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체 둘이 도시의 심도 오염 구역에서 3시간을 넘게 버텼다고?
좋아, 이번 회차 중 가장 좋은 성과인걸.
이에 몬자노는 구조체 잔해의 데이터 칩에서 회수한 전투 기록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 이렇게만 된다면, 다음 기체들은 곧 더 넓은 범위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번 전투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차단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겠죠.
두 사람은 전투력 손실은 개의치 않는 듯, 임무의 성과를 담담하게 논의했다.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되어선 안 돼.
단말기에서 시선을 뗀 몬자노 부인이 조용히 조언을 건넸다.
의식 회수가 실험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단계니까요.
릴리스는 고모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짧게 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너는 투덜거릴 자격이 없어, 엘리너. 이 모든 건 결국 다 너를 위한 거야.
...
모든 것은 진화하지. 퍼니싱도 예외는 아니야.
고농도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기체를 만들어낸다 해도, 단 한 번의 강력한 침식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어.
심지어 우리의 의식조차도 말이야.
내가 사랑하는 조카이자, 소중한 1호 실험체를 허망하게 희생시킬 순 없잖니.
몬자노 부인은 자신의 위엄있는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만약 인간이 영생을 얻게 된다면, 고모는 진정한 '불을 훔친 자'가 되겠죠. 저는... 신이 되는 길의 디딤돌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 의견이 있는데 말하지 않는 건 나를 거역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릴리스는 겸손한 태도로 그녀의 거만함을 받아넘겼지만, 결국 감추고 있던 속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번 전투에서 의식 회수 기술이 실현 가능하다는 증거를 직접 봤어요.
릴리스가 손에 든 세 번째 칩을 몬자노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Mako-3이 하드웨어 연결을 통해 일부 의식을 다른 구조체의 잔해로 전이했고, 잠시나마 해당 구조체를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어요.
하드웨어 연결? 그런 방식은 실험실에서도 재현할 수 있어.
몬자노 부인이 못마땅해하는 눈길로 릴리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확실해졌어요. 문제는 전송 저장 장치예요. 현재의 무선 전송 방식으로는 '의식의 바다'에 담긴 모든 정보를 완전히 업로드할 수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다른 매체로 전송해 보는 건 어떠려나요?
릴리스는 확신이 없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제안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떤 매체를 말하는 거지?
퍼니싱은 어떨까요? 고모의 구조체는 퍼니싱의 침입을 견딜 수 있고, 그 지속 시간은 내장된 차단 장치의 완성도에 따라 달라지죠.
퍼니싱은 정보 저장 장치이기도 하고, 심도 오염 구역에는 퍼니싱이 널려 있으니…
릴리스는 의미심장한 힌트를 흘렸다. 그리고 몬자노 부인이 예비용 실험체만 충분하다면 어떤 손실도 감수할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몬자노는 쿠로노에게 패배할 수 없었기에 이번만큼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고농도 환경에서 구조체와 그에 대응하는 예비용 기체로 근거리 의식 전이 실험을 하자는 거야?
네, 맞아요.
더 많은 샘플을 퍼니싱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은 승격 네트워크 강림을 실현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릴리스는 고모를 위해 실험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끔 조작하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가 어떻게 카드 게임을 지배하게 됐는지 기억하니?
몬자노 부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에요.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고모를 보좌하는 게 제 삶의 목적이라는 건 변함없어요.
자신이 가진 카드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릴리스의 승리 법칙이었다.
내 말은... 상식을 깨는 기발한 생각이 있었기에, 네가 모든 플레이어의 마음을 꿰뚫었다는 거야.
그 재능은 여전하구나. 아주 만족스러워.
고모께선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고 계시잖아요. 의견을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
아직도 유흥 도시에서의 기억에 잠겨있는 듯한 릴리스가 천진난만한 미소로 몬자노의 칭찬에 감사를 표했다.
곧이어 그녀는 다소 흥분한 듯한 표정으로 칩을 건넸다.
Mako-3에 남아있는 이 전투 데이터는 일단 보관해 두자.
몬자노 부인이 칩을 집어 들어 중추의 슬롯에 삽입했다.
그 칩에는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전사하며 남긴 불완전한 기억과 기체의 전투 데이터가 담겨 있었다.
공중 정원에 대한 그리움, 지구 탈환을 향한 동경, 하찮은 희로애락까지... 모든 것이 작은 회로판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칩에는 불길한 정보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것은 릴리스가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백업해 둔 바이트 코드였다.
제 기억이 맞다면, 고모께서는 곧 구조체 실험 성과 보고서를 공개하실 예정이시죠?
릴리스는 분위기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평소라면 조금 주제넘어 보일법한 말을 꺼냈다.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해.
경험 많은 전략가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신중하게 답했다.
하지만 오늘은 축하할 만한 날이지.
너도 알다시피, 난 공중 정원의 오락 구역에 갈 시간이 없어.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서 듣는 아첨이 역겨워서 가기 싫은 거지.
그녀의 태도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릴리스는 고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산 로렌초, 도미니카 기념 공원의 갑판 아래에 자리 잡은 그 카지노는 당시 로프라도스를 자주 드나들던 명사들이 세운 곳이다.
겉으로는 대철수 중 몬자노 부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쾌락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함에 불과했다.
임무에 성공했으니, 축하도 할 겸 오늘은 나랑 한잔 어때?
내 조카의 칵테일 제조 실력이 예전 그대로인지 보고 싶군.
몬자노 부인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평소의 오만한 태도를 잠시 내려놓았다.
릴리스는 신이 난 아이처럼 고모에게 다가가 그녀와 팔짱을 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오래된 레시피들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답니다!
두 사람은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전투와 실험 속, 그들에게도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은 필요했다.
릴리스는 처음으로 공중 정원의 전경을 본 그날을 떠올렸다.
공중 정원의 거대한 외벽은 가혹한 우주 방사능과 운석의 충돌마저 견뎌내며, 그 안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견고함은 곧 폐쇄를 의미했고, 밀폐된 공간은 야만성을 먹고 몸집을 키워가는 모든 것에게 최고의 배양 접시가 되었다.
배양 접시, 실험 샘플, 균군, 그 무엇도 빠져선 안 됐다.
몬자노 부인과 릴리스는 오락 시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전 함선의 네트워크와 연결된 데이터 중추에서는 희미한 붉은 빛이 깜빡였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