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경고음이 규칙적으로 울렸고, 그 혼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그 소리만이 유일하게 질서를 지닌 듯했다.
곳곳에 흩어진 혈흔, 유리 조각, 강철 파편들이 질서가 완전히 깨졌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처럼 날카로운 우산 끝이 원형 구조체 대장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 이럴 수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몸에 철을 두른다고 해서 오래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거야?
순환액이 바닥에 흩어지며, 아크와 불꽃이 액체 표면 위로 튀어 올랐다. 관통당해 쓰러져 있는 기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음에 업그레이드할 땐 너희 사장한테 방어구 보강을 부탁해 봐.
소녀는 문 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카메라 너머 남자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자신에게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 맞다고 확신하였기에, 단호하게 조작 콘솔의 출입문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암살자와 목표물 사이의 마지막 차단막이 사라졌다.
겨울 계획 담당자, 고드윈 씨. 안녕하세요.
몬자노 부인께서 안부를 전하셨어요.
엘리너는 우산을 의전용 지팡이처럼 땅에 짚으며, 적절한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녀는 치명적인 살의를 우아함 뒤에 완벽하게 숨겼다.
손님을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검역 절차를 무시한 건 유감입니다. 모든 방문객은 반드시 입장 전에 소독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마주한 남자의 얼굴은 앙상했다. 깊게 꺼진 초록색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광기가 비쳤고, 이전의 유능한 연구원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고립된 생활과 광적인 연구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제가 규칙을 중시하는 건 맞지만, 지금 당신의 처지에서 그런 고상한 논의를 하시는 건 우습네요.
처지? 죽어가는 사람의 처지 말하시는 겁니까?
저는 십여 년을 눈 덮인 산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단 하루도 후회한 적 없어요.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길을 닦고, 그 일원이 되는 것은 제게 최고의 영광이니까요.
죄송하지만, 그 놀라운 성과라는 게... 전투 능력도 없고, 고작 의체로 강화된, 월산으로 쉽게 처치 가능한 고철덩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투우사가 마지막 순간을 즐기듯, 그녀는 사냥감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그들이 공포에 잠식되어 가는 걸 즐기고 있었다.
실패와 시행착오는 발전의 자양분입니다! 저에겐... 아직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어요!
몬자노 부인이 이룬 대단한 업적이라뇨? 은행 계좌에 매시간마다 0이 늘어나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그녀의 공허한 망상을 믿느니 차라리 내일 완벽한 구조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더 현실적이겠네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의 말씀치고는 참 당당하네요. 제 고모는 쿠로노에게 쫓겨나면서도 프로젝트를 지켜낸 훌륭한 연구원이었어요. 그런 근거 없는 비방은 삼가주셨으면 해요.
그녀의 프로젝트라... 그 거대한 배양 접시에서 생산, 소비, 분해를 반복하는 것 말인가요? 그리고 '성공'하는 날이 오면... 모든 인간을 그 안에 가두려고 하겠죠?
그의 이마에 흐트러진 백발이 거친 숨결에 맞춰 떨리고 있었다.
그건 하늘을 나는 생명 배양 접시예요.
뭐라고요?
새로운 후원자의 도움으로, 고모는 에덴 Ⅱ형급의 거대한 식민 함선을 건설하고 계시죠.
흥,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군요.
남자의 놀란 기색은 금세 사라졌다. 예상 범위에 있던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태권을 우주로 옮기는 건 그저 "우주에 도달"하는 것에 불과해요. 과거에 성인 남성 하나 겨우 태워서 지구 궤도만 몇십 시간 돌다 추락했던 그 원시적인 우주선과 다를 게 무엇이죠?
"우주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우주로 진입"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류로서 그 광활한 별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요!
인류는 다음 진화를 너무 오래 기다려왔어요. 육체가 음식과 호흡에 의존하고, 나약한 살점이 진공을 견디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요람 속의 아기일 뿐입니다!
고드윈이 금속 책상을 내리치자, 격분으로 부풀어 오른 피부가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몬자노는 우주 함선 생태학이란 허상에 너무 많은 심혈을 기울였어요. 유흥 도시 운영에도 그랬고요.
그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엘리너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틀었다.
