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10 사기술의 황홀경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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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0-13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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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전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붉게 물들이던 비상등이 점차 원래의 푸른빛을 되찾으며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과하게 화려한 금색 장식은 끈적이는 액체에 오염되었고, 몬자노는 시야 한가운데 벽이 서서히 좁혀오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내 기체도 영향을 받은 건가...

잠깐 눈꺼풀이 떨리던 몬자노는 이내 익숙한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너가 잠시 실수를 했든, 뭔가 다른 속셈이 있든, 퍼니싱과 마주하여 일생일대의 실험 기회를 얻게 되었네.

퍼니싱은 정보의 저장 장치이며, 의식의 바다는 결국 정보로 복원될 수 있다.

전장에서 회수한 데이터 칩이 오염되었다면, 이는 그 안의 정보가 이미 복사되기 시작했음을 뜻했다.

그 와중에 거대한 침식 구조체가 갑자기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몬자노에게 상황을 되짚어볼 틈조차 주지 않았다.

길은 단 하나뿐이에요.

곧이어 그 침식 구조체는 진동검을 휘둘러, 복도 한쪽의 전시품들을 산산조각 냈다.

몬자노는 빠르게 몸을 낮춰 이어지는 공격을 피했고, 그녀는 침식 구조체의 발목 관절이 부식된 것을 발견했다.

결국 침식 구조체는 무기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전투 준비가 부족했나? 기체들의 생존 능력이 평소보다 많이 떨어지네.

경련하던 침식 구조체의 몸에서 오일과 순환액이 뒤섞인 액체가 흘러내렸다.

도망치려면, 길은 단 하나뿐이에요.

몬자노는 그 헛소리를 무시했다. 아무리 우발적인 유출이라 해도 기체는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했다. 그녀는 지금의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도금된 외골격 발톱을 들어, 잔해를 그대로 꿰뚫었다.

으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 구조체의 숨이 끊어졌다.

몬자노는 구조체의 잔해를 질질 끌며,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에 있는 데이터 중추 실험실로 돌아왔다.

실험실은 몬자노의 예상대로 예전의 빽빽한 녹색 불빛 대신 불길한 붉은빛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검역 프로그램은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려댔다.

아직 늦지 않았어. 먼저 봉쇄를 실행하고, 이 고농도 환경에서 회수 실험을 하는 거야.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가죽 바지의 홀스터에 리볼버를 집어넣었다. 엘리너가 제공하는 기회는 언제나 이렇게 완벽한 순간에 찾아왔다.

깨어나.

몬자노가 제어 단말기에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제어 단말기

음성 식별 중... 에이드리언느·몬자노 부인, 기체 식별 코드 UAF-07. 환영합니다.

스크린이 켜지자, 몬자노가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제어 단말기

실험 갑판 전역의 봉쇄 실행 중…

첫 단계를 완료한 몬자노는 몸을 돌려 벽을 가득 메운 배양 접시를 바라보았다.

수백 개의 원통형 캡슐 속에는 지원자들과, 그들이 곧 받게 될 새로운 기체가 들어 있었다.

사고와 우연은 종종 실험에 결정적인 변수를 만들어주지.

몬자노가 실험실로 끌고 온 실험 재료를 수술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데이터 중추에서 Mako-3의 데이터 칩을 꺼내,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은 채 기체 잔해의 척추 인터페이스에 삽입했다.

Mako-3。

몬자노가 차가운 목소리로 호출 부호를 반복했다. 그녀는 이 밀폐된 공간의 퍼니싱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Mako-3”

기체의 완전성이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몬자노의 호출 문구가 "Mako-3"의 의식을 자극한 듯했다. 하지만 "Mako-3"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으며, 그 부자연스러운 말은 미리 녹음된 경고 메시지처럼 들렸다.

“Mako-3”

자체 검사 실패, 다시 불러오는 중... 완전한 의식 데이터 감지 불가. 포맷 중...

예안을 실행해.

죽은 자의 대변인이 짧은 명령을 내렸다.

“Mako-3”

포맷 종료 명령 수신. 데이터 재업로드... 데이터 완전성 검증 실패...

중간중간 끊기는 전자음이 실험실을 가득 메웠다.

예비용 기체의 적합성 조정이 완료됐으니 시작해.

