부의 지도자는 유흥 도시 따위에 관심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하산과 로프라도스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공중 정원
아카디아 대철수 시기
아카디아 대철수 시기, 공중 정원
유선형 기체의 외벽에 틈이 열리고, 작은 착륙장치가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안정적으로 플랫폼에 착륙했다.
현재 운용 중인 육중한 군용 수송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오늘의 마지막 비행입니다. 각 전선이 대체로 안정된 만큼, 단계적 철수가 완료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일럿은 자신을 맞이한 사람이 고위 권력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보고를 했다.
수고했네. 이제 좀 쉬도록 하게.
한편, 승객들도 차례로 수송기에서 내려 거대한 격납고를 바라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아마도 재난을 겪고 살아남은 기쁨에서 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산은 천천히 플랫폼으로 올라가 기체 주위를 살폈다.
음... 아! 하산 씨!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정비 중이던 작업자는 뉴스에서나 보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괜찮네. 편하게 하게나.
보기 드문 모델이군. 우리 군이 쓰는 수송기보다 성능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에이, 아닙니다! 유흥 도시의 민간 여객기일 뿐입니다. 겉보기엔 호화로워 보여도 사실 껍데기가 약해서 공격을 버티지는 못합니다.
고위 인사가 자신이 아는 분야를 이야기하자, 작업자의 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도 지금 같은 시국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죠.
전임 의장은 정말 천벌을 받을 인간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뇌물을 챙길 생각이나 하다니,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하산 의장님께서 힘써 주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귀중한 수송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자는 그의 노고에 열렬한 감사를 표했고, 하산은 그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결국, 역사의 목격자들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 수송기들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부자들은 참 대단하더군요. 그저 유흥 도시일 뿐인데도, 몇 개 연대 규모의 항공 우주 수송기를 가지고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산은 매끄러운 단열판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물건 같았다.
순백의 외벽 위, 급히 덧칠된 세계 정부의 마크가 어색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비치는 글자 하나. <로프라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