그런 자들은 늘 통제하려 하죠. 신의 역할을 연기하며 쾌락에 빠져 살아요. 인공 온실의 매개변수든, 카지노의 손님이든, 그녀에겐 그저 통제할 대상일 뿐입니다.
전 모든 사람이 미래를 꿰뚫어 볼 만큼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천계를 볼 기회는 반드시 줄 거예요...
당신의 선택은 몬자노와 관계없습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인류가 더 이상 당신을 용납하지 않게 되는 그날이 오면, 당신도 자연 선택에 버림받아 배설물 속에서 익사할 요람 속의 거대 유아가 되길 원하시나요?
경고, 소속 불명의 비행체가 식별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방공 시스템이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경고, 소속 불명의 비행체가 식별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방공 시스템이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단말기에서 귀를 찌르는 합성음이 울려 퍼지자, 엘리너의 입가에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번졌다.
새로운 손님이 오신 것 같네요.
고드윈의 얼굴에는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몰아치는 후속 공격에 자신의 보루가 붕괴될 것을 직감했다.
당신 쪽 사람들인가요?
그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암살자를 응시했다. 소녀는 그런 시선 따윈 무시한 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도 겨울 계획이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시나요?
몇 번을 더 얘기해야 하죠? 전 겨울 계획을 뼛속 깊이 믿고 있어요.
그 독실한 신념... 인정해 드리죠. 어차피 당신이 맡은 역할은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요.
복도에 가벼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아요.
느릿한 발걸음과 함께, 어두운 검은 형체가 긴장된 공기를 가르며 다가왔다.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엘리너 아가씨.
처음 뵀을 때와 비교하면... 능력도, 식견도 많이 성장하셨군요.
암살자는 이런 변수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과찬이세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걱정 마세요. 당신은 이미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했으니까요.
그는 대화 속에서 무언가 감지한 듯,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진화"는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에요. 수혜자라면, 그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각오를 하고 얘기해야죠.
설마 당신이...?!
겨울 계획의 첫 투자자입니다. 제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아, 그러고 보니... 엘리너 아가씨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죠. 마저 하시죠?
트라우트는 오른팔을 휘저으며 엘리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고모의 명령도 중요하지만, 카지노의 철칙은 최고 베팅자의 뜻을 따르는 것이죠. 보크농 계획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신 만큼, 저로서는 그 위계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고드윈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다음 개선안에서는 반드시 기체 방어 시스템을 강화하고, 완벽한 방수 시스템도 구현하겠습니다!
지금은 실험 데이터가 부족해서 진행이 더딘 것뿐입니다! 모든 연구는 기초부터 쌓아야 합니다. 근거 없는 성과란 존재할 수 없어요!
고드윈은 위태로운 입지를 지키려는 듯 필사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강조했다.
몬자노는 식민 함선의 생태권 구축에 집착하다가 결국 미로에 갇혀버렸어요. 당신도 그렇게 되길 바라진 않겠죠?
우리 조상들은 짐승 가죽으로 추위를 이겨내며 동굴을 벗어났지만, 곧 포식자들의 위협이 혹한보다 더 치명적이란 걸 깨달았죠. 자연의 선택은 결코 한 번의 시험으로 끝나지 않아요.
… 군사력 강화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고, 녹색 눈동자 속 분노가 점점 더 날카로운 광기로 변해갔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만약 겨울 요새가 암살자가 아닌 대규모 군사 공격을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당신의 원형 구조체가 불멸을 이뤄낸다 한들, 방어할 힘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르키메데스도 힘 앞에서는 무력하게 쓰러졌습니다. 연구자로서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대부분의 정규군은 이미 해체되었고, 세계 정부는 고용제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어요. 전쟁이라니… 도대체 누구와 싸우자는 겁니까? 설마 아크투루스 문명과의 전쟁을 준비하자는 건가요?
고드윈은 여전히 학자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조소가 흘러나왔다.
군대의 형태는 변할 수 있어도, 우리가 맞닥뜨릴 위협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숨 막히는 침묵 속, 고장 난 장비에서 튀어 오르는 불꽃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분위기를 무겁게 끌고 갈 필요는 없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대로, 실험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유감이지만 당신을 실험에 목숨 걸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요. 고모께 이 일을 보고드려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네요.
이 정도로 거대한 보루에서라면, 한 사람의 가짜 죽음쯤은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실험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정치적 싸움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요.