그녀는 수술대를 뒤로하고 배양기 쪽으로 걸어갔다.

“Mako-3”

예비 하드웨어 감지. 데이터 전이 실행...

퍼니싱의 본질은 정보야. 그렇기에 의식 데이터와 완전히 별개라고 보긴 어려워. 결국 중요한 건, 회수 전에 매체가 얼마나 안정적인가, 그리고 의식의 바다가 데이터 정보로 온전히 복사될 수 있는가, 그것뿐이야.

이론상으로 너의 의식은 하드웨어 백업을 통해 어떤 데이터 저장 장치로도 전이할 수 있어.

다시 청소 기계로 태어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몬자노는 바닥의 화학 폐기물 자동 청소 기계를 힐끗 보며, 악의적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수술대 위의 잔해는 이미 자아 인식을 상실한 상태였다. 몬자노는 그것이 더 이상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이 실험이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었다.

“Mako-3”

대상 하드웨어 매칭 완료. 데이터 전이 중...

몬자노는 재빠르게 제어 패널을 조작하여 사전 준비 작업을 마쳤다.

그 순간, 구조체 잔해의 센서가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졌고, 반쯤 서 있던 기계체도 힘없이 쓰러졌다.

이어진 몇 분간, 낮은 천장 아래에는 종말이 닥치기 직전 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몬자노의 원자로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는 환풍기의 작동음과 기체에 내장된 차단 시스템에서 울리는 퍼니싱 농도 경고음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그때, 한 배양기 속의 인간 형태가 공기 중의 초조함에 잠식된 듯 경련을 일으켰다.

!!

초조해하며 서성거리던 몬자노는 이내 멈춰서더니, 배양기로 다가가 그 기체의 신체 데이터를 확인했다.

>전체 재가동 중...

>재가동 완료.

>데이터를 불러와 적응 중...

조금만 더...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 위에서 청백색 진행률 표시줄이 막힘없이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확인한 몬자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작 명령을 입력하세요.

그녀는 단말기에 익숙한 코드를 입력했다. 역사는 복잡한 서사로 포장되곤 하지만, 정작 문명의 방향을 바꾼 행동들은 그녀처럼 단순했다.

하나의 명령. 한 통의 편지. 혹은, 손끝으로 내리는 작은 지시.

사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줄 절대적인 기술, 그것만으로도 광신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퍼니싱 속에서도 영원히 우뚝 설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앙이 닥치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 엘리트 권력자들이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라 자처하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네.

승리를 확신한 여주인은 어째선지 과시적인 행동으로 자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갈며 빈정거렸지만, 그 모습 또한 통쾌함이 묻어있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창조론을 맹신하는 자들이 다윈을 이단아 취급하듯, 진화론을 금과옥조로 삼는 이성주의자들은 "적응 능력"이란 단어가 새로운 시대에서 갖는 진정한 의미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

……

그는 한때 무의식적으로 카오스 속에서 공포의 바다를 건넜지만, 이번에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그 바다를 건넜다.

사고의 파편들이 퍼니싱에 휘말렸다가 흐르는 모래처럼 의식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이런 소용돌이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앵커 포인트 없이 떠도는 상태에서 깊은 고립감에 사로잡혔다. 시간, 공간, 감정, 이성,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는 한치의 빛도 없는 검은 장막을 응시하며 불안과 무력함에 몸을 떨었다.

그러다 그는 점차 통찰력을 되찾았으며, 선택권 없는 선택은 오히려 일종의 숙명으로 느껴졌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던져진 그의 옆으로는 은빛 실선이 스쳐 지나갔으며, 알아볼 수 없는 기억들은 장렬하게 폭발하였다.

흐르는 모래가 서서히 사라지자, 검은 공간에는 육체가 겪어 온 고난의 흔적만 남았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다시 돌아와, 세상이 그를 볼 수 있는 견고한 용기에 들어갔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

저는...

그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의문을 의식의 바다에 던졌고, 곧바로 거센 물보라가 그의 예상대로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전투 호출 부호도, 기체 코드도 아닌, "지구 탈환"이라는 부름에 응하며 자발적으로 육체를 버리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불렸던 이름이었다.

???

기체 기동 완료.

저는... 로이드입니다.

그는 천천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곧, 그의 시야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죽음이었다.

결국, 죽음은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종착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