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하하하...
알렉세이!
베로니카는 패배한 그 순간,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베로니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뒤에 있던 알렉세이의 부축이 아니라...
베로니카!
함영이 재빨리 일어나 비녀로 알렉세이를 밀쳐냈다.
윽...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알렉세이"의 손에 든 비수가 순식간에 베로니카의 기체 깊숙이 꽂혔다.
기체 권한을 넘겨. 베로니카... "정의".
원래는 반듯했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알렉세이"는 평온하게 비수를 쥐고 있었다.
난 네가 뭐라도 보여줄 거라 기대했는데, 지금 보니 약하네.
하지만, 괜찮아. 킥킥... 내가 대신 기계체들을 이끌어 기계체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거니까.
"알렉세이"의 머릿속에는 기계체들로 이루어진 장엄한 광경이 그려져 있었고, 그 청사진은 이미 손에 닿을 듯한 곳에 있었다.
기계체만의... 세상...
그럴... 리... 없어.
힘겹게 몸을 일으킨 베로니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더는 발버둥 치지 마. 베로니카.
넌... 알렉세이가... 아니잖아.
하, 당연히 아니지. 그 나약한 겁쟁이는 인간의 몸으로 기계체의 성전에 들어가려 했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냐?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법이지. 그건 나도,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말했잖아? 기계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으윽...
안 돼. 베로니카를... 해치게 할 순 없어.
절대 안 돼!!!
쿨럭... 알렉세이!
날 떠나면 너도 살아남지 못해! 그 망가진 육체로는 버티지 못할 텐데...
그래도 베로니카를 해치게 할 순 없어!
베로니카의 기체에 박혀 있던 비수를 힘껏 뽑아낸 알렉세이는 온 힘을 다해 자기 몸 안에 잠입한 유령과 싸웠다.
넌 단지... 내 음성 시스템과 시각 모듈만 제어할 수 있을 뿐이야. 하지만...
그가 기계체 팔의 관절에 힘을 주자, 기계 부위에서 날카로운 불꽃이 튀었다.
내 의지만큼은 절대로 지배할 수 없어!
몇 번의 다툼 끝에 알렉세이 본인의 의지가 마침내 우세를 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비수를 세게 움켜쥔 뒤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알렉세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베로니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쿨럭... 죄송합니다. 베로니카.
알렉세이가 망가진 기계체 몸을 끌며 천천히 베로니카 곁으로 기어갔다.
왜 이렇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제 육체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라는 의식이 전자 유령처럼 저의 기계체화된 신체를 모두 지배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제 의식만큼은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제 의식은... 여전히 인간의 의식입니다.
알렉세이가 기침을 하며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예전에 당신이 절 비웃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리 해도 완전한 기계체는 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건 내 본심이 아니었어. 난 그냥...
베로니카는 자신의 날카로운 말들이 칼날이 되어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알렉세이는 천천히 말하며 베로니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이 여성 기계체의 모습을 시각 모듈에 새기려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베로니카. 천국의 다리를 멈추고 이 전쟁을 멈춰주세요. 이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제가 너무 교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네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과 달라.
인간을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이런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번이 천국의 다리의 마지막 에너지 축적입니다. 베로니카. 공중 정원이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그 세상에는 더 이상 어떤 거짓말도 없을 것입니다.
베로니카, 전 엔지니어로서 우주 도시 기계체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기계체들을 당신들만의 미래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황제"는 유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의 정체를 모릅니다. 그가 제게 완전한 기계체가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베로니카. 이 모든 재앙이 제 사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알렉세이는 눈앞의 베로니카를 바라보며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베로니카. 전...
망가진 기계체 부품에서 삐삐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알렉세이의 표정이 굳어버렸고,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추었다.
...
여성 기계체는 말없이 창에 몸을 기대어 힘겹게 일어섰다.
베로니카...
가져가.
베로니카는 기억체 하나를 함영에게 던졌다.
이 비밀 코드를 천국의 다리 중앙 제어 시스템에 연결하면 천국의 다리가 작동을 멈출 거야.
당신 상처가...
상처 난 곳은 내 코어가 아니야. 내 코어는... 다른 곳에 있어.
베로니카는 비수에 찔릴 때, 그녀의 기체 코어를 겨냥했던 칼날이 이상하게도 방향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미... 그때 알렉세이는 "황제"와 주도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 마음 바뀌기 전에 어서 천국의 다리를 멈추러 가.
베로니카는 알렉세이의 망가진 몸체 앞에 묘비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드미트리!
베로니카가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않자, 도시의 기계체들이 조금씩 전투를 멈췄다. 율리아가 이 틈을 타 재빨리 드미트리가 있는 천국의 다리로 갔다.
눈보라는 여전했고, 눈먼 지속에 노출된 드미트리의 망가진 기체는 언제 눈보라에 휩쓸려 하늘로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냘팠다.
전원 차단... 중지... 천국의 다리 발사...
드미트리의 전자두뇌는 연결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음에도 힘겹게, 이전의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원... 차단... 천국의 다리 발사... 중지...
여기 참... 아름답습니다.
별이네요.
네. 별입니다.
지구도...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저렇게 보일까요? 작고 파란 별처럼 말이죠.
천국의 다리만 잘 만들면, 우리도 저기 가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국의 다리... 발사... 중지...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드미트리! 거기 있어? 드미트리!
어서 숨어! 드미트리... 내가 몰래 데리고 나온 걸 아빠가 아시면 안 돼.
율리아 님.
이건 아빠와 다른 분들의 새로운 규정을 어기는 거야. 그들은 모든 이상 기계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단 말이야. 너도 이상 기계체 중 하나라고 했어.
하지만 디마가 왜 이상 기계체지? 난 디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디마는 내 동료고, 날 볼 때마다 인사해 주잖아.
천국의 다리 위에서 휠체어에 앉은 소녀가 우스꽝스럽게 기계체의 동작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음...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기계체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어. 천국의 다리에서 일하던 SDC-39도, 도시 입구를 지키던 바르도...
왜 이렇게 된 걸까? 모두 다 우주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가족...
맞아. 여기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예전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발사... 중지...
드미트리가 말한 대로, 그는 원자로 구조를 잘 알고 있었고, 원자로를 멈추는 동작을 여러 번 "연습"하기도 했었다.
전자두뇌 회로가 거의 다 망가졌음에도, 드미트리는 기억 속에 새겨진 그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드미트리!
소녀는 휠체어에서 비틀거리며 굴러떨어졌지만, 온 힘을 다해 눈보라 속으로 갔다.
유라 님... 유라 님...
천국의 다리...
천국의 다리는... 작동이 중지됐어. 네가 성공한 거야. 디마.
율리아는 목메 울었고,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은 얼음으로 변했다.
그럼, 다행입니다.
여기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예전처럼 살 수 있었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유라 님.
디마. 네가 해냈어. 해냈다고...
천국의 다리...
강제로 원자로에 접속하느라 전자두뇌는 붕괴 직전이었고, 드미트리의 시각 모듈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유라 님, 기계체도... 영혼이 있습니까? 기계체의 영혼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거기서... SDC-39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럼, 디마.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율리아는 드미트리의 기체를 꽉 안은 채 눈보라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유라 님... 가족...
여기... 여기 추워. 디마.
기계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따뜻했던 그의 기체가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다.
기계체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다.