그럼, 실험 사고 보고서를 위조하고, 산 아래의 극비 기밀 벙커에서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여전히 겨울 계획을 믿고 계신 거라면, 한 가지만 충고하죠. 몬자노… 그 위험한 여자와는 일찍 선을 긋는 게 좋을 겁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 선택이 달갑지 않은 듯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단지 하나의 대조 실험일 뿐이죠.
그는 어깨에 내려앉은 금속 부스러기를 가볍게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잠시만요.
소녀는 날카로운 손끝으로 고드윈의 이마 앞에 작은 호를 그렸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반응하기도 전에, 엘리너는 이미 필요한 것을 손에 넣었다.
으윽! 당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요? 고모께 보고드릴 게 필요하니까요.
그녀는 득의양양하게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을 살며시 흔들어 보였다.
단말기에서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을 흔적도 없이 복사해 왔답니다.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발전’을 위한 길이겠죠?
로프라도스행 비행기를 타야 해서, 뒷정리는 고드윈 씨에게 맡기도록 하죠.
트라우트는 이착륙장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희뿌연 눈발이 그의 실루엣을 흐리게 만들어,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들게 했다.
엘리너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 그가 서 있는 플랫폼에 도착했다.
지난 몇 년간 베풀어 주신 도움에 감사드려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어요. 정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는 화폐라는 걸.
보상을 받을 때만큼은, 엘리너도 익숙하게 겸손이라는 가면을 썼다.
별것 아닙니다. 제 마음을 담은 약소한 선물일 뿐이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는 지도 없이도 올바른 길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서 그런 특별함을 봤어요. 어쩌면, 제가 당신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킬고어 트라우트는 엘리너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보크농 계획과 겨울 계획은 결국 대조 실험이 아니었던 건가요?
그보다는, 진화로 가는 두 개의 계단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죠. 당신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이 문명은 더 높은 목표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영점 에너지 엔진의 점화 실험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죠.
산맥을 바라보던 트라우트는 흥미롭다는 듯 새로운 소식을 공유했다.
강자를 알아보는 능력은 분명 당신의 재능이 맞지만, 결정을 내릴 시간은 많지 않아요.
몬자노는 이 게임의 기반을 만드는 존재이자, 당신이 따라야 할 절대적 원칙이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 판의 룰을 모르는 국외자만이 진정한 판도를 바꿀 수 있어요.
그러니, 제 베팅을 후회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의 카지노에서 마음껏 유희를 즐기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트라우트 씨.
트라우트가 비행기에 오르려 하자, 엘리너가 그를 불러 세웠다.
설산 너머의 황금빛 도시에서는 풍요로운 군상들이 찬란한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너는 그 달콤한 환상을 기꺼이 거부했다. 그녀는 현실을 가리는 안일한 위안을 용납하지 않았고, 위험의 징후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목숨과 행복조차도 운명의 저울 위에서 겨우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그녀의 감각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흥분으로 깨어났다. 그것은 위험한 승부에 발을 들일만큼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네?
그때 장례식에 참석하셨더군요.
그래서요?
앤슨 스터긴, 볼 홀드먼... 그리고 본 네거트까지.
이들은 모두 당신이 문학 세계에 남긴 가면들이죠. 산산이 부서진 거울 조각처럼,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정신과 의사, 작가, 심지어 연쇄 살인마’의 흔적만을 보게 되고, 정작 당신의 실체는 영원히 미궁 속에 남게 되겠지요.
그런 자만심은 당신답지 않아요.
그는 감정을 숨긴 채 짧게 경고했다.
당신의 변장술은 실로 경이로워요. 제가 처음 위장을 시도했을 때, 당신은 이미 제 가면을 꿰뚫어 보고 계셨더군요.
앞으로 더 긴밀한 협력을 위해서는 서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완전한 동그라미와 십자가는 점성학에서 달 궤도의 원지점을 가리키죠. 위성인 달은 자전하지 않지만, 만약 자전한다면 태양을 집어삼키는 갈고리가 될 수도 있어요.
카드 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별명을 짓는 걸 좋아했죠. 다른 사람이 읊어주는 행운의 주문 같은 거예요.
물론 저는 운을 믿지 않지만, 게임의 규칙은 존중하는 편이에요.
암월... 일명 릴리스.
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